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Ⅱ. 제 2차 글로벌 쇼크 후 세계 경제를 보는 조감도

    입력 : 2011.09.15 16: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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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는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사건이었지만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꿔놓는 커다란 분수령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다. 오일쇼크는 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성장률이 급락하는 이상한 형태의 경기 침체, 즉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처음으로 유발했다. 또 이때를 기점으로 대공황 이후 40여 년간을 군림해오던 케인즈 학파가 퇴조의 길을 걷게 되고 신자유주의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를 주창했다. 자유무역을 통해서 부의 증대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의 세계화도 수반되어야 했다. 세계화는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새로운 추세에 재빨리 올라탄 일본, 한국, 중국과 같은 나라들은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고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부상하는 계기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세계 경제를 서로 벗어날 수 없게 하나로 단단하게 묶어 버렸다. 이렇게 여러 나라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엮이게 될 경우에는 자유무역의 효과가 발생하면서 상호 시너지가 극대화된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진행될 때에는 부정적 효과도 가중된다. 1980년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S&L) 사태나 서브프라임 사태는 규모 측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만 국제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은 금융이 세계화됐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는 위기를 주고받으며 침체가 확대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따라서 작금의 위기는 어느 한 나라의 경제 상황만을 봐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미국, 유럽, 아시아, 신흥국 등 모든 경제와 지역의 상황을 종합 검토해야만 한다.

    미국, 2등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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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8월8일. S&P는 미국을 2등 국가로 낙인찍었다.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AAA가 무너지고 AA+가 된 것이다. 더구나 부정적 전망이라는 옐로카드를 던져 추가 강등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미국 정부의 입장에선 신용등급이 한 계단 내려간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별로 없다. AAA나 AA+나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는 대접을 받는다. 또한 신용등급은 신용등급일 뿐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를 팔기는커녕 오히려 더 사들였다. 미국 국채만한 안전자산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신용평가기관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하는데도 금융시장은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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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미국에 AAA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이 가장 큰 경제 대국이기 때문도 아니고 금융시장이 그렇게 평가해서도 아니다. 이유는 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이다. 신용평가를 받아본 비즈니스맨이라면 신용등급이 어음과 사채에만 매겨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신용등급은 채무불이행 위험 정도를 측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존재하는 한 미국은 대외 채무의 불이행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달러를 찍어서 갚아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물가가 요동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손해를 보는 것이 미국만이 아니고 중국처럼 외환보유고를 쌓아 놓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앉아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흥청망청 써버린 것은 미국이지만 손해는 전 세계가 함께 공유하게 되는 불합리한 사태가 발생한다. 기축통화만의 특권이다. 정부 차원과는 달리 민간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선 어떤 기업이나 은행도 국가 신용등급보다 더 높은 등급을 받을 수는 없다. 따라서 미국 은행과 기업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한 단계씩 강등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투자자들이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면서 금융경색은 악화되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소비자들이 저축을 늘리면서 소비가 둔화된다. 가뜩이나 침체돼 있는 실물 경기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나 영향을 받게 될 것인지, 미국의 경기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현재 미국 경기의 침체 원인은 한마디로 ‘신용경색’이다. 서브 프라임 사태 이전 3천억 달러 내외였던 미국 은행들의 현금 잔고는 2011년 상반기말 현재 2조 달러까지 증가했다. 3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1조7000억 달러의 대출을 회수한 것이다. 미 연방준비위원회(FRB·이하 연준)의 2차에 걸친 양적완화는 은행들이 시장에서 회수해 지급준비금의 형태로 연준에 맡긴 그 1조7000억 달러의 상당 부분을 다시 시장에 투입했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준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미국 신용경색은 회복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미국 은행들의 기업대출은 위기 이전 약 1조6000억 달러에서 2010년 말 1조2000억 달러로 바닥을 찍은 후 증가세로 돌아섰다. 가계 대출도 위기 이전 약 1조3000억 달러에서 2011년 1분기 1조1000억 달러를 밑도는 수준까지 하락했다가 2분기 들면서 역시 증가세로 반전했다. 2년여 동안에 걸친 연준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하고 있었다. 신용창조의 과정이 재개된 것이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간신히 회복의 기조로 들어선 금융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기업 금융 증가세가 둔화되고 가계의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조금씩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던 소비자 금융도 재차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될 경우 2차에 걸친 양적완화를 통해 간신히 물꼬를 돌려놓은 금융시장이 또 다시 경색 국면으로 들어서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재정적자를 감축하라는 압력도 그리 기뻐할 만한 뉴스는 아니다. 미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서면서 재정 부실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재정적자 감축은 그만큼의 소비 수요 감소를 의미하고 그것은 결국 경기침체로 연결될 것이다. 만에 하나 위에서 언급한 금융경색 장기화가 현실화 될 경우 이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실물경기의 더블딥(double dip)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유럽, 답이 없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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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위기도 문제의 원인은 미국과 동일하다. 부동산 버블이 꺼진 점, 재정적자가 대폭 확대된 점, 그리고 국가부채가 100%를 넘어서고 있는 점 등 모든 측면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달러 기축통화로서의 특권을 갖고 있다. 유럽도 유로화가 경화(hard currency)로서 국제 거래에 통용된다는 점에서 달러나 별반 차이가 없긴 하다. 하지만 유로화는 유럽중앙은행(ECB)만이 발권력을 갖고 있다. 개별 국가들은 발권력이 없기 때문에 돈을 찍어서 빚을 갚을 수가 없다.
    유럽중앙은행
    유럽중앙은행
    유럽 국가들은 결국 흑자 재정으로 빚을 갚아야만 하는데, 흑자를 돌리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가 발생하자마자 온 국민이 금모으기에 나섰다. 그 옛날 일제시대에도 물산장려운동을 벌이던 민족이다. 외침이 있을 때마다 관병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의병장이 나서서 전쟁을 치렀던 역사를 가진 나라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봉건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국가 및 사회체제를 정립하는 와중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던 것이 ‘사회계약설’인 걸 보면 국가부도는 알바 아니고 내 연금만 건드리지 말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게 더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 어찌됐든 유럽은 재정적자에 관한한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경상흑자를 통해 빚을 갚는다는 것도 그다지 기대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니다. 문제가 심각한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4개국은 대체로 외국인 관광 비중이 높은 나라들이다. 이중 이탈리아만이 북부를 중심으로 비교적 공업화가 많이 진전된 나라다. 나머지는 산업 기반이 별로 발달되지 못했다. 연금 혜택도 가장 좋은 축에 속하는 나라들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야 할 유인도 별로 없다. 따라서 수출할 만한 물건 자체가 별로 없다. 관광수입도 수입 대금을 지불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재정적자에 경상적자까지 만연돼 있다. 결국 다른 나라로부터 빚을 내서, 다시 말하면 국채를 팔아서 생활하는 처지다.

