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名品의 선택 | 최상위 1%의 시장점유율 23% 성장세 꺾인 명품, 하이엔드로 회귀할까?!

    입력 : 2025.10.28 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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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에게 물었다. “명품(名品)이란 무엇일까?” 자료 수집을 마친 AI가 답한다. “명품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난 품질의 제품입니다. 원래는 품질이 우수하고 명성이 있는 모든 상품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명품은 주로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의미합니다. 루이 비통, 샤넬, 에르메스 같은 패션·가방·시계·보석 브랜드의 제품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높은 가격대와 함께 브랜드 가치, 희소성, 장인정신을 특징으로 합니다. 명품은 단순한 상품을 넘어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소유 자체가 개인의 정체성이나 성공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다시 물었다. “그럼 명품의 조건은 뭐야?” 지체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최고급 재료와 뛰어난 제작 기술’이 기본입니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시간이 지나도 품질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세밀한 마감과 완성도 역시 필수적입니다. ‘숙련된 장인의 수작업’과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한 제작 기법이 중요합니다. 대량 생산이 아닌 정성스러운 ‘개별 제작 과정’을 거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일관된 브랜드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시간의 검증을 받은 브랜드 스토리와 정체성이 필요합니다. ‘제한된 생산량으로 희귀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다면 명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클래식한 디자인이나 혁신적인 창작성’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닌 자체적인 미학을 구축해야 합니다. 사회 전반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문화적 영향력과 상징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되,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단순히 비싸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가격의 정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품질, 서비스, 브랜드 경험에서 지속적으로 ‘일관된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진정한 의미의 명품이 탄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세계 더 헤리티지 샤넬 부티크
    신세계 더 헤리티지 샤넬 부티크

    뭐 하나 틀린 말 없이 똑 부러진 답변이다. 어딜 봐도 할루시네이션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모든 조건을 충족해 자타공인 명품이라 인정받은 브랜드와 명품 업체들의 실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도대체 왜, 명품의 성장 곡선은 고꾸라진 걸까.

    중국 시장↓ Z세대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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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통치 않다. 아니 눈에 띄게 감소했다. 루이 비통, 디올, 위블로, 태그호이어, 티파니 등 휘황찬란한 브랜드를 보유한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의 올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2%나 뚝 떨어졌다. 매출도 4% 줄어든 398억유로(약 64조원)를 기록했다. 구찌로 대변되는 프랑스의 명품 그룹 케링(Kering)의 주름은 그보다 깊다. 케링의 올 상반기 순이익은 4억 7400만유로(약 7600억원). 8억 7800만유로였던 전년 동기 대비 46%나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매출도 16% 감소한 76억유로(약 12조 1000억원)에 그쳤다. 특히 구찌의 실적이 눈의 띄게 악화됐다. 구찌는 올 상반기 30억유로(약 4조 8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무려 26% 감소한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때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두 배나 빨리 성장하던 명품 산업이 2년 연속 하락한 건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협회 알타감마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명품 시장은 1% 감소했고, 올해 최대 5%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LVMH는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글로벌 큰손인 중국의 소비 감소를 꼽았다. 실제로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초고가 명품을 선호하던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 ‘중고명품’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올랐다. Z세대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창고형 매장이나 온라인 플랫폼이 확산되며 거대한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중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WSJ은 “Z세대의 럭셔리 소비가 지난해 7%(약 7조 8300억원) 감소하며 전 세대를 아울러 가장 크게 하락했다”며 “지난 10년간 50% 이상 성장했던 명품 산업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브랜드들은 생존을 위해 방향성과 소비자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루이 비통이 론칭한 코스메틱 부문 ‘라 보떼 루이 비통’ 이미지
    올해 루이 비통이 론칭한 코스메틱 부문 ‘라 보떼 루이 비통’ 이미지

    명품 업체들의 과도한 가격 인상이 미래 소비층인 MZ세대의 반발을 샀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성비와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이들 세대에게 하루가 다르게 오르기만 하는 제품 가격이 피로감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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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계에선 “올 초 소비트렌드로 떠오른 듀프(Dupe·명품과 디자인과 성능이 비슷하지만 저렴한 제품) 소비가 이러한 현상의 방증”이라고 분석한다. 이른바 명품의 N차 가격 인상은 올해도 계속됐다. 루이비통은 올 1월과 4월에 국내에서 판매 중인 일부 가방의 가격을 인상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부담이 이유였다. 까르띠에는 9월 중순 국내에서 판매하는 일부 주얼리 가격을 2~4% 올렸다. 인기 제품인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스몰’은 585만원에서 600만원으로 약 2.5%, ‘트리니티링 클래식’은 329만원에서 342만원으로 3.9% 높아졌다. 까르띠에의 가격 인상은 2월과 4월에 이어 올해만 세 번째다. 디올도 빠질 수 없다. 1월과 7월에 주얼리 라인 일부 제품의 가격을 인상한 디올은 9월 말 주요 품목의 가격을 올릴 예정이다. 일명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라 불리며 인기가 높은 에르메스는 한차례, 샤넬은 올 상반기에만 세 차례나 가격을 올렸다.

    MZ세대 대신 최상위 고객?!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구찌 스토어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구찌 스토어

    이런 상황에 최근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 알타감마와 공동으로 작성한 명품 보고서가 흥미롭다. 올해로 11번째 발행되는 ‘True-Luxury Global Consumer Insights’다. 보고서는 “최상위 고객층에 초점을 맞추고 규모보다 영혼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공개된 명품 관련 자료나 보고서가 “새로운 소비층을 늘리기 위해 주력 제품보다 낮은 가격의 라인업을 운영하고 F&B 등을 ‘열망 소비자(Aspirational Consumer)’를 유입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대척점에 선 주장이다.

    보고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지난 1년간 35%의 열망 소비자(연간 명품 지출 5000유로(약 820만원) 미만)가 명품 관련 지출을 줄이거나 중단했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경우 올해 명품 소비가 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Z세대의 소비력에 대해선 ‘80%가 여전히 구매 의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향후 1년간 명품 지출에 가장 자신감이 높다’고 표현하고 있다. 올 6월에 10개국 7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0.1%의 최상위 럭셔리 고객이 가장 높은 성장률을 이끌며 23%의 명품 지출을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어쩌면 소비자가 느끼는 감성과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그럼 최상위 고객은 어떤 사람일까. 보고서는 “이들이 매년 명품에 지출하는 금액은 평균 36만유로(약 5억 9200만원)에 이르며, 최소 지출은 5만유로(약 8200만원) 이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기준 94만 명으로 파악됐고 매년 9%씩 증가한다. 2030년까지 전 세계 140만 명의 고액자산가가 100조유로(약 1645조원)의 자금을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보고서는 앞으로 명품브랜드가 나아갈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과도한 커뮤니케이션’ ‘표준화된 소비’ ‘제품의 품질 저하 및 결함’ ‘최고라는 가치 부족’ 등을 거부하는 그들의 성향을 이해하고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AI가 언급한 명품의 조건과 결이 같은 내용이다. 과연, 명품 브랜드의 선택은 무엇일까….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1호 (2025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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