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ecial]원화 강세 이제 필연

    입력 : 2013.03.07 15:55:36

  • 강한 원화의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5년간 달러 대비 원화값이 1100원대, 100엔당 원화값이 1300원대에 머무르는 ‘약한 원화’ 시대를 보냈다. 이 기간 동안 무역흑자는 지속되고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대표기업들은 세계 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징후가 속속 나오고 있다. 경제적인 요인과 정치적인 요인 모두 ‘강한 원화’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원화가치를 낮게 유지해 수출을 늘리는 것이 우리나라 전체 국부를 위해서 좋다는 믿음도 도전받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값은 지난해 7.6% 절상됐다. 1151.8원이었던 환율은 1070.6원으로 81.2원 떨어졌다. 지난해 말 매일경제신문이 국책·민간 연구소와 국내외 금융기관 11곳의 환율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 전문가들은 올해 평균 원·달러 환율을 1058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연평균 환율이 1050원대로 떨어진 것은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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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10명 중 9명 박근혜 정부 원高 용인할 것 “원화값이 올라 위기가 닥친다고 난리를 치는 것은 잘못됐다. 장기적으로 원화값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원화값 급등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지금은 장기적으로 보고 (원고시대를) 대비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원화는 달러화와 엔화 등 주요국 통화에 비해 그 가치가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의 경우 G20 국가 통화 중 원화보다 가치가 더 오른 통화는 멕시코 페소화 한 곳 뿐이었다. 이처럼 원화가 강세를 보인 것은 한국의 경제력이 발전하고 위기대응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원화 절상의 기조적 변화를 인정하고 이에 맞는 통화정책과 사업구조개편 작업을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학계와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국책·민간 연구소와 국내외 금융기관 11곳의 환율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 올해 평균 원·달러 환율은 1058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또 올해 원화가치는 최대 1020원대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KB은행, 신한은행은 올해 안에 심리적 마지노선인 1000원대까지 원화가치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전문가들은 최근 진행 중인 원화가치 강세 현상이 일시적 쏠림 현상이 아닌 장기적으로 진행될 기조 변화로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원화가치가 펀더멘탈 대비 저평가 돼 있냐는 질문에 대해 8명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답했다. 나머지 3명도 “현재의 원화가치가 고평가 돼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아직 원화절상 여유분이 더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원화절상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는 막대한 무역흑자로 돈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제수지는 432억달러 흑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원화가치 급락으로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1998년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원화가치 상승으로 향후 수출 규모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나 펀더멘탈상 원화가치는 하락압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정치권력의 변화도 원고시대를 불러오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새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가 원화가치 절상 기조를 용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의 환율 정책에 대해선 “속도조절을 하면서 원화강세(환율하락)를 용인할 것이다”는 의견이 90%를 넘었다. 우리나라가 소규모 개방 경제로 환율 방어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개입보다는 용인하는 수준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5년 동안 평균적인 원·달러 환율을 1036원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MB정권 평균인 1154원보다 원화가치가 10% 이상 높아진 것이다.

    원화값을 낮게 유지해 수출을 통해 성장을 한다는 기존 경제 모델도 위협을 받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수출과 내수가 함께 가는 쌍끌이 경제를 강조했다. 이는 과거 MB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수를 강조한다는 의미고 원화강세를 용인해 내수를 키우겠다는 의미로 시장에서는 받아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정 집단이 아니라 국민 전체 후생을 위해선 어떤 환율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대해 절반 이상이 “원화값을 현재보다 높게 유지해 내수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전문가는 한 명 뿐이었다.

