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시장의 새로운 그레이트 로테이션
입력 : 2015.01.08 15:02:24
-
2015년을 앞두고 새로운 그레이트 로테이션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마이클 하트네트 전략가는 지난해 12월 17일 세계 펀드매니저 조사를 통해 이번엔 당시보다는 약한 빅 로테이션(Big Rotation)을 제시했다. 국제 유가 급락으로 세계의 펀드 매니저들이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를 던지고 디플레이션에 베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연준(FRB)의 금리인상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도 투자심리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하트네트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달러와 현금선호 성향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채권과 부동산 비중을 축소하고 주식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주식 쪽에선 글로벌 테크 섹터와 자동차나 엔터테인먼트 등 임의소비재(discretionary stocks)를 선호하는 반면 필수소비재나 유틸리티 부문의 비중을 축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풀려졌던 채권, 손실 전환 가능성 여기서 한국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은 채권부문 비중 축소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세계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면서 채권값 하락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왜곡돼 부풀려졌던 채권형 펀드의 수익률에 이상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채권형 펀드는 2014년 기대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낸 바 있다. 지난 10월 말 집계 결과 국내 채권형 펀드의 1년 평균 수익률은 4.34%로 -5.03%였던 주식형 펀드의 평균수익률을 월등히 초월했다. 해외채권형 펀드의 1년 수익률도 5.05%나 됐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2%에 불과하고 3년 만기 회사채 수익률이 2.49%(2014년 12월 19일 기준)밖에 안되는데 채권펀드의 수익률이 이렇게 높게 나온 것은 미래수익을 한꺼번에 계산하는 채권평가 시스템 때문이다. 금리가 내려갈 때 남은 기간의 금리차를 모조리 장부상 이익으로 잡는 계산법이 만든 마술이다.
그러나 금리가 올라가면 채권값은 뚝 떨어지고 채권펀드는 순식간에 대규모 손실을 낼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존 채권펀드의 가치는 채권값 상승에 따른 기대이익은 반영했지만 채권값 하락 가능성이 내포하는 예상손실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최근 2개월간만 놓고 볼 때 채권펀드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있어 이 이슈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와 관련해 미 재무부 산하 금융조사국(OFR)은 금리가 올라갈 때 채권펀드의 예상 손실규모가 과거 긴축기보다 훨씬 심각해 대규모 채권매도와 이에 따른 시장 변동성의 급격한 확대 가능성을 경고했다.
국내 금융전문가들은 이 부분이 앞으로 금융기관 수익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2014년 국내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보유중인 채권의 평가이익 때문에 장부상 이익이 상당히 늘어난 것으로 발표했으나 2015년 이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것이란 얘기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공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고 일본 국내 기관들의 방향을 유도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하지만 0% 수준인 일본의 금리를 감안할 때 채권투자는 앞으로 손실이 늘어날 가능성만 남아 있다. 기존 포트폴리오대로 채권을 들고 있을 경우 일본 공적연금의 손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질 것이란 얘기다.
결국 GPIF는 투자자금의 엄청난 부분을 해외로 돌리기로 결정했고 이 자금이 이머징마켓으로 대거 투자될 전망이다.
대신증권은 “GPIF의 자산배분 비중 변화로 기준 비중까지 변화하는 것을 가정할 경우 일본 국내채권은 23.4조엔이 줄고, 일본 국내주식과 신흥시장 주식 등으로 21.3조엔(약 2000억달러)이 투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 효과는 2015년 3월까지 집중될 것이며 이에 따라 “신흥국 주식 매수 규모는 165억달러. 한국 주식 매수 규모는 3조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GPIF의 변화는 한국의 은행이나 연기금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GPIF의 조치 직후인 지난해 11월 초 은행의 유가증권 투자한도를 자기자본의 60%에서 100%까지로 확대하고 우정사업본부의 주식투자 한도를 예금자금의 10%에서 20%로 확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물론 금리가 추가로 내려간다면 채권펀드 수익률은 올라갈 수도 있다. 시장이 한국은행에 대해 추가로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해 엔화 약세를 부추길 경우 한국은행 역시 환율싸움을 방관할 수 없다는 고민도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금리인상을 공식화한 마당에 가뜩이나 낮은 금리를 추가로 내리는 데 대해 한은은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시중자금이 결코 적게 풀린 게 아니며, 외국환평형기금 적자가 심각하다는 점도 수출기업을 위해 무작정 환율방어를 나서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결국 한은이 금리를 내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후엔 한국 채권도 리스크 자산이 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각국 금리의 방향성은 장기적으로 위(우상향)라고 한다. 그렇지만 얼마나 강하게 얼마나 빨리 올라갈지가 변수다. 미 연준조차 과거 양적완화를 종료하는 테이퍼링 계획을 발표한 뒤 금리가 지나치게 빨리 오를 것으로 보이자 스스로 이 속도를 조절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2015년 금융시장은 이런 내부 이슈와 함께 오는 4월께 예상되는 미 FRB의 금리인상 여부,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양적완화, 일본은행(BOJ) 추가양적완화, 중국의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 등 경제 이슈와 러시아나 중동 등 지정학적 이슈까지 맞물려 숨 가쁘게 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새해 재테크 전략을 단순히 은행 예금이나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을 놓고 간을 보던 종래 전략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제의 큰 그림을 꼭 봐야 하는 이유다.
