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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y Walking] 상쾌한 바닷바람, 짭짤한 내음에 시름이 훌쩍… 도시와 맞닿은 바다산책길 여수 갯가길
입력 : 2022.06.14 14: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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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없었는데 요즘 서서히 분위기가 다시 잡히고 있어요. 일주일 전부터는 관광버스도 오더라고요. 이제 정말 제대로 먹고 살 만한 때가 왔나 싶어요.”
여수공항에서 중앙동 이순신 광장으로 이동하는 택시 안, 여수 토박이이자 32년째 택시를 몰고 있다는 기사님의 이야기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 가시는 이순신 광장에서 낭만포차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주말이면 젊은 사람들이 꽉 들어찹니다. 저녁에 가수들이 거리공연(버스킹)하고 조명도 제대로 들어오면서 아주 명물이 됐어요. 낭만포차는 평일에도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니까요.”
이순신 광장부터 시작해 갯가길을 돌 예정이라 했더니 “여수에 볼 만한 곳이 아주 지천인데 그 코스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며 전통시장과 낭만포차, 여수해상케이블카를 추천했다.
“중앙동에 10대부터 20대가 몰리고 30대는 여천 소방서 뒤, 중년은 여서동을 많이 찾아요. 연령대별로 노는 방식이나 좋아하는 게 다른 거죠. 요즘 들고 나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이곳도 부동산이 아주 요동을 칩니다. 여수선 웅천이 부자동네로 손꼽히는데, 여기 좋은 아파트가 다 몰려있거든요. 그런데 여수 사람들은 좀 꺼리기도 해요. 거기가 바다를 메워서 만든 곳이라 땅이 튼튼하냐 이거죠. 그런데 외지 분들이 싹쓸이하면서 7억원이 넘는 아파트도 나왔어요. 아주 대단합니다. 여수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이 아파트값을 망쳐놨다고도 하고 오히려 잘됐다고도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선 어림도 없는 값이죠. 있는 사람들은 더 벌고 없는 사람들은 오르는 아파트나 쳐다보고 있고 그렇습니다.”
어딜 가나 양극화에 부동산 가격이 화제라며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이어가던 중 이번엔 교통편으로 불똥이 튀었다.
“서울에서 KTX를 타면 3시 반이나 걸리는데 김포에서 여수공항까지 비행기를 타면 40분이면 되거든요. 그런데 찾는 사람이 줄었다고 여수공항서 시내까지 오는 교통편이 버스 두서너 노선으로 줄었어요. 그것도 하루에 몇 번 들르지도 않습니다. 관광에 제대로 힘을 주려면 공항서 나오는 버스가 많아야 하는데, 택시밖엔 탈게 없으니 비행기 값에 택시비까지 더하면 KTX보다 훨씬 많이 들죠. 아침에 후딱 와서 싸게 즐기고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아침에 후딱 올라가는 코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쩌려는지 모르겠네요. 요즘 선거한다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던데 어쩌겠어요. 지켜봐야지.”
결국 정치 분야까지 말꼬리가 늘어질 즈음 이순신 광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어진 기사님의 마지막 가이드.
“조기 보시면 쑥초코파이 파는 데랑 딸기모찌 파는 곳이 가장 유명합니다. 한번 들러보세요. 아주 맛나요.”
갯가길을 한 바퀴 돌고 나서 30분이나 기다려 산 쑥초코파이는, 맛났다. 기사님 말씀 그대로….
▶깔끔한 도심, 맞닿은 바다 그리고… 갯가길은 여수의 꼬불꼬불한 리아스식 해안(하천에 의해 침식된 육지가 침강하거나 해수면이 상승해 만들어진 해안)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다. 바닷물이 들었다 빠졌다를 반복하는 바닷가의 가장자리를 ‘갯가’라 하는데, 걷는 내내 바다를 끼고 돌아 풍광이 수려하다.
돌산대교에서 내려다본 여수 시내. 오렌지색 지붕이 이채롭다.
