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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구찌 | 무명의 디렉터가 재건한 100년 명품, 젊은 럭셔리 이끈 ‘구찌’의 혁신 인사이트
입력 : 2022.04.29 17: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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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트렌드 좀 아는 이들은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구찌(GUCCI)’를 먹고 마시고 감상하고 소비한다. 도대체 구찌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SCENE#1 1990년대 마돈나가 입은 아디다스 드레스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이 MZ세대의 눈과 귀를 쫑긋 서게 만들었다. 구찌의 슈트와 드레스에 아디다스의 삼선 로고를 더해 완성한 이 컬렉션은 일명 ‘구찌다스’ ‘구찌디다스’라 불리며 SNS에 파고를 높였다. 구찌가 지난 2월 2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개한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화두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의 협업이었다. 아디다스 로고 아래 구찌 로고가 새겨졌고, 아디다스의 트레이닝복을 연상케 하는 슈트가 런웨이에 등장했다. 아디다스는 명품 런웨이를 처음 경험했고, MZ세대는 온라인에서 환호했다.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
서울 이태원의 구찌 가옥
디자이너와 CEO가 연출한 구찌의 부활 “명품 브랜드가 만든 제품과 상징, 세계관이 온라인상에서 더 많은 세계관을 낳는 세상이 됐어요. 레스토랑을 통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전달하고 전시회를 통해 상징성을 알리는 건 분명 새로운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구찌가 그걸 모를 리가 있을까요. 구찌를 들고 다니는 MZ세대가 늘어난 것만 봐도 효과를 가늠할 수 있어요.”
아디다스와 협업한 익스퀴짓 구찌(Exquisite Gucci)
대중적인 브랜드와의 협업도 마다하지 않는 명품 브랜드의 변신은 ‘구찌’의 변신이 기폭제였다. 한때 커다란 로고와 촌스럽고 고루한 이미지로 나락에 빠졌던 구찌는 2015년 무명 디자이너였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한 이후 무섭게 반등한다. 당시 명품 업계의 최고 이슈는 구찌의 부활이었다. 매출 감소로 위기를 겪었던 구찌는 밀레니얼세대를 성공적으로 공략하며 2017년 루이비통에 이어 매출 기준 세계 2위의 명품 브랜드가 됐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파격적인 디자인과 바이럴 마케팅, 스트리트패션과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한물 간 브랜드를 10대가 선망하는 젊은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영 혁신도 브랜드의 변신을 든든히 뒷받침했다.
구찌 러브 퍼레이드 컬렉션
밀레니얼세대를 위한 여행 애플리케이션 ‘구찌플레이스’도 바로 이 위원회에서 출발했다. 결과는 실적으로 증명됐다. 지난해 구찌는 매출은 13조21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1%나 늘었다. 팬데믹 상황에 기록적인 성장세다. 구찌와 함께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의 명품 브랜드가 속한 케어링 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24조1000억원이나 됐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0%나 늘어난 6조810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 시장에서의 반응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구찌는 꽃, 동물 등 화려한 문양과 금속, 가죽, 천 등 다양한 소재를 섞어 배치(Mix Match)한 가방, 의류가 모두 히트하며 다시금 백화점이 모셔가는 브랜드가 됐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디오니소스, 홀스빗, 인터로킹 G 홀스빗, 뱀부
1921년 설립돼 100주년이 된 구찌에 대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소감이다. 앞서 밝혔듯 구찌의 변신에는 그의 등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1월에 부임한 그는 현재 모든 컬렉션과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담당하고 있다. 1972년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패션스쿨인 아카데미 오브 코스튬&패션을 졸업했다. 펜디의 시니어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2002년 톰 포드에게 발탁되며 런던의 구찌 사무실로 출근하게 된다. 구찌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12년간 재직한 그는 그동안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2006년엔 가죽 제품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됐고, 2011년 5월엔 당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리다 지아니니의 수석 디자이너 역할을 수행했다. 2014년 9월엔 구찌가 인수한 이탈리안 도자기 브랜드 리차드 지노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기도 한다.
사실 그의 성공신화는 최근 패션계에선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이다. 그동안 구찌 같은 글로벌 브랜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임명할 때마다 늘 다른 브랜드의 유명 디렉터를 모셔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자체 승진이란 타이틀을 달 만한 사건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가 임명되며 신데렐라 스토리가 현실이 됐다.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 구찌 컬렉터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2020년 5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매년 5번씩 선보이던 패션쇼를 연 2회로 줄인다고 밝히며 컬렉션 운영의 전면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그해 7월에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디지털 채널에서 ‘에필로그 컬렉션’을 공개하며 여전히 기존의 전통적인 패션 규칙과 시각을 뒤집는 창의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올 3월에는 ‘익스퀴짓 구찌(Exquisite Gucci)’ 컬렉션을 공개하며 다양한 클래식을 재해석하고 아디다스와의 협업 제품도 선보였다. 그는 여전히 사람들의 예상을 깬 디자인과 협업을 통해 구찌를 가장 진보한 패션으로 이끌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기록적인 호황, 실적 베일에 가려진 구찌코리아
구찌는 1990년대 초 성주 인터내셔널에 의해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1998년 구찌코리아(Gucci Korea)가 설립되며 성주 인터내셔널로부터 구찌 사업부문 전체를 인수했다. 구찌코리아는 올 4월 기준 백화점 49개, 면세점 10개, 아웃렛 3개 등 총 64개의 매장과 공식 온라인 사이트(gucci.com/kr/ko)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 명품 지사들은 지난해 역대최고급 실적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루이비통이 1조4600억원, 샤넬이 1조2238억원, 크리스찬 디올이 6139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각각 1, 2,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명 ‘에루샤’ 중 하나인 에르메스는 5275억원으로 4위에 올랐다. 명품 브랜드의 국내 실적은 그동안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다. 국내 법인을 유한회사로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11월 신(新)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며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자산과 매출이 500억원 이상이면 실적을 공시하도록 했다. 구찌코리아는 유한책임회사로 분류돼 공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유한책임회사는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하고 출자자들이 유한책임을 지되, 이사나 감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 설립·운영과 구성 등의 자율성이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신생 창업회사에 적합한 기업 형태다. 개정된 외감법에서도 유한책임회사는 감사보고서 공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0호 (2022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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