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츠·BMW·아우디는 평범한 ‘강남 쏘나타’… ‘저먼 프리미엄’ 넘어 럭셔리·하이퍼카 몰려온다

    입력 : 2020.01.02 11:10:27

  • 코스메틱 업체 'ㄱ'사를 경영하는 29살의 A 대표는 럭셔리카 3대를 함께 보유하고 있다. A 대표는 4억4000만원부터 시작하는 롤스로이스 세단 ‘고스트’와 2억5000여만원에 이르는 ‘벤틀리 플라잉스퍼’를 몰고 다녔다. 그러다 지난 7월 이탈리아 슈퍼카 람보르기니의 ‘우라칸 퍼포만테 스파이더’를 추가 구입했다. 우라칸 한정판 모델인 우라칸 퍼포만테 스파이더는 가격이 4억5000만원(옵션 포함)을 넘는다. “스포츠카 중에 가장 세련된 디자인과 터프한 주행감에 매력을 느껴 우라칸 퍼포만테 스파이더를 구입했다”고 A 대표는 말한다.

    럭셔리카에만 벌써 10억원 이상 쏟아 부은 A 대표의 선호 브랜드는 소위 ‘페람포(페라리·람보르기니·포르쉐)’ 이상이다. ‘강남 쏘나타, 강남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로 통하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와 급을 달리한다. 국내 수입차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독일 프리미엄이 젊은 자산가인 A 대표의 눈에는 차지 않는 것이다.

    그는 수입과 자산, 나이가 비슷한 주변 지인도 롤스로이스나 람보르기니, 페라리, 벤틀리 같은 럭셔리·슈퍼카 브랜드를 우선순위에 둔다고 말했다. A 대표는 그러면서 “지인들의 자동차 취향을 보면, 한 브랜드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여러 럭셔리카 모델을 소유하고 브랜드마다 서로 다른 매력을 즐기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A 대표뿐이 아니다. 프리미엄을 넘어, 럭셔리에 맛들인 국내 자산가의 수는 점점 불어나고 있다. 수요가 늘자, 연간 신차 판매 186만 대(국산·수입 합계,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2019년 편람)에 불과한 국내 완성차 시장에 럭셔리카는 물론, 롤스로이스는 우스운 대당 수십억원대 하이퍼카(hypercar) 전문 브랜드도 속속 진출하기 시작했다.

    사진설명
    ▶불황에도 활활 타는 럭셔리·슈퍼카 시장

    최근의 럭셔리카 판매 증가는 숫자로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수입차협회(KAIDA)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대당 가격 3억원 이상의 초고가 수입차 판매는 360대로 전년도 같은 기간의 123대보다 3배 가까이 뛰었다. 2018년 1~11월 사이 3억원 이상 초고가 승용차가 총 566억3000만원 어치 팔렸다면, 2019년에는 그 2.6배인 1478억원이 판매됐다.

    벤츠의 대형 기함 ‘S클래스’ 평균가격인 2억원 이상 수입차 시장으로 확대해보면 총 규모는 1조원에 육박한다. 2억원대 고가 수입차는 2019년 11개월간 3560대가 팔려 전년 동기(2844대)보다 25.2% 늘었다. 판매 금액은 7745억5000만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3.2% 증가했다. 2억원 이상 수입차의 총 판매량은 3920대, 금액으로 따지면 9000억원을 웃돈다.

    롤스로이스는 2019년 11월까지 150대를 팔았다. 전년 동기(108대) 대비 38.9%가 증가했다. 이미 2018년 총 판매량(123대)을 넘어섰고, 한국은 중국·일본에 이어 롤스로이스의 3대 시장으로 올라섰다. 이 브랜드 첫 SUV인 ‘컬리넌(4억7600만원)’이 55대가 팔려 전체 성장세를 주도했다. 대형 세단 ‘팬텀(6억3000만원)’과 ‘팬텀 EWB(7억4000만원)’도 전년 동기 4대에서 6대로 늘었다.

    람보르기니도 2019년 같은 기간 155대를 한국에서 팔았다. 전년도 같은 기간의 11대와 비교해 무려 1309% 늘었다. 2억5000만원대로 비교적 저렴한(?) SUV ‘우르스’가 인기를 끈 게 주효했다. ‘아벤타도르 S 쿠페(5억7167만원)’가 전년 동기 0대에서 14대로, 우라칸 퍼포만테(3억7569만원)는 0대에서 23대로, 우라칸 퍼포만테 스파이더(4억1423만원)도 11대로 증가했다. 벤츠 역시 최상위 모델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 650(3억1540만원)’이 144대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럭셔리·스포츠카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잘 나가고 있다. 중고차 플랫폼 SK엔카닷컴은 고가 수입 중고차 판매 현황을 지난 11월 내놨다. 이 자료를 보면 벤틀리는 2018년 1~10월 중고차 19대가 거래됐지만 작년 같은 기간에는 64대로 늘었다. 롤스로이스는 33대에서 98대로 약 3배 급증했다. 이밖에 애스턴 마틴은 26대에서 63대, 람보르기니는 51대에서 106대, 페라리는 78대에서 134대, 맥라렌은 53대에서 78대로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경기가 한창 호황이라면, 초호화 차량의 판매 증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다. 하지만 럭셔리카·슈퍼카 브랜드는 전반적인 경기 불황을 비웃듯 질주하고 있다. 2019년 경제 성장률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덮친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 수준이다. 민간소비 증가율도 1%대에 그친 것으로 파악된다.

