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치매인가?” 오해 많은 정상압 수두증 자가 진단법

    입력 : 2023.10.04 15:32:37

  • 정상압 수두증은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환인데
    환자들은 이를 자연스러운 퇴화 과정이나 알츠하이머병
    또는 파킨슨병 같은 치매로 오인하고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김수두 씨(52세)는 79세인 어머니가 최근 아파트 비밀번호를 깜빡 잊어버리는 등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고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럽게 느려진 것을 보고 치매가 걱정돼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병원에서 검사 결과 치매가 아닌 ‘정상압 수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생소한 병명이었지만,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안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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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층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퇴화하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지면서 “혹시 나도 치매(알츠하이머)가 아닐까?” 하는 공포심이 커지기 마련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는 경우 예상외의 진단을 받는 경우도 잦다.

    ‘정상압 수두증’은 뇌 안에 액체로 차 있는 뇌척수액의 불균형으로 인해 정상보다 많은 양의 물이 차게 돼 치매와 유사한 이상 증상이 생기는 질환으로 70세 이상 노인 100명 중 2명꼴로 발생한다.

    우리 뇌는 머리뼈 속에서 뇌척수액에 의해 마치 떠 있는 것과 같은 상태로 있다. 머리뼈가 뇌를 누르거나 외부 충격이 가해질 때 뇌가 물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지 않는 것은 뇌를 둘러싼 뇌척수액이 완충 작용을 해주기 때문이다. 뇌척수액은 뇌실 속 맥락총에서 생성되어 뇌 주변을 순환한 뒤 거미막 융모에서 흡수되면서 일정한 양을 유지한다. 일반적으로 뇌척수액의 적정량은 120~150㎖이지만 뇌척수액의 생성량이 많아지거나, 흡수가 잘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척수액의 양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수두증’이라고 한다.

    ▶ ‘정상압 수두증’ 의심 자가 진단 체크 리스트
    1. 다리에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걸어 다니면 쉽게 피로하다.
    2.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보폭이 짧다.
    3. 발바닥을 바닥에서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4.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자꾸 앞으로 넘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5. 손이 떨리거나 섬세한 손 운동을 하지 못하고 글을 잘 쓰지 못한다.
    6.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는 요실금이 생긴다.
    7. 집중력과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다.
    8. 복잡한 행동을 잘하지 못하는 수행장애를 보인다.
    9. 말수가 적고 무관심해져 우울증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이 중 정상압 수두증은 뇌척수액으로 인한 압력은 정상범위이지만 뇌척수액의 양이 많아 뇌를 압박하는 증상을 말한다. 압박받은 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보행·배뇨장애, 기억 저하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 증상만으로는 치매 혹은 파킨슨병과 유사해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발병 요인에 따라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발병하는 가족성과 지주막하 출혈이나 수막염 등 다른 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2차성으로도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경우 원인을 모르는 특발성이 많다.

    이러한 정상압 수두증은 증상만 보면 치매와 크게 다르지 않아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증상으로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져 발을 넓게 벌리고 작은 보폭으로 발을 질질 끌며 넘어지는 일이 잦고 균형 잡기가 힘들다. 소변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기도 전에 요실금으로 옷에 실수하기도 하며, 인지기능 저하와 무기력증 같은 치매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정상압 수두증은 아직 치료가 어려운 치매와 달리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기 때문에 반드시 병원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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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음 느려졌다면? 65세 이하도 검진 필요

    박용숙, 이신헌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팀은 박기수 경북의대 교수와 협업으로 지난 8월 초부터 정상압 수두증으로 진단된 환자에 대해 기존 뇌실-복강 단락술과 더불어 국소마취하에 요추-복강 단락술을 실시했다.

    정상압 수두증의 일반적인 치료는 전신마취를 하고 머리뼈에 구멍을 내, 과다한 뇌척수액이 나갈 수 있는 우회로를 션트 튜브(플라스틱 관)를 이용해 뇌실에서 복강으로 빼는 뇌실-복강 단락술을 시행한다.

    요추-복강 단락술은 뇌실-복강 단락술과 달리 허리에서부터 복강 내로 우회로를 연결하는 수술법으로, 머리에 구멍을 내는 ‘머리뼈 천공술’을 시행하지 않아 국소마취로도 시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신마취 고위험군 환자에게도 수술을 할 수 있다.

    박용숙 교수는 “정상압 수두증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기 때문에 방치하지 말고 조기에 증상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적극적인 검사를 시행해 선별해내야 한다”라며, “중앙대병원에서는 뇌실-복강 단락술 및 요추-복강 단락술을 병행하여 각각의 수술의 장점을 살림으로써 정상압 수두증 환자에 맞춤형 치료를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신헌 교수는 “중앙대병원에서는 정상압 수두증 환자에 대해 수술-재활 협업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이를 통해 효과적인 진료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예상외로 정상압 수두증은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환인데 환자들은 이를 자연스러운 퇴화 과정이나 알츠하이머병 또는 파킨슨병 같은 치매로 오인하고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65세 이상에 걸음이 느려지고, 기억력이 저하되고, 배뇨장애가 있으면 반드시 검사를 시행해볼 필요가 있다. 뇌CT 또는 뇌 MRI 검사를 통해 뇌척수액이 있는 뇌실이 커진 것을 확인한 뒤, 요추 사이에 주삿바늘을 꽂아 30~50㏄ 정도의 뇌척수액을 허리에서 뽑아주고 걸음걸이, 요실금, 인지기능 저하와 같은 증상이 개선됐는지 확인해봄으로써 진단할 수 있다.

    [박지훈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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