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torcycle Test-Drive] BMW 모토라드 R 1250 GS 온·오프로드 안가리는 슈퍼 사이클

    입력 : 2019.03.08 14:52:34

  •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모터사이클 여행, 아니 횡단 다큐멘터리 <롱 웨이 라운드>다. 영화배우 이완 맥그리거와 찰리 부어먼이 출연한다. 둘은 영국 런던에서 미국 뉴욕까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렸다. 유럽을 지나 중앙아시아, 몽골, 시베리아를 뚫고 북미를 오르내렸다. 둘은 친구였고, 함께 달렸다. 그 과정에서 고생도 하며 우정과 모험, 낭만과 로망이 뒤섞였다. 속편도 있었다. 3년 후 둘은 다시 떠났다.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스코틀랜드 존오그로츠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까지 달렸다. 그래서 제목도 <롱 웨이 다운>. 여전히 흙먼지 뒤집어쓰고 온로드, 오프로드 누비며 대륙을 관통했다. 다큐멘터리 두 편을 보면서 두 배우만큼 눈길을 끈 존재가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이다. BMW 모토라드의 대표 모델 ‘GS’가 등장한다.

    <롱 웨이 라운드>에선 ‘R 1150 GS’가, <롱 웨이 다운>에서는 ‘R 1200 GS 어드벤처’가 여정을 함께한다. 두 모터사이클은 세대만 다른, 같은 모델이다. R 1150 GS의 후속 기종이 R 1200 GS. 뒤에 붙은 어드벤처는 장거리에 필요한 몇몇 요소를 더한 모델이라는 뜻이다. 그때부터였을까. GS는 모터사이클 대륙 횡단의 대표 모델이 됐다. 또한 온로드든, 오프로드든 잘 달리는 듀얼 퍼퍼스(Dual-Purpose) 장르를 대중적으로 알렸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누구나 달리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반응이니까. 설사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더라도 두근거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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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오프로드 가리지 않는 재주꾼

    앞서 말했듯 BMW 모토라드의 GS 시리즈는 ‘멀티 퍼퍼스(온로드, 오프로드 모두 즐기는 모터사이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그 시작은 3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에 태어난 ‘R 80 G/S’가 현행 GS의 시조다. 이름으로 모터사이클 형식과 용도를 알 수 있다. R은 BMW 모토라드의 상징 같은 박서 엔진을 뜻한다. 80은 798cc, 즉 배기량을 표현했다. 뒤에 G/S는 차량성격을 알려준다. GS는 독일어로 오프로드인 겔랜데(Gelande)와 온로드인 스트라세(Straße)의 앞 글자를 조합했다. 즉 온로드와 오프로드 가리지 않고 다 잘 달리는 능력을 나타낸다. R 80 G/S는 1980년대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활약하며 주목받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GS는 진화했다. 더 커지고 출력도 높아지며 안정장치도 두루 적용됐다. 듀얼 퍼퍼스로서 온로드와 오프로드 양쪽에서 주행능력을 발전시킨 셈이다. GS가 개척한 영역은 이제 확고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 다양한 브랜드에서 경쟁 모델도 선보였다. 지금은 각 브랜드마다 듀얼 퍼퍼스 모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GS의 상징성은 크다. 특히 R 1200 GS는 리터급 어드벤처 투어러로서 확고한 기준을 제시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흙길 달리기보다) 장거리 투어러로서 한 축을 이뤘다.

    R 1200 GS를 몇 번 접할 기회가 있었다. 거대한 기계이자 말을 연상시키는 풍채가 인상적이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경주마를 바로 앞에서 보면 크기와 높이에서 질리지 않나. R 1200 GS도 마찬가지였다. 윈드실드와 앞부분 형상이 말의 상체처럼 높고 당당했다. 한국인 평균 키(175㎝)인 나로서는,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다. 앉았을 때 양 발끝만 닿으니 높이와 무게가 부담스러웠다. 로우 서스펜션을 장착하면 시트고를 더 낮출 순 있지만, 확실히 서양인 체형 기준으로 만들어졌음을 절감했다. 멀티 퍼퍼스 장르만의 통과의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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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응하니 달라졌다. 시트에 앉은 채 한 쪽 다리만 딛고 균형 잡는 방법을 익히니 수월해졌다. 시트고에 적응하고 달리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말을 조련하고 달리는 기분이랄까. 타기 전 느낀 위압감이 달릴 때는 색다른 쾌감으로 바뀌었다. 말의 상체 같은 앞부분은 바람을 막아줘 달릴 때 피로도를 줄여줬다. 높고 넓은 핸들 바는 허리를 세운 채 타게 했다. 높은 시트고는 확 트인 시야를 선사했다. 딱 고삐 잡고 어깨 펴고 말 타는 느낌. 외모에서 받은 인상이 주행 느낌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기계 말이라는 표현이 비유만은 아니었다.