    벤츠·BMW 같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일부 선방했지만, 총 수입차 판매는 급감했다. 2019년 1~11월 전체 수입 승용차 판매는 21만4708대로 전년 동기 대비 10.6% 감소했다. 역대 최대폭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다만 벤츠는 2019년 7만 대가 넘는 연간 판매량으로 2018년에 이어 또다시 판매 신기록을 쓴 상태다.

    코닉세그 ‘제스코’
    코닉세그 ‘제스코’
    ▶람보르기니·롤스로이스 “韓 성장세 다시 보이네”

    한국의 럭셔리카 시장이 성장하면서 브랜드들도 대접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롤스로이스를 보자. 롤스로이스는 2003년 코오롱모터스와 국내 판매 계약을 맺고 2004년 ‘롤스로이스모터카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청담동에 첫 전시장을 열었다. 2013년까지 국내 롤스로이스 전시장은 이곳이 유일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롤스로이스의 행보는 광폭이 됐다. 롤스로이스가 국내 진출 이후 누적 400대를 팔기까지 무려 15년이 걸린 반면, 2018~2019년부터는 연간 100대 이상을 팔아치울 정도로 시장이 커져서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롤스로이스 전시장은 네 군데로 늘었다. 청담동 외에 부산, 인천 영종도에 전시장이 생겼고 지난 12월에는 특별히 판교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공공 상업시설에 위치해 30~40대 젊은 고객의 접근을 유도한 ‘판교 라운지’를 열었다.

    롤스로이스 홍보를 담당한 김미향 웰컴어소씨에이츠 이사는 “한국은 정보기술(IT)·인공지능(AI) 같은 4차 산업혁명이 가장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나라며, 판교는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과 전도유망한 기업가들이 몰리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라면서 “이런 신흥 부유층을 겨냥해 롤스로이스도 새로운 감각의 전시장을 열게 됐다”고 소개했다.

    람보르기니는 지난 11월 스테파노 도메니칼리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 회장이 브랜드 진출 이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서울 제이그랜하우스에서 ‘람보르기니 데이 서울 2019’를 열면서다. 람보르기니 서울 전시장이 2019년 8월부터 11월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덕분에 본사 측이 성장세를 주목한 것이다.

    도메니칼리 회장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시장이 잠재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며 “한국 고객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이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람보르기니는 11월 우라칸 에보 인도를 시작했고 새해에도 국내 출시 모델을 확대하기로 했다.

    파가니 ‘와이라 로드스터’
    파가니 ‘와이라 로드스터’
    ▶코닉세그·파가니·부가티 하이퍼카 3대장도 한국 진출

    2019년 롤스로이스를 비롯한 럭셔리카들이 한껏 돋보였다면 2020년의 키워드는 하이퍼카다. 2005년 부가티 베이론의 등장과 함께 탄생한 하이퍼카는 주행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궁극의 스포츠카라 할 수 있다. 페라리의 ‘라페라리(약 18억원)’, 포르쉐의 ‘918 스파이더(약 9억원)’ 같은 기존 스포츠카 브랜드가 하이퍼카를 내놓기도 하지만 하이퍼카 전문 브랜드가 강세다. 세계적으론 프랑스 부가티, 스웨덴 코닉세그, 이탈리아 파가니가 3대 하이퍼카 전문 제조사로 손꼽힌다. 1년에 고작 수십 대만 생산하며, 가격은 기본 20억~30억원이다.

    이미 코닉세그는 2019년 10월 한국에 공식 진출했다. 파가니는 이르면 오는 2~3월 첫 전시장을 연다. 부가티는 진출 논의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발을 들인 코닉세그는 국내 전동 안마의자 제조사 바디프렌드와 국내 판매 파트너십을 맺었다. 바디프렌드는 코닉세그코리아를 설립하고 지난 10월 강남 도산대로에 전시장을 열었다. 코닉세그는 1994년 노르웨이인 크리스티앙 폰 코닉세그가 설립한 브랜드로 설립 직후부터 2019년까지 약 200여 대만 생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닉세그코리아가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제스코; 모델은 5.0ℓ 8기통(V8)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하고 1580마력, 최대 토크 152.9㎏f·m의 성능을 발휘하며 최고시속 480㎞에 이르는 괴물이다. 제스코 모델은 가격이 40억원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가니는 국내 대기업 효성의 계열사 아승오토모티브와 손잡고 2020년 상반기 한국에 들어오기로 했다. 람보르기니 출신 엔지니어 호라치오 파가니가 1992년 창업한 파가니는 주문형으로 한정 생산하며 기본가 20억원을 넘는다. 연간 생산량은 40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파가니는 존다·와이라 시리즈 두 라인업이 있다. 국내에 판매할 모델은 ‘파가니 와이라’로 이미 국내에서 와이라 로드스터 한 대가 팔렸다고 한다. 가격은 약 37억원이다. 파가니 와이라는 알려진 제원을 보면 6.0ℓ V12 트윈터보 엔진에 최고 시속 370㎞, 최대출력 730마력에 이른다.

