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리 싼 외화대출 자칫 빚 두 배 될 수도…환율 리스크 상상 초월

    입력 : 2013.05.30 10: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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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에서 중소기업을 하던 김 모 사장은 ‘엔저’ 얘기만 들어도 울화가 치민다. 엔화 약세 대책을 세우라며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재계 지도자들을 볼 때면 멱살이라도 쥐고 흔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김 사장은 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이던 지난 2005년 2억엔을 대출했다. 3%대 저렴한 금리는 그에겐 꿈같은 수준이었다. 그 정도 이자야 연중 며칠만 열심히 일하면 충분이 갚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김 사장은 신이 났다. 그런데 그런 행복감은 잠깐뿐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원/엔 환율은 순식간에 1600원대로 치솟았고 원화로 환산한 대출액은 두 배로 늘었다. 은행에선 빚이 늘었으니 빨리 상환하라고 성화를 해댔다. 일정대로 상환하겠다고 읍소를 거듭하니 이번엔 신용이 불량하다며 금리를 배 이상 요구했다.

    싼 맛에 엔화대출을 받았던 그는 굴욕은 굴욕대로 당하고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원리금을 상환하고 나서야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최근 다수의 국내은행들이 기업에 대해 엔화대출을 원화대출로 전환하라고 권하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환리스크까지 거론하며 전환을 독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까지 나중에 원/엔 환율이 추가로 하락하면 해당 기업들이 소송을 걸지도 모르니 ‘환리스크’를 중점적으로 설명하라며 “엔화대출의 원화대출 전환은 반드시 차주 본인 의사에 의하고 은행은 관련 기록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엔화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엔고 시절 엔화대출을 받은 기업의 입장에선 상환시기를 늦출수록 이익이 된다. 예를 들어 원/엔 환율이 100엔당 1500원대까지 치솟았던 지난 2011년 엔화대출을 받은 기업이라면 원/엔 환율이 100엔당 1100원 선 밑으로 떨어진 지금 27% 가량 갚아야 할 원금이 줄어든 셈이다. 원엔 환율이 2007년처럼 800원대 밑으로 떨어진다면 원금은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은행 입장에선 이런 게 배가 아픈지 빨리 원금을 갚든지 원화대출로 갈아타라고 성화다. 엔화가치 하락의 이익을 자신들이 챙기겠다는 욕심에서랄까. 국내 주요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이 엔화가치 하락과 같은 기조로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외화대출은 환율변화에 따라 원금의 크기 자체가 변한다는 점에서 매달 갚아야 할 이자가 변하는 원화대출의 금리변동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것이 환율을 무섭게 보아야 하는 점이다. 은행들이 외화대출을 장려할 때는 가급적 받지 않는 게 상책인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국가가 외환관리를 잘못할 경우 기업은 아무 잘못 없이 외환을 구하지 못해 도산할 수도 있다. 한국은행의 금고가 텅 비다시피 했던 외환위기 때가 그렇다.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2억달러까지 떨어졌다. 이 상태로는 외환 수급 자체가 어렵다고 판단한 한국 정부는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경제주권까지 빼앗겼고 환율은 2000원대로 치솟기도 했다.

    정부는 이후 눈에 불을 켜고 빚을 내서 달러 사재기를 하면서 외환보유액을 늘렸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또 한 번의 외환위기를 맞을 뻔했다. 당시 외환보유액은 충분해 보였지만 대외부채를 뺀 순대외자산이 일시적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졌던 것. 다행히 미국이 통화스왑을 해줘 위기를 넘겼는데 한국으로선 아찔한 순간이었다. 물론 채권도 만기가 길면 금리 변화가 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30년 만기 채권의 경우 금리가 0.25% 오르면 채권값은 7.8% 정도 떨어진다. 만약 금리가 0.5% 오르면 채권값은 16.2%나 떨어진다.(연 1회 복리 감안)

    그렇더라도 순식간에 원금 자체가 배로 뛰거나 반대로 절반으로 줄어드는 외환과는 차이가 크다. 외환은 그만큼 위험이 큰 상품이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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