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torcycle Test-Drive] 모터사이클도 복고 바람… 구닥다리 ‘로얄엔필드’ 한국 상륙
입력 : 2019.06.07 11:00:42
-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로얄엔필드’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등장했다. 클래식 모터사이클 인기에 힘입어 한국까지 진출했다. 원래 소량 수입해서 돌아다니긴 했다. 이젠 공식 수입사가 두 팔 걷어붙이고 제대로 소개하려고 한다. 규모가 커져 믿을 만한데, 가격까지 전보다 낮춰 주목도를 높였다. 클래식 모터사이클의 인기가 불러온 일련의 변화랄까.
예전에는 몇몇 사람들의 특별한 취향이었는데 이제는 대중적으로 가능성을 타진한다. 덕분에 더 낮은 가격에 많은 제품을 수월하게 접하게 됐다. 라이더 입장에선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로얄엔필드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인도에서만 통용된 모터사이클이었으니까. 이런 사연이 로얄엔필드를 진정한 클래식 모터사이클로 보존하게 했다. 아니, 화석 같은 모터사이클이랄까. 갈라파고스처럼 진화가 멈춘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인도에서 주로 팔리던 시절에는 출시했을 때의 방식 그대로 계속 만들어도 무방했다. 인도에서 로얄엔필드는 세계 모터사이클 흐름과 격리된 채 존재해왔다.
로얄엔필드와 관련한 개인적 기억이 있다. 인도 배낭여행을 다닐 때였다. 인도 북부 마날리 지방에서 러시아 친구들이 타던 모터사이클이 있었다. 몇 십 년은 족히 됐을 법한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툴툴거리며 굴러가던 모터사이클을 보며, 역시 인도라고 생각했다. 그때 본 그 모터사이클이 ‘로얄엔필드 불렛’이었다. 어쩌면 그때 본 모델은 만든 지 몇 년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양이 변하지 않았으니까. 로얄엔필드 대표 모델 불렛의 시작은 무려 1932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불렛과 그때 불렛은, 바뀌었지만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인도 배낭여행에서 러시아 친구들이 몰던 불렛 뒷자리에 탄 기억, 그때나 지금이나 외관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갈라파고스가 절로 떠올랐다. 이쯤 되면 로얄엔필드를 구닥다리 모터사이클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구닥다리인 건 맞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모터사이클 시장에 레트로가 급부상했다. 로얄엔필드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도 달라졌다. 로얄엔필드도 달리 생각할 계기가 됐다. 클래식 모터사이클 인기에 힘입어 새로운 전략과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로얄엔필드를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했다. 미들급 클래식 모터사이클 시장의 다크호스가 되어.
배경 설명이 길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역사와 상황, 시대 흐름을 미리 알지 않으면 로얄엔필드란 브랜드를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런 배경에서 생존해왔기에 대입하는 기준도, 취할 감흥도 달라진다. 현대식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모터사이클과는 다른 존재다.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면 당황할지 모른다. 반면 클래식 모터사이클이란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얼마나 잘 보존되고 옛 감흥을 느끼게 하느냐는 장점이 되니까. 로얄엔필드가 승부수로 노리는 점이기도 하다. 보다 문턱 낮춘 클래식, 그러면서 전통 있는 클래식. 지금 한국에 출시된 로얄엔필드 모델은 세 가지다. 로얄엔필드의 상징 같은 ‘불렛 500’, 2009년 출시한 ‘클래식 500’, 그리고 로얄엔필드 첫 번째 듀얼퍼퍼스 모델인 ‘히말라얀’이다. 불렛 500과 클래식 500은 엔진은 같고 디자인이 조금 다르다. 불렛 500은 긴 생명력이 돋보이고, 클래식 500은 불렛을 토대로 감각을 높였다. 둘 다 정통 클래식으로 로얄엔필드의 과거를 빛낸다. 반면 히말라얀은 로얄엔필드의 현재를 보여준다. 새롭게 설계한 모터사이클이다. 보존을 넘어 이제 움직이겠다는 의지다. 두 종류를 모두 접해야 로얄엔필드라는 브랜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나올 650cc 2기통 모델까지 타보면 더욱.
불렛 500을 보니 다시 인도 배낭여행 때가 떠올랐다. 물론 그때와는 달리 차체가 반짝거렸다. 색 바래고 녹이 오른, 2차 세계대전이 떠오르는 느낌은 아니다. 박물관에서 잘 보존된 모터사이클을 전시장에서 꺼내 시운전하는 기분이랄까. 가끔 자동차 박물관에서 클래식카 시승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불렛 500은 올라타고 시동을 거는 행위 자체가 신선할 정도로 외관에서 풍기는 예스러움을 후광처럼 둘렀다. 이런 모터사이클이 어디 흔한가.
히말라얀 역시 출력 면에선 돋보이지 않는다. 대신 출력을 뽑아내는 느낌이 기존 모델보다 부드럽다. 최신 모델답게 다시 설계한 덕분이다. 그렇다고 요즘 모터사이클처럼 매끈한 면모를 기대하긴 힘들다. 공랭 단기통이라는 물리적 특성도 한몫한다. 옛 감성이라는 로얄엔필드의 DNA이자, 어떤 면에선 한계인 특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로얄엔필드는 확실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터사이클이다. 게다가 전 모델 모두 접근하기 편하다. 입문자는 물론, 가볍게 즐기고픈 숙련자도 관심 둘 만하다.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점에서 라이더에겐 흐뭇한 일이다. 로얄엔필드가 공식 수입된다는 점이 반가운 이유다. 누구나 실물을 보면 한 번쯤 앉아보고 싶을 터다. 이 정도면 첫인상은 합격 아닌가.
[김종훈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5호 (2019년 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