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리비 국산차의 5배 벤츠·아우디 타면 ‘虎口’

    입력 : 2013.11.08 17:19:49

  • 아우디의 성수동 AS센터
    아우디의 성수동 AS센터
    호구(虎口)라는 말이 있다. 영문도 모른 채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가는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로 일상생활에서는 흔히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을 지칭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알게 모르게 이 부정적인 단어가 수입차 소비자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다녔다. 높은 가격을 주고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잔 고장에 시달린다한들 불평불만 없이 막대한 수리비를 지불해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의원(민주통합당)이 삼성화재, 현대해상, 동부화재, LIG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손해보험 상위 5개사에서 받은 2012년 외제차 사고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한 번 사고 났을 때 지급되는 평균 보험금(대물·자차 합계)은 메르세데스 벤츠가 415만4000원으로 가장 비쌌다. 이어 아우디 407만2000원, BMW 387만5000원, 폭스바겐 372만5000원 순으로, 모두 국산차 평균(102만9000원)의 3배가 넘었다. 수리비의 차이는 특히 부품가격이 큰 영향을 미쳤다. 국산차 평균부품비의 경우 42만7000원인데 반해 외제차는 201만4000원이 들어 4.7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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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드미러 교체비만 180만원 해마다 20%의 성장세를 보인 수입차 시장은 내년에는 100만대 시대를 앞두고 있다. 2008년 36만대 수준이었던 수입차 누적 등록대수는 올 상반기 82만대를 거쳐 내년에 100만대를 바라보고 있다. 수입차가 늘어나며 사고발생 빈도 역시 높아졌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한해 발생하는 수입차 사고 건수는 약 30만2000건으로 국산차를 포함한 전체 사고(459만건)의 7%수준이다.

    수리비는 2010년 5842억원에서 지난해 8270억원으로 42%나 늘어났다. 억대 수입차들이 늘어나며 사고별 수리비는 건당 최고 4억원이 넘는 사례도 나타났다. 지난 10월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보험개발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 교통사고 피해 수입차 수리비가 과실상계 전 기준으로 사고 사망자에게 지급하는 평균 보험금인 1억300만원보다 많은 사례가 43건으로 나타났다. 수리비 평균은 1억6000만원이었다.

    수리비가 2억원을 초과하는 사고는 페라리 4건, 메르세데스-벤츠 3건, BMW 1건 등 3년간 8건으로 나타났고 수리비 1억원 이상은 메르세데스-벤츠가 59건, 페라리 11건, 포르쉐 8건 등 총 59건으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수리비가 지급된 차는 페라리로 부품 값과 공임을 합한 수리비가 4억6000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또한 2010년 9월에 발생한 벤츠(‘08년 식)의 사고 수리비는 올 7월 기준 벤츠 제조사의 최고가 모델(SLS AMG Roadster)의 신차가격보다 60%나 높은 4억3355만원으로 책정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했다.

    이 의원은 “외제차 수리비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통념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며 도로 위의 고급 외제차는 일반 국민에게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라며 “국토교통부가 수입차 부품가격과 공임 공개에 늑장 대응한 것이 터무니없는 외제차 수리비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형사고가 아닌 접촉사고가 발생 시 수리비도 만만치 않다. 한국소비자원은 올 8월 보고서를 통해 수입자동차 12개 업체가 판매하는 배기량 1800~2500cc 세단의 접촉사고 시 쉽게 손상되는 앞뒤 범퍼와 사이드미러 어셈블리에 대한 교체 수리비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재규어랜드로버 XF 2.0P 럭셔리가 신차가격 대비 가장 높은 수리비용(10.6%)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요타의 렉서스 CT 200h, 혼다 어코드 2.4 EX-L, GM의 캐딜락 ATS럭셔리 2.0L이 7.7%로 뒤를 이었고 포드 토러스 2.0 LTD, 벤츠 E200순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특히 재규어XF 2.0P럭셔리의 경우 사이드미러 교체비용만 180만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벤츠 E200 역시 100만원을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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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리비 부풀리기·업체 간 담합 의혹도 막대한 수입차 수리비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곳은 국내 수입차 딜러들이다. 현재 수입차를 위한 정비센터는 대부분 딜러사가 직접 운영한다.

