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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셔츠는 수트의 속옷이었다…셔츠 잘 입는 7가지 원칙
입력 : 2014.04.11 17: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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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여러 개의 타이와 셔츠를 갖고 있지만, 늘 손이 가는 것들은 결국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거나 어떤 옷에도 잘 스며드는 베이직한 몇 개 남짓일 뿐이다. 여성들이 자주 말하는,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는 표현은 그런 뜻이다.
하지만 복잡한 여성복에 비해 남자들을 위해서는 옷차림에 참고할 만한 전통과 규범들이 존재한다. 특히 남자들이 매일 아침 복장을 결정하기 위해선 좋아하는 옷 이전에 그 날의 스케줄이나 만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니까 남성복은 자신이 입을 옷이라고 해도 사회적인 의미에서 일단 복장을 파악하고 그 다음에 개성을 가미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에게 홀로 튀는 타이보단 복장에 질서를 잡아주는 타이, 보기에 아름다운 셔츠보다 규범에 맞는 셔츠가 더 중요해진 이유다.
셔츠는 수트의 속옷이다 비즈니스 매너에 관해서 배운 사람이라면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선 상의를 벗지 않는 에티켓을 안다. 품위와 관습, 혹은 위생적인 이유든 뭐든 셔츠 차림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셔츠란 원래 수트의 속옷으로 출발한 옷이기 때문이다. 셔츠는 속옷이었단 역사도 역사지만, 피부와 맞닿는 섬세한 옷이다. 피부에 가까운 의복일수록 천연 소재를 사용하는 게 당연하며, 부드러움과 흡습성을 동시에 보유한 백퍼센트 면은 모든 셔츠의 기본적인 재료였다.
디테일과 컬러가 풍부한 여성복과 달리 남성복은 심플한 이미지와 한정된 아이템으로 믹스하기 때문에 음식처럼 재료가 중요하다. 그러니 셔츠를 생각한다면 브랜드나 디테일에 눈길을 빼앗길 필요가 없다. 깃과 버튼에 덧칠을 할수록 본래 가치에서 멀어질 뿐이니까.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서 타인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옷차림은 수트나 재킷과 같은 상의였고 셔츠는 그 안에서 조용하지만 예의를 갖춰 자신의 역할을 하는 조력자였다. 수트 차림이라면 셔츠는 그 안에서 타이와 믹스되어 정장을 완성하는 도구인 동시에, 겉옷과 인체를 연결하는 속옷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넥타이를 푼 재킷 차림에서도 셔츠는 컬러나 패턴을 통해서 캐주얼을 강조하는 장치일 수도 있고 버튼을 두세 개 정도 열어두면 스스로 편안한 기분을 연출할 수 있는 심리적인 도구도 된다.
이처럼 셔츠의 첫 번째 기능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수트나 재킷과 함께 배치됨으로써 착용자에게 필요한 스타일을 돕는 것이다. 홀로 역할을 하기 보단 돕는 역할이기 때문에 화려한 컬러나 패턴보다 화이트나 블루 솔리드가 선호된다.
또한 같은 면으로 만들지만 티셔츠란 입는 순간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리는 솔직하고도 캐주얼한 옷이며, 이름이나 브랜드 혹은 문장이나 주장까지도 옷 위에 담는 정치성까지 갖고 있다. 그 위에 재킷을 입어도 사실 티셔츠는 재킷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셔츠는 수트나 재킷 아래에서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하고, 착용자의 몸과 마음을 모두 배려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겉옷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 특히 사이즈가 큰 셔츠는 재킷 안에서 뭉치기 쉽고 어깨든 소매든 어느 부분을 잡아당겨서 점점 불편해진다. 입으면 부자연스러운 주름도 생긴다. 사이즈가 정확하지 않은 구두는 바로 통증을 느끼기 때문에 누구라도 신경을 쓰지만, 제멋대로인 사이즈의 셔츠라도 아프진 않기 때문에 쉽게 넘겨버린다.
따라서 좋은 셔츠는 브랜드가 아니라 소재와 패턴에서 승부가 난다. 즉, 곡선으로 이루어진 인체의 특성을 반영해서 움직임을 편안하게 도우면서도, 가슴과 허리 혹은 목 부분의 핸디캡을 효율적으로 커버해주는 것이 셔츠의 두 번째 역할이다.
