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1% 보고서…그들은 부동산으로 벌어 부동산에 묻었다

    입력 : 2011.11.28 16: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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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7일. 미국 뉴욕의 월 스트리트 근처 주코티 공원(Zuccotti Park)에서 70여 명이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가 피켓에 휘갈겨 쓴 핵심 단어는 ‘1%와 99%’였다. 상위 1%에게 온갖 혜택이 집중돼 있고 나머지 99%는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1%의 탐욕과 부패를 규탄했던 시위대는 자신들을 99%로 표현했다. 이제는 전 세계로 번져나간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대의 시작이다.

    ‘1% 대 99%’의 구도는 신자유주의가 힘을 쓰던 시절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분석구도였다. 승자독식을 당연하게 여겼던 그 시절에 1% 대 99%의 구도는 자유경쟁의 결과를 부정하고, 세상을 두 편으로 갈라놓으려는 음험한 시도로 여겨질 법 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점령 시위대의 출현으로 과거의 금기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해도 너무 한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미국이 가진 부의 대략 40%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전체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의 24% 가량을 가져간다. 미국 내 금융자산의 절반가량을 1%가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세금도 많이 낸다. 미국의 상위 1%는 연방정부가 매기는 세금의 25%, 전체 소득세의 40%를 책임진다.

    하지만 99% 보통 미국인들을 진짜 화나게 한 것은 ‘월 스트리트’의 탐욕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흉으로서 99% 보통 사람들의 세금으로 간신히 살아난 미국 대형 금융기관들이 벌인 비상식적인 보너스 잔치에 분노한 것이다.

    예컨대,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던 BoA, 메릴린치는 지난 10월 초 임원으로 일하던 샐리 크로우체크에게 85만 달러의 급료와 515만 달러의 퇴직금을, CFO(최고재무담당임원)이었던 조 프라이스에게 85만 달러의 급료와 퇴직금 415만 달러를 제공했다. 한국 돈으로 60억원 가량의 퇴직금을 지급한 것이다. ‘월가를 끝장내자’는 구호가 먹혀들 만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점령 시위대 열풍은 10월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 80여 개국으로 번져갔다. 1%가 99%의 공적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대한민국 1% 부자 순자산액 평균 32억원
    부산의 신흥 부촌 해운대 아이파크
    부산의 신흥 부촌 해운대 아이파크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A씨(61).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30여 년간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은퇴해서 부인과 자녀 1명과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전용면적 181㎡인 단독주택으로 시가 15억원짜리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직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 지방도시에 20억원짜리 건물을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보통 ‘사장님’으로 불린다.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5억원 가량의 대출을 일으켰지만 A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은행에 예치한 금융자산만 해도 4억원 정도 된다. 여기에 자동차(3200만원) 등 기타자산까지 포함하면 총 자산은 40억원에 육박한다. A씨 가족은 월평균 적정생활비가 1000만원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유명 백화점의 명품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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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자산 상위 1% 부자 가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구주가 55.9세 남성으로 수도권에 거주하며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자영업자’가 대한민국 1% 부자의 통계적 전형이다. 자산상위 1% 부자들의 평균 가구원수는 3.3명이다. 가구주를 보면 50대가 전체의 31%로 가장 많았고, 60대와 40대 등 순으로 나타났다. 평균 나이는 55.9세이다.

    국내 유명 백화점의 명품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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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 10명 중 7명 꼴로 4년제 대학 이상을 나온 고학력자로 나타났다. 이중 4년제 대학만 나온 비율은 48.9%, 대학원 이상 학력은 18.6%를 차지했다. ‘가방끈이 길어야 돈도 잘 번다’는 사회 통념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는 의미다. 이들이 학창시절을 보냈던 때는 1960~1970년대로 경제 여건이 어려웠을 때다. 그런 와중에도 대학에 진학했던 젊은이들이 세월이 흘러 21세기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른 확률이 높았던 셈이다. 종사자 지위별로는 자영업자가 전체의 59.1%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상용임금근로자는 22.5%, 은퇴 등은 18.2%를 기록했다. 전문직이거나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다.

