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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매니지먼트 ① 삼성] ‘초격차’ 성공 비결은 동적전환능력과 혁신속도… ‘미래 보는 눈과 사람 보는 눈’ 갖추고, 인재제일주의로 글로벌 초일류 도약
입력 : 2021.02.25 11: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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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초우량기업 반열에 오른 삼성전자는 한국의 대표기업이다. 2019년 인터브랜드가 평가한 삼성전자의 브랜드가치는 미국 기업을 제외하고 세계 1위다. 미국 기업을 포함하면 세계 6위에 올랐다. 2018년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2번째로 이익을 많이 내는 회사가 됐다.
국제 신용평가 기관인 피치(Fitch)에 따르면, 국영 기업인 아람코(Aramco)를 제외하고 1위가 애플(818억달러)이고, 2위가 760억달러인 삼성전자다. 3위는 유럽 최대 석유 회사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 4위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그 뒤를 잇는다. 세계가 주목하는 삼성전자, K경영의 비밀은 무엇일까?
1990년대 후반 유영복 삼성전자 과장은 인도에 파견됐다. 수도 뉴델리 인근 위성도시인 노이다(Noida) 산업단지에 위치한 삼성전자 공장은 당시 지저분하고, 느리고, 일하기보다는 일을 시키는 카스트 문화의 작업장이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그는 직원들과 함께 혁신의 길을 걷는다. 유영복 과장은 삼성전자 인도 공장의 3가지를 바꾸는 캠페인을 제안했다. 역사를 바꾸는 3가지는 시간, 공간, 인간이다. 첫째, 시간이다. 가장 느린 공장을 가장 빠른 공장으로 바꿔보자고 했다. 둘째, 공간이다. 가장 지저분한 공장을 가장 깨끗한 공장으로 바꾸자고 했다. 셋째, 사람이다.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공장에서 직접 일하는 공장으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른바 CSA(Clean, Speed, Action) 캠페인이다. 그 결과, 인도 공장은 지저분한 인도에서 가장 깨끗한 공장으로, 느린 인도에서 가장 빠른 공장으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일하는 공장이 되었다.
인도 노이다공장은 생산성이 전 세계 삼성 사업장 중 1위를 차지했고, 이후 세계 최초로 1인당 컬러TV를 100대씩 생산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현지 시장에서 LCD TV 점유율 50%, 모니터 점유율 1위 실적을 달성한 전진기지로 주목 받았다. 이 인도 최고의 기업은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들의 필수 견학 코스가 됐다.
모든 사업에는 자금, 기술, 시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다. 성공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성공의 충분조건은 기회를 포착하는 타이밍이다. 기업은 새로운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혁신 없이는 존속하기 어렵다. 삼성비서실 출신의 이금룡 도전과 나눔 이사장은 고 이건희 회장의 미래를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 눈이 오늘의 삼성을 만드는 힘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기업가는 한 세대 이상의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김인 전 SDS 사장은 이 회장을 20, 30년 후 일어날 일을 미리 당겨서 보는 눈을 가진 분으로 회상한다.
이 눈은 리더의 미래방향관리(Direction Management)와 동적전환능력(Dynamic Capability)의 원천이 된다. 삼성은 70여 년에 걸쳐 적절한 타이밍으로 피보팅(Pivoting: 사업전환)에 성공해왔다. 미래를 보는 눈이 오늘날 세계 1위 한국 반도체를 만들었다. 한국경영학회 교수들이 뽑은 ‘한국 경제에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해’가 1983년이다.
삼성전자는 1983년 3월 도쿄에서 반도체산업 진출을 전격 선언했다. 당시 일본, 미국 등 반도체산업 선발국들은 삼성의 결정을 비웃었다.
심지어 한국 내에서도 자본,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삼성의 결정을 무모하다고 비판했다. 지금은 일본 대표 전자업체 10개를 합쳐도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0%도 안 된다.
