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1. [Real Estate] ④ 늘 오르는 집값… 그 이후의 세상

    입력 : 2011.09.15 16:52:53

  • ◆ 2011 하반기 부동산 & 증시 투자 전망 ◆

    잠실아파트 단지.
    잠실아파트 단지.
    ‘집값은 늘 오른다.’ 지난 반세기 이상 한국 사회를 지탱해왔던 기본 전제다. 이 전제 위에 기업은 사업을 벌였다. 가계와 개인은 재테크를 했고 은행은 돈을 빌려줬다. 그런데 이게 허물어지고 있다. 최근 주택을 매입하려는 수요가 줄어들면서 거래는 실종됐고 가격도 안정화 추세다. 2009년 이후 넘치는 시중 유동자금도 집값 상승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론 국지적으로는 집값이 들썩이는 지역이 존재한다. 세종시와 과학벨트 호재에 힘입은 대전 지역이 대표적이다. 또 전문가마다 전망이 엇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와 전망은 ‘꾸준한 내리막길’이 우세하다. 적어도 2003~2006년 경험했던 짜릿한 집값 급등은 당분간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이견이 없다. 심지어 오름세가 주춤한 것은 물론이고 본격적인 집값 하락 시대가 시작됐다는 진단도 적지 않다. 집에 대한 패러다임이 달라진 것이다.

    집값 상승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어 ‘집값 상승시대’에서 ‘집값 유지·하락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면 한국 경제와 재테크 전략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깡통 아파트(매매가격이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의 합보다 낮아진 아파트)’는 더 이상 가상현실이 아니다. 집값이 폭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파트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지면 한국경제 지형에 급격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자산가들이 주택투자의 환금성과 수익률에 의심을 품게 되고 주택수요는 매매가 아닌 전월세 등 임대수요에 몰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거래패턴도 힘들어진다. 이는 추가적인 집값 하락과 전세값 상승, 반전세 및 월세 확대의 변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미 부분적으로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집값 유지·하락시대’의 패러다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가지 명제를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집값은 시간과 가격의 함수라는 사실이다. 집값이 제자리라도 그 기간이 길어지면 재산가치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선 물가상승분을 감안해야 한다. 집값이 그대로인 채로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재산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대출을 끼고 주택을 구입한 경우라면 상황이 훨씬 심각해진다. 갚아 나가는 대출이자는 투자원금을 까먹는 효과를 발휘한다. 여기에 금리까지 오른다면 부담은 더 커진다.

    최근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은 집값과 관련해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은 ‘주택가격의 장기 침체에 따른 자산효과’다. 집값 하락과 금리 인상이 민간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인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주택 가격이 하락할 때는 물론이고 보합세를 유지하더라도 민간소비를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다. 이 논문에 따르면 집값에 변동이 없더라도 민간소비는 1년차에 0.82%, 2년차에 1.50% 각각 줄어든다. 살림살이에 여유가 없어지는 마당에 민간소비가 늘어날 리가 만무하다는 논리다. 집값이 시간과 가격의 함수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셈이다.

    만약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진다면? 그 결과는 재앙에 가깝다. 이 논문에 따르면 주택가격이 매년 10% 하락하고 금리가 8%포인트 인상되면 민간소비 감소폭은 1년차 5.63%, 2년차 6.15%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인들에게 ‘집’이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전체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재테크 과정에서의 의존도가 막대하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앞서 나간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부동산 비중 줄이고 금융자산 늘리야
    사진설명
    이런 상황에서 ‘집값은 계속 오른다’는 한국 사회의 기본 전제가 흔들린다면 기존의 재테크 계획은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전 재산의 75.8%를 부동산에 묶어둔 대한민국 가계들은 은퇴설계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하게 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가계수지와 자산 금융조사를 토대로 ‘부동산 가격 변동에 따른 은퇴시점 자산’을 분석해봤다. 집값이 매년 1%씩만 하락해도 대출을 낀 가계에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의 재산가치 하락에 대출이자 부담이 겹치면서 노후를 ‘하우스 푸어(집을 가졌기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계층)’로 보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한민국 평균 40세 가장 A씨가 2억원짜리 집을 팔고 2억원 담보대출을 받아 4억원에 주택을 구입한 뒤 가격이 그대로 유지됐다고 가정해 보자. 통계청에서 조사한 대한민국 가구당 평균 자산(부동산 2억662만원, 금융자산 5828만원, 기타자산 779만원, 금융부채액 2884만원, 임대보증금 1380만원 등)을 감안한 것이다.

    A씨가 20년간 꼬박 일하고 저축할 경우 은퇴시점(60세)에 국민연금을 포함한 노후재산은 4억5000만원이다. 물가상승률과 연간 투자수익률은 각각 3.5%, 5%로 가정했다. 4억5000만원이라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안정적이거나 풍족한 노후생활을 꿈꾸기에는 빠듯하다.

    집값이 매년 1%씩 하락한다면 사정은 매우 팍팍해진다. 은퇴 시 손에 떨어지는 노후재산은 3억8200만원. 이는 노후(61~85세)에 부부가 생활비와 의료비 등으로 매월 127만원의 기초 생활만 가능한 정도다. 자녀 학자금이나 결혼비용 등에 들어가는 목돈을 감안하면 기초 생활도 힘들 정도다. 일단 모임 회비나 축의금, 부의금은 엄두도 못 낸다. 사실상의 하우스 푸어다.