    경상적자가 누적되면 환율이 반응해서 수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라치면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율이 요동친다. 국내 외환시장에 정부가 개입을 해도 소용이 없다. 홍콩과 같은 역외시장에서 NDF 환율이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화의 가치는 우리나라의 대외적인 경제력을 즉각 반영해 결정된다. 유럽은 17개 국가가 유로화를 사용한다. 따라서 유로화는 17개 국가의 평균적인 대외적 경제력을 반영해 결정된다. 그러다보니 항상 이득을 보는 나라가 생기고 항상 손해를 보는 나라가 있게 마련이다. 독일은 이득을 보는 편이고 그리스는 손해를 보는 편에 속해 있다. 그리스 경상수지가 아무리 많은 적자를 기록해도 유로화는 꿈쩍도 안한다. 독일이 그보다 더 많은 경상 흑자를 기록해 그리스 적자를 상쇄해버리기 때문이다. 만년 경상적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IMF는 현재 7.5%에 달하는 그리스의 재정적자가 2014년 GDP의 2.5% 수준까지 감소한다는 전제하에 그리스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리스 상황을 보면 재정 적자가 2.5%로 감소한다는 전제 자체가 너무 무리한 것이란 평가다. 더구나 재정 적자 규모를 대폭적으로 감축하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 규모가 GDP의 15~20%에 달하는 상황에서 2012년 403억 유로, 2013년 529억 유로의 국채 발행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유럽 4위의 경제국 스페인도 아직은 국채 발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2009년과 2010년에 각각 -8.3%와 -6.3%의 극심한 경기 후퇴를 기록함으로써 부동산 버블 붕괴의 후유증을 그 어느 나라보다 더 심각하게 경험하고 있다. 특히 경제 규모가 다른 PIGS국가보다 크기 때문에 만기 도래 예정인 국채의 규모도 다른 PIGS 국가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상황이며 재정위기로 번지게 될 경우 파급 효과가 다른 PIGS국가보다 훨씬 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재정위기가 PIGS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사태는 이탈리아, 프랑스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다음에는 또 어느 나라가 기다리고 있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건전한 재정을 평가하는 기준은 국채 발행 잔액 GDP의 60% 이내와 재정적자 GDP의 3% 이내 정도다. 이런 잣대를 들이댈 경우 북유럽 몇 나라를 제외하고 안전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 나라들 중 어느 하나만 터져도 국채를 상호 교차 보유하고 있는 유럽 은행들의 특성상 전체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

    이들 국가들은 앞으로 3~4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위기 상황으로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3~4년간 유럽이 저성장 국면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필자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마이너스 성장률만 면하면 천만다행이다.