삼성은 혁신에 도전하는 능력이 뛰어난 기업이다. 미래기회를 읽고 피보팅 변혁을 이끌어내는 문화(Spirit Seeing Opportunity)가 있다. 고 이건희 회장은 한 세대의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읽고자 했던 기업가였다. 삼성은 미래전환 목표를 만들고 비즈니스 모델의 대전환을 시도하는 피보팅 능력이 강하다. 이것이 해외 기업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삼성의 첫 번째 교훈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기업의 사업전환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피보팅의 실천에는 많은 저항이 따른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변화를 위해 도전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기업가의 거대한 전환의 목표(MTP: Massive Transformative Purpose)와 전환적 리더십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기업가의 꿈도 커져야 한다.
우선, 피보팅을 잘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가여, CDO(Chief Dream Officer)가 돼라’. 성공한 오늘을 파괴하고 내일로 변신하는 아픔을 견뎌내는 힘은 혁신의 꿈과 비전이다. 기술만 강조해서는 회사가 변신하기 어렵다. 꿈에 도전하는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CDO는 꿈 만들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CEO, 즉 일을 집행하는 사람, 최고집행책임자가 아니라 꿈을 꾸는 기업가, CDO가 되어야 한다. 기업가는 잔기술보다 세상을 바꿀 만한 큰 꿈인 거대전환목표(MTP)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작은 기술혁신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혁신하는 조직을 만들어갈 수 있다.
▶모든 것을 바꾼 ‘폐기경영’으로 조직혁신 꿈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혁신은 조직이 움직여야 가능하다. 대기업이 겪는 가장 심각한 병은 조직의 관료화다. 조직이 비대해질수록 혁신에 저항하는 관료주의도 커진다. 최고의 혁신은 바꾸는 것이다. 잘 바꾸기 위해서는 폐기와 삭제를 잘해야 한다. 혁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폐기(Abandonment)의 용기가 필요하다. 먼저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큐레이션하라. 그리고 업의 본질 외에는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피터 드러커의 체계적 폐기(Systematic Abandonment) 이론이다. 양을 버리니 질로 혁신되었다. 오늘을 버렸더니 내일이 만들어졌다.
“If you want something new, you have to stop doing something old.”(새로운 것을 하고 싶으면 옛것을 버려야 한다- 피터 드러커)
1983년 7월 열린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사업장 기공식에서 고 이병철 회장(오른쪽에서 네 번째)과 참석자들이 첫삽을 뜨고 있다.
그러나 신경영선언에도 현장에서 품질개선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2년 뒤인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삼성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애니콜 등 휴대폰을 비롯해 무선전화기, 팩시밀리 등 불량제품 15만 대를 전량 폐기 처분하는 ‘불량제품 화형식’을 개최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150억원에 달하는 제품을 폐기하는 ‘화형식’을 통해 질(質) 경영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사람과 조직은 잘 바뀌지 않는다. 다만 위기의식을 가질 때만 바뀐다.
실적이 나쁜 부서의 장을 많이 맡았던 권오현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최고의 혁신전략은 그 이전에 해오던 많은 프로젝트들을 체계적으로 폐기하는 것이었다. 문제가 많았던 부서의 특징은 모든 것을 다 하려 하는 것이다. 그는 부서를 맡으면 100개의 프로젝트 중 90% 이상을 버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조직의 생산성이 2배씩 올라갔다. 이것이 혁신의 성공으로 이끌었다. 모든 것을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잘 해낼 수 없다. 안 하는 사업이 없다는 것은 잘하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기업은 시장을 나눠먹기밖에 못한다. 혁신은 고객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더 빨리,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
2009년 삼성전자는 당시 가장 잘나가는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시설을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앞으로 예상되는 중국 제조환경의 악화를 미리 간파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제조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중국에서 이동했을까? 중국이 아닌 베트남을 미리 보는 혜안이 있었다. 이것이 삼성전자 스마트폰 제조사업의 안정적 환경을 만들었다. 2012년부터 삼성전자는 베트남 공장에서 1억 대 이상의 휴대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에 비해 중국에서 제조활동의 이전이 늦었던 많은 기업들과 비교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중국의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보다 앞서가는 스피드경영 삼성의 둘째 성공 비결은 기업가가 사람을 보는 눈에 있다. 사람을 보는 눈은 혁신의 스피드와 타이밍을 만들었다. 삼성전자는 일본 반도체가 10년 걸어온 길을 5년 만에 해내는 저력을 보였다. 미래 비전의 실행주체는 사람이다. 혁신의 실천은 속도전이어야 한다. 보잉 747기가 이륙할 때는 불과 몇 분 안에 1만m까지 올라가야 한다. 만약 이 시간에 올라가지 못하면 추락하거나 공중폭발하고 만다.
