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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行 기업들의 채권, 어찌 하오리까
입력 : 2013.08.09 17: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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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그룹의 지주회사 웅진홀딩스는 지난해 2600억원대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같은해 9월 법정관리를 신청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7월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 6월 중순 이후 한 달 동안 금감원에 접수된 STX팬오션 CP 관련 민원은 12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액만 따져도 70억원이 넘는다.
이들 민원인들의 원성은 CP를 발행한 STX팬오션이 아닌 유통을 맡은 증권사들과 신용평가사에 집중되고 있다.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 회사채 가격이 곤두박질쳤는데도 이에 대한 위험 고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지난 2011년 3월에도 발생했다. 중견 건설사인 LIG건설이 242억원 규모의 기업어음을 발행한 후 열흘 만에 곧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약 800여명의 일반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었다. 이밖에도 대한해운과 웅진그룹 등이 유사한 방법으로 기업어음 및 채권을 발행한 후 곧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 발 늦은 평가와 위험 고지 논란 일반 투자자들은 바로 이 때문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법정관리를 앞둔 기업들의 CP와 채권 판매를 중개한 금융사들이 일반 투자자들에게 위험요인에 대해 고지를 제대로 안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금융권과 신용평가사들이 수수료를 벌기 위해 불완전판매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기업평가를 제대로 해 올바른 신용정보를 제공해야 함에도 법정관리 직전에야 비로소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기 때문이다. 실제 웅진홀딩스는 법정관리 직전까지 최고 A- 등급이 부여됐다가 사태가 터진 후에야 D등급으로 강등됐다. LIG건설은 아예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에야 신용등급이 내려갔다.
일반 투자자들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금융권과 신용평가사가 법정관리를 택한 기업들의 채권 혹은 기업어음의 손실을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과 신용평가사들은 이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증권사들은 신용평가사가 내놓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신용평가사는 아예 법정관리를 택한 기업들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독자적인 신용평가 등급 도입해야 더 큰 문제는 같은 문제가 앞으로도 계속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금융권은 경기침체와 불확실성의 심화로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수수료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주식투자 규모나 펀드 가입률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당연히 기업어음 및 채권의 중개판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한 금융관계자의 설명이다.
신용평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신용평가사들이 주 수입원인 기업평가 수수료를 기업에서 받고 있는 만큼 해당 기업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특히 ‘복수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채권발행 기업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금융당국 역시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해결책으로 ‘독자신용등급 도입안’을 지난해 발표했다. 기업 자체의 기초 체력을 독립적으로 평가한 신용등급과 모기업 등 외부지원 가능성을 고려한 최종등급을 분리해 발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도입안은 그러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올해 역시 STX팬오션과 웅진식품처럼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주거래은행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주거래기업이 재무 상태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곧바로 대출을 회수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한 것이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금융권은 주거래 은행의 관리감독은 기업경영의 또 다른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올 4월 워크아웃을 신청한 STX 그룹의 협력업체들을 위해 구제책을 논의 중인 채권단
금융위는 또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채관리회사를 통해 발생사를 통제하는 별도의 제도도 제시했다. 인수증권사가 아닌 제3의 사채관리회사로 하여금 발행사가 준수해야 할 부채비율이나 담보제공금액 제한, 자산처분금액 제한 등의 계약사항을 신고서에 충실히 기재하도록 한다는 것. 또 사채관리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적정성 의견을 달고 손해배상책임까지 명시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일부 망나니 같은 회사와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평가사들 때문에 전체 기업의 채권발행 비용이 상승하게 되는 셈이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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