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데믹 이후 달라진 근무환경 블레저·워케이션으로 일과 여행을 동시에

    입력 : 2023.07.27 13:17:45

  • Survey
    어느새 일상용어가 된 워라밸 여전히 일상현실과는 멀어

    시장조사 전문 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3월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워라밸’ ‘주 52시간 근무제도’ 등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워라밸 문화는 아직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먼저 전체 응답자 10명 중 9명(93.3%)이 워라밸이란 용어를 알고 있을 만큼 대중적인 일상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조사 대상 직장인 대부분이 긍정적인 이미지로 응답했는데, 특히 2030세대 응답자일수록 이상적(20대 49.2%, 30대 48.4%, 40대 44.4%, 50대 37.6%)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고, 건강하며(20대 50.4%, 30대 48%, 40대 38.8%, 50대 39.2%), 가치 있는(20대 50%, 30대 46.8%, 40대 40%, 50대 38%) 삶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대다수의 직장인들(76.5%)은 ‘일과 개인생활의 균형은 포기할 수 없다’고 답했다.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개인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10.5%)는 응답은 극히 드물었다. 그만큼 ‘일보다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높았다. 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가 워라밸 문화에 가깝 다 ’고 느끼는 직장인은 20.4%에 불과했다. 현재 ‘본인의 삶이 워라밸에 가깝다’(46.7%)는 응답 역시 과반을 넘지 못했다. 워라밸 문화가 정착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개인보다 일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43.5%, 중복응답)와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수준’(41.1%), ‘과도한 노동시간’(38.8%)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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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52시간 경험 직장인일수록 ‘워라밸’에 더 가까운 편

    현재 근무 중인 직장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경우는 64.5%로 집계됐다. 시행 중인 기업의 직장인들은 ‘퇴근 후에도 개인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있다’(19.4%)는 답변이 그렇지 못한 직장인들(9.1%)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전반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33.2%, 중복응답), ‘취미생활’(33.2%)을 하거나 ‘개인 시간을 활용’(31.3%)해 ‘자기 계발’(26.7%)에 나서는 시간이 늘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여가 시간을 계획’(52.6%)하거나 ‘공부, 독서’(47.5%)를 하고 ‘정기적으로 취미생활’(43.9%)을 한다는 응답도 높았다. 특히 20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취미생활을 즐기는 시간(20대 39.4%, 30대 33.7%, 40대 27.3%, 50대 33.1%)과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20대 33.1%, 30대 27.6%, 40대 21.2%, 50대 25.7%)이 많아졌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연령이 높을수록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20대 26.1%, 30대 28.2%, 40대 35.8%, 50대 41.1%)는 점을 긍정적 변화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일의 집중도’(20대 42%, 30대 48.4%, 40대 45.6%, 50대 53.2%)가 오르고,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줄었다’(20대 28.8%, 30대 36.4%, 40대 33.6%, 50대 44.4%)는 응답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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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찬성하는 의견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체 응답자 중 7명(73.2%)이 ‘찬성한다’고 응답하며 ‘저녁이 있는 삶’(61.3%)과 ‘일과 가정의 균형 잡힌 삶’(55.7%)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반면 반대하는 의견은 11.5%로 집계됐다. ‘임금 하락’(51.3%)이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조사됐다.

    3년여에 걸친 팬데믹이 사그라들며 엔데믹이 일상어가 됐다. 좀처럼 겪어보지 못한 생소한 상황에 많은 부분이 바뀌고 달라졌다. 직장생활도 그중 하나. 비대면은 대면으로, 온라인을 통한 재택근무는 다시금 정상 출근으로 회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며 화상미팅으로 대체해온 각 기업들의 해외 출장도 빈번해졌다. 이러한 와중에 일과 여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출장 트렌드 ‘블레저(Bleisure)’가 주목받고 있다. 비즈니스(Business)와 레저(Leisure)의 합성어로 출장 후 업무를 마치고 바로 복귀하는 게 아니라 여행까지 즐긴 후 돌아오는, 직장인 입장에선 업무 출장으로 제공받은 교통편(항공편 등)을 이용해 개인 휴가까지 보낼 수 있어 1석 2조가 되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구성원의 업무 효율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동기부여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올 초 글로벌 여행기업 트립닷컴이 세계여행관광협회(WTTC), 딜로이트와 함께 작성한 소비자 여행 트렌드 보고서에도 블레저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럭셔리 여행 증가’ ‘숙박·항공 예약 시 유연성 있는 상품’과 함께 팬데믹 이후 급부상할 여행 트렌드로 분석됐다. 사실 블레저는 2009년 등장한 용어다. 당시엔 출장에 나선 기업 임원들이 공식 일정 후 쇼핑이나 레저활동을 즐기는 걸 의미했다.

