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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중국은 한국에 무엇인가
입력 : 2011.09.29 10: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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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굴기(崛起)는 지속된다
장기 침체에 들어선 일본 경제는 결국 지난해 중국에 덜미를 잡혔다. 중국과의 규모 격차는 계속 벌어질 것이다. IMF 전망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미국 경제의 43% 정도까지 몸집을 불릴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의 낮은 물가수준을 반영한 구매력기준으로는 70%를 가뿐히 넘어설 것이다. 위안화 절상 등의 추세를 반영하면, 향후 10년 내 미국도 따라 잡힌다는 계산이 나온다. 과거 일본은 슈퍼 엔고가 진행됐던 1995년 미국의 71%(경상 달러 기준)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이후 부동산거품이 꺼지면서 긴 침체기를 맞았다. 중국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 탓에 경(硬)착륙 우려가 심심찮지만 은행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나, 광대한 주택 실수요층의 존재를 감안할 때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동안 미국 추격이 지속된다는 얘기다.
최근 중국의 고도성장은 대도시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경제력이 집중돼야 도시형 인프라 등 대규모 투자의 수익성이 보장되고 도시민들의 중진국형 소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본토엔 인구 천만이 넘는 메가(mega)시티가 5개나 포진하고 있다. 중국이 인구 대국이 된 것은 가깝게는 마오(毛) 시대의 유산이긴 하지만, 이미 북송시절인 1110년 1억 명을 돌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거의 900년 전 1억 인구를 먹여 살릴 막강한 생산력을 고대 중국이 유지했다는 얘기다. 중국은 오늘날 중국 강계(疆界)의 대부분을 복속시켰던 진시황제의 통일 이후 2000년 동안 글로벌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해온 범상치 않은 대국이었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崛起)는 과거 영화(榮華)의 리바이벌인 셈이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 만족하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 IB들이 휘청거리는 사이 중국은 부쩍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올해 한국 국채를 매집한 핵심 투자자가 바로 중국 은행들이다. 이들은 자국 대형 국유기업들의 해외 인수전에서도 우군으로 자처하고 있어 중국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빈부, 지역, 도농 격차 해소는 폭발력이 큰 난제다. 소득 상승과 함께 권리의식에 눈 뜬 중산층의 정치적 요구가 점차 불거지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지도부가 취임 초부터 당내(黨內) 개혁을 강조해 왔지만, 공산당의 정치개혁 속도는 ‘갈지자’ 수준이다. 중국이 언젠가 당면할 성장 감속기에 이러한 정치적 후진성은 큰 파열음과 함께 체제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다. 내년 가을 5세대 지도부로의 권력 이양기를 앞둔 중국 공산당의 해법이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다.
■ 중국판 글로벌 스탠더드 가능할까중국 인권운동가 류사오보
베이징 컨센서스의 강점은 30년 고도성장이 웅변한다. 성장에 필요한 자원을 집중시켜 높은 효율을 올리거나, 정치 낭비를 제거할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할 수 있는 산업정책도 중국식 국가주도형 성장모델에서 빛을 발했다. 반면 이 같은 효율에 가려진 단점으로는 부패, 인적 권위의 부활, 자본의 전횡, 민간자율의 실종 등이 거론된다. 중국모델의 비판적 지지자들은 이 모델의 특징을 ‘강한 국가, 약한 사회’로 압축한다. 서방이 주장하는 민주주의 부재론(不在論)을 부분 인정하지만,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발전단계에 맞춰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는 신장될 것이라고 변호한다. 민주주의의 개화(開花)시점도 국가가 결정하는 것처럼 들린다.
2008년 말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중국 사회에선 민간 파워보다 국가 및 당의 파워가 강해지는 국부민궁(國富民窮), 국진민퇴(國進民退) 현상이 큰 논란을 불렀다. 대규모 재정을 푸는 과정에서 국유기업의 민영기업 사재기나, 부동산 투자가 극성을 부렸던 것이다. 권력의 속성상 ‘위로부터의’ 점진적인 민주주의는 대단히 어려운 사회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국가 과잉현상은 중국 경제의 고도화에 필수적인 민간부문의 혁신 에너지를 키우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베이징 컨센서스로선 어떤 방식으로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향후 10년 중국 경제의 향배가 훌륭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중국모델이 국제적으로 전파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자국 모델의 해외이식에 신중한 입장이다.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을 서방의 내정간섭과 음모로 간주하는 중국으로선 자국 모델의 효용성을 다른 나라, 이를테면 개도국에 설파할 경우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저 ‘자국 실정에 맞는 개발 및 국가운영 방식’을 주창할 뿐이다.
