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술’로 치부되던 위스키의 위상이 달라졌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환경에 투자 시장이 울상이지만 위스키 시장만은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사이트(FMI)에 따르면 세계 위스키 시장 규모는 2022년 809억달러에서 연평균 12.4% 성장해 2032년에는 5503억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별로는 아시아 지역의 위스키 소비가 높으며, 개발도상국의 위스키 소비도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별 위스키 소비 규모를 살펴보면 인도(184.7억달러), 미국(160.2억달러), 브라질(55.9억달러), 태국 (54.3억달러), 일본(45.5억달러) 순이다. 국내에서도 위스키 수입 규모가 7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며 인기를 끌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2년 10월까지 위스키 수입 금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6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조치로 인해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과 ‘혼술(혼자 마시는 술)’ 문화가 자리 잡으며 20·30대를 중심으로 위스키를 즐기는 소비층이 늘어나 시장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또 위스키에 소다수 등을 타서 마시는 ‘하이볼’이 인기를 끌면서 시장을 키우고 있다.
인기가 많은 위스키 제품의 경우 품귀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위스키 수입이 급증했지만, 여전히 싱글몰트 등 인기 위스키는 글로벌 물량 부족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지난 11월 편의점 CU는 주류 장터를 진행하면서, 날짜별로 한정 위스키를 선보였는데 첫 판매에서 판매 오픈과 동시에 순식간에 동이 났다. 편의점은 핵심 타깃층인 MZ세대가 최근 위스키까지 주류 문화를 이끄는 핵심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이들을 겨냥한 품목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편의점 GS25는 주류 강화 콘셉트 매장에서 희귀 위스키 판매 행사를 진행했는데, 오픈런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싱글몰트 위스키가 국내에서 품귀 현상을 보이는 건 수요와 공급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싱글몰트 시장은 10년 전부터 꾸준히 성장해왔으나 젊은 세대의 프리미엄 제품 선호, 나만을 위한 가치소비 성향에 힘입어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이라는 게 주류업계의 분석이다.
반면 싱글몰트 위스키 공급은 급격하게 늘어난 수요를 받쳐주지 못했다. 오히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싱글몰트 위스키 공급량은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인력 수급 문제, 물류대란, 원부자재 수급 불안 등이 위스키 생산에 영향을 줬다는 게 주류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싱글몰트 위스키를 담는 유리병 수급 문제도 영향을 미쳤다. 미중 갈등으로 유리병 수급처가 급히 변경된 데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령이 수급난을 부채질했다.
2022년 초부터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싱글몰트 위스키 품귀 현상은 해를 넘겨 2023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늘어난 수요를 맞추기 위해 위스키 생산 업체가 생산량을 늘린다고 해도 10여 년이 넘는 숙성기간을 거쳐야 해서 공급난을 당장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위스키의 인기로 가격 역시 최고치를 기록하며 높은 투자 수익률을 기록하며 대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나이트프랭크가 발표한 ‘럭셔리 인베스트먼트 인덱스 2022(Luxury Investment Index 2022)’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주요 명품상품 가운데 희귀 위스키가 428%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희귀 위스키가 428%의 수익률로 1위를 기록했고, 자동차(164%), 와인(137%), 시계(108%), 가방(78%), 미술품(75%), 암호화폐(64%), 보석(57%) 등이 뒤를 이었다.