    원화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화가치가 올라가면 외국서 수입하는 상품의 가격이 떨어져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해외여행을 할 때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어진다. 수출 위주의 대기업은 원화절상으로 다소 손해를 볼 수 있지만 내수 산업을 살리고 국민의 후생을 높이기 위해선 원화가치 상승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재준 KDI 연구위원은 “수출 지향형 대기업들이 국가 경제를 나홀로 이끌어 왔던 이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내수산업 위주로 산업구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원화가치 상승이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미리미리 대처 하지 않으면 국가 경제가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를 실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낮게는 달러당 1000원대 높게는 세 자릿수 환율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기업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원화값에 대한 기존의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세계경제가 침체를 맞은 상황에서 원화강세에 돌입한 만큼 환율 경쟁력을 뛰어넘는 제품 경쟁력과 체질을 키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현재는 경상수지 흑자가 나고 있지만 원화값이 급등하면 이것이 다시 적자로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라면서 “엔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 더 불리하다”고 전망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세계경제가 워낙 좋았던 2007년에는 원화값이 세 자릿수여도 수출이 줄어들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세계경제도 좋지 않기 때문에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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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시대 갈리는 기업 간 득실 원고시대는 우리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기업 전반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 그러나 기업 규모에 따라 산업에 따라 득실 차이는 크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원고에 대한 영향은 크지만 대응방안을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대표 기업들은 전체 생산의 상당 규모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 해외공장에서 직접 생산해 현지에서 판매할 경우 원화값이 오른다고 해도 영향이 크지 않다.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 현재보다 원화값 강세가 이어질 경우 타격이 크다. 대기업에 비해 환리스크를 피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무역보험공사가 380개 수출기업을 조사한 결과 손익분기점 환율은 대기업이 달러당 1059원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1102원이었다. 홍성철 중소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책 당국은 중소기업에 대해 환위험 관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되 글로벌 금융위기 시 KIKO 사태와 같은 기업의 오버헤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환관리 실태를 체계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별로 봤을 때는 전기전자(IT), 자동차, 조선업종의 타격이 가장 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원·달러환율이 올해 말 1000원까지 내려갈 경우 수출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전년보다 2.3%포인트 감소하고, 이자보상배율은 전년 2.7배에서 1.2배까지 내려갈 것으로 추정됐다.

    수출비중이 높은 전기·전자업종은 영업이익률이 3.5%포인트나 하락하면서 적자로 전환되며 섬유업종도 영업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업종의 경우 영업적자는 아니나 영업이익률이 2.8%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원화강세에 따른 수혜를 보는 업종도 있다. 대표적으로 항공, 음식료, 제약, 전기가스 업종이 꼽힌다. 이들은 원재료 수입 비중이 큰데 원화값이 올라가면서 조달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여행사의 경우 해외에서 들어오는 여행객은 줄어드나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결과적으로 수혜업종으로 꼽힌다. 이런 원론적인 분석과 달리 주식시장에서 반응은 업종별로 달랐다. 지난해 9월 이후부터 2월 13일까지 주가를 보면 IT업종 대표주인 삼성전자는 20.6% 상승했다. 예상과는 반대다. 대한항공도 오히려 6% 하락해 환율 효과가 반대로 나타났다. 이 기간 식료품 대표주인 CJ제일제당, 유한양행(제약), 한국전력(전기가스)은 환율 효과로 주가가 크게 올랐고 현대중공업(조선)은 크게 주가가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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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2008년 반복 막으려면 올해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던 원화값은 1월 말 갑작스런 역풍을 맞았다. 상승세가 하락세로 반전하더니 하루에 10원씩 하락과 상승을 반복하는 널뛰기 장세가 됐다.

    이처럼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협소해 한국 경제에 가장 폭발적인 위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화약고’로 평가받는다. 달러 엔 위안 등에 비해 비주류 통화인 데다가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외환시장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원고시대에 필요한 것은 원화의 레벨을 조정하려 하기보다 이런 변동성을 낮추는 조치다. 원화값이 높은 것보다 변동성이 큰 게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토빈세를 비롯한 고강도 자본유출입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997년 우리 경제는 IMF를 맞아 달러당 원화값이 2000원에 육박하는 외환위기를 겪었다. 이후 10년간 기초 체력을 키웠다고 생각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세 자릿수 환율이 1513원까지 급등하는 쇼크를 다시 한 번 겪었다. 이런 급격한 원화값 변동은 부작용이 컸다.

    결국 핫머니(단기투기성자금)를 잡기 위해서는 자본유출입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외환거래세나 채권거래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를 통해 투기적인 거래를 줄이고 변동성을 줄일 것이라는 아이디어다.

    반면 외환시장 변동성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게 크다는 설명도 나온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과거 두 차례 충격 때보다는 훨씬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로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 외환시장은 상대적으로 잠잠했다. 원화값도 1195.8원까지 떨어지는 데 그쳤다.

    [전범주·이덕주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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