INTERVIEW | 임지원 박사·JP모건체이스 한국 수석 이코노미스트 “2015년 세계경제 화두는 변동성이다”
수출 역시 산유국 쪽이 유가하락의 영향을 받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과거 산유국 수출이 많지 않았을 때는 유가하락이 긍정적이었으나 지금은 산유국의 부정적 효과도 감안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전체적으로는 긍정적 효과가 약간 클 것이며 이것이 2015년 경제를 도와줄 것으로 본다.”
대내외적으로 여건은 좋아 보이지만 그렇더라도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성장이 굉장히 좋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소비는 가계부채가 걸림돌이다. 크기보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자만 내는 곳이 많다. 또 현재 저금리 상황에서도 상환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 저금리 국면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고, 금리가 올라갈 때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가계는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향후 소비증가에 제한요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GDP의 53.1%를 차지하는 소비가 정체된다는 것은 한국의 성장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종합할 때 유가하락과 정부지출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2015년 경제는 전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성장을 할 것이란 예상이다.
“환율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지만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에 따라)
변동성은 매우 클 것”이라고 했다.
“원·달러 환율은 큰 변동성을 띨 것이다. 실질실효환율은 2009년부터 꾸준히 절상돼 왔는데 2015년에도 절상될 것으로 본다.”
그는 “여러 가지 가격변수가 상충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원화는 엔화 대비로는 강세가 예상된다. 그렇지만 달러화 대비로는 반드시 강세는 아니라고 본다. 1050원에서 1150원 사이에서 크게 움직일 것으로 본다. 경상수지 흑자는 확대될 것 같다. 전체적으로 엔화는 약세로 이전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으나 달러화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때 강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면에서 원화의 중기 트렌드는 절상이지만 변동성은 매우 클 것이다.”
주식-내수주, 채권- 수급 우호적, 부동산-수요 부족 임 박사는 이런 대외환경을 감안할 때 올해도 내수주에 관심을 두라고 조언했다. “크게 보면 매크로 성장과 인플레이션이 조금 생기는 모습이다. 다만 금리나 환율 유가의 변동성이 매우 클 것이기 때문에 주가의 변동성도 매우 클 것 같다. 매 분기 손바뀜이 심할 것이다. 환율이 절하될 때는 수출주가 (일시적으로) 괜찮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변동성 관리를 잘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매우 커서 공공정책 요소가 희석될 소지가 있다.”
채권시장과 관련해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 글로벌 시장 금리도 출렁대며 한국도 장기금리가 출렁댈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정책금리는 내려갈 여지는 있으나 (한은이) 신중하게 볼 것이며, 금리상승 룸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또 채권수급에 대해선 국민연금의 유동성 공급이 계속될 것이고 해외 중앙은행들이 한국 절하모드가 아니라면 돈을 가지고 나가지 않고 투자할 것이란 점에서 우호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 때문에 (시중)금리는 오르더라도 많이 오르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글로벌 금리가 오르는 것은 심리적 측면에서만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상이다. 부동산에 대해 임 박사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부동산에 대해선 내리는 것도 올라가는 것도 반기지 않는다”는 말로 시장 전망을 요약했다. 열기가 식어 상황이 안 좋아지면 당국이 규제완화를 해서 위축을 막으려 하겠지만 부동산 소비자들의 노령화가 진전되고 있고, 특히 일본화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수요는 약할 것이란 진단이다. 한마디로 “성장과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주식도 채권도 완만하게 위로 갈 가능성이 있으나 변동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게 그의 2015년 시장에 대한 조언이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2호(2015년 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