최근 유명 경매에서도 희귀 위스키가 가격 최고치를 연일 기록하고 있다. 2019년 소더비 런던에서 스카치위스키 ‘맥캘란 1926 60년산’이 23억5000만원(145만2000파운드)에 팔리기도 했다. 2022년 10월 서울옥션에서 ‘발베니 DCS 컴펜디움(Compendium)’ 25종의 위스키가 5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에 병 위스키 외에 위스키 제조 때 사용하는 술을 담는 오크통인 ‘캐스크’가 거래되기도 한다. 2021년 맥캘란 캐스크 경매에서 1998년산 캐스크 1통 약 14억2000만원에 낙찰됐고 2022년 아드벡 싱글몰트 위스키(1978년산) 캐스크 1통은 약 248억원이란 엄청난 가격에 낙찰되기도 했다. 한편 여러 위스키 가운데 특히 싱글몰트 위스키의 가격 상승 폭이 높은 편이다. 특히 일본산 위스키의 가격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위스키 인덱스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2022년 8월 기준 수집가 선정 100병 위스키(Rare Whisky 100 Index)는 2012년 대비 4.95배 증가했고, 가장 오래된 싱글몰트·스카치위스키 50병(Vintage 50 Index) 은 약 4배 증가했다. 무엇보다 수집가 선정 일본 위스키 100종(Japanese 100 Index)은 2014년 대비 약 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희귀 위스키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초부유층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 줄리어스 베어(Julius Baer)는 코로나19 이후 부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럭셔리 구매 품목 1위는 위스키가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2021년 부자들의 구매 품목으로 1위 위스키와 2위 자전거가 각각 27.4%, 30.4% 증가했지만, 자동차와 와인은 각각 9.5%, 26.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 자산가의 일본산 고가 위스키에 대한 인기가 상승하며 중국은 2021년 일본 위스키 수입국 1위(170억달러)를 차지하고, 2위 미국, 3위 프랑스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한 병에 2억5000만원인 ‘고든 앤 맥페일 글랜리벳 제너레이션스 80년’ 2병이 모두 판매돼 한국 부자도 초고가 위스키의 소장에 관심이 높아지는 중이다. 초고가 위스키 시장이 성행하며 보험상품도 등장했다. AIG 보험사 PB부서는 부유층의 시계, 위스키, 자동차 등의 구매가 증가하면서 관련 보험도 증가하였고 특히 위스키 보험 계약이 크게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희귀 위스키는 가격 지속 상승세에 수익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가격이 한 번 올라가면 쉽게 내려가지 않는 특성이 있다. 가격 방어가 잘 되고, 과거 경제위기 속 가격 하락 폭이 작다는 장점이 있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헤지 수단으로 관심 증가하고 있다. 가격부담으로 고가 위스키를 구매하지 못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위스키 공병 재테크도 성행하고 있다.
위스키 공병 거래는 코로나19로 집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흔치 않은 위스키나 독특한 디자인의 공병이 고급 분위기를 내는 인테리어 인기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 중고 사이트에서 위스키 공병은 코냑 레이마르탱 루이 13세 25만원, 헤네시 70만원, 야마자키 25년 200만원, 루이 13세 블랙펄 400만~500만원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다.
위스키 투자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투자 상품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위스키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의 성공 이후 공모 펀드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 최초 위스키 투자 사모펀드인 ‘The Platinum Whisky Investment Fund’는 평균 17%의 수익률을 내며 2021년 성공적으로 청산하며 간접투자로 성공 가능성 증명한 사례다. 이 상품은 희귀 싱글몰트 위스키 투자펀드로 2014년 설립해 홍콩, 싱가포르, 중국, 영국 투자자에게 1200만달러를 유치해 운영했다. 주로 캐스크와 병 위스키에 투자해 거둔 수익률은 각각 150%, 85%였다.
사모펀드 ‘Rare Single Malts’ 역시 2020년 대체투자에 관한 관심이 높은 싱가포르와 홍콩 초부유층을 타기팅해 홍콩에서 위스키 펀드다. 주로 15~40년 된 희귀 위스키 캐스크와 30년 이상 된 병 위스키에 투자한다. 유럽에서는 금융감독 기관의 승인을 받아 사모펀드가 아닌 일반 공모 펀드도 선보였다. 스웨덴 금융감독국의 승인으로 2018년 The Single Malt Fund가 주인공이다. 이 상품은 목표 수익률 10%로 6년 후 청산할 계획이다.
김지연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유럽은 위스키 사모펀드의 성공 이후 공모펀드로 영역을 확장 중이며,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부유층 대상 위스키 펀드를 출시하며 캐스크를 포함한 위스키 투자 증가세”라며 “경기 불황 속 대체투자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위스키 사모펀드의 성공 등으로 향후 국내에서도 펀드를 통한 시장 활성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8호 (2023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