[박래정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copark@lgeri.com]
중국 랴오닝성 STX다롄 조선소
한·중 경제관계의 현주소 한·중 경제관계가 확장된 결정적 계기는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이다. 양국의 교역은 1992년 양국 수교 이후에도 100억 달러를 밑돌았으나 2005년에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올해는 2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와중에 1990년대 초반까지 줄곧 적자를 기록하던 한·중 무역수지는 1993년 이후 반전되어 작년에는 총 교역액의 4분의 1에 가까운 453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두 나라는 교역뿐 아니라 투자 측면에서도 매우 긴밀하다. 한국은 2011년 6월까지 총 345억 달러의 직접투자를 집행. 미국 다음으로 대중 투자가 많다. 한국으로의 직접투자는 미미한 수준이나 양국 경제의 보완 관계가 커지고 있어 향후 한·중 FTA가 이루어질 경우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양국 경제가 가까워지며 국내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2010년 이후 대중 수출이 국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어섰다. 이는 미국 등 다른 주요 선진국으로의 수출 비중을 모두 합한 것보다 높다.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전자부품, 석유화학 등의 중국 수출 의존도는 각각 56%, 44%에 달한다.
이같은 높은 교역 의존도는 산업구조의 보완성 변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UN 세계무역통계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각국의 무역보완성지수를 살펴보면, 지난 2004년까지만 해도 한국에 대해 가장 보완적인 수입구조를 나타낸 수출 대상국은 아세안(ASEAN)이었다. 다음으로 중국과 미국 등이 차례로 그 뒤를 따랐으나 2007년 중국이 아세안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경쟁하며 협력하는 분업구조 정착 두 나라 경제관계는 교역 외에 ‘분업’에서도 구조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첫 번째는 한·중 교역이 시작된 직후, 중국산 저가 수입제품들이 우리 내수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던 단계이다. 비록 품질은 떨어졌지만 낮은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 완제품들이 기술경쟁력을 갖추지 않은 채 노동집약적 방식으로 생산되던 한국산 제품들과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다수의 한국 기업들이 퇴출되거나 생산지를 중국 등 해외로 옮겨야만 했다.
두 번째는 한국과 중국 간에 임가공을 매개로 생산분업이 시작되는 단계이다. 소형가전이나 의류처럼 제품의 주요 컨셉트와 핵심 부품은 한국에서 기획, 생산하고 노동집약적인 마무리 공정을 중국에서 수행해 최종재를 현지에서 수출하거나 재수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세 번째는 한국과 중국 업체들 간에 생산분업과 수출경쟁이 동시에 진행되는 단계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완제품업체와 중국 부품업체가 생산분업 형태로 교역을 발생시키는 한편, 일본이나 미국 등 역외 시장에서는 같은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인다. 철강, 전자, 석유화학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한·중 간 교역과 분업구조가 ‘산업 간 무역(inter-industry trade)’에서 ‘산업 내 무역(intra-industry trade)’으로 탈바꿈하며 양국 기업 간의 관계도 변했다. 과거에는 수출경쟁력이 약한 내수형 중소기업들이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을 통해 도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경쟁력을 갖춘 수출 중심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중국 수출기업들과 경쟁을 벌이는 동시에 함께 협력하여 세계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는 상생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한·중 간 산업 격차 축소, 발 빠른 대책 필요 양국 교역 및 분업구조의 고도화로 상대적으로 소국인 한국은 ‘Made in China’의 쓰나미에 시달리고 있다. 공산품의 다수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품질도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2001년 말 WTO 가입을 계기로 노동집약적 산업에 강점을 보여 왔던 산업 체질을 점차 기술과 자본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바꾸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생산이 늘어 중국은 고용창출뿐 아니라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세계의 시장’ 미국을 향한 중국 수출업종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2000년 상위 20개 업종 가운데 신발과 완구가 5위권에 들었고 의류·봉제인형·스웨터 등 노동집약적 제품들이 포함됐다. 2010년엔 노트북·휴대폰·영상음향기기 등이 새로이 들어가며 완구·의류·가구 등 노동집약적 산업 품목들을 20위권 밖으로 밀어냈다. 한국도 같은 기간 동안 산업구조의 변화가 반영됐다. 예를 들어 지난 2000년도 대미수출 1위 품목이었던 반도체는 2010년에 9위로 내려앉고 전자레인지, VTR, 스웨터, 남성 의류 등은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현재 대미 수출 1위는 휴대폰이고 자동차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굳건히 2위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산업 격차가 축소되며 한국이 주도했던 품목들을 중국이 대체하고 있다. 2000년에 대미 수출에서 양국이 겹치는 품목은 컴퓨터와 부품, 하드드라이브 등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2010년은 중국이 노트북, 모니터, 비디오카메라 등에서 한국을 앞질렀다.