    *자료: 유로모니터
    *자료: 유로모니터

    하지만 팬데믹 이후 업무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희미해지고 휴가와 일을 동시에 즐기는 워케이션(Work+Vacation)도 더해지며 범위가 확대됐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는 전세계 블레저 시장 규모가 2021년 1500억달러에서 2027년 390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워케이션과 블레저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IT 기업이나 스타트업, 외국계 기업이 먼저 시작했다. 최근에는 건축, 금융권 등 보수적인 성향의 기업도 워케이션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근무형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보수적 기업들도 워케이션 시범 운영

    차박여행 플랫폼 ‘밴플’의 구성원들은 엔데믹 이후에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이동수단이자 생활공간이 되는 거점 중심의 밴 라이프를 추구하는 이 스타트업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근무하는 ‘리모트워크(Remote Work)’를 진행 중이다. 근무공간은 집이나 카페, 캠핑장 등 다양한 장소 중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조수빈 밴플 대표는 “해외 캠핑장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근무할 수 있다”며 “창업 초기부터 이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 대표는 “대면 소통을 잘하는 이가 비대면에서도 잘하는 건 아니었다”며 “한 가지 사안에 대한 준비가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미팅 등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밴플은 직원들 간의 소통을 위해 구성원 모두에게 공개된 대시보드와 커뮤니케이션 툴을 이용하고 있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코어타임을 제외하곤 원하는 시간대를 택해 완전탄력근무제로 일할 수 있다. 밴플이 시행 중인 리모트워크는 좀 더 넓은 범위의 워케이션이자 자율근무다. 엔데믹 이후 이러한 근무환경은 스타트업을 넘어 중견기업과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비맥주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근무지 자율선택제’는 안전한 원격 근무가 가능한 환경이라면 국내외 상관없이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다. 김종주 오비맥주 부문장은 “해외 출장길에 현지에서 좀 더 머물며 여가를 즐기고 싶다면 휴가를 붙여 쓸 수도 있다”고 소개했다. 완벽한 블레저인 셈이다. 현장 영업직과 기술직을 제외한 오비맥주 직원들은 연간 총 25일간 업무 장소를 자율적으로 정해 일할 수 있다. 하루 8시간의 근무시간 중 한국 기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공통 근무시간만 지키면 된다. 지난 6월 기준 오비맥주의 사무직 직원 중 82%가 이 제도를 이용했다. 평균 사용 일수는 6.8일이었다.

    LG유플러스는 올 1월부터 강원도 강릉과 경기도 광주에서 최대 일주일간 머물며 일할 수 있는 휴양지 원격근무제를 도입했다. 회사가 마련한 강릉과 광주의 호텔과 리조트에 머물며 낮에는 업무공간으로 출근해 일하고 퇴근 후에는 여가를 즐길 수 있다. 개인 휴가를 소진하는 게 아니라 근무지만 달라졌을 뿐 출퇴근은 유지하는 전형적인 워케이션 제도다. 지난해 6월부터 제주도나 강원도 강릉에서의 워케이션 제도를 운영 중인 현대백화점은 선임급(주임~대리) 직원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현지 체류 숙박비와 교통비, 공유오피스 이용비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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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맥도날드와 롯데멤버스는 제주도에서 일하며 퇴근 후엔 휴가도 즐길 수 있는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맥도날드가 진행 중인 ‘제주 워킹홀리데이’는 지난 4월 말 접수가 마감돼 현재 면접 등 전형이 진행 중이다. 선발된 매장 크루 12명은 올여름 5주간 제주도 매장에서 일하게 된다. 지난 6월 12일부터 8주간 제주도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롯데멤버스는 차수별로 12명씩 총 96명의

    직원이 일주일간 제주도에서 원격 근무에 나서고 있다. 대상자는 신청자 중 공개 추첨을 통해 선정됐다. 롯데멤버스의 워케이션 프로그램은 지난 2021년부터 시작됐다. 올해는 가족 동반이 가능해 호응이 높았다. 오상우 롯데멤버스 전략경영부문장은 “엔데믹 이후 출근 전환으로 또다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직원들이 워케이션을 통해 재충전의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전면 재택근무가 가능해진 네이버는 그동안 각 조직의 여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진행해오던 해외 워케이션을 지난 7월 3일부터 최장 한 달간 진행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했다. 네이버 측은 지난 6월 28일 “사내 공지를 통해 연간 1회 한도로 최장 4주간 외국에서 근무할 수 있는 커넥티드 워크 추가 기준을 안내했다”고 밝혔다. 다만 동료들과의 원활한 협업을 고려해 해외에서 근무가 가능한 국가를 한국과 시차가 최장 4시간 이내인 곳으로 한정했다. 또 통상적인 근로시간대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를 권장한다고 덧붙였다.