    일본, ‘추락하는 10년’의 서막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
    일본은 1991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때의 잘못된 정책들로 인해 2000년대의 첫 10년도 ‘이름 없는 10년’으로 보내야만 했다. 부동산 거품 형성 과정과 이후 붕괴 과정에 대한 대응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단카이세대(團塊世代, 1947~1949년생) 이후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도 대응이 늦어 실기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또 일본 정부의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약발이 안 먹히면서 국가 부채비율이 220%와 제로(0) 금리인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재정위기에 휩싸인 나라들 대부분이 부채비율 100% 전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일본이 대외 채무불이행 상태로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일본 국채는 외국인 보유비율이 매우 낮아 대외 채무가 많지 않다. 둘째, 외환 보유고가 1조 달러가 넘는다. 마지막으로 일본 엔화는 어느 정도 국제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220% 국가 부채비율과 제로(0) 금리가 일본 경제의 회생에 걸림돌이 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본 정부는 더 이상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적인 정책 수단이 남아있지 않다.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은 지난 3월11일 진도 9.0의 초대형 대지진까지 터졌다. 당장은 오히려 도호쿠 대지진 복구사업의 영향으로 3분기부터 일본 경제가 활기를 띄게 될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강하다. 지진 복구비용이 20~25조 엔이나 소요될 것으로 추정될 만큼 막대하기 때문이다. 2010년 일본 경상GDP 479조 엔의 5%에 달하는 규모인데다 유발효과까지 감안하면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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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구사업으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마냥 좋아만 할 일인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진도 9.0의 강진이면 타격이 엄청날 텐데, 지진 발생 당시에 한번만 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이후부터는 경제가 성장한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도호쿠 대지진의 중장기적 영향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일본 경제는 점차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일본 국가 부채는 당분간 증가세를 지속할 수밖에 없어서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2011년 일본은 또 다시 적자 재정을 계획하고 있으며 44조 엔의 국채를 발행하여 적자를 보전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이번 지진 복구를 위한 추가 예산으로 국가 부채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두 번째는 대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trauma)이 엑소더스(exodus)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대다수의 지진은 한신 지역에 집중됐고 도호쿠 지역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졌다. 이이 따라 대부분의 일본의 공업기반은 도호쿠 지역에 집중돼 있다. 그런 도호쿠 지역에 강진이 발생하면서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외국인은 물론 일본인들도 일본을 떠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동경 소재 아시아 지역본사를 서울로 옮겼거나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셋째,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쇠퇴해가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제2차 오일쇼크 이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부상했다. 도요타와 혼다가 높은 연비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미국시장을 휩쓸었고 소니는 워크맨과 브라운관 TV로 융단폭격을 했다. 그 덕에 크라이슬러가 회복을 하지 못하고 2류 기업으로 추락했다. 세계 최고의 TV 제조업체 제니스(Zenith)는 결국 도산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이렇게 화려하게 부상한 일본기업들의 경쟁력이 예전만 못하다. 소니는 브라운관 TV를 고집하다 삼성전자에 추월당했고, 도요타는 원가절감을 위한 카이젠(改善)에만 매달리다 초래한 대형 리콜 사태를 분수령으로 그 위세가 꺾여가는 상황이다.

    넷째, 과도한 수출지향적인 경제 정책으로 내수가 회생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했다. 버블경제의 붕괴 이후 재정 건전성을 상실한 일본 소비자들은 모든 소비 행태는 절약과 노후 대비로 모아졌다. 그러다보니 내수는 점점 침체됐고 그나마 믿을 건 수출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렇게 일본이 수출에 올인(all-in)하는 사이 내수는 회생 불가능한 지경에 도달했다. 한편,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엔저 정책으로 누적된 엔 캐리트레이드 자금이 세계 금융위기라는 급변 사태를 맞이해 본국으로 대량 환류 되는 바람에 슈퍼 엔고 사태를 초래했고 일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마저 망가뜨리고 있다.