    국산차의 경우 신차에 대한 보증수리를 자동차 제작사가 직접 책임지고 있지만 수입차의 경우 자동차를 판매한 딜러가 보증수리를 이행하는 구조다. 일본 수입차 정도만 직영센터 외에 협력정비센터를 두는 수준이다. 수입차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한 2009년부터 국내 딜러사의 정비매출은 크게 늘어났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딜러사인 한독모터스의 정비매출은 2009년 123억1217만원에서 지난해 345억2215만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폭스바겐 딜러사인 클라쎄오토 역시 2009년 56억8981만원에서 지난해 181억2584만원으로 크게 늘었고, 도요타·렉서스의 부산지역 딜러사인 동일모터스의 경우에도 2011년 3억3293만원에서 지난해 8억8752만원으로 정비 매출이 3배 남짓 늘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수입차 시장에서 딜러 간 판매경쟁이 치열해지며 다양한 프로모션과 금융프로그램을 통해 신차 판매가를 낮추는 대신 애프터서비스(AS)에서 마진을 챙기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 수입차 딜러사 관계자는 “구조적으로 마케팅 비용의 대부분을 수입자동차 본사가 아닌 딜러가 떠안고 있어 마진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그나마 정비매출이 늘어나며 수익을 보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강남지역 수입차 정비업체 관계자는 “각 수입차 브랜드는 홍보를 위해 고급스러운 전시장을 만들어놓고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 비용은 수입차 오너들이 부담하게 되는 것”이라며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수리비를 현실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소비자를 위한 길”이라고 지적했다.

    딜러사들의 정비매출은 증가했지만 서비스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정비업체들의 ‘수리비 부풀리기’ 풍조는 계속되고 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신성식 부장검사)는 지난 10월 11일 BMW·메르세데스 벤츠·폭스바겐·아우디·렉서스·도요타 등 6개 수입차 브랜드의 국내 판매를 담당하는 딜러업체들이 수리비와 부품 값을 부풀린 정황을 포착해 수사에 나섰다. 압수수색을 통해 최근 수년간의 수리비 청구내역과 부품 입·출고 목록 등을 확보한 검찰은 수입차 판매업체의 수리비 실태를 철저하게 밝히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한편 국회 정무위원회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지난 10월 15일 국감을 통해 총 9페이지 분량의 ‘수입차 담합 내부 문건’을 공개하면서 국내 수입자동차 업체들이 카르텔을 지속해 왔다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수입차 브랜드 영업 담당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연간 판매 목표와 다음해 신차 출시 일정 등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내부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했다는 것이다.

    한 수입차 딜러사 관계자는 “하나의 브랜드에도 다수의 딜러사가 경쟁하는 체제 안에서 똑같은 값에 부품을 들여오기 때문에 특정 업체가 더 비싸게 팔기란 어렵다”며 “검찰이 수입차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에 편승해 ‘조지기’에 나선 것”이라고 항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산차와 달리 40~50년 전 차종의 부품도 생산해 공급하는 구조상 전체적인 부품비용은 높은 편이지만 담합이나 작위적인 수리비 부풀리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입차 딜러사들의 강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개별 정비업체들의 수리비 부풀리기 행태는 과거 수차례 적발된 바 있다.

    지난 2011년 4월 금융감독원과 부산남부경찰서(지능2팀)는 수입차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중고 또는 재생부품을 교환한 후, 신품을 교환한 것처럼 수리내역서를 조작해 보험사로부터 213회에 걸쳐 2억원 가량의 보험금을 편취한 외제차량 전문 정비업체 대표를 입건했다. 이 정비업체 대표는 보험회사가 수리 완료된 내역을 사진 등 서류로만 확인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중고 또는 재생부품을 사용해 차량을 수리한 후 2년간 대당 50만원(평균 수리비의 20% 내외)정도를 추가로 편취했다.

