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집밥’이라고 하면 저마다 떠오르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매일같이 식탁에 내주시던 국과 반찬일 수도 있고, 가족들과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 집에서 해먹던 음식일 수도 있다. 음식을 먹으면서 느꼈던 익숙함은 시간이 지나도 향수로 남는다. ‘음식은 추억으로 먹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경복궁 옆,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골목의 한옥 공간에 자리한 ‘홈코리안퀴진’은 이런 집밥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백반집이어서가 아니다. 정성이 깃든 한국 가정식과 술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제철 식재료와 조리기법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더한 모던 한식이지만 먹다 보면 언젠가 맛본 것 같은 익숙함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새롭게 문을 연 홈코리안퀴진이 이름에 ‘홈’을 앞세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삼청동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외국인들한테도 집처럼 아늑한 곳이 되고자 한 것이다. 홈코리안퀴진은 전통과 현대뿐만 아니라 한식과 와인이라는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어우러진 다이닝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오래 전 실제 주택으로 사용되던 한옥을 개조한 공간으로,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면 위로 열린 하늘을 볼 수 있는 안뜰을 중심으로 홀과 프라이빗 룸, 와인 바 공간이 ㄷ자 형태로 둘러싸고 있어 아늑하게 느껴진다.
홈코리안퀴진을 운영하는 모기업인 와인수입사 리토레(LITORE)의 김정란 대표는 “와인과 잘 어울려 곁들이기 좋은 모던 한식을 하는 곳으로,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직접 공수한 좋은 와인들을 함께 선보인다”며 “와인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식 메뉴를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전통주도 판매하고 있다.
정루기 홈코리안퀴진 헤드셰프(리토레 세일즈 플래닝 매니저·34)는 “사람들은 음식에서 새로움을 찾는다고 말은 하지만, 입 안에 들어갔을 땐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며 “도전적이면서도 클래식한 맛을 살려 ‘새로움 안에 있는 익숙함’을 선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홈코리안퀴진의 모든 메뉴는 단품으로 주문이 가능하다. 안주로도 좋고, 식사 메뉴로도 손색이 없다. 가게를 오픈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술을 곁들이는 곳인데도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과 어르신들에게까지 벌써 입소문이 났다. 조미료는 물론 자극적으로 간을 맞추거나 양념을 쓰지 않고, 오로지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와 정성으로 맛을 낸 덕분이다. 대부분 식재료는 산지 직송으로 받아 사용한다. 일례로 문어는 전남 여수에서 당일 잡아 올린 돌문어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받아 ‘돌문어 초무침’으로 제공한다.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홈코리안퀴진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주꾸미 미나리 리소토’와 ‘한우 녹차 떡갈비’다. 일반적인 크림 리소토를 만든 뒤 여기에 끓이지 않은 미나리 페스토를 섞고, 미나리 줄기를 송송 썰어 곁들인 뒤 그 위에 매운 주꾸미를 올린 메뉴다. 주꾸미는 전남 고흥산 주꾸미를 수제 간장양념과 고춧가루로 양념해 오븐에서 구워낸다. 리소토와 주꾸미를 한 번에 떠서 한 입에 넣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매운 주꾸미가 매콤하고 달짝지근하게 입맛을 돋운 뒤 크림 리소토가 부드럽게 입 안을 감싸고, 씹을 때마다 은은하게 미나리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꾸미집에서 리소토를 먹은 건지,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주꾸미를 먹은 건지 묘한 기분이 든다.
정루기 셰프는 “매운 주꾸미 볶음에 미나리를 곁들여 먹는 데서 착안해 만들었다”며 “주꾸미의 매운 맛을 크림 리소토가 잡아줘 외국인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주꾸미 볶음을 리소토라는 색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외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음식인 리소토에 올려진 한식의 매운 주꾸미가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일종의 ‘킥’이 되는 것이다.
‘한우 녹차 떡갈비’ 역시 새로움 안에 있는 익숙함으로 오감을 만족시켜 준다. 접시에 따뜻하게 데운 스톤을 깔고 그 위에 떡갈비를 얹어 내는데,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서 시각과 후각을 먼저 자극한다.
