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조선호텔 김치 | 평창동 사모님도 반한 그 집 김치

    입력 : 2025.04.16 17: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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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김장하는 집이 몇군데나 되나요. 김장 포기하고 포장김치 주문한다고 ‘김포족’이란 말도 나왔잖아요.”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김치 매대를 담당하는 매니저에게 어떤 김치가 가장 많이 팔리냐고 물었더니 포장김치에 대한 장광설이 이어졌다. 요즘 김치 담근다고 며느리 부르면 무 잘리듯 관계가 딱 끊긴다는 말부터 1인 가구가 늘면서 소량의 포장김치를 찾는 아가씨들이 늘었다는 말까지 별다른 마케팅 자료 없이도 이야기보따리가 한 꾸러미다.

    그의 말처럼 실제로 김장 대신 포장김치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일례로 지난해 여름 폭염에 배추 가격이 껑충 오르자 국내 1, 2위 업체인 대상(종가)과 CJ제일제당(비비고)의 배추김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늘었다. 대형마트의 김치 판매량도 마찬가지. 김장철이던 지난해 10월 홈플러스 온라인 데이터를 살펴보면 포장김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 대용량 포장김치의 매출은 18배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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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이 전국 14∼69세 2만 명의 소비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를 살펴보면 시장의 성장세가 확연하다. 지난해 포장김치 구매 추정액은 총 5191억원. 2023년보다 7.3% 증가한 수치다. 이 중 직장인의 포장김치 구매 추정액은 2251억원으로 17.8% 증가했다. 전업주부의 구매액은 1824억원으로 4.3% 늘었다. 엠브레인 측은 “주요 채소 가격 상승으로 김장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포장김치가 경제적인 선택지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며 “비용 부담뿐 아니라 김치를 직접 만드는 번거로움을 대신하려는 니즈와 맞물렸다”고 전했다.

    5성급 호텔 김치, 이젠 식탁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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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 대대로 담그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라 맛도 제각각이던 김치가 포장김치로 변신하며 시장을 넓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치를 사 먹는다는 게 일상이 되면서 좋은 재료로 맛을 높인 프리미엄 김치에 대한 선호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주목받는 김치 중 하나는 워커힐, 롯데, 조선, 파라다이스 등 5성급 호텔들의 이름을 내건 김치. 특히 지난해 110주년을 맞은 ‘조선호텔 김치’가 2020년 이후 매년 두자릿 수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판매량은 2023년에 비해 16%나 성장했다.

    조선호텔 김치는 20여년 전 웨스틴조선호텔의 뷔페 레스토랑이었던 ‘카페로얄’의 김치가 시작점이다. 서울 소공동에 자리한 웨스틴조선호텔은 평창동과 성북동 등 서울 전통 부촌에 거주하는 단골들이 많기로 소문난 호텔. 2004년 어느 날 카페로얄을 찾은 한 단골이 “이 김치가 너무 입에 맞는데 사갈 수 없느냐”는 말에 한두 포기씩 내주게 됐고, 이런 고객이 하나 둘 늘자 호텔 주방 한쪽에서 김치를 담그게 됐다. 그러니까 별다른 마케팅 없이 입에서 입으로 맛에 대한 소문이 전해진 셈이다. 김치를 사고 싶다는 주문이 늘면서 2011년엔 아예 김치공장을 차렸다. 식품 공장하면 떠오르는 컨베이어벨트 대신 서울 성수동에 작은 규모로 차린 김치공장에선 별도의 김치사업팀이 호텔 비법이 담긴 프리미엄 김치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는 성수동 김치공장의 프리미엄 김치라인부터 이마트와의 컬래버레이션 라인인 피코크까지 확장했다. 마켓컬리 등 판매채널이 확장되자 2021년엔 직영 김치공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국내산, 지역 특산품으로 완성한 프리미엄

