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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하니 덕 본 YG와 하이브, 태국과 베트남에 더 공들이는 이유
입력 : 2023.09.08 13: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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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한류 문화를 선도하는 국내 대표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하이브와 YG의 아세안 내 행보가 눈길을 끈다.
하이브는 베트남에, YG엔터테인먼트는 태국에 유독 더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세안 내에서 한류가 가장 거센 국가 2곳을 나눠서 공략하는 듯하다. 우리 국가 입장에서는 전혀 나쁠 것이 없는 전략이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오비이락’일 뿐”이라며 “특정 국가에 집중하는 글로벌 전략을 펼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엔터 회사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의도를 했든 하지 않았든 하이브는 베트남에 좀 더 치중하고, YG는 태국에 더 공을 들이는 모양새가 감춰지지 않는다.
블랙핑크 리사 그룹 블랙핑크가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에서 열린 현지 최대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다. 먼저 YG는 올해 야심차게 준비한 신인 그룹 베이비몬스터를 선보이면서 블랙핑크에 이어 또다시 태국 출신 멤버를 포함시켰다. 그것도 2명이나 된다. YG는 과거 자사 소속 연예인의 인기를 바탕으로 현지에 한국의 루프톱 문화와 결합한 YG리퍼블릭을 태국 현지에 직접 열기도 했다. 하이브는 미드낫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공지능 기반 다국어 변환 기술을 통해 세계 최초로 6개 언어 음원을 선보였는데, 여기에 베트남어를 포함했다. 6개 언어는 베트남어를 포함해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이다. 대부분 인구수가 많은 언어들이지만, 인구 1억 명도 안 되는 베트남어가 포함된 것이 눈길을 끈다. 같은 아세안 내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인구는 각각 2억 7700만여 명과 1억 1733만여 명이다. 다분히 베트남 시장을 노린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올 2월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하이브가 인수했을 당시 박지원 대표이사는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에서 압도적인 SM의 인프라는 하이브 아티스트들이 해당 시장에서 활동하는 데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바 있다.
양 사의 이 같은 아세안 내 행보의 단서는 YG의 대표 걸그룹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와 하이브 계열사 소속으로 최근에 급성장한 뉴진스의 베트남 출신 멤버 하니에게서 찾을 수 있다.
뉴진스 하니 <사진 연합뉴스> 국내에서 출발해 글로벌 걸그룹으로 성장한 블랙핑크와 뉴진스의 행보에, 멤버로 합류한 리사와 하니의 역할도 상당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기 있는 걸그룹의 경우 보통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멤버들의 조화가 시너지를 내고 이것이 성공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측면에서 아세안 출신 멤버들의 합류는 그 결과를 볼 때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효녀’가 된 걸그룹에 속해 있는 두 사람의 발탁에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고, 회사는 이들 출신 국가들에 대한 추가 관심을 통해 제2의 리사, 제2의 하니를 찾고 싶어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2023 시카고 롤라팔루자 개막 첫날 무대에 선 K팝 걸그룹 ‘뉴진스’ <사진 연합뉴스> 게다가 자국 출신 걸그룹 구성원을 향한 현지 국민들의 반응도 뜨겁다. 세계 속으로 파고드는 한류의 한 축을 같은 국민이 담당했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리사의 경우 태국에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을 정도로 위상이 올라갔다. 이들의 활동에 현지 매체는 일거수일투족을 전한다. 방탄소년단이 팝의 본고장 미국서 그래미상 후보에 오를 때마다 우리나라가 들썩이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양국 분위기가 ‘자국 멤버들이 글로벌 대표 걸그룹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로 인해 한류에 더 열광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며, 우리 문화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진다. 태국의 경우 아세안 10개국 중 한국을 가장 많이 찾는 국가다.
K팝에 대한 소비 팬덤도 강하다. 유안타증권이 케이팝 레이더의 국가별 K-POP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 현황(2021년 8월 1일~2022년 8월 1일)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상위 10위권에 태국과 베트남이 들어가 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도 K-POP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국가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할 때 하이브와 YG가 이를 비즈니스 측면에서 고려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YG가 자사 소속 멤버의 모국인 태국을, 하이브가 베트남과 관련된 행보를 계속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인 셈이다.
물론 애초부터 YG와 하이브가 ‘특정 목적’을 위해 각각 태국과 베트남 출신 인재들을 선호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양 사는 “글로벌 공개 오디션 경쟁과 연습생 과정을 통과한 최고의 인재들만 데뷔시키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특정 국가 출신을 편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치열한 경쟁 과정을 통해 뽑고 보니 출신 국가가 그렇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 YG의 새 걸그룹 베이비몬스터에 뽑힌 치키타가 대표적이다. 치키타는 2021년 3월에 태국에서 오디션을 봤고, 이후 YG에 합류해 연습생 생활 3개월 만에 실력을 인정받아 블랙핑크의 뒤를 이을 걸그룹 멤버로 뽑혔다.
양현석 YG 총괄 프로듀서는 치키타에 대해 “5~6년 연습생 생활을 한 친구보다도 (더 나아) 바로 합류를 시켜야겠다 싶어서…”라며 발탁 배경을 유튜브에서 설명했다. 미래 스타를 꿈꾸며 양 사의 오디션에 뛰어드는 이들의 경쟁률은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 연습생으로 데뷔를 준비하는 이들의 국적은 출신 국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다양하다고 한다. 양 사는 세계 각지를 돌며 인재 발굴을 위한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한 대중문화 전문가는 “YG와 하이브의 아세안 내 각각 다른 행보는 리사와 하니가 역량을 보임으로 인해 나타나는 선순환적 효과라고 봐야 한다”면서 “한류의 시작이 동남아인 것을 감안할 때 한류의 기반을 계속 공고히 하고 확장성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제2의 리사, 제2의 하니가 나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양 사의 고민은 각기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자라온 연습생들의 체계적인 교육과 사회화 등을 어떻게 잘 이뤄내는가에 있다. 이와 관련해 하이브는 T&D(Training & Development) 사업실에서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YG는 신인개발팀에서 오랜 기간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연습생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