미래를 향한 속도전에 실패하면 조직이 살아남기 어렵다. 이런 속도전을 위해서는 튼튼한 엔진이라 할 수 있는 조직역량(Organizational Capability)이 있어야 한다. 강한 조직역량이 미래를 보는 방향을 만나면 실행 속도가 빨라진다. 조직역량은 혁신을 빨리 실행해내는 힘의 크기가 된다. 혁신은 돈과 장비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다. 삼성의 인재경영, 인재교육의 힘이다. 사람의 아이디어와 기술개발, 생산 속도가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성공 비결은 일본 전자업체들보다 한발 빠른 개발속도이고, 한발 빠른 생산장비 투자였다. 휴대폰 스마트폰 전환에도 스피드경영이 그 힘이 되었다.
‘첨단 반도체를 일본보다 먼저 개발하라’는 고 이 회장의 지시와 함께 그 후 세계를 호령한 파나소닉, 도시바, 샤프 등 일본의 반도체업체들은 삼성과의 경쟁에서 계속 밀리며, 반도체사업을 철수하거나 대만 반도체업체에 매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삼성에 반도체 기술을 전수한 샤프는 2016년 타이완의 홍하이에 매각됐다.
경쟁자보다 선제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면 추격할 수도 없고, 선도기업이 되기도 어렵다. 빨리빨리(Proactiveness)는 기업가정신의 제1법칙이다. 혁신은 빨리하는 것이다. 빨리하면 혁신이 되고 늦게 하면 비용이 된다.
1983년 반도체 사업 시작 당시, 삼성전자는 미국, 일본에 비해 10년 이상 격차가 났던 반도체 기술을 4년 정도로 단축시키는 획기적인 사건을 실현했다. 삼성전자의 연구개발진은 주야로 개발에 몰두한 결과, 1992년 세계최초로 64메가비트 D램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64M D램의 세계최초 개발 이후 1993년부터 메모리반도체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속도경영은 혁신적인 차세대반도체의 개발속도에서 엿볼 수 있다. 1996년에 세계최초로 256메가 D램, 2001년 512메가 D램, 2004년 2기가 D램을 연속해 개발·출시함으로써 경쟁회사들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반도체는 특성상 진화와 혁신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 이 때문에 기업 간 경쟁을 투자 속도 싸움이라고 한다.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데 통상 2년 이상 소요된다. 삼성은 기흥 지역을 반도체공장 부지로 최종 확정하고 설계와 건설을 병행하여 착공 6개월 만에 공장을 완공했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메카 ‘기흥밸리’를 탄생시킨 것이다. 반도체장비 투자도 일본 경쟁업체보다 늘 6개월 정도 빨랐다. 이것이 일본을 앞선 반도체 1등 회사로 만들었다. 먼저 생산한 반도체는 고가로 시장에 팔리고 다른 경쟁자들이 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반도체 가격은 폭락하여, 일본 반도체가 생존하기 어렵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다.
2008년 당시 삼성은 애플이나 노키아 휴대폰에 비해 기술과 연구개발 능력에서 열세였다. 그러나 고 이 회장은 미래 스마트폰이 대세이며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그는 모바일부문 모든 임원들을 한자리에 소집해 최단 기간에 제품 디자인과 성능, 품질, 가격 측면에서 최소한 애플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스마트폰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그렇지 않으면 삼성은 침몰할 수도 있다고 예감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1988년 자체개발 휴대폰(SH-100)을 출시한 이래 기술개발과 제품혁신을 거듭해왔으나 스마트폰 개발은 넘기 힘든 큰 산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스마트폰 개발인력, 개발경험, 엔지니어링 능력, 협력회사의 역량 등 회사 내외의 여건을 감안하면 매우 어려운 도전적인 과제였다.
