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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ESG 성적표 분석해보니 한국 최고등급?
입력 : 2021.02.26 1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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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경영·사회적책임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발전한 ESG 역사는 20년이 훌쩍 넘었으나 지난 1년간 ESG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과거 기업경영 분야에 한정되었던 ESG는 이제 세계 각 국가들의 정책이슈나 연기금 투자요소에 있어서도 우선순위로 꼽히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ety), 지배구조(Governance)를 중시하는 개념으로 세계화 과정에서의 문제(환경파괴·부정부패·기업전횡)를 해결해 지속가능한 경영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ESG가 지난 1년간 급격하게 부상한 요인은 여러 가지가 꼽힌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기간 동안 높아진 환경인식과 트럼프 전 미대통령의 반(反)환경정책에 맞선 유럽의 주도, 바이든 행정부 출범, 블랙록 등 글로벌 대형 금융회사들의 ESG 정책 드라이브 등이다. ESG 개념이 글로벌 이슈로 등장하며 개별 기업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까지 평가하는 잣대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국가별 ESG 등급을 발표하며 관련 시장에 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한국은 최근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발표한 ESG 국가별 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았다. 지난 1월 19일 무디스가 세계 144개국의 ESG 개별 요소와 국가신용등급에 대한 종합적인 영향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최고등급인 1등급을 부여받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무디스가 각국의 국가신용등급 평가 보고서에 ESG에 대한 평가를 수록했지만, 보고서를 별도로 발표한 건 처음”이라며 “ESG 강조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평가 기준은 총 5개 등급으로 나뉘며, 1등급은 ‘긍정적’, 2등급은 ‘중립적’, 3등급은 ‘다소 부정적’, 4등급은 ‘부정적’, 5등급은 ‘매우 부정적’으로 구분된다. 먼저 한국은 ‘환경’ 분야에서는 2등급을 받았다. 세부 평가항목인 탄소 전환, 기후변화, 수자원 관리, 폐기물과 공해, 자연 자본에서 모두 2등급을 받았다. 기재부는 “이번 평가에서 환경 분야 종합 1등급을 받은 국가는 없다”고 설명했다.
‘사회’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2등급을 받았다. 교육, 보건 및 안전, 기본 서비스 접근성은 1등급이었으나, 빠른 고령화로 인해 인구 분야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이런 성적표에 고무된 반응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8일 이러한 성과에 대해 언급하며 “국제사회의 긍정적 평가는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징표다”라며 “위기 극복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면서도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개혁의 속도를 늦추지 않은 결과다. 우리 국민들이 이룬, 결코 폄하될 수 없는 국가적 성취이고 국민적 자부심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유력한 기관이긴 하지만 개별 신평사의 평가등급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ESG 평가는 신흥국 중심으로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SG 요소 중 E(환경)와 S(사회)의 경우 대규모 친환경투자와 복지지출이 수반되기에 일반적으로 국가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특히 부정적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G(지배구조) 측면에서 재정적, 제도적 대응력이 부족한 신흥국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유 연구원은 “선진국들, 특히 유럽 국가들에 비해 ESG 관련 투자가 늦었지만, 그들 이상의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큰 성과”라며 “국가신용등급 안정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권 발행을 통한 조달에서도 ESG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ESG 채권 발행규모는 4890억달러로 역대 최대수치를 기록했다. 2019년에는 프랑스 연기금·자산운용사들이 미 정부의 기후변화 및 사형제도 등을 이유로 세계 채권시장 최대인 미 국채 투자 거부를 선언하는 사례도 발생한 바 있다.
금융사들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대출이나 무역금융, 파생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외부기업에 대해서도 ESG 기준을 통한 점검이 일반화되고 있다. 피치(Fitch)에 따르면 글로벌 은행 182개 중 67%가 대출 시 ESG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기업이 ESG 비판을 받을 경우에도 자사 리스크 및 평판 관리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점검 스펙트럼을 확대하고 거래상대방이 ESG 정책을 수용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커진 것이다.
신용등급에 ESG를 반영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신평사들은 2015년 이후 기업·은행·국가 신용평가에 ESG 요인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ESG가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은 작은 편이나 점차 커지는 추세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평사 ESG 점수가 높을수록 평판에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EU는 올 3월부터 금융기관 대상으로 SFDR(지속가능금융공시제도), EBA(유럽은행감독청)는 6월 은행 신용제공 시 ESG 적용을 실시한다. 유럽의회는 기업 공급망 전체의 ESG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ESG 공시 기준과 형식을 구체화하고 있는 EU는 2023년을 목표로 재무와 비재무 정보공개 통합 플랫폼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 EU는 지난 2018년부터 근로자 수 500인 이상, 자산총액 2000만유로(약 270억원) 또는 순매출 4000만유로(약 540억원) 이상 역내 기업들에 대해 ‘비재무정보 공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 역시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TF’인 TCFD의 요구사항을 2025년 의무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한 대부분의 조치가 2023년까지는 마무리될 예정이다. 프랑스 역시 ‘에너지 전환법’을 통해 상장기업, 은행, 투자기관 모두에 기후변화 관련 재무 리스크를 연차보고서로 공시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ESG 관련 정보공개를 의무화하기 위한 공시지침변화에 기업들은 긴장하고 있다. 국내 거래소 역시 세계적인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EGS 공시 의무화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최근 상장사가 ESG 관련 정보를 공개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를 제정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아직 비재무적 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이 드문 만큼, 거래소가 직접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는 조직·환경·사회 등 3개 영역에 걸쳐 12개 항목 21개 지표로 구성돼 있다. 환경 영역의 경우 직·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및 에너지 사용량, 물 사용량, 폐기물 배출량을 비롯해 환경 관련 법규 위반 및 사고 건수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ESG지표를 투자집행에 활용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현재 기업지배구조(G) 보고서 공시 의무화를 기존 일정보다 늦춘 2026년도를, 지속가능경영(E·S) 보고서 공시 의무화는 2030년도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이용우 의원은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방안은 다양한 ESG 관계자의 공시 요구와 국제적인 트렌드, ESG 투자 확대 속도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ESG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공시제도의 의무화, ESG 분류 및 인증체계 등 인프라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ESG 공시 의무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데다 글로벌 투자기관의 ESG 정보공개 요구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들도 안정적인 경영과 지속적인 투자유치를 위해 ESG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을 더욱 커지고 있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안남기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ESG 경영은 환경적·사회적인 인식변화를 감안할 때 일시 유행이 아닌 기업의 ‘필수자질’로 인식되어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실질적인 ESG 경영을 달성하고 선도기업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려면 CEO만이 아닌 임직원 모두가 ESG에 대한 마인드를 갖고 기업활동 전반에 임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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