세계무역통계로 하이테크 제품이 각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중국의 변화가 확연하다. 2000년도 중국의 수출에서 하이테크 제품 비중은 12.3%에서 2009년 33.3%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의 하이테크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3.3%로 높은 편이다. 결국 한국과 중국 모두 하이테크 수출에 집중하고 있으며 세계 시장에서 경합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의 하이테크 수출 비중이 높아지는 데는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정책이 주효했다. 중국 정부는 전자, 반도체, 전기자동차, 태양광에너지 등 미래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적자투성이인 LCD 국유기업들이 정부 지원으로 8세대 투자에 나설 정도이다. 향후 하이테크 기술력과 저가격을 앞세운 중국 부품업체들이 약진한다면 한·중 간 수직 분업관계도 바뀔 수밖에 없다. 산업 분야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중 간 기술 격차는 약 4년 이내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혁신이 답보상태라면 2015년쯤 한·중 간 기술 격차가 사라진다는 계산이다. 한·중 간 산업 격차의 축소 내지 역전을 막을 대책이 시급한 이유이다.
중국의 굴기를 대하는 한국의 자세 중국의 월등해진 경쟁력은 물가수준을 통해서도 체감할 수 있다. 1990년대 중국 대도시에서도 100달러는 환전하기 어려운 거액이었다. 위안화로 환전하면 호텔 1박 및 세끼 식사, 교통비가 단박에 해결됐다. 이젠 100달러로는 중심가 호텔 숙박료 내기도 벅차다. 높아진 물가수준만큼 경제가 만들어내는 부가가치 역시 한 단계 높아진 것이다.
2000년대 중반 한국과 가까운 산동성 해안엔 한국의 ‘한계기업’들이 곳곳에 넘쳐났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시작된 중국 공산당의 격차 해소 정책 탓에 저임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러시가 잦아지자 두 손 털고 철수하는 한국 기업들이 크게 늘었다.
대기업도 중국 기업들의 맹추격에 고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중국 기업들이 생산하지 못했던 한 수 위의 제품을 만들었던 한국 기업들은 어느덧 ‘프리미엄’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프리미엄 지위를 잃는 순간 로컬기업들의 막강한 원가경쟁력과 싸워야 한다. 중국 대졸자들의 취업 희망순위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구미, 일본에 뒤지고 있다. 심지어 박봉의 유력 국유기업보다도 밀리곤 한다.