    국내 유명 백화점의 명품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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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주지는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77%)에 집중되어 있고, 평균 전용면적은 136.8㎡이다. 주로 아파트(64.9%)에 살지만 단독주택(31%)에 거주하는 경우도 많은 편이었다. 부자들은 여유자금이 있을 때, 저축이나 금융자산에 투자한다는 답변이 전체의 54.9%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부동산 구입(18.7%), 부채상환(18.2%), 자동차나 가구 마련(2.4%) 등 순이다.

    상위 1%가 전체 부동산의 16% 소유
    서울 청담동 롤스로이스 매장
    서울 청담동 롤스로이스 매장
    자본주의 국가인 만큼 한국에도 당연히 1%와 99%의 격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사정은 여러 모로 차이가 크다. 미국 99%가 1% 부자를 월 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자본으로 인식했다면 한국에선 1% 부자가 ‘부동산 알부자’로 인식될 만하다. 한국의 경우, 금융자산이나 고액연봉 보다는 부동산 격차가 훨씬 큰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의 ‘2010년 가계금융조사 원시자료’를 토대로 전국 1691만 가구를 정밀분석한 결과, 한국의 자산순위 1% 부자는 평균 32억3000만원어치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99% 계층의 평균 부동산(1억7000만원)에 비해 18배 많다는 계산이다.

    금액으로 치면 1% 부자들이 보유한 부동산 가치는 545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가계 부문 부동산가치(3495조원)의 6분의 1(15.6%)에 해당된다.

    1% 부자들은 평균 8억1000만원 주택에 살면서 24억원 가량을 건물과 토지, 아파트 등 비거주주택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1% 부자들은 부동산을 거주 목적보다는 주로 투자 형태로 굴리면서 매매차익을 얻거나 임대수익으로 재산을 불렸다. 부(富)를 키우는 주된 코스가 주택 등 부동산이었음이 통계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물론 비중은 부동산보다 적지만 절대 금액으로는 금융자산도 만만치 않았다. 1% 부자들은 평균 3억8000만원의 예금과 펀드 등 금융자산을 갖고 있다. 자동차와 회원권, 귀금속 등 기타자산은 6500만원 수준이었다. 1% 부자들은 평균 부채 규모가 4억8000만원이었다. 하지만 풍족한 소득과 자산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다. 실제로 1% 부자들의 순자산액(총자산-부채)는 32억1000만원으로 집계됐다.

    부동산에 비해 1%와 99% 사이의 소득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대한민국 상위 1%는 연간 평균 1억6700만원을 벌어 9200만원을 지출해 7500만원의 흑자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99%의 연평균소득(3780만원)보다 4배 가량 많은 액수다. 그러나 연간 흑자액(671만원)과 비교해보면 11.2배나 많은 금액이다.

    특히 1% 부자들은 연간 총 1조4400억원의 경상조세를 내고 있다. 이는 99%계층(15조3300억원)이 부담하는 세금의 9.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1% 부자들이 벌어들이는 수입 비중보다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연방세의 25%, 소득세의 40%를 내는 미국의 1% 부자에 비하면 비중이 낮다고 볼 수도 있다. 1% 부자들의 씀씀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1% 부자의 평균소비성향은 46%로 나머지 99%가구(78%)보다 낮다.

    한편 1% 부자들이 연간 버는 총소득을 더하면 27조6000억원이다. 99% 계층의 총소득(606조원)의 4.6%를 차지하는 셈이다.

    1%도, 99%도 부동산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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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편에 차이는 있지만 99%의 지향점도 상위 1%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부동산이다. 강원도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남성 B씨(40). 통계상 99%의 전형에 가깝다. 전문대를 졸업한 B씨는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기능직으로 근무하는 상용직 근로자다. 아내와 아이 2명과 함께 본인 소유의 전용면적 84㎡ 아파트에 살고 있다. 지방이라 집값은 1억5000만원 정도다. 하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 3000만원 정도를 인근 토지에 묻어 놨다. 예금(2700만원)과 주식(1500만원)에도 투자해놓고 있지만 1800만원의 은행빚도 지고 있다. B씨가 생각하는 적정생활비는 월 250만원이다.

