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튜더 | 롤렉스보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품질은 버금가, 왕관을 넘보는 손목시계… 다이버 워치 명성

    입력 : 2023.11.21 14:10:50

  • 사진설명

    “롤렉스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롤렉스만큼 신뢰할 수 있는 품질의 시계를 롤렉스 매장에서 판매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몇 년 동안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해 이런 시계를 제작하고 판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회사 이름은 바로 ‘튜더 워치 컴퍼니(The TUDOR Watch Company)’입니다.”

    롤렉스와 비슷한 품질의 시계를 롤렉스 매장에서 더 싸게 팔겠다니. 이게 무슨 도둑놈 심보인가 싶은데, 1926년 2월 한스 빌스도르프는 이러한 구상을 실행에 옮긴다. 혹여 롤렉스와 표절 논란에 휩싸이는 것 아닐까란 우려는 괜한 배려다. 그가 누구인가. 전 세계 시계산업 종사자들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이름 아니던가. 그래서 그가 도대체 누구냐고? 대놓고 힌트를 공개한다면, 튜더보다 18년 전인 1908년 7월 2일, 그가 스위스에 등록한 브랜드가 바로 ‘롤렉스(ROLEX)’다. 롤렉스 설립자가 롤렉스 매장에서 품질은 롤렉스급이지만 가격은 훨씬 낮은 시계를 팔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 황당한(?) 계획은 보기 좋게 성공한다. 지금까지도 튜더가 ‘롤렉스의 동생’이라 불리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1932년 튜더 카타나흐. 튜더가 처음 출시한 시계 중 하나로 당시 브랜드명의 첫 글자 T가 길게 늘어져 있다.
    1932년 튜더 카타나흐. 튜더가 처음 출시한 시계 중 하나로 당시 브랜드명의 첫 글자 T가 길게 늘어져 있다.

    잠시 롤렉스가 어떤 브랜드인지 부연한다면,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이 브랜드는 시계 업계에선 보기 드물게 독립적인 통합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자사 제품의 부품들을 대부분 자체 개발하고 설계해 제작한다. 금합금 주조부터 무브먼트, 케이스, 다이얼, 브레이슬릿(시곗줄) 등 부품의 가공과 수공예, 조립, 피니싱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500건 이상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롤렉스의 전문기술과 제품의 품질이 자타공인 세계 최고라고 인정받는 건 이런 시스템 덕분이다. 그럼 산하 브랜드인 튜더는 어떨까. 튜더의 첫 시계는 1932년 호주에서 공개됐다. ‘TUDOR’라는 영문을 다이얼에 표시한 단순하고 튼튼한 손목시계였다. 당시 일부 모델에선 롤렉스의 브랜드명도 발견할 수 있다. 브랜드가 정착되기 전까지 롤렉스란 이름은 튜더의 기술력과 디자인을 보장하는 보증수표였다. 1936년 한스 빌스도르프는 16세기 영국을 통치한 튜더 왕가의 문장인 장미 문양을 브랜드 로고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고급 시계의 우아함을 표현한 장미는 이후 방패와 함께 현재까지 튜더의 심볼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그는 튜더를 본격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몽트르 튜더 주식회사(Montres Tudor S.A.)’를 설립한다. 한스 빌스도르프는 당시 성명서를 통해 튜더와 롤렉스의 브랜드 포지셔닝과 전략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대중은 롤렉스가 기반이 된 튜더의 성능과 디자인에 호응한다.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디자인이 롤렉스를 닮아 주목도를 높였고, 롤렉스에서 유통과 AS까지 보증해 화제가 됐다.

    롤렉스를 기반으로 성장

    “저는 튜더의 오이스터 프린스(Oyster Prince)에 롤렉스의 두 가지 장점을 적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시계에는 절대 허용하지 않았던 롤렉스 고유의 방수 케이스 ‘오이스터’와 독자적인 오토매틱 와인딩 퍼페추얼 ‘로터’ 메커니즘을 탑재하고자 합니다. 과거 롤렉스 시계에만 허락됐던 두 가지가 예외적으로 모든 오이스터 프린스 시계에 적용됩니다. 이는 새로운 튜더 시계에 대한 저의 믿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 자랑스러운 튜더의 새로운 시계 오이스터 프린스를 추천합니다.”

    1952년 튜더 오이스터 프린스. 롤렉스가 개발한 기술을 모두 물려받았다.
    1952년 튜더 오이스터 프린스. 롤렉스가 개발한 기술을 모두 물려받았다.
    1952년 튜더 오이스터 프린스 광고.
    1952년 튜더 오이스터 프린스 광고.

