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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의 뚝심이 만들어낸 SK하이닉스의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
입력 : 2015.03.06 15:5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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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태원 회장은 2011년 7월 9일 SK텔레콤을 통해 하이닉스 인수를 전격 선언했다. 판단은 신중하지만 결단을 내리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SK그룹 특유의 경영 스타일을 보여준 셈이다.
하이닉스 인수에 들어간 자금은 총 3조4267억원. 인수 자금만 해도 막대한 규모였지만, 최 회장은 뒤이어 4조원에 가까운 설비 증설 투자에 나섰다. 하이닉스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선택은 그대로 적중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흑자전환에 성공하더니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인수 2년 만에 SK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우뚝 선 것이다. 실제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16조9000억원에 영업이익은 5조원에 달한다. 에너지·화학과 통신이라는 SK그룹의 양대 축에 반도체라는 새로운 날개를 더한 것이다.
SK하이닉스 16GB DDR4 NVDIMM
특히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에 정부의 ‘빅딜 조치’에 따라 LG반도체를 인수하며 덩치를 불렸지만, 부채가 17조3000억원에 달하는 등 그야말로 골칫덩이에 가까웠다. 결국 하이닉스는 2001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됐고, 막대한 부채를 갚지 못해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현재의 ‘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 정도 어려움을 겪으면 사원들이 회사를 떠날 만도 한데, 하이닉스는 오히려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D램 경쟁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4년간 임금동결을 선택하며 오히려 힘을 키워 나갔다.
하이닉스는 이 기간 동안 임원 수를 30% 감축하고, 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약 2만명이 넘던 임직원 수를 단 1년 만에 1만2000명 정도로 줄이며 감량에 성공했다. 또 남은 임직원들은 순환 무급 휴직제를 실시하며 회사의 임금 부담을 줄여줬으며, 구내식당 반찬 줄이기까지 고정비용 절약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연구원들 역시 D램 경쟁에서 앞서 나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당시 근무했던 한 연구원은 “당시에는 신규 장비를 살 돈이 없어 기존 장비에 다시 기름을 쳐서 사용하곤 했다”며 “경쟁사 대비 30% 정도의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최신의 설비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강력한 자구 노력을 펼친 결과, 하이닉스는 2005년 7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타이밍’이 중요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자율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이닉스에게 큰 의미가 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주력 상품인 D램의 수요가 급감했고, 적자만 1조92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위기감이 높아졌다.
(위)SK하이닉스 이천 300mm 공장, (아래)SK하이닉스 글로벌
이어 지난해에는 매출액 17조1260억원에 영업이익 5조1090억원(영업이익률 30%), 순이익 4조1950억원(순이익률 24%)이라는 사상 최대의 경영 실적을 달성했다.
이에 따라 하이닉스는 경기도 이천 본사에 신규 공장인 M14를 건설 중이다. 이 공장은 축구장 7.5개 규모에 이르는 대규모 공장으로 2조1000억원을 들여 올해 상반기 중 완공될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M14 라인이 완공되면 기존 노후된 공장 라인을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하이닉스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R&D 투자에도 열심이다. 2012년 6월 이탈리아 IT 업체였던 ‘아이디어플래시’를 인수해 유럽 기술센터로 전환했고, 미 컨트롤러 업체인 LAMD(현 SK hynix memory solutions Inc.)를 인수해 낸드 솔루션 역량 강화에도 나섰다. 또 반도체 기술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램버스와 포괄적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해 경영 리스크를 줄였으며, 세계 반도체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CIS(CMOS 이미지센서) 사업을 강화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바이올린메모리(Violin Memory Inc.)의 PCle 카드 사업부문을 인수했으며, 소프텍 벨라루스(Softeq Development FLLC.)의 펌웨어 사업부도 인수해 낸드플래시 솔루션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이 같은 선제 투자 전략이 높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 D램 업계가 이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그리고 마이크론의 ‘3강 체제’로 재편되면서 과점 체제가 구축돼 당분간 안정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벌 열풍 조짐을 보이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6에 D램을 납품하고 있다는 점도 SK하이닉스의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말 차세대 모바일 D램 규격인 LPDDR4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며, 지난해 9월에는 차세대 고성능 모바일 D램인 와이드 IO2 모바일 D램 개발에도 성공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SK그룹에 편입된 후 제때에 대규모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회사 경쟁력이 강화됐기 때문에 연이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게 됐다”며 “강화된 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더욱 높은 실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위)SK하이닉스 이천공장 정문, (아래)SK하이닉스 이천공장 정문
실제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우리의 현 위치는 목전에 고래를 마주한 고래잡이 같이 한 번의 작살 실패로 배가 난파당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라며 임직원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사상 최대의 실적에 안주하는 순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올해 더욱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란 업계의 관측도 바로 이 때문이다. D램 시장에서 과점 체제를 구축했지만, 여전히 치열한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선제 대응을 통해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관련 올해에는 ▲DDR4 시장 선제 대응 ▲초고속 메모리 개발 ▲낸드 플래시 솔루션 역량 강화 ▲차세대 메모리 공정 개발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DDR4 시장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빅데이터, 클라우드 기술의 활성화로 서버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DDR4와 같은 고용량 반도체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DDR3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와 30% 낮은 전략 소비량이 특징인 DDR4를 통해 고성능 D램의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DDR4와 관련된 풀 라인업을 갖추고 인텔의 인증 결과를 공개한 상태다.