    이득영 아승오토모티브 실장은 “얼마 전 파가니를 구매할 만한 잠재 고객을 소규모로 초청해 주요 차량을 선보였는데 아주 반응이 좋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고객층이 다양했다”면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개성적인 초고가 차량을 원하는 자산가들이 늘어나면서 최상급 하이퍼카 브랜드들도 국내 수요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편 하이퍼카의 원조라 할 부가티는 한국타이어와 국내 수입을 논의 중이다. 또 중국 자본이 투자한 독일의 신흥 하이퍼카 ‘아폴로오토모빌’도 국내 특수차량 튜닝·직수입 업체인 A1인터내셔널을 통해 36억원짜리 트랙 전용 모델 ‘아폴로 인텐서 에모지오네(IE)’를 2019년 국내에 선보인 상태다.

    페데리코 파일라 주한 이탈리아 대사, 스테파노 도메니칼리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 회장(오른쪽부터) 등이 2019sus 11월 20일 서울 남산 제이그랜하우스에서 열린 ‘람보르기니 데이 서울 2019’에 참석해 ‘아벤타도르 슈퍼벨로체조타(SVJ) 로드스터’ 모델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페데리코 파일라 주한 이탈리아 대사, 스테파노 도메니칼리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 회장(오른쪽부터) 등이 2019sus 11월 20일 서울 남산 제이그랜하우스에서 열린 ‘람보르기니 데이 서울 2019’에 참석해 ‘아벤타도르 슈퍼벨로체조타(SVJ) 로드스터’ 모델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벤츠·BMW·아우디 몰린다”

    부유층 취향 변화·재테크 수단으로

    부유층의 취향이 수억~수십억원에 달하는 럭셔리·하이퍼카에 몰리는 이유는 우선 차별화다. 벤츠·BMW·아우디와 일본 렉서스를 비롯한 프리미엄 수입 브랜드의 판매량은 국산 대중차 브랜드와 맞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9년 1~11월 벤츠는 6만9712대, BMW는 3만9061대를 판매했다. 아우디는 9628대, 렉서스는 1만1401대다. 이들 4개 브랜드만 합쳐도 12만여 대로, 같은 기간 전체 수입 승용차의 절반이 넘는다. 특히 벤츠의 판매량은 같은 기간 한국GM(내수 6만7651대)을 제쳤고 르노삼성자동차(7만6879대), 쌍용자동차(9만7215대)도 위협할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대형 완성차 기업 관계자는 “고급차 오너들 사이에서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도 너무 흔해졌다’는 불만도 나온다”면서 “‘다음 단계’를 원하는 부유층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전했다.

    부가티·파가니·코닉세그 같은 하이퍼카는 부자들의 신종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는다. 이들의 수요를 끌어올리는 한 요인이다. 하이퍼카는 고작 1년에 수십 대만 만들며 오너를 위한 특별 옵션이 추가돼 한 대 한 대가 ‘스페셜’한 작품이다. 파가니는 같은 와이라 라인업 내에서 차량마다 이름이 달리 붙기도 한다.

    이에 따라 하이퍼카는 도로를 달리는 탈것이라기보다는 예술품이라는 이미지가 강조되면서 ‘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진다’는 통념을 뒤집었다. 미술·조각품처럼 부자들의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셈이다. 익명의 국내 완성차 기업 관계자는 “돈이 문제가 아닌 부유층에게 하이퍼카는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훌륭한 재테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하이퍼카 시장이 예전과 다르게 본격 성장할 조짐”이라고 강조했다.

    롤스로이스 ‘판교라운지’
    롤스로이스 ‘판교라운지’
    ▶불경기에도 부자 늘어… 럭셔리카 급증, 양극화의 단면

    경제성장률은 점점 떨어지고 한계기업은 속출한다. 이 와중에 롤스로이스 같은 수억원대 럭셔리카는 한 해 수백 대씩 팔린다. 30억원이 넘는 초고가 하이퍼카 브랜드가 국내에 속속 진출한다.

    이 모든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는 대한민국 경제의 양극화를 여실히 드러내는 단면이라는 분석도 많다. KB금융지주가 2011년부터 발행한 ‘한국 부자 보고서’를 보면 금융자산(현금과 예·적금, 보험, 채권 자산의 합)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한국 부자는 2018년 말 기준 32만3000명이다. 2014년 23만7000명이었던 부자 수는 연평균 8.1%씩 불어나고 있다.

    반면 중산층은 갈수록 줄고, 빈곤층은 느는 추세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작년 1분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위소득(소득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중산층 비율은 58.5%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중위소득의 50% 미만에 해당하는 빈곤층은 2017년 15.9%에서 2018년 17.1%, 2019년 1분기 18.1%로 증가했다.

    [이종혁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2호 (2020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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