    두 달 앞선 2011년 2월에는 유사한 방식으로 163회에 걸쳐 8900만원 가량을 편취한 전북지역 폭스바겐 지정 정비업체·부품업체 대표 등 3명을 입건된 바 있다. 특히 이 정비업체는 폭스바겐사가 제공한 수리비청구 시스템(ELSA) 전산을 조작까지 서슴치 않았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만연한 부품값 부풀리기 풍조를 근절하기 위해 내년 1월부터 자동차 부품별 가격정보를 인터넷에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또한 일부 의원들은 자동차 부품의 디자인 특허와 보험 관련 규정을 개선해 부품 가격을 크게 낮추는 입법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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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BMW 7시리즈 모빌리티 라운지(아래). 폭스바겐 VVIP고객 실내악연주회. 업계에서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수리비의 현실화 방안을 마련하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위)BMW 7시리즈 모빌리티 라운지(아래). 폭스바겐 VVIP고객 실내악연주회. 업계에서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수리비의 현실화 방안을 마련하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족한 정비업체 애꿎은 공임비만 잔뜩 #경남 사천에 거주하는 40대 최영희(가명)씨는 2009년 말 경기도 소재 매장에서 도요타 캠리 차량을 구입했다. 이후 엔진오일 교체와 차량수리를 거주하던 창원 서비스센터에 의뢰하자 경기도에서 구입한 차량은 부산 서비스 센터에서만 수리가 가능하다며 수리를 거부당했다. 어처구니없는 최 씨는 차량을 구입한 딜러에게 창원 서비스센터에서 수리 받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사업자는 서비스센터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형식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수입차 증가세는 확연하지만 그에 비해 정비업체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상존한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해 6월 국내에서 대표적인 수입차 7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정비서비스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정비센터 1곳당 감당해야 할 차량대수는 메르세데스-벤츠가 3672대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BMW가 3306대로 뒤를 이었고 폭스바겐(2677), 혼다(2625), 아우디(2589), 렉서스(2519), 도요타(1794) 순이었다. 현대 기아차가 정비센터당 500대 가량을 담당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수치다. 벤츠는 정비센터 수가 가장 부족한데 비해 공임비는 가장 높아 이중으로 불명예 타이틀을 얻었다. 정비센터 1곳당 감당해야 하는 차량이 많을 경우, 수리를 받기 위한 예약 및 대기시간 등이 늘어나 소비자 불편이 커질 수 있다.

    보험 개발원 한 관계자는 “수입차 소비자가 늘어난 만큼 AS품질 개선이 시급하다”며 “특히 수입 자동차 수리센터의 공임산출 방식을 조사해서 국산차처럼 표준 공임을 도입해 낮춰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부족한 정비사업소는 지방보다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어 특히 지방 수입차 소비자들은 불편은 커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현재 GM코리아, 크라이슬러, 볼보, 닛산 4개 업체만이 수도권보다 지방에 많은 정비사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같은 브랜드라도 각각 다른 딜러사가 보증수리를 담당하다 보니 최 씨와 같은 불편을 겪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자동차를 구입했더라도 다른 딜러가 운영하는 정비업체에 보증수리를 맡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요타 차량을 구입해 보증수리를 받으려고 하는 소비자의 경우 도요타와 렉서스의 딜러사가 다르면, 같은 수입사의 정비사업소라 하더라도 렉서스 정비사업소에 수리를 의뢰할 수 없게 된다.

    자동차 업계 한 전문가는 “수입차 업체들이 한국에서의 돈벌이에만 급급해 서비스 품질에 대한 고민이나 노력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며 “지속적으로 소비자가 늘어감에 따라 불편지수도 높아져 치명적인 브랜드 이미지 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또한 수입차 딜러 한 관계자는 “지방에 수입차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관련한 AS품질 개선은 딜러사들의 중요한 과제”라며 “장기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8호(2013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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