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춤복에 대한 11가지 팁

    입력 : 2014.02.06 17: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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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아,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 음식과 그 어느 외국 항공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승무원들의 친절에 감사하면서 지난 출장 동안 만났던 오래된 파트너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찬찬히 떠올린다. 모두들 한국 경제는 어떠냐고 묻고 자국의 어려운 사정들에 대해 걱정하며 뭔가 잘 되는 카테고리나 비즈니스에 대한 정보를 나눴다. 세계 경제가 아무리 골고루 불황이라고 해도 그래서 여러 나라들이 직격탄을 제대로 맞는 그 와중에도 탁월한 품질과 매력적인 가치를 지닌 제품으로 발군의 실적을 내는 브랜드가 항상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는 경기가 좋지 않으면 최상위 가격대와 최저가가 살아남는 양극화의 흐름이 어느 정도 깨지면서 영원히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만 보였던 럭셔리 브랜드들도 마침내 거품이 걷히고 있다. 따라서 빠르게 지나가는 유행보다 전통적인 가치와 베이직 스타일에 방점을 찍어 온 클래식 브랜드들이 많은 나라가 다시 무대의 중심에 들어서고 있다. 패션업계 전체로 보면 매출이 줄어들면서 고통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브랜드의 명성에 사로잡혀 크레디트카드를 마구 긁어댔던 소비자들이 마침내 이름보다는 품질, 가격보다는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이는 미래 시장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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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 남성복의 진화 물론 패션의 가치는 품질이나 실용뿐 아니라 스스로와 타인의 취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주는 차별화에도 깃들어 있다. 우리가 매일매일 눈으로 확인하듯이 동일한 브랜드와 사이즈의 품목이라도 그걸 소화하는 사람의 결과는 천지 차이가 아니던가. 누군가에게 양복이란 아래 위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유니폼일 따름이고, 그 안에 셔츠와 타이를 매기만 하면 되는 매우 기계적인 옷차림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를 이끌어가는 오피니언 리더들이라면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는 수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과학과 기술, 시스템과 역사 등 아무리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해도 전 세계 남자들은 자신의 몸을 올바로 반영하는 수트를 찾으며 그 옷을 장소와 목적에 맞게 제대로 갖추어 입는 자세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특히 수트의 기본은 사람을 옷이나 브랜드에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을 각기 다양한 사람의 몸에 최대한 맞추는 것이다. 특정한 라인과 패턴을 만들어내고 시즌마다 인위적으로 디자인을 변화시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브랜드에 종속시키는 것이 여성복의 황금률이라면, 전통과 클래식을 지향하는 남성복은 일단 디자인보다는 그것을 입는 사람의 몸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지구인의 숫자만큼 천차만별인 것처럼 모든 남자의 몸도 균일하지 않으며 나름의 고유한 특성과 변천사를 가지게 된다. 같은 유럽이라도 라틴계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같은 남부 유럽인들의 신체적 특징은 독일이나 그 위의 북유럽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이탈리아인의 신체는 오히려 일본이나 한국 같은 아시아인과 비슷하며 독일이나 그 북쪽은 미국인처럼 상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아시안과 공유되는 특성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런 연유로 미국 브랜드보다는 이탈리아의 수트들이 일본, 한국, 홍콩과 같은 아시아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는 것이다.

    다만 옷 잘 입는 나라,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수트라고 해서 모두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며 외국인의 취향과 체형을 기반으로 한 기성복 브랜드들이 모든 한국 남자들의 몸을 정밀하게 반영할 수도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이 시대 남성복이 진화하는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세계 명품시장을 지배하면서 럭셔리의 기준을 만들어 온 패션 선진국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시장에서 그 옷이 잘 들어맞는 사람의 비율만큼 반대로 신체의 비율과 부조화하면서 어색한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지는 기성복의 높은 효율을 무시할 수 없고, 한국인의 급한 성격과 만성적인 시간 부족을 감안한다고 해도 불특정 다수 신체의 최대공약수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타국의 기성복은 한국 남자의 개성적인 체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좀 느리지만 아날로그의 감성이 살아 있는 맞춤복의 소중함이 다시금 다가오고 있다.

    영원한 클래식, 맞춤복 기성복은 물론 편리하고 현실적으로도 유용하다. 소수 귀족에게 귀속되어 있던 패션이 산업혁명과 경제적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다수 대중에게 확산되었으므로, 기성복의 발전은 역사나 문명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을 위해 꼼꼼히 제작되는 무언가, 그래서 내가 아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소용없는 맞춤복이란 얼마나 귀하고 매력적인가. 기성복으로 일상의 대부분을 커버하되,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맞춤복을 적절히 섞어서 소화하는 복장, 그건 가슴이 철렁하는 가격의 모피나 보석, 빠르게 회전하는 유행의 핸드백이나 구두를 갖지 못한 남자들이 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호사가 아닐까.

    기성복과 맞춤복은 서로 공존하면서 각 개인이 구사하는 선택의 문제인 동시에, 시간과 장소 혹은 빈도를 반영하는 비율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맞춤복은 브랜드나 디자인을 떠나 오직 인체만을 생각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옷을 만드는 고집스러운 정신이고 기성복은 인체의 변동성을 최소한으로 규정하고 그에 따른 실루엣과 사이즈를 매뉴얼화해 비즈니스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렇게 옷에 담긴 정신이 다른 건 사실이지만, 두 복장의 공통된 목적은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제공하는 것으로 수렴될 수 있다.

