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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미국 이어 프랑스도 AAA??
입력 : 2012.04.05 12: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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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프랑스 이외에 영국·독일·네덜란드·덴마크 등 주로 유럽국에 집중된 다른 AAA 국가들도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지 열흘도 안돼 프랑스도 AAA 등급을 잃을 수 있다는 염려가 나왔다.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경제 성장률이 예상을 밑돌 것으로 염려되자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들이 등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황위안산 홍콩 중문대 교수는 최근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은 이미 파산했고, 스페인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유럽 부채 위기의 불이 이탈리아로 옮겨 붙었고 이 불을 잡지 못하면 다음 목표는 프랑스가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프랑스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80%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 멈춰버린다면 프랑스가 2년 내에 분명히 전 세계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 교수는 “지금의 유로존 위기는 적벽대전에서 모든 배가 서로 연결돼 끊기 힘든 가운데 불이 붙은 것과 같다”며 “유럽은 중앙은행이 통일됐지만 재정이 통일되지 않아 위기 돌파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이외에 영국·독일·네덜란드·덴마크 등 주로 유럽국에 집중된 다른 AAA 국가들도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벌써 2년을 넘어선 재정위기를 유럽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그리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처럼 양적완화 정책을 즉각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유로존 내 통화팽창 가능성으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다. 새로 대출을 받아 과거 부채를 갚아 나가면서 시간을 끌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유럽의 재정상태는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유럽이 부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경제성장밖에 없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채무압력에 시달리는 유럽내 주요 국가들의 경제마저 침체되고 성장동력이 약해지면 몇 년 뒤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염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내부 정치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제체질이 강한 독일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시나리오가 최선으로 완성될지 아니면 최악으로 치달을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이런 혼란에 빠뜨린 주범으로 지목되는 신용평가기관들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S&P를 비롯해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이 시장을 뒤흔든 전례는 물론 이번만이 아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물론 러시아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까지 위기가 클라이막스로 치달을 때마다 나타나 위기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자주 했다. 이들이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방법은 금융·자본 자유화가 진전되지 않은 1980년대 이전에는 다소 간단했다. 채무불이행 가능성에 초첨을 맞춰 재정과 경상수지, 부채비율 등 몇몇 지표 위주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네트워크가 본격화되면서 신용평가도 복잡해졌다.
S&P의 경우 정치적 위험, 외채관리 위험, 경제적 위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위험에는 정권의 안정성, 군부의 정치개입, 부패 정도 등이 반영되고 외채관리 위험에는 외채 상환 능력, 환율 안정성, 외환보유고 등이 감안된다. 경제적 위험에는 경제성장률, 경제정책, 물가상승률, 경상수지 등이 포함된다. 특히 외채상환 능력과 경제적 요소의 가중치가 크다.
이들이 자리에 앉아서 인터넷에 뜬 통계자료만 보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아니다. 국가신용도 평가를 위해 해마다 각 국에 직원을 보내 정부와 금융기관, 민간기업 등을 돌아보고 관계자와 면담하거나 현장실사를 진행한다. 무디스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금융위, 외교부, 한국은행은 물론 노동자단체와 전경련까지 방문해 자료를 수집한다”며 “인터뷰와 비공개 자료 열람을 통해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정보를 획득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국제신용평가기관이 매긴 기업이나 금융기관, 국가신용도는 금융기관, 기업, 정부 등이 융자나 투자를 할 때 주요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신용평가 결과가 한 나라의 경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등급에 따라 국민 경제 전반에 걸쳐 자금 조달 비용에 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등급을 올리면 그것만으로 즉시 해당국 금융기관과 기업은 전보다 낮은 금리 등 유리한 조건으로 해외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등급이 떨어지면 자금 융통이 어려워져 즉시 타격을 입는다. 대출금리를 더 내야하거나 아예 자금융통을 거절당하기도 한다.
당시 한보철강에서 시작된 줄부도 사태가 삼미, 진로, 해태, 기아차 등으로 이어지자 S&P는 1997년 10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에 자극받은 무디스도 불과 사흘 뒤 국가 신용등급에 직결되는 외화표시장기예금 신용등급을 A1에서 A2로 한 단계 내렸다. 두 기관이 거의 동시에 신용등급을 강등하자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 기관이 발행한 채권의 가산금리가 사상 최대 폭으로 치솟으면서 매수세가 실종됐다. 이후 3대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연쇄 강등 조치는 무자비했다.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S&P는 신용등급 10계단을, 피치는 12계단을 내렸다.
이들과 한국의 악연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무디스를 제외한 S&P와 피치는 여전히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외환위기 이전으로 돌려놓지 않았다.
[정혁훈 / 매일경제 국제부 차장 moneyjung@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2호(2011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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