과거 중국인과 중국 기업들은 한국의 기술력과 마케팅 노하우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이젠 대부분의 산업 영역에서 한국 기업을 배워야 할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다.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점차 독자 브랜드 장사를 하려는 중국 기업이 늘고 있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분야나 친환경 석탄화학, 전기자동차 등 미래 성장산업에서 중국은 이미 글로벌 플레이어들을 배출하기 직전 단계에 와 있다. 중국의 연구개발 인력은 230만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들과 기초과학기술 역량이 결합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리더십을 확보할 수도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라지만, 한국이 더욱 두려워해야 할 것은 중국의 소프트파워다. 수천 년 쌓인 중화문명의 유산이 강력한 경쟁력의 원천임을 중국 공산당이나 기업인들이 체감하고 활용하기 시작한 탓이다. 세계 각국에 ‘공자(孔子)학교’를 세워 중화문명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시작한 중국은 올림픽 엑스포 개최를 통해 과거의 영화를 새삼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등재돼 있는 만큼 세계 최대의 관광대국으로 부상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도 호의적이다. 30년 고도성장의 비결에 관심이 많은 개도국 사회에선 서방세계의 국가운영체제가 중국의 그것보다 반드시 효율적이거나 지향해야 할 목표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중국은 매년 순위를 높여 27위까지 올라왔다. 10년 전엔 40위 밖이었다.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은 2003년 이후의 현상인데, 대중(對中) 수출 비중은 30%대까지 치솟았다. 반면 한국 수입품의 중국 내 비중은 10%선이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한국의 통상 및 안보환경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비대칭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좋은 길은 중국 경제가 한국 경제가 제공하는 ‘가치’를 앞으로도 계속 찾도록 의존성(Lock-in)을 심는 것이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을 늘리면 늘릴수록 일본과는 밑지는 장사를 하는 구조적 의존성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 경제의 업그레이드에 맞춰 한국 경제도 끊임없이 혁신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과거 한국이 중국에 줄 수 있었던 ‘핵심가치’는 자본과 제조 노하우, 핵심부품 등이었다. 이제 중국의 자본은 넘쳐나고 제조 노하우도 바짝 쫓아왔다. 앞으로 한국이 제공해야 할 가치는 몇 가지 핵심기술과 글로벌 마케팅 능력 정도이다. 이 가짓수를 더욱 늘리고 세련미도 추구해야 한다.
중국과 글로벌 파워를 다투기보다 그들의 힘을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중국 기업과 경쟁보다 그들과의 협력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원가경쟁력이나 집적(cocerntration) 효과 등은 중국 기업이 강점을 가진 분야이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 사업부문이나 민영기업과 협력관계는 초기 투자단계에서나 제한적으로 활용해왔다. 중국과 협력해 맺은 결실을 나누겠다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우 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화 패권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자 중국 정부의 위안화 국제화 행보도 본격화된 느낌이다. 중국 경제의 영향력이 나날이 확장되는 것을 감안하면, 위안화의 국제 사용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국제사회도 달러 중심 국제통화체제를 개편하는데 위안화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위안화 국제화를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달러화의 위상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보유외환 3조 달러 중 대부분이 달러화 자산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국제화 정책의 성과는 당장 위안화 무역결제의 증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올 2분기 위안화 결제무역액은 5970억 위안(전체 무역액의 10.2%)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년 동기에 비해 10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이다. 위안화 무역결제가 빠르게 늘어난 이유는 수출주도 성장을 하는 동아시아 경제권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부품 및 반제품의 역내 무역이 크게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내 교역에서 달러결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설령 위안화를 사용하고자 하더라도 달러를 경유해야 하기 때문에 환전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2010년 말레이시아에서 링기트화와 위안화를 직접 환전하는 스팟 거래가 개시되는 등 위안화 결제 확대를 위한 여건이 점차 조성되고 있다. 향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위안화는 주요한 무역결제 통화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진정한 위안화 국제화는 이 단계를 넘어 투자수단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무역결제 자금으로 위안화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를 운용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태부족인데다, 위안화 환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 시장도 발달되어 있지 않다. 실물부문에 비해 금융부문에서 위안화 위상은 현저히 낮은데 이는 중국 금융시장의 폐쇄성 및 후진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 금융 당국은 2000년대 들어 금융 및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은행권 부실청소 및 상장, 단계적 외환자유화 등을 시행해왔으나 속도는 매우 느리다. 향후 중국 정부가 금융 자유화 및 개방의 이점을 얻기 위해 정책 운영의 독립성과 재량권을 훼손시키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중국 금융시장이 글로벌 금융쓰나미를 피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금융시장 미개방’을 서슴없이 거론하고 있다. 지금도 음성적으로 유입되는 투기성 핫머니는 조그마한 금융시장 개방에도 물밀듯 들어와 시장 혼란을 가져올 위험이 크다. 더욱이 중국은 대규모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에 충분한 위안화 유동성을 공급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향후 위안화 국제화는 서서히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은 홍콩 금융시장이 위안화 역외금융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다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3호(201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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