물론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의 시대적인 흐름을 반영해서 셔츠 칼라(Collar, 깃)의 각도나 크기도 변형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체중이 늘어나거나 줄어들더라도 뼈의 구조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셔츠의 칼라는 트렌드가 아닌 개개인의 신체적 특성에 맞춰지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얼굴이 하나의 그림이고 셔츠의 칼라가 그림을 넣는 액자라고 생각하고, 목 주위를 둘러싼 셔츠 칼라의 높이와 둘레, 뾰족한 깃을 항상 사람의 얼굴 모양과 크기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방침을 세워두면, 클래식한 수트에 각도가 넓은 와이드스프레드 셔츠가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해도 깃이나 컬러, 핀이나 버튼 등을 통해 셔츠 그 자체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얼굴 바로 아래의 브이존에 과다한 디테일이 침입하면, 어떤 식으로든 복장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앞서 강조했듯이 셔츠의 역할은 수트와 타이와의 융합이다. 융합을 위해서 셔츠는 독야청청하지 않고 브이존 안에서 무심히 몸을 숨기고 있어야 한다. 좋은 셔츠는 얼굴에 균형이 잡히는 각도를 가지고 있으며, 타이의 매듭을 조용히 포용할 뿐이다. 원래는 가슴 주머니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오히려 남자의 복장에는 질서가 부여된다.
셔츠에 이니셜을 새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굳이 옷에 표기하는 걸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셔츠에 이니셜을 한다면 그 위치는 눈에 확 띄는 소매가 아니라 왼쪽 갈비뼈 부근으로 한정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겉옷을 입었을 때 보이지 않으며, 셔츠의 본래 역할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
품위를 표현하는 셔츠의 법칙 결론적으로 남자가 입어야 할 좋은 셔츠란 비싼 브랜드 제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품질이 좋은, 자신에게 잘 맞는,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스타일과 가깝다.
즉, 좋은 셔츠라면 당신의 몸과 수트 사이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수트가 몸에 더 잘 맞도록 묵묵히 기능할 것이다. 훌륭한 명성을 가진 수트조차도 싸구려 셔츠를 가려줄 수는 있을지언정, 셔츠 자체를 훌륭한 것으로 탈바꿈 시키진 못한다. 그러나 훌륭한 셔츠는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구려 수트를 훌륭한 수트로 보이도록 해주는 힘이 있다. 그게 바로 훌륭한 셔츠가 가진 위력이다. 그러니 이제 어떤 수트를 입을지 고민할 때, 어떤 셔츠를 그와 함께 매치할 것인가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셔츠가 당신의 품위를 제대로 표현해 주기 위해서 다음의 7가지 원칙들을 참고해 주시라.
△수트 차림에서 셔츠는 화이트와 블루 두 가지에 집중한다. 솔리드와 스트라이프, 체크 등의 패턴 선택은 취향에 따르지만, 수트를 주로 입는다면 나머지 색상에 대한 욕심은 버리는 것이 좋다. 다만 재킷 차림이라면 톤온톤으로 다양한 색상의 셔츠를 자유자재로 입어보는 것이 좋다.
△얼굴이 작아 보이고 싶다면, 현재 스타일보다 셔츠 깃의 각도를 조금 넓게, 그리고 깃의 길이도 길게 입어본다. 실제 얼굴이 작은 경우에는 짧은 깃이 유리해진다. 셔츠도 이렇게 인체의 장단점을 보완해주는 방향으로 충분히 입을 수 있다.
△수트나 재킷을 입었을 때 소매 끝으로 셔츠가 조금 보이도록 길이를 조정해 둔다. 1~2㎝ 사이면 된다. 그런 이유로 수트 안에 반팔 셔츠를 입지 않는다. 반팔 셔츠를 입으면 셔츠 소매가 재킷 소매 밖으로 보이지 않고, 재킷을 벗었을 때 팔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즉, 신체를 품위 있게 가려주는 수트의 전통엔 어느 것 하나 들어맞는 게 없다.
△가능한 한 주머니가 없는 드레스셔츠가 좋다. 주머니는 필요에 의해서 하나 정도는 있을 수 있지만, 주머니가 2개 있다면 그것은 이미 드레스셔츠가 아니다.
△양쪽 깃에 버튼이 달린 버튼다운 칼라의 셔츠는 수트와 함께 입지 않는다. 그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브리프케이스를 드는 것처럼 안 어울리는 차림이다. 버튼다운 셔츠는 재킷이나 다른 캐주얼에 어울린다.
△새 셔츠를 처음 입었을 때 목둘레 사이로 손가락 한 개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남는다면 당신은 이번 쇼핑에 성공한 것이다. 셔츠란 결국 면으로 만들어져야 하기에, 몇 번 세탁하고 나면 그 셔츠는 당신 목에 딱 맞게 될 테니까.
△ 당신이 셔츠를 살 때 기억하고 있어야 할 숫자 - 목 둘레, 소매길이, 가슴둘레.
남훈 2005년부터 2011년까지 7년간 제일모직 ‘란스미어’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현재 패션전략컨설팅회사 ‘더 알란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 GS타워몰에 액세서리 편집숍 ‘알란스(ALAN’S)’를 오픈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3호(2014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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