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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2. [Investment] ② 외국인 자본 변수… 2차 양적완화 이후의 투자 전략
입력 : 2011.09.15 16: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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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하반기 부동산 & 증시 투자 전망 ◆
외국인 매도가 이어지면서 국내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조정받고 있다.
6월 전 세계 자산시장을 떠받쳐 온 미국발 ‘달러 공급’이 끝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차 양적완화(QE2)가 6월로 끝났기 때문이다.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는 초저금리 상태에서 FRB 같은 중앙은행들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국채매입 등을 통해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2008년 9월 금융위기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조7000억 달러와 6000억 달러를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이 돈은 미국에만 머물지 않고 전 세계 투자처를 향해 퍼져나가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렸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에 따르면 FRB의 2차 양적완화가 시작된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중국,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제수지 흑자 비율은 8%를 넘어섰다. 2차 양적완화 시행 이전 평균 3.5% 수준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양적완화 덕분에 넉넉해진 돈이 신흥시장으로 많이 흘러들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2차 양적완화 조치 후 세계경제 불안 조짐?지난해 11월28일 유럽 재정위기 확산 가능성에 유럽연합(EU) 회원국 재무장관들이 브뤼셀에 모여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엔더스 보그(스웨덴), 조지 오스본(영국), 디디에 레인더스(벨기에), 엘레나 살가도(스페인) 재무장관.
5월12~25일 두 주간 신흥시장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26억7400만 달러(2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후 자금이 다소 유입됐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한번 바뀐 자금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신흥국의 대표 격인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중국·인도)만 봐도 5월 한 달간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15억5000만 달러나 된다.
금융 중심지인 미국 월가도 술렁이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와 고유가 등 세계경제의 위험 요인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주가와 국채시장을 떠받쳐온 2차 양적완화마저 끝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구글, 존슨앤드존슨, 휴렛패커드(HP) 등 대기업들이 “금리가 쌀 때 미리 자금을 조달해 놓자”며 최근 앞 다퉈 회사채 발행에 나서기도 했다. HP는 4월25일 만기 2~10년 회사채를 창사 이래 최대 규모로 발행해 50억 달러를 조달했다. 5월 들어 20일까지 미국의 회사채 발행 총액이 68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발행한 총액의 2.8배에 달했다. 양적완화가 끝나기 전에 낮은 금리로 미리 자금을 조달해두려는 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반도체회사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는 1999년 이후 처음으로 35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2년물 채권의 금리는 1%에도 미치지 않았다.
그동안 양적완화 조치의 효과 중 하나는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분위기를 조성이었다. 돈이 넘치니 위험 자산으로 자연스럽게 돈이 흘러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가 끝나면 주식 등 위험자산보다는 채권 같은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5월 들어 미국 다우지수는 유럽발 재정위기 등 악재가 겹치면서 하락하는 추세다. 지난달 19~25일 글로벌 주식형 펀드에선 92억7000만 달러가 순유출 됐다. 반면 같은 기간 글로벌 채권형 펀드엔 45억3000만 달러가 순유입 됐다. 채권 수요가 커지면서 금리도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 덕분이다. 짐 캐론 모건스탠리 글로벌채권시장 대표는 “미국 연준의 국채매입 중단 후에는 결국 채권 금리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야를 국내로 좁혀보자. 외국인 자금 유출 현상이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5월1~31일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은 2조5615억원을 팔았다. 4월 한 달간 3조원 넘게 순매수를 한 것과는 딴판이다. 최근 외국인이 다시 매수를 하는 모습이 나타나지만 흐름을 돌릴 만한 규모는 아니다. 이렇다보니 코스피지수는 5월 중순 이후 2100 전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외국인 매도세를 기관과 개인이 겨우 떠받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높아지면 채권 수요가 늘지만 한국 등 신흥시장 채권은 선진시장 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한국의 채권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
양적완화 종료 장기적인 영향은 미미미국 양적완화 조치의 세 주인공. 왼쪽부터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벤 버냉키 FRB 의장.
전문가들은 QE2 종료와 함께 경기가 고꾸라지는 더블딥의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최근 미국 가계 신용이 전월비 기준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자생적 회복의 초입에 들어온 것이라는 것이 근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최근 “미국 경제 회복 속도가 원하는 만큼의 일자리를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느리지만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 회복이 빠르게 이뤄진다면 주식이 유리하고 채권은 불리하다.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신흥국 주식과 원자재도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국내 코스피는 일시적인 조정을 거친 후 다시 상승 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4분기나 내년 1분기로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기까지 주식이 유리한 환경에 돌입한다. 반대로 미국 경제 회복이 늦어져 경기 둔화가 찾아오면 채권이 유리하고 주식은 불리해진다. 이는 미국 주식시장의 약세로 나타나 국내 주식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종목별로는 경기에 민감한 종목보다는 금융, 소비재, 유통 등 경기방어주 성격의 주식이 상대적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한국 등 신흥국 채권이 위험자산으로 간주돼 오히려 버림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양적완화 종료에 대한 FRB의 입장은 낙관적이다. 시장이 충분히 감내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위해 당분간 QE2에 사실상 버금가는 정책을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유동성 공급이 끝났을 때 금융시장이 느낄 ‘금단현상’에 대비해 당분간 경기부양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QE3 없어도 시장이 감내할 수 있을 것 QE2 종료 이후 FRB가 내놓을 카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상당 기간 채권 매입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금리 방향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4월 회의록에 따르면 FRB가 금리를 올리거나 채권 매입을 중단하는 등의 출구전략은 단기간 내에 시행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벤 버냉키 FRB 의장도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 “6월 이후에도 연준이 보유한 채권의 만기도래분을 재투자하는 정책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QE2 종료 이후 채권시장에서 FRB가 채권 매수자 역할을 중단하더라도 대체세력이 등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매수세에 참여하지 않았던 기관들이 채권 매입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연준이 1차 양적완화(QE1)를 마감했을 때 투자자들이 국채시장에 대거 몰려들었던 것과 같은 현상이 이번에도 재현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크레디트 스위스의 금리 전략가 아이라 저지는 “QE1이 종료된 이후 채권 매수 세력이 시장에 돌아왔다. 이번에도 채권 매수 세력이 돌아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3차 양적완화정책(QE3)에 대해 내심 기대하는 눈치도 보인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4월 FOMC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2차 양적완화 이후 3차 양적완화정책 가능성에 대해 “향후 경기전망에 ‘큰 변화가 있어야만’ 시행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사실상 QE3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버냉키 의장도 6월7일 애틀랜타에서 열린 전미은행가협회(ABA) 연설에서 미국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고 불규칙하다고 진단하면서도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 뒤 “미국 경제가 건실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재정적자 감축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원자재 가격도 관심사다. 원자재 가격과 관련해서는 QE2 종료 이후 달러화 가치의 흐름이 중요하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QE2가 끝나면 공급이 더 이상 늘지 않게 되는 달러화의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다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취약해진 유로화와 비교해 달러화는 더욱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재 가격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달러화 가치가 완만하게 상승하거나 글로벌 경기 회복세 자체가 강할 경우 원자재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원자재 랠리는 지속될 수 있다. 원자재 가격이 세계 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가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원자재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한 달 만에 뒤집은 것은 수요 측면에서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상훈 / 매일경제 국제부 기자 karlle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호(2011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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