    무신사·카카오 스타일…자율근무제 도입도 ‘쑥’

    블레저와 워케이션 개념이 범위를 넓히며 최근 자율근무제도를 도입하는 기업도 속속 늘고 있다. 조직의 상황에 따라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환경과 시간을 선택해 근무할 수 있는 제도다. 일주일 중 하루나 이틀은 재택근무를 권장하는가 하면 출퇴근시간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다. 지난 5월 1일부터 하이브리드 근무 방식을 도입한 무신사는 주 2회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되 구체적인 사항은 부서별로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임직원이 근무시간을 선택하는 ‘자율출근제’도 확대했다.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근무 후 퇴근하는 방식이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일한 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단 4시간만 근무하고 칼퇴하는 ‘얼리 프라이데이’도 운영 중이다.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지그재그’를 운영하고 있는 카카오스타일은 최근 자율근무제도인 ‘하이브리드 2.0’ 도입 1년을 맞아 사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지난해 6월 도입된 하이브리드 2.0 제도를 통해 임직원들은 집, 사무실, 카페 등 어디서나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다. 카카오스타일 측은 “구성원 10명 중 9명이 일에 가장 몰입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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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대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주 32시간 근무제도와 함께 근무지 자율선택제도를 도입했다. 임직원 모두가 근무시간 중 어디서든 업무에 몰두할 수 있는 장소를 스스로 정할 수 있고, 여건에 따라 해외에서의 근무도 가능하다. 지난해 초부터 시행한 개인별 시차출퇴근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올해는 유연근무제의 일환인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기존 하루 7시간(월요일은 4시간), 주 32시간 기준으로 월 단위 총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분배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일이 많은 주에는 50시간, 일이 많지 않은 주에는 20시간만 일할 수 있다.

    만족스런 블레저 되려면

    블레저의 여행 계획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호텔, 항공, 레스토랑 순서다. 만족스러운 블레저가 되려면 철저한 계획에 따라 일정을 소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공식 업무와 여행을 병행하는 것이어서 한정된 장소와 시간대에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휴식 중 갑자기 업무를 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스케줄은 변동 가능하도록 잡고, 사정 변경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사정이 이렇자 호텔, 항공, 레스토랑 비즈니스는 이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체크 인·아웃 시간을 업무시간에 맞춰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로 정하거나 침대보다 소파와 테이블이 중심이 된 호텔 객실이 등장하고, 기내에 와이파이 시스템을 깔고 업무용 좌석을 배치한 항공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영국 브리티시항공은 기내 와이파이를 통해 비행 중에도 온라인 업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뉴질랜드항공은 일부 기종 내 이코노미 좌석을 사무실 의자 형태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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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관심이 큰 곳은 역시 호텔 업계다. 고객 입장에서는 장기 숙박이 저렴하다는 매력이 있다. 호텔 입장에서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단기 숙박과 비교해 객실 청소나 입·퇴실 업무를 하는 직원이 덜 필요하기 때문에 인건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 104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호텔체인 힐튼은 최근 ‘프로젝트 H3’라는 이름의 새로운 장기 숙박 브랜드를 공개했다. 적어도 20박 이상 길게 머무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 중저가 아파트식 호텔이다. 객실 마다 주방을 설치하고, 공용 공간에는 세탁실·피트니스 센터를 갖출 예정이다. 앞으로 미주 대륙에서만 100곳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역시 “장기 체류를 원하는 고객을 위해 합리적인 가격대의 새로운 장기 숙박 브랜드를 미국·캐나다에서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메리어트는 장기 숙박 브랜드의 1박 가격을 산하 30여 브랜드 중 가장 저렴한 수준인 80달러(약 10만원) 정도로 책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미국 호텔 평균 객실 가격이 149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사모펀드(PEF) 블랙스톤과 스타우드 캐피털은 공동으로 지지난해 장기 숙박 호텔 ‘익스텐디드 스테이아메리카’를 60억달러에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또 다른 장기 투숙 브랜드 ‘우드스프링 스위트’의 부동산 111개를 15억달러에 사들였다.

    [안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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