“어? 뭐지?” 박제가 되어 하나의 알파벳 글자 안에 배열된 꽃잎인데도 전혀 슬프지 않다. 오히려, 봄날 산등성이에 피어난 들꽃처럼 생생하게 자신을 보라고 외친다. 그제야, 상점 안에 놓인 평범하게 보이던 초록 식물들이 특별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기도문을 따라하는 신자처럼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하얀 배경과 초록 잎사귀가 강한 대비를 이루며, 알프스처럼 빛나는 작은 공간. “어? 이 배치 뭐야? 이 사람 뭐야?” 단순히 화분을 파는 상점인 줄 알았는데, 힐링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2022년 마레지구에 첫 매장을 내고 이제는 파리 주요 지역에 지점을 둔 파리 최초 식물을 테마로 한 콘셉트 스토어 허바리움(herbarium)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꼈던 인상이다. 궁금해진다. 이런 조합을 의도한 사람의 생각.
오늘의 주제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생각이다. 어쩌면 파리라서 더 특별한 주제인지 모른다. “아름다움은 보편적으로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칸트의 말처럼, 아름다움
은 본질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예술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이 본질적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상대적 인식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다’라는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의 정의처럼 오랜 기간 예술은 아름다움을 사물에 한정하고 사물의 특정 순간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인상주의의 시작이다.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통해 드러나는 빛,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빛의 효과를 표현하려 한 인상주의와 함께 사물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주관적 시선이 미학의 중심에 선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는 말한다.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의미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미의 이상을 구현하는 자가 아니라 작품에 의미를 실어 전달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작품이 태어난 맥락을 이해하고 작품 속의 상징과 비유를 파악할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 작품 감상이 이루어진다. 옹프레의 정의가 모든 예술에 적용되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작가의 구상이 작품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현대 미술에서 그의 정의는 탁월해 보인다. 평범해 보이는 정물화 속에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시점을 구현함으로써 작가의 생각이 사물의 본질임을 표현한 폴 세잔은 현대 미술의 시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레디 메이드’ 남성용 소변기에 자신의 서명을 새겨 전시한 마르셀 뒤샹의 도발이 ‘예술가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그것을 어떻게 구현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새로운 인식의 창출로 이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뒤샹의 도발적인 미학 쿠데타가 일어난 지도 벌써 100년이 더 흘렀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한정된 예술가들의 영역에서 벗어나 대중의 삶 일부가 되었다. 미술관의 큐레이팅이 상점의 디스플레이로 전환되고, 사람들은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예술 작품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비싼 값에 소유할 수 없다면, 일상의 삶을 예술로 승화해 삶의 질을 높이는 매우 탁월한 방식이라 할 만하다.
우리에게는 편집숍 또는 셀렉트숍 등으로 불리는 콘셉 스토어가 파리 쇼핑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단어 그대로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대상을 선별해 예술 작품 처럼 아름다움을 모았다는 관점에서 콘셉트 스토어라는 말이 어울린다. 우리가 작가의 의도에 탐닉하는 것처럼, 파리를 찾은 쇼핑객들은 이런 콘셉트 스토어에서 물건을 선별하고 배치한 의도를 탐닉하며 자신의 심미안과 연결 지으려 한다. 아마도 이런 특징이 파리의 작은 콘셉트 스토어들이 세계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이유라고 본다.
이러한 창의적인 상점들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본다. 먼저 라이프 스타일을 표방한다는 점이다. 패션 또는 소품이라는 개별 상품에 대한 접근보다는 삶의 일부로서 제품을 바라보게 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삶 전체에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마레 북쪽에 자리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메르시(Merci)가 대표적이다. 수익금 일부를 마다가스카르 원조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2009년 문을 연 이 매장은 패션은 물론, 부드럽고 포근한 쿠션을 만드는 어텀 파리(Autumn Paris), 팬던트 조명 제조회사 아틀리에 조르주(Atelier Georges), 예쁜 식기로 유명한 자르 세라미스트(Jars Céramistes) 등 생활용품들의 컬렉션도 인상적이다. 특히, 자신이 읽던 책을 가져와 매장 내 카페에서 읽고 이를 책장에 두고가 다른 사람이 읽게 한다는 개념의 북카페는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의 예술적 모티브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파리적이고 매력적이다. 프랑스 신진 디자이너들이 모여 만든 바벨(Babel), 다목적 문화공간을 표방하는 아카이브 18-20도 파리지앵의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기 위해 방문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가장 프랑스적인 파리에 다양한 다른 나라의 문화들이 피어나는 것도 인상적이다. 시민들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살고 있는 파리는 분명 다문화 사회다. 이제는 그 관광객들이 파리에 존재하는 다른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 본다. 파리는 맨하튼이 될 수 있을까? 일본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생활 예술이라는 테마로 문을 연 보우 앤 애로우스(Bows & Arrows), 일본 미각 체험을 내세운 타구미 플레이버(Takumi Flavors), 팔레스타인 요리와 공예품을 경험할 수 있는 아르디(Ardi)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핫하고 힙하게 주목받는 K-컬처를 테마로 한 스토어도 예외는 아니다. 비사이드 김치(Besides Kimchi)는 전통과 과학이 접목된 한국 패션과 뷰티 상품의 다양한 노하우를 발견할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고, 베트남계 프랑스인 3세가 운영하는 킥 카페는 K-pop 콘셉트 스토어로 유명하다.
아울러, 식물 테마 상점 허바리움처럼, 파리 최초로 비건을 테마로 한 오주흐드휘 드망(Aujourdhui demain), 요가의 정신 상태를 추구하는 요가서처(Yoga Searcher), 반려견 콘셉트 스토어 바커스 브라더스(Barkers+Brothers)와 같이 매장 주인의 식견과 전문성을 내세운 특색있는 매장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예술은 공간을 채우는 시간의 이야기다. 길을 걷다 우연히 상점의 디스플레이를 보며 과거가 떠오르기도 하고 미래의 희망도 발견할 수 있다면, 도시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훌륭한 미술관이다. 그래서 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