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겐 기이한 특성이 있다. 개개인은 합리적이고 윤리적인데, 함께 모여 집단을 이루면 바보처럼 생각하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곤 한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라 불리는 현상이다. 니체는 말했다.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물지만 군중과 정파와 국가와 세대에서는 차라리 규칙이 된다.” 집단 광기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나가서 어리석게 행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광풍, 18세기 런던과 파리의 주식 투기, 20세기 나치 유대인 학살, 21세기 미국 부동산 거품 등은 그 주요 사례다. 코인 열풍을 등에 업은 최근의 사기 행진도 집단 광기 없이는 불가능했을 터이다.
<돈>(문학동네 펴냄)에서 에밀 졸라는 파리 주식 투기 열풍을 배경 삼아 인간 탐욕의 드라마를 선연하게 그려낸다. 졸라는 말한다. “고작 100만프랑을 벌기 위해 인생 30년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을까? 간단한 증권 거래로 한 시간 만에 그 돈을 수중에 넣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투기에 환장하며 광기에 빠져드는 이유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 자신이 한 일보다 월등히 많은 대가를 바라는 일확천금의 충동에 쉽게 빠져든다. 뇌의 예측 회로 때문이다. 우리는 전망하고 계획한 후 이를 성취할 때 높은 쾌락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성취가 클수록 쾌락도 커진다. 운 좋은 사촌이 헐값에 땅을 사는 일보다 우리를 자극하는 일은 없다. 친구가 코인으로 돈을 벌고 주식으로 대박 나면, 위험 투기가 빚내서 뛰어들어도 괜찮은 안전 투자로 느껴진다. 전문가 경고는 아랑곳없다. 부자 되는 걸 가로막는 기득권층의 음모로 들릴 뿐이다.
사람들은 외친다. “위험, 모든 게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거대한 계획이 필요해요. 출자가 충분치 않을 때, 출자를 증폭시키는 주사위 던지기, 굉장한 이득에 대한 희망이 필요해요. 그러면 열정이 불타오르고, 생명이 넘쳐흐르고, 각자가 돈을 가져오죠. 인류는 이보다 더 집요하고, 더 뜨거운 꿈을 품은 적이 없어요. 기상천외한 착상에서 모든 걸 얻고 왕이 되고 신이 되는 꿈 말입니다!” 왕이 되고 신이 되는 확률 낮은 고수익을 보장받고 투자 위험 등급인 기발한 발상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열기에 빠져들면, 적법한 이익엔 염증을 느끼고, 정확한 돈 개념을 상실한다. 결과는 대부분 파멸이다.
미국 투자이론가 윌리엄 번스타인의 <군중의 망상>(포레스트북스 펴냄)에 따르면, 인간 합리성은 잔꾀와 망상이 들끓는 가마솥 거품 위에 위태롭게 얹힌 깨지기 쉬운 뚜껑과 같다. 한때 너무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투자는 거품이 꺼지는 순간 처참한 재앙이 된다. 졸라의 말대로, “투기의 광증 속에는 파괴적 효모, 모든 것을 썩히고 갉아먹으며 더없이 고귀하고 오만한 족속조차 인간 넝마, 시궁창 쓰레기로 만드는 파괴적인 효모”가 있다. 일단 마음에 투기 효모가 자리 잡고 활동을 시작하면, 삶 전체가 공중에 붕 뜨면서 파멸의 시한폭탄이 작동한다.
번스타인은 투기와 파멸의 서사를 이끄는 인물에 네 부류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음모를 설계하고 주도하는 유능한 악당이고, 둘째는 거기에 매수되는 아둔한 대중이다. 셋째는 긴장을 극도로 고조하는 언론이고, 넷째는 부패의 정념으로 가득 찬 두 눈을 숨긴 채 돈다발을 향해 촉수를 뻗치는 노회한 정치인이다.