    만약 집값이 20년 새 반 토막 나서 2억원에 머문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대출이자와 대출원금, 총 4억4000만원을 감안했을 때 부동산에서 2억4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총 노후자금도 2억5500만원으로 급격히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국가나 사회의 보조를 받지 않고서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품위를 유지하는 노후생활을 가정해 보자. 도대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기본생활비 월 50만원의 사회 활동비(문화생활비·경조사비), 월 25만원의 차량유지비, 해외여행 연 1회, 월 1회 골프 등의 안정적인 삶을 즐기려고 한다면 적어도 10억3300만원이 있어야 한다. A씨의 경우 20년간 집값이 매년 4% 이상 상승해야만 가능한 노후자금 수준이다. 부동산 가격 기준으로 보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가격이 올라야 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대출을 끼고 주택을 구입한 경우 집값의 정체나 하락은 ‘대재앙’이다. 과거처럼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시대가 됐다. 특히 시세차익을 노리고 여러 채를 보유하고 있다면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마냥 오를 줄만 알았던 집값이 꺾이고 있다면 개인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지향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금융자산을 늘리는 것이다. 한국 가계 자산 구성에서 부동산은 75.8%로 이미 최고점에 도달했으며 금융자산 21.4%, 기타자산 2.9% 순이다. 금융투자협회 조사 결과 일본과 미국 가계자산에서 부동산 비율이 각각 41.3%, 35.1%인 것과 비교된다.

    따라서 지금처럼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가 적다면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늘리기보다는 매년 4~5%씩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간접투자상품이나 개인연금이 매력적일 수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을 기본으로 하되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등을 활용한 다층적 소득보장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뻔한 얘기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뻔한 얘기다. 하지만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 됐다. 자영업자는 더욱 그렇다.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없는 자영업자는 직장인들보다 노후 준비금을 더 모아둬야 한다.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과 함께 4대 사회보험 중 하나인 국민연금은 기본적인 노후생활을 위한 필수 아이템이다. 지난해 임의가입 범위가 확대됐기 때문에 직장이 없는 전업주부 등도 서둘러 가입해 가입 기한을 최대한 늘려 놓는 게 유리하다.

    집값 유지·하락시대 노후준비 제대로 해야
    집값 하락시대 노후준비가 중요해졌다.
    집값 하락시대 노후준비가 중요해졌다.
    공적연금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실시된 개인연금은 만 18세 이상 모든 국민이 가입할 수 있고 가입 기간은 최소 10년이다. 2001년 이후 가입 분은 납입액(연간 300만원 한도 내)의 100%가 소득공제되며 연금 수령 시 5.5%의 소득세를 내야 한다. 연금 지급 기간과 형태에 따라 다양한 상품이 시중에 나와 있으므로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부동산 투자, 아파트 투자는 이제 완전 ‘끝장’이 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여러 개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넣지 말라는 투자 격언처럼 위험 분산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위해서도 부동산 투자의 필요성은 여전하다. 다만 기대수익률은 과거보다 낮아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 패턴도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노후 대비의 대명사 격이었던 아파트와 상가의 빈자리를 원룸이나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등이 메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 여부다. 최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한 보고서를 통해 20년 뒤 국내 주택수요가 현재의 70%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주택수요가 2030년까지 평균적으로 매년 7000∼8000가구씩 감소할 것이란 예측이다. 국내 주택수요는 2011년 현재 43만 가구로 추산되는데 2020년에는 그 숫자가 36만∼37만 가구, 2030년에는 30만 가구 정도로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다. 2010년의 70%대 수준이다. 연구원은 2010년 중반 이후에 주택공급 과잉 현상을 우려하기도 했다.

    상가도 마찬가지다. 국내 상가 점포 공급은 꾸준한 증가 추세다. 국세청이 올해 초 기준시가를 고시한 상가점포 수는 총 44만2318개로 5년 전인 2006년 초와 비교하면 무려 43%나 증가했다. 하지만 상가 수요자라고 할 수 있는 자영업자 수는 2002년 619만명에서 2009년 571만명으로 급감했다. 도소매업 등 국내 자영업자들은 대형 전문업체로의 수요 이탈과 온라인 구매 확산 등의 영향으로 시장 퇴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사업체 가운데 종업원 4인 이하의 영세업체 수 역시 2000년 143만 개에서 2008년 133만 개로 줄어들었다. 상가점포에 대한 신규 임차수요는커녕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수요마저 빠른 속도로 사그라지고 있는 셈이다.

    집값이 떨어지는 시대는 한국 경제와 한국인들이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신천지다. 하지만 한국보다 앞서 그런 경지에 접어든 나라들이 적지 않다.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고 있는 일본을 비롯해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발 경제위기를 겪은 미국이 대표적이다. 이들 나라에서도 ‘갈수록 떨어지는 집값’은 재테크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된 이후 일본에선 은행 정기예금 이자보다 다소 높은 임대수익을 안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이 투자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간접투자상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주택은 안전자산이 아닌 위험자산으로, 자본재가 아닌 소비재로 취급되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다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세상은 언제나 바뀐다. 집값 하락시대도 마찬가지다. 이제 한국 차례일 뿐이다.

    [이진우 / 매일경제 경제부 차장 jeanoo@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호(2011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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