    조선호텔 김치는 현재 배추김치, 깍두기, 알타리 김치, 백김치 등 일반적인 김치부터 갈치석박지, 갓김치, 파김치, 겉절이, 오이소박이 등 계절별 별미김치, 아이들을 위한 3종의 키즈김치까지 총 25종을 생산하고 있다. 호텔 출신 셰프들이 재료 손질부터 양념 하나하나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데, 30년 동안 조선호텔 셰프로 근무한 후 퇴임해 합류한 직원도 있다. 깐깐하게 선별한 국산 배추, 무, 마늘 등 기본 재료와 경북 영양산 고춧가루, 신안 천일염, 서해안 젓갈 등 지역 특산품이 주재료. 오전 7시반에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성수동 공장의 경우 입고된 재료를 다듬고 자른 후 3단 세척, 소금에 절인 뒤 다시 2단 세척을 거쳐야 비로소 김치가 될 자격을 얻는다. 웨스틴 조선 서울의 홍연과 스시조 등 레스토랑과 백화점, 마켓컬리 등에 납품되는 프리미엄 김치가 이곳에서 생산되는데, 공장 규모가 크지 않아 그때그때 주문량에 맞춰 매일 소량 생산하고 당일 납품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병원성 미생물 아홉 가지를 모두 분석할 수 있는 미생물 연구실도 운영 중인데, ‘세계김치연구소’에서 받은 종균을 배양해 유산균을 제조한다. 조선호텔 김치 중 조선 주니어 김치 3종(프리미엄 조선 주니어 배추김치, 백김치, 백깍두기)에 이 유산균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호텔 관계자는 “국내산 재료를 호텔 셰프의 레시피로 완성한다는 철칙 아래 당일 생산, 당일 납품이 원칙”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도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는데 최근 일본의 한 방송국에서 일본 관광객이 한국에서 꼭 사야 할 품목으로 선정됐다고 취재 요청이 오기도 했다”며 “K-드라마와 영화에 스치듯 등장한 걸 봤다는 게 이유였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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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키지 디자인도 특급호텔 프리미엄으로
    조선호텔은 ‘조선호텔 김치’와 ‘조선호텔 프리미엄 김치’가 각각의 브랜드로 독보적인 차별성을 가질 수 있도록 패키지 디자인을 리뉴얼했다. ‘정성 어린 손맛을 담는다’는 의미를 담아 국문 서체를 조합한 로고도 삽입했다. 호텔 다이닝 콘셉트의 이미지를 녹여 ‘호텔 김치’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녹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텔 성장의 한 축이 된 김치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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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계에서 추산한 조선호텔 김치의 매출액은 약 400억~500억원 수준. 지난해 배춧값 폭등으로 품절 사태를 맞은 가운데서도 김치 관련 매출이 두자릿수 성장세를 보이자 조선호텔은 김치사업팀을 리테일팀에서 별도 팀으로 독립시켜 입지 강화에 나서고 있다. 올해는 신제품 김치 7종을 출시하며 프리미엄 라인업을 늘렸다. 갓김치는 1㎏, 파김치는 500g 용량의 상품을 1만원대에 출시했고, 베스트셀러 상품인 ‘조선호텔 포기김치’는 갓과 배 퓨레를 추가하는 등 레시피를 새롭게 적용해 자연의 단맛과 감칠맛을 더했다. 1~2인 가구를 위한 1㎏ 미만 소용량부터 5~10㎏ 대용량까지 다양한 파우치 제품을 온라인에 출시해 선택의 폭도 넓혔다. 최근엔 온라인 자사몰 ‘조선 테이스트 앤 스타일’을 통해 ‘프리미엄 김치 정기구독’ 서비스도 출시했다. 호텔업계에서 “조선호텔 김치가 레저와 함께 호텔 성장의 한축이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서비스는 재주문율이 높은 단골 고객층을 위해 설계된 상품이다. 1개월, 2개월, 3개월 중 원하는 주기와 다양한 제철 별미 김치를 맛볼 수 있는 종류, 가족 구성 인원의 취향에 맞는 중량 등 여러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1~2인 가구에 적합한 ‘배추김치 실속 패키지’, 3~4인 이상 가구를 위한 ‘배추김치 온가족 패키지’, 배추김치만 구매할 수 있는 ‘배추김치 Only 패키지’ 등이 있다. 4월부터 10월까지 선보이는 ‘여름 별미 패키지’는 배추김치와 함께 백열무물김치, 열무김치 등 여름에 즐기기 좋은 김치를 원하는 중량에 맞게 선택해 즐길 수 있고, ‘겨울 별미 패키지’는 11월부터 2월까지 배추김치와 알타리김치, 갓김치로 구성돼 신선한 제철 김치를 즐길 수 있다. 호텔 구독 서비스의 경우 호텔 입장에선 수익 다각화를, 소비자 입장에선 가정에서 특급호텔 서비스를 간접 체험할 수 있어 인기가 높은 편이다. 조선호텔 관계자는 “매번 김치를 구매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신선한 프리미엄 김치를 원하는 주기에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정기 구독 서비스를 론칭했다”고 설명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조선호텔앤리조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5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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