    결국 일본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회생이 어려운 상태가 됐다. 모든 부문이 망가진 상태에서 모든 정책 수단을 다 소진했다. 더구나 내각제라는 정치체제의 특성상 그 어떤 지도자도 위기를 돌파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없다. 1980년대 들어 세계무대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일본은 1995년에 미국 GDP의 71%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과 ‘이름 없는 10년’의 20년 동안 일본 경제는 조금씩 기력을 잃어왔고 2010년엔 드디어 세계 2위 자리마저도 중국에 내주게 됐다. 일본은 아직도 추락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회의 중인 벤 버냉키(오른쪽)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회의 중인 벤 버냉키(오른쪽)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중국, 세계의 백기사? 서브 프라임 사태에 가장 주목을 받는 국가는 단연 중국이었다. 당시 세계는 중국이 세계적인 위상(당시 3위)에 걸맞은 수준의 기여를 하길 원했다. 그리고 중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전 세계가 망가지는 상황에서 중국은 자그마치 4조 위안(원화 환산액 680조원)을 경기 부양에 쏟아 넣으면서 세계 경제를 떠받쳤다. 하지만 중국이 밑지는 장사를 한 것만은 아니다. 중국은 일본이나 한국처럼 수출에 과도하게 편중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중국은 훨씬 더 심하다. 따라서 세계 경제에 급격한 수요 조정이 있을 경우 중국은 과잉 생산 설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그것이 경제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또한 1980년 이후 30여 년간 지속된 불균형 발전으로 인해 중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그에 따른 양극화 문제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정도가 됐다. 이런 문제의식은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그대로 담겨 있다. 바로 내수 산업 확대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자동차와 가전의 하향(下鄕) 및 이구환신(以舊換新)에서부터 내륙 개발을 위한 SOC 인프라 투자까지 내수와 내륙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었다.

    이와 같은 강력한 내수 부양은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택 1천만호 건설 정책은 과거 노태우 정권 시절의 200만호 건설 경험에서 보듯이 물가를 자극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도 이상 기후에 의한 신선식품 가격 급등과 국제 원유가 원자재가 급등의 여파까지 그대로 떠안고 있다. 결국 지난 6월 중국의 소비자 물가가 2008년 7월 이후 다시 6%대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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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가파른 물가 상승세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은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와 지준율을 인상해왔다. 더구나 중국내 물가 안정 차원에서 중국 정부는 위안화의 절상을 용인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7월 현재 위안화의 대미 달러 환율은 6.47위안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연초 기준 2%. 1년 전 기준 5%가 절상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중인 경상수지 흑자폭을 축소하고 수입물가 압력을 경감하기 위해 위안화 절상을 계속 용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책의 결과로서 총통화증가율 하락과 함께 경기선행지수가 둔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경기의 고도 성장세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중국 경제는 별다른 문제만 없으면 경착륙으로 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우려가 되는 것은 그동안 중국의 내수 성장이 소비자 금융의 증가에 의존한 바가 크다는 점이다. 지난 2009~2010년의 2년간 중국의 누적 금융부채 증가율은 66%에 달한다.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금융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한 나라는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홍콩,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위기 이후 아시아 지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이 금융부채의 증가에 의존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국의 소비자 금융부채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소비자 금융부채는 지난 2008년 말 GDP의 11.9%에 불과했으나 2010년 말에는 18.9%를 기록했고 2011년 말에는 2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금융에 의존한 성장은 필연적으로 거품 붕괴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 서브 프라임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도 가계의 과도한 주택금융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2002년 카드대란 때에도 카드론과 판매신용 잔액이 GDP의 20%를 넘었다.