또 SK하이닉스는 TSV(Through Silicon Via) 패키지 기반의 차세대 초고속 메모리인 HBM(High Bandwidth Memory)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HBM은 초당 128GB를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D램으로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업계에서는 슈퍼컴퓨터와 네트워크 컴퓨터 등에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낸드플래시 솔루션 분야의 경우 모바일 환경이 확대되면서 서버용 제품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기술 선도기업의 인수 및 우수 인력 확보 등을 통해 낸드플래시 비중을 확대할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경기도 이천 M14 라인의 완공과 함께 시작된 20나노 D램 양산을 통해 원가 경쟁력 절감과 함께 차세대 메모리 공정 기술 확보에도 총력을 다할 계획이다.
재계 대표 단체 중 하나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최태원 회장의 가석방이나 사면을 주장하는 것 역시 이런 위기감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영배 경총 회장 직무대행은 이와 관련 “경영 판단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엄격한 배임죄 적용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는 창의와 혁신의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법의 엄격한 심판 못지않게 가석방이나 사면 행정 제재 처분 해제 등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경영에 매진하게 하는 것이 속죄의 길을 열어주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SK하이닉스 인수와 조 단위 투자 계획을 밀어붙인 최태원 회장. SK하이닉스의 사상 최대 실적이 빛을 발할수록 최 회장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중국 우한 에틸렌공장(NCC)은 지난해 누적으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에서 모두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월부터 상업 가동을 시작한 우한NCC는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액과 영업 손실로 각각 2조3622억원, 161억원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14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석유화학 시황 악화와 초기 가동비용 탓에 3분기 누적으로 순손실을 냈다. 하지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실적이 대폭 호전돼 3·4분기에 각각 수백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이에 지난해 누적 기준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석유화학 설비를 오랫동안 운영한 SK이노베이션의 운영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해 흑자전환을 이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최 회장은 지난 2013년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과 시노펙을 통해 35 대 65의 비율로 우한NCC라는 합작법인을 출범시켰다. 합작법인은 중국 우한시에 3조3000억원을 투자해 NCC를 2013년에 준공했고, 지난해부터 상업 가동에 착수해 연간 250만톤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우한NCC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이 성사시킨 석유화학 합작 프로젝트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이다.
최 회장이 공을 들인 SK그룹의 중국 도시가스 사업도 성과를 내고 있다. SK E&S를 비롯한 SK그룹은 중국 3대 민영 도시가스 업체 차이나가스홀딩스(이하 CGH)의 지분 16.47%를 보유한 3대 주주로, 김용중 SK E&S 심천 본부장이 CGH 이사회 멤버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1031만가구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는 CGH는 중국 당국의 천연가스 권장 대책을 추진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여왔다. CGH의 2014회계연도(3월 기준) 매출액은 전년 대비 44.8% 증가한 260억800만 홍콩달러(약 3조7000억원)를 기록했고, 같은 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36.3% 증가한 50억8464만 홍콩달러(약 7200억원)를 기록했다. 가파른 성장세에 따라 SK가 보유한 CGH의 지분 가치도 1조40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SK하이닉스의 중국 장쑤성 우시 공장도 순항 중이다. 지난 2006년부터 양산을 시작한 우시 공장은 2013년 화재로 잠시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공장이 완전 복구되면서 풀가동에 착수했다. 지난 1월 반도체 시장 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우시 공장이 풀가동에 성공하면서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 매출액 기준 1위에 올랐다. 우시 공장 복구 등에 힘입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는 중국 충칭에서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준공하며 중국 반도체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사업이 흑자를 내며 본궤도에 오르자 ▲장기적인 안목 ▲한·중 상호 간의 윈윈 전략 ▲차이나 인사이더의 3대 원칙을 세우고 추진한 최 회장과 SK그룹의 노력을 빛을 보고 있다는 평가다. SK그룹은 지난 1990년 중국 푸젠성에 비디오테이프 공장을 세웠고, 수교를 앞둔 1991년에는 중국 지사를 설립하는 등 중국 진출에 앞장선 기업으로 손꼽힌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4호(2015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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