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r My Walking] 전남 강진 바스락길 1코스, 다산이 걷던 사색과 인연의 길

    입력 : 2023.02.13 14:06:05

  • “조금만 더 가면 다산초당이 나온다잖아. 좀만 참아봐.”

    “벌써 야, 다리가 후들거린다.”

    백련사에서 한참을 투닥대던 두 친구가 다산초당으로 걸음을 옮기며 또다시 티격태격한다. 이제 40대라며 몸을 돌려대는 품이 한눈에 봐도 운동 부족이다.

    “그 봐라. 내가 20년 동안 얘기했지. 늘 운동해야 한다고. 그 똥배 어쩔 거야.”

    “이게 다 너랑 한잔하다 이리 된 거다. 난 한잔하고 일하러 가는데, 넌 운동하러 갔나보지? 세월 좋네.”

    뒤따라가던 생면부지의 등산객들도 이들의 대화가 싫지 않았는지 툭툭 끼어들며 함박웃음이다.

    “둘이 형제처럼 친하시네. 근데 운동은 하셔야겠어.”

    사진설명

    무리 중 튀어나온 말 한마디에 앞서가던 친구가 의기양양이다.

    “그렇죠? 거봐라. 다 너 위해서 운동하라신다. 올해 네 목표다 목표.”

    뒤쫓던 친구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아이고, 그래도 절대 죽지 않아요. 대한민국 월급쟁이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데.”

    조용히 뒤따르던 70대 젊은 아저씨가 두 친구의 왈가왈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런 길은 친구 둘이 대화하면서 걷는 게 최고지. 나 봐요. 혼자 걸으니 별로 재미가 없어. 오래오래 같이 살려면 뭘 해도 해야 돼.”

    전라남도 강진을 찾았다. 백련사에서 시작되는 바스락길 1코스는 사계절 걷기 좋은 길이다. 특히 겨울엔 소복이 쌓인 눈에 눈이 시릴 만큼 풍경이 좋다.

    백련사의 동백숲.
    백련사의 동백숲.

    풍요로운 고장, 풍경도 일품

    편안할 강(康)에 나루 진(津)을 쓰는 강진(康津)은 기름진 평야와 강진만(灣)이 어우러진 풍요로운 곳이다. 그 중심부의 만덕산(萬德山·4 08m) 자락을 타고 넘는 바스락길은 걷다보면 앞은 바다요, 뒤는 산이다. 그만큼 경치가 수려하고 깊다. 예부터 야생 차밭이 많아 다산(茶山)이라 불렸는데, 덕분에 18년간 이곳에 유배된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의 호도 자연스레 다산이 됐다고 한다.

    실제로 산 중턱엔 그가 10년간 기거하던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자리했다. 그러니 이 길은 어쩌면 정약용의 길이다. 특히 바스락길 1코스는 그가 백련사의 학승 혜장(1772~1811년) 스님을 만나기 위해 걷던 길이라 해서 ‘사색의 길’ 혹은 ‘인연의 길’이라 불린다. 마음을 다스리며 오로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는데, 과연 어떤 생각을 떠올리며 수십 아니 수백 번 가고 오길 반복했을까.

    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오솔길.
    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오솔길.

    백련사에서 시작되는 길은 동백나무숲이 객을 반긴다. 3월이면 맑고 붉은 기운이 사찰 주변을 휘감는데, 3월 말이 절정이다. 아쉽지만 아직은 수줍은 몽우리만 촘촘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약 5만2000㎡의 동백나무숲(1500여 그루)은 200여 년 전, 정약용과 혜장이 세상사를 논하며 토론하던 학문의 장이었다.

    다산은 <목민심서>를 완성한 1818년 유배생활을 마치고 강진을 나섰지만 혜장은 그를 배웅하지 못했다. 그보다 7년 전인 1811년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유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가 마흔이었다.

    매년 2~3월에 만개하는 백련사 동백꽃.
    매년 2~3월에 만개하는 백련사 동백꽃.

    아련한 다산초당에서 잠시…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은 굴곡은 적지만 작은 고개가 여럿이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은 그 모양이 천차만별이다. 돌계단을 오르는가 싶으면 무성한 대나무숲이 하늘을 가려 섰고, 발걸음이 더디다 싶으면 고스란히 드러난 소나무 뿌리가 서로 뒤엉켜 길을 이루고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뿌리가 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고 숨을 고르게 한다. 마치 왜 그리 일삼아 걷느냐며 나무라는 것 같다.

    간간이 나무뿌리를 보호하기 위해 덮개를 설치하고 별도의 길을 두기도 했는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다산초당에 이르면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 시선을 멀리 두면 주변을 휘두른 숲이 한없이 푸르다. 잠시 머무는 이에겐 이처럼 더없는 쉼터지만 10여 년을 머문 이에게 이곳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강진은 한정식이 유명하다. 단품이 1만원대인데, 반찬이 많아 전라도의 감칠맛을 경험하기에 충분하다.
    강진은 한정식이 유명하다. 단품이 1만원대인데, 반찬이 많아 전라도의 감칠맛을 경험하기에 충분하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정약용이 천주교 대탄압인 신유사화(1801년)에 연루돼 대역죄인이 된 건 그의 나이 마흔의 일이었다. 이 일로 셋째형 정약종과 조카사위 황사용, 매형 이승훈이 처형됐고 둘째형 정약전은 흑산도에, 정약용은 이곳 강진에 유배된다.

    외가 쪽 친척인 해남 윤씨의 도움을 받아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건 유배된 지 8년째 되던 1808년 봄의 일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의 저술을 남기고 18명의 제자를 키워낸다. 초당 옆 아담한 연못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강진만생태공원 큰고니의 망중한.
    강진만생태공원 큰고니의 망중한.

    다산초당에서 마을로 내려오면 다산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정약용의 업적과 유물, 생생한 필체가 담긴 편지들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100m쯤 오르면 하늘로 곧게 뻗은 두충나무숲이 이채롭다.

    그 숲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한옥으로 멋을 낸 민박과 식당, 찻집이 오밀조밀하다. 용문사, 석문공원, 소석문, 도암중학교, 도암면사무소로 나서는 길은 꼭 가야 하는 길이라기보단 선택사항이다. 도로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위험한 구간도 있는데, 시간이 허락지 않으면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다산박물관에 이르는 고갯길로 만족하는 것도 나름의 걷기 코스다.

    다산박물관
    다산박물관

    바스락길 1코스

    백련사→다산초당→마점마을→용문사→석문공원→소석문→도암중학교→도암면사무소

    여행자 정보

    ·강진 버스여객터미널에서 강진­망호 버스 승차 후 신평마을 정류장 하차.

    ·백련사, 석문공원 등에 화장실이 자리했다.

    ·약수터가 없기 때문에 미리 식수를 준비하는 게 좋다.

    글 안재형 기자 사진 강진군청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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