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r My Walking] 전북 완주 상관편백나무숲 10만 그루 편백이 내뿜는 짙은 피톤치드 休~

    입력 : 2023.09.15 14: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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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만하게 경사진 오르막길. 좁은 보폭으로 한 걸음씩 내딛다보니 어느새 숲길이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오늘의 온도는 34℃.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르는 날, 보무도 당당하게 산에 올랐다. 그런데 이게 웬걸, 홀로 걸을 줄 알았던 오솔길에 드문드문 인기척이 나더니 저 멀리 어르신 서너 분이 삼삼오오 수다 삼매경이다.

    “이렇게 더운 날은 볕이 들지 않는 숲이 피서지예요. 애들은 왜 이 더운 날 산에 가냐고 하는데 한번 와보지도 않고 잔소리만 늘어놓는다니까.”

    “그 집 애들도 그래요? 우리도 그래. 넌 왜 엄마한테 매일 잔소리냐고 한마디 했더니 엄마 젊었을 때보단 덜하다나 뭐라나.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한마디를 안 져요.”

    “애 잘 키웠네. 기죽어서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암말도 안 하는 거보다 낫지 뭘 그래. 난 내가 뭘 할 때마다 이렇네 저렇네 애들이 한마디씩 거들 때가 더 좋던데. 나이 들수록 주변이 북적북적해야 사는 거 같잖아요.”

    “에이, 그것도 적당히 해야지. 우리 집에 한번 놀러오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니까. 아주 따발총을 입에 물고 있어요.”

    “냐하하하하. 따발총? 그거 정말 엄마 닮아서 그런갑네. 영이 엄마 한번 입 터지면 라디오 틀어놓은 거 같거든.”

    갑자기 숲을 울리던 수다가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10여m쯤 앞서가다 뒤가 조용해 돌아보니 어르신들이 신기하다는 듯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 한 분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묻는다.

    “아니 발 안 아파요? 길은 평평한데 자갈이 많잖아요. 맨발로 그렇게 걸어도 되나?”

    “모르셨어요? 이 편백나무숲에서 맨발로 걷는 게 유명한 거. 한번 걸어보세요. 오장육부가 편~해집니다.”

    “냐호호호호. 속만 편하면 뭐해. 발이 아픈데. 어여 신발 신어요. 다치면 마누라한테 구박받아.”

    “잔소리가 심해서 그렇지 아직 구박받진 않습니다. 허허.”

    “잔소리요? 그럼 아직 사랑받고 있다는 거네. 잔소리도 걱정해야 나오는 거잖아요.”

    “영이 엄마 아깐 따발총이라더니. 사랑받고 있었구먼. 냐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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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공기마을에 자리한 ‘상관편백나무숲’은 아는 이들 사이에선 이미 이름난 트레킹 코스다. 1976년 이 마을 주민이 심은 편백나무 10만여 그루가 50여 년의 세월 동안 촘촘히 뿌리내리며 하늘을 가렸고, 그 아래 놓인 수십여 개의 작은 데크가 사계절 객을 반기는 작은 쉼터가 됐다. 촘촘한 편백나무 그늘 아래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사람이 모여드는 건 당연한 일. 들고 나는 이들이 많아지며 원점회귀형 산책길이 생겼고 산등성이에 오솔길이 뚫렸다. 편백나무숲이 자리한 마을 이름이 공기마을인 건 2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하나는 이미 짐작했듯 공기가 맑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마을 뒷산의 옥녀봉과 한오봉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밥공기를 닮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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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 편백나무숲을 걷는 방법은 총 3가지나 된다. 하나는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해 큰길을 돌아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코스, 또 하나는 편백나무숲 오솔길, 마지막으로 뒷산 봉우리를 돌아나오는 길이다. 가장 많이 선택되는 길은 역시 원점회귀인데, 이 코스는 경사가 심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많아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하다. 그런 이유로 맨발로 걷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띄는데, 길 초입에 놓인 벤치에 신발을 보관하는 공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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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차도 무료·산책도 무료·힐링은 한가득

    이곳은 사유지다. 길 곳곳에 주인의 손때 묻은 안내판과 오두막, 의자가 정겹다. 산의 주인공이 된 편백나무 외에도 6000그루의 잣나무와 삼나무, 낙엽송, 오동나무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무엇보다 공기 중의 피톤치드가 깊고 넓은데, 한낮에도 그늘이 길어 향 또한 짙었다. 편백나무가 내뿜는 휘발성 향기 성분인 피톤치드는 살균과 항산화 작용을 한다고 알려졌다. 흔히 마음의 안정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데, 그래서일까. 혼자 걷다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도 댄스곡보단 발라드가 어울렸다. 때로 좁은 길이 이어지지만 전혀 험하지 않다. 굳이 등산복이나 등산화를 신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길이다. 간혹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멀리 뻗은 편백나무가 빼곡하다. 피톤치드 특유의 향 덕분인지 원점회귀 코스를 걷다보면 벌레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물론 길이 좁은 오솔길이나 산등성이에선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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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황편백탕에선 족욕도 할 수 있다. 맨발로 걷는 이들이 피로를 푸는 코스이기도 한데, 바로 앞에 자리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노라니 귓불까지 찬 기운이 전해졌다. 이런 게 힐링이던가….

    완주 상관편백나무숲 산책코스

    상관편백숲 공영주차장→제1등산로 갈림길→편백숲→통문→산림욕장→유황편백탕→편백숲 쉼터→상관편백숲 공영주차장

    좀 더 산책하고 싶다면 주변에 상관저수지가 있다. 수변길이 조성돼 숲길과는 또 다른 정취를 경험할 수 있다. 전북지역 4대 종단이 조성한 ‘아름다운 순례길’과 달래봉(436m), 마재봉(312m)을 잇는 등산로도 손꼽히는 트레킹 코스다.

    [안재형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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