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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y Walking] 철원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 한겨울 출렁이는 다리 위로 완벽한 계곡 산책
입력 : 2022.01.07 15: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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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 시작인 거지?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네. 이거 이러다 못 들어가는 거 아냐?”
“그럴 리가 있을라고. 저기 사람이 빠지는 게 보이긴 하네. 가방 잘 붙들어 메고 천천히 출발해 보자고.”
중년의 부부가 각자 배낭을 둘러메고 철원한탄강 주상절리길 순담매표소 앞에 섰다. 성인 1인당 1만원이란 안내에 2만원을 내니 인당 5000원의 철원사랑상품권이 나왔다. 철원군 어느 곳에서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다.
“이걸 아무 곳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거예요? 잔도 안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부부 중 남편이 묻자 매표소에서 아쉬운 안내가 흘러나왔다.
“안에서는 음식물을 취식할 수 없습니다. 사고파는 공간도 없고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있을 뿐이에요.”
부인이 재차 묻는다.
“그럼 싸온 김밥은 어디서 먹어야 하는 거예요?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했는데….”
“안에서는 드실 수가 없어요. 지금 드시던지 트레킹하고 반대편 드르니게이트로 나가서 드셔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쳐다본다. 당황하는 얼굴이다. 그런데 이 매표소 주변에 이런 얼굴을 한 이들이 네댓 팀 더 있었다. 중년 남자들 한 무리는 주차장 한편에 아예 돗자리를 펴고 바리바리 싸들고 온 막걸리와 안주로 오전 10시부터 술판이다. 싸온 걸 아예 먹고 산책에 나서겠다는 나름의 차선책인 셈인데, 밀려들어오는 차들을 안내하기 바빠서인지 누구 하나 제지하는 이들도 없다.
순담게이트에서 드르니게이트까지 3.6㎞ 편도 길을 걷고 혹은 왕복한 후 싸온 걸 먹기엔 아무리 가벼운 먹거리라도 부담스럽기 마련. 아예 포기하고 가져온 차에 배낭을 벗어두고 길을 나서는 이들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먹고 출발하자며 배낭을 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술판엔 곳곳에서 어이없는 시선이 꽂혔다. 하물며 이 시기에….
그러던 철원군이 달라진 건 한탄강 지질공원 덕분인데, 2015년 환경부가 한탄강 일대 1165㎢를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한 후 2020년 유네스코가 세계적인 지질 명소로 인정하며 철원군의 절경이 서서히 입소문을 탔다. 이후 고석정 등 관광지와 주변의 독특한 숙박지가 알려지며 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곤 하지만 강원도의 유명한 관광지에 비하면 붐비지 않아 팬데믹에 찾는 숨겨진 관광지로 알려지기도 했다. 힙하다기보단 힐링에 어울린달까. 그런 의미로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 역시 두어 시간 남짓 힐링할 수 있는 완벽한 산책코스다.
이어지는 잔교는 대부분 출렁거린다. 다리 위에서 풍경을 감상하다보면 다른 이들의 걸음이 모여 몸이 진동한다. 각각의 다리는 주변 지질에 따라 명명됐다. 예를 들어 ‘단층교’에선 화강암 절벽의 단층을 볼 수 있고, ‘돌개구멍교’에선 하천의 암박 바닥에 생긴 원통 모양의 깊은 구멍을 관찰할 수 있다. ‘주상절리교’ 주변에는 한탄강 용암지대의 층층이 쌓인 현무암 주상절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 여기서 잠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한탄강 주상절리길에 들어서면 취식이 불가능하다. 쉼터 곳곳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 이들부터 아예 막걸리판을 벌인 이들까지, 관리도 필요하지만 공중도덕도 무색한 지경이다. 취식이 불가능한 지역에 쓰레기통이 있을 리도 없다. 잔도 아래로 한탄강을 따라 이동하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작은 고무보트가 위태로워 보였다.
순담게이트→순담계곡쉼터→순담스카이전망대→단층교→선돌교→구리소쉼터→돌개구멍교→한여울교→화강암교→수평절리교→샘소쉽터→바위그늘교→쪽빛소쉼터→2번홀교→철원한탄강스카이전망대→동주황벽쉼터→현무암교→현화교→돌단품쉼터→돌단풍교→쌍자라바위교→드르니스카이전망대→주상절리교→너른바위쉼터→민출랑쉼터→맷돌랑쉼터→드르니쉼터→드르니게이트
▷찾아가는 길
·서울 출발→강변북로→남구리IC→세종포천고속도로→신북IC→철원
·인천 출발→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자유로→당동IC→율곡로→철원
·춘천 출발→경춘로→조종로→금강로→전영로→철원
▷이용시간
·매주 화요일, 명절연휴(설날, 추석) 휴관
·드르니매표소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산 174-3)
성인 1만원 / 오전 9시~오후 4시(동절기 오전 9시~ 오후 3시) / 30분 간격으로 300명 입장
·순담매표소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산 78-2)
성인 1만원 / 오전 9시~오후 4시(동절기 오전 9시~ 오후 3시) / 30분 간격으로 300명 입장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6호 (2022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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