삼성전자 직원이 반도체라인에서 반도체 생산 장비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첫째, 권한위양과 책임경영은 스피드를 만든다. 권한위양이 일어나지 않으면 전문적인 판단이 힘들고 조직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독불장군식 상명하달 경영으로는 직원들의 열정을 불러내기 힘들다. 의심하면서 사람에 일을 맡기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삼성은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믿고 맡기는’ 경영철학을 가졌다. 이것이 삼성의 책임경영제다.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 의심이 가거든 사람은 고용하지 말고, 고용한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 ‘사람을 채용할 때는 신중을 기하라. 그리고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
둘째, 삼성의 속도경영은 기업가의 과감한 의사결정에서 발휘된다. 물론 기업가의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고 리스크가 큰 신규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의사결정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대체적으로 서구와 일본의 기업들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을 통해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물론 한국의 기업들도 프로젝트에 관한 사업타당성 분석을 시행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의 혜안과 통찰력에 많이 의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삼성은 빨랐다. 속도경영에 능하다.
▶인재제일주의 경영 ‘자기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으고자 노력을 했던 사나이 여기 잠들다.”(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용인에 있는 그의 묘비)
기업은 사람의 역량이 모이는 곳이다. 사람의 능력개발은 무한하다. 이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이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기업이다.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기업의 목적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비범한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창업 초기부터 업스킬링(Upskilling)과 리스킬링(Reskilling)의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삼성은 인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이다. 호암 이병철은 창업 초기부터 사람이 사업을 좌우한다는 믿음을 가졌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호암은 ‘인재제일’의 경영이념을 확대 실천해 나갔다. 기업(Company)의 어원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어에서는 콤파니아(Compania)라고 부른다.
콤파니아는 ‘Com(함께)+Pan(빵)+Ia(공동체의 접미어)’의 복합어로 함께 빵을 만들고 나누는 공동체이다. 이처럼 기업이란 ‘함께 사람이 모여서 업을 추구하는 곳’이다. 기업 구성원은 일을 통해서 자신들의 업(業)을 추구한다. 전후 수십 년간 한국의 기업들이 지닌 자원은 너무나 빈약했다. 기업 내부적로 자본, 기술, 생산설비 등 생산요소의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제품개발 경험 등 축적된 자산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오직 기댈 것은 사람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기업들은 근면하고 성실한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직원들에 투자하여 그들을 육성하는 것이 유일한 기업경영 전략이자 방안이었다. 삼성은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있나? 삼성종합기술원 로비 벽면에 무한탐구(無限探究)라는 휘호가 걸려 있다.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고 그 기술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삼성의 인재철학이다. 삼성에는 인재개발부원장만 직책이 있다. 인력개발원장은 회장이고, 회장이 직접 인재육성을 담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의 경영철학의 핵심은 사업보국과 인재제일이었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EUV 건설 현장.
“인재 한 명이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고 말하면서 삼성 주요 계열사 CEO들에게 직접 국내외로 뛰어다니면서 인재를 발굴하라고 독려할 정도였다. 심지어 사장단 업적평가의 30% 이상을 인재확보에 배정하기도 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인재중시경영의 핵심은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방식, 뛰어난 창의성, 말보다 행동우선,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은 도전정신을 지닌 인재로 키우는 것이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초일류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이와 같은 삼성의 인재제일 철학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된다.
인재제일 철학은 혁신의 기반이다. 기술도, 미래도 모두 인재에서 비롯된다. 삼성 초격차의 비결은 인사의 파괴적 혁신이다. 일류가 살아남고 일류가 대우받는 조직문화, 단순하고도 분명한 삼성 초일류 인재경영의 비밀이다.