    R 1200 GS로 오프로드를 달린 적도 있다. 물론 본격 엔듀로 모터사이클처럼 달리진 않았다. 길도 그리 험하지 않은 임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온로드 모터사이클이라면 핸들 돌려 돌아갈 정도의 난이도는 있었다. 도로가 울퉁불퉁해지니 다시 덩치와 높이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번에도 역시 달리기 시작하니 부담이 장점으로 바뀌었다. R 1200 GS는 돌이 흩뿌려진 산길을 꾹꾹 누르며 달렸다. 무게가 묵직하고 서스펜션 허용 범위가 길어 어지간한 충격은 툭툭, 걸러줬다.

    패이고 솟아오른 길이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니, 경험하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보통 오프로드 전용이면 온로드가 불편하고 온로드 전용이면 오프로드가 불편하(거나 불가능하)다. GS는 둘 다 편했다. 몸이 편하니 즐길 여유가 생겼다. 보통 돌아가는 길을 일부러 즐기러 간다는 점도 모험심을 자극했다. 빨리 달리거나 멀리 가는 것 외의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됐다.

    각각 즐기려면 각기 다른 형태의 모터사이클이 필요하다. GS라면 단 한 대로 충분하다. GS가 어떻게 영역을 구축하고 확장했는지 그제야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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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계기반에 높아진 출력, 이렇게 다루기 쉽다니

    ‘R 1250 GS’는 R 1200 GS의 신모델이다. 10여 년 만에 이름이 바뀌어 나왔다. R 1150 GS에서 R 1200 GS로 바뀌었듯, R 1250 GS로 숫자 50을 올리고 역사를 이어나간다. 신모델이 나왔으니 관심이 가는 게 당연한 수순. 해외에서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눈과 귀가 쏠렸다.

    그 사이 듀얼 퍼퍼스 장르는 더욱 치열해졌다. 여타 브랜드에서도 걸출한 모델을 선보였다. 그럼에도 대표 모델로서 명성이 굳건할지가 궁금했다.

    R 1250 GS의 외관 변화는 크지 않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TFT 컬러 계기반이다. 자동차도 아날로그 계기반에서 디지털로 바뀌듯 모터사이클도 디지털이 대세다. 계기반은 라이딩하며 가장 자주 보는 부분이다. 작은 변화일지도 모르지만, 전체 분위기를 쇄신한다. 색이 선명하고 화려해 신형의 증표 같은 역할을 한다. 전원을 켤 때마다 화려한 그래픽에 뿌듯해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외에는 몇몇 세부 부품 형태나 색이 달라졌을 뿐이다.

    결정적 변화는 엔진이 담당한다. 앞서 R 80 G/S에서 얘기했듯, 숫자는 배기량을 뜻한다. R 1250 GS의 배기량은 1254cc이다. 기존 1170cc에서 소폭 상승했다. 숫자보다 느낌의 차이가 크다. 출력도 상승했지만, 출력을 뽑고 전달하는 방식을 개선한 까닭이다. GS는 BMW 모토라드의 상징인 박서 엔진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이번에 선보인 기술은 가변 밸브 시스템. 저속 토크와 고속 출력 양쪽을 보완해 저속에서 모터사이클을 다루기 쉽고, 고속에서 예전보다 짜릿하게 달릴 수 있다. 환경 규제에도 대응했다.

    이 변화가 주는 의미는 크다. 초보자에겐 부담이 줄고, 상급자에겐 더 갖고 놀 폭이 넓어진 셈이다. R 1250 GS를 접하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다루기 편했나? 높이와 무게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저속일수록 부담스럽다. 하지만 R 1250 GS는 내내 불안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날씨가 추워 노면을 생각하며 조심스레 달리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을 안정시켰다. 부담이 줄어들면 그때부터 재미가 배가된다. R 1250 GS는 전보다 더 빨리 그 상태로 라이더를 인도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각종 안정장치가 든든하게 보조하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신형 R 1250 GS는 긴 세월 완성도 높인 모터사이클을 보다 정교하게 세공한 셈이다. 원래 어느 수준 이상 되면 변화 폭이 극적이기 힘드니까.

    온로드를 타고 나니 오프로드에도 들어가고 싶어졌다. 줄어든 부담만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으니까. 찬바람이 잦아들면 기회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온로드에서 산뜻하게 달렸으니 오프로드가 궁금해졌다. 답은 나와 있지만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GS는 두 길을 같이 타봐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그게 GS가 제시한 듀얼 퍼퍼스의 즐거움이니까. 역시 즐길 게 많다.

    [김종훈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2호 (2019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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