    그러므로 복식 규범들에 대한 맞춤복의 깐깐하고 비타협적인 정신은 기성복을 입는 방식에도 긍정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며, 무엇인가를 자신의 몸과 마음에 맞게 창조한다는 아이디어가 개인 스타일링의 차별화에 기여할 부분은 너무나 풍부하다. 여유 있게 차 한 잔을 앞에 두고서 수트에서 셔츠, 코트, 구두, 타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법으로 맞춤에 대해 작은 관심을 가져보시라.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우린 패션모델이 아니다. 마트에서 부담 없이 시식하듯 나름의 방식으로 맞춤복을 소화할 수 있는 11가지 유용한 팁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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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애 처음으로 재단사와 마주치는 건 쑥스러운 일이다. 솔직히 내 신체적인 비밀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스타일을 무지막지하게 개조하려는 점령군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복장보다 더 나은 옷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의사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적합한 옷을 제작해주는 테일러를 만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커다란 축복이니, 가능한 자신의 몸과 취향에 대해 많이 질문하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2. 테일러와 자신의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개선시키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키가 커 보이고 싶은지, 슬림해 보이길 원하는지, 섹시해지길 바라는지, 아니면 젊어 보이는 느낌이 좋은지 그런 최종적인 목표를 정해두고서 옷을 통해 그 방향에 접근해 나가는 것이다. 3. 신체적인 특성이 독특하지 않은 대부분의 남성들은 기성복으로도 일상생활에 무리는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남자들이 굳이 수제화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어깨나 발의 모양이나 사이즈가 특이한 사람이 여러 기성복이나 기성화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맞춤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4. 맞춤에 관해서라면 무조건 브랜드를 신봉하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다. 제대로 만든 맞춤 수트의 가격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수트의 어이없는 가격보다 저렴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렇게 맞춤에 관해 관심을 증폭시키다 보면 옷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 생기기 시작한다. 브랜드 네임이나 트렌드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힘 같은 것이다. 5. 언제나 수트는 수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다. 그래서 좋은 맞춤복은 만든 지 몇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멋지다. 특히 수작업으로 꼼꼼하게 만든 수트는 구조에 유연성이 있어 수명이 더 길고,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해준다. 기성복은 가능한 수선하지 않고 입는 것이 최선이지만, 맞춤의 장점은 상의의 버튼이나 벤트(Vent; 저고리의 양쪽 옆이나 뒷자락 가운데에 터놓은 곳), 바지 주름의 수를 선택하고 취향을 반영하면서 점점 자신만의 스타일 원칙을 주체적으로 정립해 나갈 수 있게 해준다는 미덕. 주의할 점은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6. 맞춤복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실력의 차이도 있고 가격도 다르다. 하지만 누가 잘 만드는지 하는 소문보다 자신의 경험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착용감과 느낌을 주는 집을 찾아야 한다. 7. 절대적인 지침은 아니지만 잘 만든 수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바느질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좋은 맞춤복이라면 손바느질이 기본이고 그런 손바느질은 바늘땀의 길이가 완벽하게 똑같지 않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8. 맞춤 수트나 재킷을 처음부터 시도하기 부담스럽다면 그보단 조금 가벼운 맞춤 셔츠를 해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그저 셔츠 하나라고 사소하게 생각하지 말고, 목둘레, 가슴둘레, 손목둘레 등 자신의 실제 사이즈를 파악하면서 평면적인 소재가 입체적인 몸을 어떻게 둘러싸는지를 충분히 느껴본다. 다만 그 셔츠에 자신의 이니셜을 남겨두고 싶다면 위치는 꼭 왼쪽 갈비뼈 부근으로 한정 할 것. 피해야 할 위치는 소매나 목 둘레이다. 9. 타이를 맞춘다는 사실은 패션을 좀 아는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뉴스다. 타이 품질의 핵심이 컬러가 아니라 매듭의 형상이듯, 제대로 된 타이는 길이가 충분해서 매었을 때 볼륨감이 풍성해진다. 맞춤 타이는 그런 볼륨감을 유지하도록 사람의 신체에 따라 길이를 계산한다. 10. 발등이 특히 높아서 기성 구두를 신었을 때 끈을 매는 부분이 지나치게 벌어진다면 맞춤 구두를 시도 해봐도 좋겠다. 기성화보다는 당연히 조금 비싸겠지만 좋은 맞춤구두는 손질만 잘 하면 20년 이상 신을 수 있으니 그다지 나쁜 투자는 아니다. 11. 그 밖에 맞춤이라는 특성으로 자신만의 물건들을 만드는 방법은 개인 상상력의 문제다. 포켓스퀘어에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를 넣는다든지, 수트의 안감을 자신이 좋아하는 컬러로 해둔다든지, 아니면 블레이저의 버튼을 특별하게 선택한다든지. 너무 과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만의 취향이 담긴 복장, 맞춤복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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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부터 2011년까지 7년간 제일모직 ‘란스미어’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현재 패션전략컨설팅회사 ‘더 알란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 GS타워몰에 액세서리 편집숍 ‘알란스(ALAN’S)’를 오픈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1호(2014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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