파격적 대우를 받는 삼성의 전문경영인은 별 중의 별이다. “삼성전자에서 CEO를 하면 3대가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삼성의 ‘핵심인재 경영론’은 IT산업 후발 주자로서 기술에 약했던 삼성이 최고의 기술을 가진 핵심인재를 뽑아오는 방식으로 사람에 대한 혁신을 먼저 추진한데서 유래했다. 또한 학벌주의, 파벌주의, 정실주의를 혁파해 철저한 성과주의로 핵심인재를 양성했다. 삼성은 핵심 인재를 S급(Super), A급(Ace), H급(High Potential)으로 구별, 같은 직급일지라도 연봉이 4배까지 차이가 나도록 인사 구조를 개편했다. 인재 대우는 입도, 마음만도 아닌 파격적 보상, 초일류 대우로 증명된다. S급 인재는 CEO보다 더 높은 연봉과 대우를 받으면서 핵심기술개발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와 자격을 부여받는다. 보다 개방화된 조직문화에 걸맞게 국적, 성별, 인종 관계없이 다양한 색깔의 인재들이 모여 열정과 몰입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치를 창출한다.
기업(企業)의 한자어는 ‘人(사람 인)+止(멈출 지)+業(일 업)’의 복합어이다. ‘사람이 떠나면 일은 멈추고 만다’. 삼성은 확보한 인재도 이탈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도록 관심을 쏟고 있다. 그래서 핵심인재 보유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핵심인재 이탈률은 2%에 불과하다.
기업가는 미래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고 이건희 회장은 미래를 보고 이것을 기업비전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끊임없이 꿈을 만들고 이를 실현시킨 기업가다. 혁신은 기업의 미래비전과 현장의 실천이 만나 실현된다. 기업가-경영자-현장의 시너지경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가는 미래와 싸움에 초점을 두고, 경영자는 조직구성원들을 이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현장은 이 도전을 사업기회로 만들어 갈 때 기업은 혁신하고 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
고 이건희 회장의 화두는 업(業)의 본질이었다. 업의 본질에서 마케팅 경쟁력이 나온다. 기업이란 사람이 모여서 업을 수행하는 곳이다. 업이란 단순히 일 그 자체가 아니라 일의 중요한 의미나 가치(Mission)를 말한다. 업의 본질은 고객이 느끼는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 자체이고 기업이 사회에 존재하는 미션이 된다. 기업의 미션은 고객과의 약속이다. 미션은 기업이 창조하는 시장가치다. 기업의 마케팅은 가치선언에서 시작해야 한다. 고객입장에서 본, 업의 본질이란 ‘왜 이 제품을 사야 하는가(Value Creation)?’ 하는 것이고, 기업입장에서 업의 본질은 ‘고객이 사야 할 이유를 제안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가전제품에서 컴퓨터회사로 전환할 때, 삼성전자의 업의 본질은 건어물장수에서 생선장수로 바뀐다. 컴퓨터는 싱싱한 생물일 때 가치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기능의 진부화가 빠르고 재고는 곧 비용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선은 부패하는 것처럼 컴퓨터 재고는 곧 가치급락과 기업비용이 된다. 이 업의 본질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도약을 이끌었다. 이러한 업의 본질에 대한 정의가 오늘날 세계적인 삼성전자의 마케팅 경쟁력을 만들었다.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게 되면 사명을 ‘Hit Reflesh(새로 고침을 눌러라)’해야 한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업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미션을 한번씩 0점으로 놓고 업의 본질 변화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전환기일수록 고객과 사회의 요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업의 본질을 ‘새로 고침’하여 새로운 재전성기를 누려가고 있다.
또한 업은 기업의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도와준다. 업의 정의와 사명이 명확할수록 자원은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반도체는 스피드, 종합상사는 정보, 유통 호텔은 입지이다. 업의 본질에 따라, 이 업을 수행하는 직원들의 행동기준도 명확해지고 경영의 자원인 돈과 자원도 업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이 글을 위해 인터뷰에 임해주신 이금룡 도전과 나눔 이사장님,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님, 신태균 전 삼성 인재개발원 부원장님과 평소 많은 대화를 통해 소개해주신 권오현 전 삼성전자 부회장님, 그리고 고 이건희 회장에 대한 많은 기록으로 글을 써준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 함께 원고 내용을 토의하고 자료를 보완해 준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에 감사드린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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