정 셰프는 “일반적으로 떡갈비를 만들 때는 소고기에 돼지고기를 조금 섞지만 이렇게 만들면 소고기 육향도, 돼지고기 육향도 약해진다. 한우 녹차 떡갈비는 당일 아침 공수한 1++등급 한우만을 사용하고 있다”며 “다진 한우에 표고버섯과 불려서 잘게 다진 전남 보성 녹차 잎을 곁들여 육즙과 재료 본연의 향을 살린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한우 녹차 떡갈비는 부드럽게 씹힐 뿐만 아니라 먹는 동안 입 안 가득 육즙을 머금게 만든다. 입을 크게 벌리면 한 입에도 먹을 수 있는 크기다. 중간 중간 표고버섯은 쫄깃한 식감을 더해주고, 깔끔한 녹차 향과 향긋한 표고버섯 향이 한우 육향과 어우러져 간이 세지 않은데도 맛깔스럽다.
그 밖에 ‘더덕 감자 고추장 닭구이’ ‘돼지갈비(한돈) 묵은지 찜’ ‘맥적구이’ ‘해물전’ 등도 인기다. 해물전은 흰살 생선과 새우, 오징어, 버섯, 미나리, 톳, 두부, 영양부추 등을 주재료로 만들고 달래장을 함께 제공한다. 평일은 저녁 5~9시, 주말과 공휴일은 종일 주문 가능한 ‘한우 만두 전골’은 홈코리안퀴진이 맞는 첫 가을, 쌀쌀해진 날씨에 새롭게 선보이게 된 메뉴다. 한우와 이북식 손만두, 3가지 버섯(표고·느타리·만가닥)을 함께 끓여낸다. 제철 체소를 구워 순두부로 만든 비건 사워크림을 곁들인 ‘채소 구이’ 역시 홈코리안퀴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함이 있다.
디저트 역시 한국적인 맛과 양식 디저트가 결합된 형태로 색다른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전남 우도 땅콩을 곁들인 ‘찹쌀조청과 구운 치즈’를 비롯해 타르트에 생크림을 채우고 곶감을 올린 ‘곶감 타르트’, 찰보리로 만든 젤라또 위에 고구마 소주를 부어 먹는 ‘전통주 아포가토’ 등이다.
홈코리안퀴진은 브레이크 타임 없이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운영된다. 방문객의 절반은 외국인이지만 정갈한 음식과 분위기로 비즈니스 미팅을 하기에도 좋다. 대관 서비스와 케이터링 서비스도 운영한다. 김정란 대표는 “삼청동 거리에 갤러리, 미술관이 밀집해 있어 인근에서 전시를 개막하고, 저녁에 오프닝 파티를 위해 이곳을 대관하는 손님도 늘고 있다”며 “케이터링에서 반응이 좋았던 메뉴를 가게 메뉴에 추가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공간은 전통 기와집의 구조를 살리면서도 현대적으로 꾸며져 눈길을 끈다. 야외 공간을 포함해 최대 40인석으로 마련됐지만, 마당 공간까지 활용한 스탠딩 파티의 경우 최대 100명 까지도 수용 가능하다. 별채에 마련된 프라이빗 룸 공간 한편에서는 도자 식기와 동양미를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 등도 판매한다. 또 홈코리안퀴진의 브랜딩을 맡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수수진 작가의 그림이 레스토랑 곳곳에 전시돼 있어 공간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정루기 셰프는 10대 때 요리를 시작했지만 조리학교 졸업 후 여러 레스토랑을 거치며 주방을 떠나 홀 매니저, 브랜딩 기획 등 업무를 하다 와인과의 인연으로 리토레에 입사했다. 그는 “처음엔 와인 영업만 담당했는데, 회사에서 한식 다이닝 바를 오픈한다고 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셰프로도 합류하게 됐다”며 “한식만큼 와인과 잘 어울리는 음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이 홈코리안퀴진에서 한식과 와인이 함께하는 색다른 다이닝 경험을 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무역업이 본업인 김정란 대표가 지난 2021년 설립한 리토레는 내년 초부터 일본 도쿄, 미국 뉴욕 등 해외에서 ‘홈코리안퀴진’의 팝업 스토어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장르 모던 한식
위치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9 1층
오너셰프 정루기 셰프
영업시간 매일 11:30~22:30(21:00 라스트 오더)
가격대 단품 1만~3만원대
프라이빗 룸 1개(최대 12인)
전화번호 050-71371-9042
주차 인근 유료주차장 이용
[송경은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