    지금까지는 중국이 세계 경제의 백기사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 역할을 지속할 수 있는 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연착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더 합리적인 기대인지도 모른다. 물가나 소비자금융 등 모든 측면에서 과열의 파열음이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엇박자가 난 정책 우리나라는 지난 수년간 가장 빨리 그리고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한 나라로 꼽혔다. 2008년 4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3.3%의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2009년은 0.3%의 플러스 성장으로 방어해냈다. 이후 2010년은 6.2로 2000년대 들어서 가장 높은 연간 성장률을 기록했고 2011년에도 1분기 4.2%, 2분기 3.4%로 순항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빠른 회복세를 보인 것은 단연 원화 약세에 따른 수출 증가가 일등공신이다. 우리 제품들의 비가격 경쟁력이 일본 수준을 거의 따라 잡은 것도 한 이유가 된다. 다시 말하면 품질은 거의 비슷한데 가격측면에선 일본 제품에 비해 훨씬 더 메리트가 있으니 우리 수출이 가장 빠른 속도로 회복됐던 것이다. 이에 더해 전 세계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재정 정책과 제로(0) 수준에 가까운 팽창 통화 정책을 구사해 경기를 부양해온 것도 득이 됐다. 특히 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으로의 수출 저변 확대 노력에 이들 국가들의 빠른 내수 경기 회복세가 맞물려서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향후에도 이와 같은 회복이 가능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no)’다. 우선 세계 경기가 더블딥으로 들어갈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미국은 금융경색이 풀리려는 찰나에 신용등급 강등과 재정적자 감축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유럽은 마이너스 성장을 감수하더라도 재정적자를 대폭 줄여야만 한다.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대부분 국가들은 높은 물가상승압력에 힘들어 하고 있을뿐더러 소비자금융 증가에 힘입은 최근의 경제성장이 언제 버블 붕괴로 바뀔지 알 수 없다. 수출시장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내수시장 역시 별로 기대할 것은 없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내수의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정책보다 수출에 의존한 성장률 정책에 매달려 왔다. 고환율 정책은 수출에는 도움이 되지만 물가를 자극해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수출기업의 선방이 내수 경기로 이어지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이것이 수출과 내수,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또는 괴리 현상이 완전히 고착된 상황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성장률에 집착한 저금리 정책은 가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가계부채가 늘어나도록 허용해 왔고, 그 결과로 가계의 소비 여력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아진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쳐다볼 것은 정부의 경기부양 노력이 될 것이다. 세계 경제의 더블딥으로 수출시장과 내수시장이 동시에 침체의 늪에 빠지면 마지막 수단은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도 그다지 많은 정책 수단이 남아있는 상태는 아니다. 금리는 그동안 너무 올리지 않아서 인하 여력이 별로 없다. 미국 흉내를 내서 제로 금리로 간다 하더라도 3.25%에 불과하다. 통화량은 지금도 이미 너무 많이 풀린 상태다.

    2008년 말부터 2010년 말까지 경상 GDP는 20% 증가했는데 통화량은 30%나 풀려나갔다. 양적완화는 사용할 수 없는 수단이란 의미이다.

    재정정책도 그렇게 많은 여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정부 회계 방식에선 정부부채가 GDP의 3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새로운 회계 방식을 적용해 연금부채까지 합산할 경우 GDP의 70%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LH공사처럼 부실화된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하면 우리가 남유럽 국가보다 나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우리 정부는 2008년 위기가 발생한 직후 이에 대한 대처를 너무도 효과적으로 잘했다. 재정 확장이나 금리 인하가 적기에 속도감 있게 잘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 출구전략에서 엇박자가 났다. 금리나 통화 긴축이 너무 더뎠고 환율도 조금 빠른 속도로 절상되도록 용인해야만 했다. 그런 엇박자의 결과가 당장은 4%대의 물가로 나타났고 또 더블딥이 발생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에 제약 요인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가 진짜 위기다. 이번 위기는 골도 깊고 기간도 오래 지속될 것이다. 침체의 원인이 수요 측, 즉 가계와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격랑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다.

    [한상완 /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 swhan@hri.co.kr]



    미국 이어 프랑스도 AAA등급 잃을 위험
    국가 신용등급에 울고 웃는 세계
    전문가들은 프랑스 이외에 영국·독일·네덜란드·덴마크 등 주로 유럽국에 집중된 다른 AAA 국가들도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이외에 영국·독일·네덜란드·덴마크 등 주로 유럽국에 집중된 다른 AAA 국가들도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내린 이후 국가 신용등급에 대한 관심이 새삼 고조되고 있다. 과거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현실화하자 시장에 나타난 반응은 공포 그 자체였다. 미국의 등급 하락에 그처럼 시장이 격렬하게 반응한 이유는 과거에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데 따른 불안감 때문이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다른 나라도 얼마든지 등급이 갑자기 떨어질 수 있음을 재확인시킨 계기가 됐다.