    B씨뿐만 아니다. 99% 일반 가구도 부동산에 집착하기는 마찬가지다. 전국 가구 자산의 75.8%가 부동산에 묶여 있는 실정이다. 99%가구는 평균 1억원짜리 주택에 살면서 6500만원 어치 비거주 주택에 투자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가격변동은 1%와 99% 모두에게 가장 민감한 지표다.

    문제는 고성장·인구증가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과거와 같은 ‘부동산 신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이미 건설업체는 집을 덜 짓고, 주택 수요자는 집을 사지 않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주거용 건물투자는 2005~2007년에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작년 2분기 -14.9%, 3분기 -17.7%, 4분기 -10.2%에 이어 올해 1분기는 -24%를 기록했다. 지난 9월 서울의 거래량은 총 1만2000건으로 전달보다 19.7% 감소했다.

    그렇다고 전반적인 주거비용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매매값은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전월세 값이 급등해 주거비 부담을 끌어올리고 있다.

    정리하자면 한국 1% 부자의 특징은 부동산을 굴려 부를 축적해 왔고, 그렇게 쌓은 부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주거 형태로는 1%에 드는 알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거주 비중(64.9%)이 높았다. 고액연봉(소득)이나 금융자산에 부가 집중돼 있는 미국 등 선진국의 1% 부자와는 판이하게 다른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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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선 버핏세 약효 제한적 한나라당 일각에서 부자에게 더 높은 세율을 물리는 ‘버핏세’를 도입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버핏세란 세계적인 거부로 꼽히는 워런 버핏이 2010년 “경제위기를 맞아 부유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고 주장한 데서 유래한 용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부자를 골라내 물리는 부유세다.

    현재 거론되는 버핏세는 기존 소득세 세율구간에 최고세율을 추가해서 증권 및 이자소득 등도 합산해 과세하는 방안이다. 현행 소득세 최고세율(35%) 구간은 연소득 8800만원 이상이다.

    그러나 한국 1% 부자에 대한 통계조사 결과를 감안하면 이 같은 과세 방법은 부의 형평성을 해소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선 한국의 경우, 1%와 나머지 99% 간의 소득 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다. 또 금융자산 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에 증권 및 이자소득에 세금을 물리더라도 그 효과가 크지 않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종합부동산세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 부자의 부동산 집중도가 높은 만큼 얼핏 합리적인 대안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노무현 정부가 썼던 핵심적인 처방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내세웠던 논리는 세금을 이기지 못해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으면 주택공급이 늘어나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사정은 딴판이었다. 제도 시행 후인 지난 2006년 집값은 전국 평균 11% 급등했다. 자금 여유가 있는 다주택자들은 집을 파는 대신 다시 오를 때까지 버티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는 무주택자와 대출을 얻어 간신히 집을 마련한 예비 중산층, 집을 발판 삼아 노후생활에 대비해야 하는 중산층이 뒤집어쓰는 상황이 됐다.

    1% 부자와 같은 ‘알부자’ 입장에서는 죽을 때까지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하다가 자식에게 물려줄 때 상속세를 내는 것이 다주택자 중과보다 유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부동산 문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 상당수 전문가들은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다. 1% 부자들의 부동산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방법은 다주택자 중과제도 폐지다. 어찌 보면 1% 부자의 부동산 집중을 부추기는 조치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주택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은 공공임대주택 확대 공급이다.

    하지만 이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이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충분한 공공임대주택이 마련될 때까지는 별도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

    다주택자 중과 폐지는 두 가지 기대효과가 있다. 첫째,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한 부자들이 그 중 일부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이 경우 주택가격 하락에 기여하게 된다. 둘째, 부자들이 세금 걱정하지 않고 주택을 추가 매입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건설업체의 임대용 주택 건설을 촉진시킬 수 있다.

    [이진우 / 매일경제 경제부 차장 jeanoo@mk.co.kr │사진 = 정기택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5호(201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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