총 5개의 코스가 있는데 그중 1-1코스는 ‘밤바다 코스’라고도 불린다. 이순신 광장에서 시작해 여수연안여객터미널, 여수수산물특화시장, 돌산대교, 돌산공원, 돌산나루터, 거북선대교, 여수낭만포차거리, 하멜등대, 여수해양공원을 거쳐 다시 이순신 광장으로 돌아오는 순환형 둘레길인데, 익히 알고 있는 여수의 풍경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우선 첫 출발점인 이순신 광장에 들어서면 기분 좋은 짠내가 훅 코를 찌른다. 바닷가 특유의 비릿한 향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군침 도는 내음이다. 커다란 이순신 동상 앞에 마주 선 거북선은 이곳이 왜에게 11승 전승을 거둔 여수해전의 중심지이자 버팀목이었다는 상징이다. 이순신 동상 뒤로는 국보로 지정된 진남관(鎭南館)이 자리했다. 이순신 장군이 당시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사용한 관아인데, 현존하는 지방 관아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광장에서 거북선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나서면 갯가길 1-1코스가 시작된다. 얼마 안 가 나타나는 여수연안여객터미널 맞은편엔 갈치조림과 서대회무침 등 다양한 해산물요리를 내는 먹거리 골목이 여러 개다. 지척인 수산시장에서 구입한 싱싱한 재료에 전라도 특유의 손맛이 더해져 칼칼하고 감칠맛 나는 요리를 상에 올린다.
거북선대교 아래 자리한 낭만포차 광장.
걸음을 재촉해 언덕을 오르면 돌산섬 앞바다에 세워진 돌산대교에 이른다. 길이 450m, 너비 11.7m의 이 사장교는 양쪽 해안에 높이 62m의 강철교탑을 세우고 56~87㎜의 강철 케이블 28개로 다리를 묶어 무게를 지탱한다. 여천 석유화학공단과 여수항에 출입하는 대형 선박의 주요 항로에 자리해 수면에서 20m나 높은 곳에 다리를 놨다. 다리 위에 서면 갯가길 1-1코스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카메라 포커스를 아담한 장군섬에 맞추면 색다른 풍경을 담을 수 있다.
다리를 건너 살짝 경사로를 올라야 하는 돌산공원은 돌산대교와 여수 앞바다, 그 바깥쪽 넓은 바다를 볼 수 있는 핫 스폿이다. 찾는 이들이 많은지 곳곳에 촬영용 구조물을 설치해 보는 재미에 찍는 재미를 더했다.
▶지척에 수산시장… 서대회 무침 꿀맛 돌산공원에서 돌산나루터로 내려오는 길은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을 가로질러야 하는 골목길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을 타고 가다보면 집에 가로막혀 다시 돌아 나오기도 하는데, 그만큼 재미있고 아기자기하다. 오렌지색으로 지붕을 마감한 집이 많아 근처 편의점 주인에게 물어보니 “엑스포 기간에 시에서 지원해 오렌지색을 입힌 지붕이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돌산공원에서 바라본 돌산대교.
멀리서 보면 이곳이 우리나란가 싶게 이채로운데, 가까이서 살펴보니 코스를 나타내는 이정표나 아스팔트, 지저분하게 널린 쓰레기 등 관리가 아쉬웠다. 특히 돌산대교나 거북선대교를 지날 땐 담배꽁초가 어찌나 많던지 갯가길 초입에서 날려버린 시름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길을 걷는 이유는 풍경이 70이요, 낭만이 30이다.
낭만이 고작 30이냐며 의아해 할 수 있는데, 거북선 대교 아래 펼쳐진 낭만포차와 이순신 광장으로 이어지는 ‘젊음의 거리’가 내뿜는 낭만의 큰 축도 결국 풍경이니 어찌 보면 30도 많은 셈이다. 한 바퀴 휘휘 돌고 나와 즐기는 서대회무침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1인분에 1만2000원, 밥한 공기 더해 1만3000원을 받는 한상은 서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푸지고 저렴하다. 꼭 한번 경험해보시길….
한상에 1만3000원인 서대회무침.
이순신 광장 중앙에 자리한 이순신 동상.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1호 (2022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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