    실제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지 열흘도 안돼 프랑스도 AAA 등급을 잃을 수 있다는 염려가 나왔다.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경제 성장률이 예상을 밑돌 것으로 염려되자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들이 등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황위안산 홍콩 중문대 교수는 최근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은 이미 파산했고, 스페인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유럽 부채 위기의 불이 이탈리아로 옮겨 붙었고 이 불을 잡지 못하면 다음 목표는 프랑스가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프랑스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80%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 멈춰버린다면 프랑스가 2년 내에 분명히 전 세계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 교수는 “지금의 유로존 위기는 적벽대전에서 모든 배가 서로 연결돼 끊기 힘든 가운데 불이 붙은 것과 같다”며 “유럽은 중앙은행이 통일됐지만 재정이 통일되지 않아 위기 돌파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이외에 영국·독일·네덜란드·덴마크 등 주로 유럽국에 집중된 다른 AAA 국가들도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벌써 2년을 넘어선 재정위기를 유럽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그리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처럼 양적완화 정책을 즉각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유로존 내 통화팽창 가능성으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다. 새로 대출을 받아 과거 부채를 갚아 나가면서 시간을 끌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유럽의 재정상태는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유럽이 부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경제성장밖에 없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채무압력에 시달리는 유럽내 주요 국가들의 경제마저 침체되고 성장동력이 약해지면 몇 년 뒤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염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내부 정치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제체질이 강한 독일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시나리오가 최선으로 완성될지 아니면 최악으로 치달을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이런 혼란에 빠뜨린 주범으로 지목되는 신용평가기관들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S&P를 비롯해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이 시장을 뒤흔든 전례는 물론 이번만이 아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물론 러시아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까지 위기가 클라이막스로 치달을 때마다 나타나 위기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자주 했다. 이들이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방법은 금융·자본 자유화가 진전되지 않은 1980년대 이전에는 다소 간단했다. 채무불이행 가능성에 초첨을 맞춰 재정과 경상수지, 부채비율 등 몇몇 지표 위주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네트워크가 본격화되면서 신용평가도 복잡해졌다.

    S&P의 경우 정치적 위험, 외채관리 위험, 경제적 위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위험에는 정권의 안정성, 군부의 정치개입, 부패 정도 등이 반영되고 외채관리 위험에는 외채 상환 능력, 환율 안정성, 외환보유고 등이 감안된다. 경제적 위험에는 경제성장률, 경제정책, 물가상승률, 경상수지 등이 포함된다. 특히 외채상환 능력과 경제적 요소의 가중치가 크다.

    이들이 자리에 앉아서 인터넷에 뜬 통계자료만 보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아니다. 국가신용도 평가를 위해 해마다 각 국에 직원을 보내 정부와 금융기관, 민간기업 등을 돌아보고 관계자와 면담하거나 현장실사를 진행한다. 무디스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금융위, 외교부, 한국은행은 물론 노동자단체와 전경련까지 방문해 자료를 수집한다”며 “인터뷰와 비공개 자료 열람을 통해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정보를 획득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국제신용평가기관이 매긴 기업이나 금융기관, 국가신용도는 금융기관, 기업, 정부 등이 융자나 투자를 할 때 주요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신용평가 결과가 한 나라의 경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등급에 따라 국민 경제 전반에 걸쳐 자금 조달 비용에 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등급을 올리면 그것만으로 즉시 해당국 금융기관과 기업은 전보다 낮은 금리 등 유리한 조건으로 해외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등급이 떨어지면 자금 융통이 어려워져 즉시 타격을 입는다. 대출금리를 더 내야하거나 아예 자금융통을 거절당하기도 한다.

    사진설명
    한국과는 악연 지속 신용평가 결과는 우리나라에도 골치 아픈 존재였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것이 바로 신용등급 강등이었다.

    당시 한보철강에서 시작된 줄부도 사태가 삼미, 진로, 해태, 기아차 등으로 이어지자 S&P는 1997년 10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에 자극받은 무디스도 불과 사흘 뒤 국가 신용등급에 직결되는 외화표시장기예금 신용등급을 A1에서 A2로 한 단계 내렸다. 두 기관이 거의 동시에 신용등급을 강등하자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 기관이 발행한 채권의 가산금리가 사상 최대 폭으로 치솟으면서 매수세가 실종됐다. 이후 3대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연쇄 강등 조치는 무자비했다.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S&P는 신용등급 10계단을, 피치는 12계단을 내렸다.

    이들과 한국의 악연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무디스를 제외한 S&P와 피치는 여전히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외환위기 이전으로 돌려놓지 않았다.

    [정혁훈 / 매일경제 국제부 차장 moneyjung@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2호(2011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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