    1952년 한스 빌스도르프가 튜더의 새로운 모델 ‘오이스터 프린스’를 공개하며 광고 캠페인을 통해 강조한 문구다. 그는 롤렉스와 튜더의 연관성을 나열하며 튜더를 이끌었다. 같은 해 영국 해군이 조직한 영국 그린란드 탐험대가 이 시계를 사용하며 혹한에도 견고하게 작동하는 정확성이 입증됐다. 당시 튜더는 롤렉스에 버금가는 성능을 알리기 위해 특이한 광고 문구를 넣기도 했다.

    1954년 오이스터 프린스의 광고 캠페인. 내구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로 혹독한 조건에서 진행한 테스트를 소개했다.
    1954년 오이스터 프린스의 광고 캠페인. 내구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로 혹독한 조건에서 진행한 테스트를 소개했다.
    1955년 튜더 오이스터 프린스 광고 캠페인
    1955년 튜더 오이스터 프린스 광고 캠페인
    ‘수작업으로 252시간 채굴한 석탄 광부가 착용했던 시계’
    ‘30시간 공압 드릴의 진동을 견뎌낸 시계’
    ‘3개월에 걸친 채석 작업 기간 착용했던 시계’
    ‘1개월의 건물 공사 현장 금속 보 고정 작업 동안 착용했던 시계’
    ‘1000마일의 거리를 달린 모터바이크 레이서가 착용한 시계’

    어쩌면 그만큼 절실했다는 의미다. 1954년에 출시된 튜더의 첫 다이버 워치 ‘오이스터 프린스 서브마리너’는 롤렉스 서브마리너와 비교되며 주목받는다. 롤렉스에 비해 가격은 훨씬 낮았지만 수심 100m까지 방수가 가능했다.

    1955 튜더 오이스터 서브마리너
    1955 튜더 오이스터 서브마리너

    이후 1969년 튜더의 서브마리너는 독자적인 진화를 택한다. 이 시기를 튜더의 제2막으로 평가하는데, 그만큼 기술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롤렉스와 다른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우선 기존에 사용했던 무브먼트를 ETA 오토매틱 와인딩 무브먼트로 교체했고, 다이얼 디자인과 수집가들 사이에서 스노플레이크(Snowflake)라 불리는 눈송이 모양의 시곗바늘 디자인이 등장했다. 브랜드 로고도 장미 문양 대신 강력한 힘과 내구성을 상징하는 방패 문양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라운에는 여전히 롤렉스와 왕관 로고를 사용했다. 튜더의 다이버 워치는 뛰어난 성능과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 덕분에 군용 시계로 애용됐다. 프랑스 해군은 1950년대 중반부터 튜더 서브마리너를 사용했고, 1960년대엔 미국 해군도 서브마리너를 도입했다.

    독자노선 택한 후발주자

    현재 튜더는 롤렉스의 자회사다. ‘블랙 베이(Black Bay)’ ‘펠라고스(Pelagos)’ ‘1926’ 등 대표 컬렉션을 보유한 튜더는 2015년부터 범용 무브먼트 대신 자체 제작한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있다. 튜더의 모든 시계는 스위스 르 로클에 자리한 새로운 자체 생산 시설에서 조립되고 테스트를 거친다. 3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2021년 완공된 이 시설은 튜더의 브랜드 색상인 붉은색으로 외부를 장식했다. 총 4층, 5500㎡의 공간에 최첨단 생산관리와 자동화된 테스트 시스템을 갖췄다. 2016년에 설립된 자체 무브먼트 제작 시설인 케니시(Kenissi)의 생산 시설과도 연결돼 효율성을 높였다.

    스위스 르 로클에 자리한 튜더의 생산 시설
    스위스 르 로클에 자리한 튜더의 생산 시설

    2018년 국내에 진출한 튜더는 올해 다이버 워치 ‘펠라고스 FXD’와 요트 경기에서 영감을 얻은 ‘알링기 레드 불 레이싱 에디션’, 상징적인 다이버 워치 ‘블랙 베이’의 새로운 컬렉션과 ‘튜더 로열’을 선보였다. 그중 ‘블랙 베이 54’는 첫 다이버 워치인 레퍼런스 7922 모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이다. 37㎜ 케이스와 자체 제작한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블랙 베이 54
    블랙 베이 54

    올해 1월에 이어 9월에도 가격 인상

    그런가 하면 튜더의 가격 인상이 한동안 업계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튜더는 올 1월 7%에 이어 9월에도 2~3%의 가격을 인상했다. 튜더가 가격을 올리자 혹시 롤렉스도 올리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업계에 입소문을 낸 것이다. 롤렉스는 그동안 매년 1월 1일에 가격을 올려왔다. 벌써부터 내년 1월 1일을 전후해 가격을 인상할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독일 브랜드 글라슈테 오리지날이 10월에 6%, 11월엔 항공 시계로 유명한 IWC가 4~5% 가격을 올렸다.

    [안재형 기자]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