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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시대 격변하는 미국경제 | 1조달러 인프라투자 ‘트럼플레이션’ 현실화되나
입력 : 2016.12.02 18: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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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인의 국내 경제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스트럭처(사회간접자본) 투자, 감세, 규제 완화다. 여기에 대외 경제정책으로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무역협정 재협상과 이민 규제가 기본 얼개다.
트럼프의 경제공약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를 적극 부양하려는 시도로 해석되면서 ‘트럼플레이션’(Trumpflation·트럼프발 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재정 확대가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재촉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기대감 국채금리 급등
인플레이션 기대감 상승은 국채금리 상승(채권값 하락)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패닉에 빠진 채권 투자자들은 연일 채권 투매에 나섰고 미 대선 이후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며칠 만에 1조달러가 증발했다. 미 10년만기 국채금리는 11월 14일(현지시간) 장중 2.3%를 찍어 2015년 말 이후 장중 최고치 기록했다. 미 대선일에 1.87%였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1주일도 안된 기간에 0.4%p 넘게 치솟은 것이다. 이 같은 국채금리 급등세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채권시장에선 연일 현기증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35년간 이어져 왔던 금리하락 사이클이 끝나가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인플레이션의 초입에 접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까지 디플레이션(저물가)을 우려했던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당선의 시장 파급효과가 상당히 큰 셈이다.
감세를 앞세운 트럼프 정부가 인프라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대량 발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채권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채권 투자자들이 보유 채권을 내다파는 매도 행렬이 순식간에 확산된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금리 상승은 모기지(부동산담보대출) 대출자들의 우려감을 키우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 모기지 금리가 10년물 국채 금리에 연동돼 있기 때문에 장기 국채금리 상승은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가계와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달러 강세는 어떤가. 미국의 금리 상승세는 달러 강세를 유도해 신흥국들의 투자자금 유출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통화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신흥국 투자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급기야 멕시코는 자국 화폐가치의 하락과 자본유출 위험을 저지하기 위해 11월 중순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했다. 중국도 예외일 수 없다. 중국 위안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 위안화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미 달러 강세 지속에 중국 위안화 가치는 약 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의 환율전쟁이 재현되고 있다고까지 표현했다.
일단 트럼프 경제정책이 미국 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커지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학계와 기업, 금융기관 소속 경제학자 57명을 대상으로 경제전망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는 2017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2%, 2018년은 2.3%를 각각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대선 전에 실시한 설문조사와 비교해 소폭 오른 것이다. 월가 금융기관들은 트럼프의 재정정책 역할이 확대되고 경제주체의 심리가 살아날 경우 적잖은 총수요 진작으로 이어지고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 조치가 기업 투자심리를 개선시키는 소위 선순환 시나리오가 작동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바트 반 아크 콘퍼런스보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를 앞세운 트럼프노믹스가 미국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겠지만 단기적 효과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금리 상승은 미 달러화 강세를 촉발해 미국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
물가상승률은 2017년 2.2%, 2018년 2.4%로 예상돼 미 연준이 내세우는 물가 목표치(2.0%)를 넘어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예상대로라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물가상승률 2%대가 유지되는 것이다.
▶보호무역정책 큰 리스크 우려, 불확실성 증가도 경제에 부담
이와 달리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통상보호주의로의 선회가 미국의 자유무역 이득을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리 헤인즈 에버코어 선임정치전략가는 “트럼프 당선인이 주장하는 각종 무역협정의 재협상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무역협정의 재협상을 독단적으로 주문할 수 있다고 해도 협상 대상국의 재협상 거부 등으로 성과보다는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으며 재협상에 성공했다고 해도 미 의회의 비준을 얻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나무를 지칭할 수는 있어도 세세한 줄기를 다룰 수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트럼프 정권인수팀은 월가 규제의 상징이 된 ‘도드-프랭크법’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도드-프랭크법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가 금융기관들의 탐욕을 억누르기 위해 오바마 정부가 2010년 7월 발표한 금융감독개혁안이다. 금융위기 때 나타난 문제점을 해소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금융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파생금융상품의 거래 투명성을 높여 위험 수준을 낮추고 대형은행들의 자본 확충을 요구했다. 도드-프랭크법이 은행산업의 위기 재발 방지에는 기여했는지 몰라도 금융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볼멘소리는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트럼프는 리스크 관리보다는 경제 활성화에 방점을 둘 태세다.
콘퍼런스보드(미국의 비영리 민간 경제조사기관)는 2017년에도 불확실성과 혼란의 덫이 경제 성장을 짓누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기관이 꼽은 불확실성 증대 요소는 브렉시트, 미 선거 후폭풍, 이민과 테러리즘, 중국, 브라질 등이다. 콘퍼런스보드는 또 경제 변동성을 키우는 요소로 미국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간 입장 선회, 에너지 수급의 변화, 글로벌 무역기조 변화, 디지털기술 혁신 등 네 가지를 언급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인한 정책 불확실성 확대는 미국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을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 것처럼 트럼프가 미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황인혁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5호 (2016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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