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r My Walking] 경상남도 밀양아리랑길 1코스 | 역사와 문화의 도시 밀양, 날 좀 보소!

    입력 : 2023.03.10 15:21:49

  • 밀양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에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이들이 여럿이다. 혹시나 떨어뜨린 게 없나 주변을 살피다 창밖을 내다보니 생각보다 역사(驛舍)가 컸다. 아, 그렇지. 이곳이 낙동강 곡창지대의 중심지란 걸 깜빡했다. 예부터 비옥한 땅에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생기는 법. 1905년 1월 1일 경부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으니 118년간 영남 교통의 중심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잠깐, 역 바깥쪽 풍경은 도시라기엔 좀 휑하다. 주변의 몇몇 고층 아파트와 곳곳에 돼지국밥 혹은 밀면 간판이 눈에 띄는 걸 빼면 뭐랄까, 조용하다. 밀양관아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기사님에게 번화가를 물었더니 장황한 설명이 돌아왔다.

    사진설명

    “밀양에서 밀양역이 가장 번화한 곳은 아니지요?”

    “아 그럼요. 여긴 열차가 서니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지 먹고 놀자고 오는 곳은 아니에요.”

    “그럼 어디가 북적북적한 거예요?”

    “지금 가는 관아 앞에 밀양아리랑시장이 있는데 꽤 커요. 거기도 좀 번화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시청 쪽으로 가던데요. 거기에 박물관도 있고 아트센터도 있고 시외버스터미널도 있거든요. 사람들이 많으면 먹거리도 많잖아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진 찍는 맛집이 있다던데 그거까진 잘 모르겠네.”

    “영남루가 유명하던데 그 주변은 아닌가 봐요.”

    “관아와 영남루가 100m쯤 되려나. 영남루는 낮에도 좋지만 야경도 기가 막혀요. 돼지국밥 한 그릇 드시려면 밀양아리랑시장에 아주 맛좋은 집이 있어요. 백종원이 추천한 집인데, 깔끔합니다.”

    밀양 영남루
    밀양 영남루

    “밀양도 곳곳에 돼지국밥 간판이 많네요. 부산만 그런 줄 알았거든요.”

    “돼지국밥이 부산만의 것은 아니죠. 밀양에서 부산으로 전파된 것도 있어요. 밀양 건 좀 맑다고 할까. 정구지(부추) 팍팍 넣고 좀 기다렸다 한술 뜨면 속이 편안합니다. 돼지고기도 야들야들한 게 아주 그만이에요. 딱 보니 삼문동 둘레길 오신 것 같은데, 국밥 한 그릇 뚝딱 하고 걸으면 속이 든든할 겁니다.”

    기사님이 알려준 국룰에 따라 시장 안에 있는 돼지국밥집부터 들렀다. 맑은 국물에 다대기 풀어 한 수저 떠보니 몸속 찬 기운이 싹 사라졌다. 역시 무엇이든 알아야 보배다.

    영남루에서 바라본 밀양 시내. 그리 넓지 않은 곳에 목욕탕 굴뚝이 3개나 솟아있다.
    영남루에서 바라본 밀양 시내. 그리 넓지 않은 곳에 목욕탕 굴뚝이 3개나 솟아있다.

    경남 밀양의 밀양아리랑길은 3개의 둘레길로 구성됐다. 1코스는 삼문동과 인근 문화유적지를 둘러보는 역사탐방길이다. 2코스 추화산성 임도를, 3코스는 용두산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1코스를 선택한 건 이 길이 전국에서 흔치 않은 도심형 둘레길이기 때문인데, 덕분에 볼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다.

    도심에 만들어진 길이니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적어 당연히 걷기도 편하다. 원래는 밀양읍성에서 출발해 밀양관아, 밀양아리랑재래시장, 밀양교를 건너 삼문동 강변로를 따라 한 바퀴 돌고 난 후 마지막으로 영남루에 오르는 코스인데, 시장을 거쳐 영남루부터 올랐다.

    사진설명

    밀양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던 밀양관아에서 지척인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히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건축물이다. 관아 뒤편의 밀양읍성에서 밀양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면 영남루에선 밀양강과 삼문동 일대 전경이 탁 트였다.

    귀한 손님을 맞이해 잔치를 베풀던 이곳은 1842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2년 뒤인 1844년 부사 이인재가 재건했다. 지금도 내부가 개방돼 있는데, ‘영남루’의 현판을 당시 이인재의 7살 아들 이현석이 썼다고 한다. 영남루는 한눈에 봐도 웅장하고 멋스럽다. 가까이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빼어난 모양새를 모두 담을 수 없다. 적어도 밀양교쯤에서 포커스를 맞춰야 그림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설명

    밀양의 여의도, 삼문동

    영남루에는 밀양아리랑을 낳은 유명한 설화도 전해진다. 옛날 밀양 부사에게 아랑(阿娘)이라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젊은 관노가 아랑을 사모해 아랑의 유모를 매수한 뒤 그녀를 영남루로 유인했다. 관노는 아랑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관노는 아랑을 죽이고 만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밀양아 영남루 경치가 좋아 팔도의 한량이 다 모여든다. (후렴)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라는 가사의 밀양아리랑은 밀양의 부녀자들이 아랑의 정절을 흠모하며 부른 찬미의 노래다.

    삼문송림
    삼문송림

    영남루 아래에는 아랑 낭자를 기리는 사당인 ‘아랑각’이 자리했다. 이곳에선 ‘무봉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93호)’이 유명한 무봉사도 눈에 들어온다. 무봉사에서 100m 정도 내려오다 보면 작은 초가집이 보인다. ‘애수의 소야곡’ ‘가거라 삼팔선’ ‘낭랑 18세’로 유명한 대중가요 작곡가 박시춘(1913~1996) 생가다. MZ세대에겐 무명일 수도 있는데,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한 한국가요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랑각 아래 수변길을 걷다 밀양교를 건너 삼문동으로 들어서면 강변산책로가 이어진다. 이곳은 밀양의 여의도라 불리는 곳이다. 여의도처럼 강이 휘감아 돌면서 생긴 육지 속의 섬이다.

    밀양아리랑시장 내부
    밀양아리랑시장 내부

    사방이 강인 이 섬의 둔치는 오리배 선착장을 기점으로 한 바퀴 도는 거리만 5㎞에 이른다. 여느 수변산책로처럼 단정하게 정비된 길이지만 길목마다 다양한 시설과 볼거리가 있어 따분하지 않다. 그중 꼭 들러야 할 곳이 삼문송림이다. 조선시대 말 고종 때 밀양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된 방수림인데, 1만8000여㎡의 공간에 100살 넘은 소나무 2000여 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강변산책로를 돌다 삼문동 시내로 걸음을 옮기면 영화 <밀양>의 카페와 촬영지를 만날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서울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목욕탕 굴뚝이 정겹다. 밀양아리랑길 1코스를 완주한 후 출출하다면 밀양의 밀면이 제격이다. 도심 곳곳에서 밀면 간판을 확인할 수 있는데, 식초와 겨자를 넣어 먹는 물밀면이나 따뜻한 육수를 조금 넣고 비벼먹는 비빔밀면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별미다.

    밀양아리랑시장의 돼지국밥
    밀양아리랑시장의 돼지국밥

    ▶밀양아리랑길 1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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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안재형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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