영웅적 카리스마를 뽐내는 악당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은 감언이설로 가득한 매력적 서사다.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과 검증된 수치보다 듣기 좋은 이야기들에 더 쉽게 매혹된다. 우리 뇌는 이야기에 빠져들면, 자기도 모르게 관점을 바꾸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현실을 헤쳐가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다른 사람의 성공 이야기에 열광한다. 우리 안에는 극도로 위험한 환경에서 타인의 기술을 모방함으로써 생존했던 조상의 기나긴 역사가 잠들어 있고, 어릴 때부터 우리는 그런 내용을 담은 이야기를 읽고 듣고 즐기면서 자신의 인생 서사로 받아들인다. 한마디로, 인간은 타인의 성공 이야기를 자신의 성공 이야기로 쉽게 착각한다.
또한 우리는 협력해서 극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함께 엄청난 성공을 이루자는 열정의 서사에도 쉽게 감동된다. 인류는 사회적 협력을 창출하고 집단 소속감을 일으킴으로써 지구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라선 까닭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담을 즐기고 협력을 고취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우리를 집단 광기의 함정에 빠뜨린다. 서사에 설득력이 더해져 마음을 움직일수록 비판적 사고력은 감퇴하고 분석 능력은 저하되면서 오류에 무관심해질 확률은 높아진다. 사고는 행동을 위한 것이므로, 이는 곧바로 잘못된 행위로 이어지기 쉽다. 불안을 억누르고 위험한 투자에 뛰어들거나, 불편한 마음을 억누르고 왕따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다.
번스타인은 인류의 오랜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기대되는 새로운 기술을 제안하고, 이를 매력적 서사로 감싸 집단 도취를 창출하면, 투기 광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는 그 사례다. 피 한 방울로 200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거짓말로 투자 사기 열풍을 일으킨 그녀는 기발한 착상, 스탠퍼드대 학생이란 이미지, 질병 치료를 향한 꿈을 결합해 매력적 서사를 창조해 수천억 투자를 받았다. 영웅의 이미지를 퍼뜨린 언론과 거품을 숫자로 합리화한 투자 전문가의 전망이 사람들 눈을 흐리게 만들고, 거품을 경고하는 비관적 목소리는 일축됐다. “당신은 기술을 몰라.” 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몰랐던 이들은 투기 효모에 감염된 낙관주의자들이었다.
집단 광기에 뛰어들어 천금을 움켜쥐는 사람은 드물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거나 벌린 입으로 감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복권은 엄청난 당첨금으로 우리를 유혹하나, 실상 이득을 취한 사람은 극히 적다. 당첨되더라도 끝까지 풍족한 삶을 누리는 사람도 별로 없다. 미국 국립 금융 교육 기금에 따르면, 복권 당첨자의 70%는 투자 실패, 사기 피해 등으로 몇 년도 못 가 파산했다. 그 와중에 가족은 깨어지고, 우정은 흩어지고, 인간관계는 무너졌다.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서 꾸준히 삶을 가꾸는 일 말고 좋은 삶을 만드는 방법은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소셜 미디어 시대는 집단 망상과 대중의 광기를 부추긴다. ‘좋아요’와 ‘하트’의 폭풍에 매혹된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그릇된 사고를 퍼뜨리고 집단 폭력을 행사한다. 집단 의사를 공론장에 쏟아내는 일과 다른 의견을 품은 이에게 문자 폭탄과 댓글 테러를 저지르면서 협박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할 때, 집단적 의사 결정은 실패하고, 민주주의는 파산한다. 한 사회가 집단 광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유롭게 정보를 접하고 축적할 수 있는 환경에서, 타인에 휩쓸리거나 집단에 협박당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분석하고 사고하는 다양한 개인이 있어야 한다.
번스타인은 정치든, 종교든, 금융이든, 지나치게 확신에 찬 사람과 그 추종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작은 차이에 매몰된 군중의 자아도취는 ‘감히 알려고 하는’(칸트) 이들을 억압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광신의 망상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장은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