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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한·미 관계 | 韓은 권력공백기 “트럼프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날라” 우려
입력 : 2025.01.31 17: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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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권력 공백기와 미국의 권력 교체기를 맞아 양국 공식·비공식 외교 채널이 가동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는 검증되지 않거나 심지어 문제의 소지가 있는 로비스트가 연루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 현지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자칫 혼란한 정국을 이용하는 로비스트에 이용당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인 요주의 인물로 폴 매너포트(75)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 선대본부장이 꼽힌다. 그는 올 1월 한국을 방문해 홍준표 대구시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국내 유력 정치인과 경제인을 만났다.
일부 언론에서는 매너포트 전 본부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며 트럼프 시대 한·미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트럼프 취임식에 한국 정치인들을 일부 초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 현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경계하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 14일 “트럼프가 사면한 매너포트 해외 비즈니스 추진”이라는 제목에서 매너포트가 트럼프 관련 인물들과 함께 팀을 꾸려 해외 로비 사업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매너포트가 지난 2016년 트럼프 1기 대선 캠프를 총괄한 것은 맞지만 몇 달 버티지 못했으며, 지금은 여러 나라와 트럼프 대통령을 연결해주겠다는 사업을 준비 중이다.
매너포트는 구체적으로 극우 성향의 프랑스 정치인 마린 르펜을 포함한 이민 반대 정치인을 지지하는 프랑스 갑부나 페루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리마 시장, 우크라이나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컨설팅 서비스를 검토 중이다.
미국 정계에 밝은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매너포트는 지난 2016년 트럼프와 처음 만나 대선 캠프 선대본부장이 되었지만 이후 사위 쿠슈너가 매너포트가 러시아와 너무 깊게 연관되어 있어 위험하다는 의견을 트럼프에 전달한 후 두달 만에 경질되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최근 한국이 권력 공백기를 맞아 사기꾼에 가까운 미국 로비스트를 마치 칙사처럼 대우하게 되면 국가 이익에 반하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 취임식 행사 초청장은 무기명으로 그 누구에게도 제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매너포트의 경우 해외 로비스트로 일찌감치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그는 지난 1980~1990년대 해외 정치인을 위한 선거 캠페인을 컨설팅하는 분야를 개척했다. 당시 해외 정치인을 고객으로 두고 레이건 행정부나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동맹 관계로 전략을 짜주고 그 대가로 수백만달러를 수수료로 챙겼다.
이후 그는 지난 2016년 트럼프 대선 승리 후 트럼프와의 인맥을 이용해 또 해외 컨설팅 사업을 추진했으나 감옥행으로 좌절됐다. 트럼프팀과 러시아 간 관계를 조사하는 특별검사 덕분에 그는 7년 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우크라이나로부터 얻은 수익 세금 탈루와 해외 로비법 위반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1기가 마무리될 무렵 트럼프는 매너포트를 사면했고, 이후 매너포트는 조용히 해외에서 다시 사업 기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번에 트럼프가 또 다시 승리하자 그의 야망은 더 커졌다.
매너포트가 프랑스에서 배포한 선거 컨설팅 홍보 문건에는 “최신 선거 기법과 다차원적 접근으로 중도 우파 정당을 한 단계 격상시킨다”고 적혀 있다. 또한 팀 구성원 중에는 트럼프 1기 대선 캠프에서 잠시 일했던 디지털 광고 전략가 빈센트 해리스도 포함되어 있다. 홍보 문건에 따르면, 해리스는 빅터 오르반 헝가리 총리 ,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 극우 정치 지도자와 일을 한 바 있다.
로비스트 창궐할 수도매너포트의 선거 캠페인 홍보 문건 중에는 그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적수가 될 정치인을 지원하는 세력과도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당 우크라이나 쪽 인물들은 매너포트에 관심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만일 매너포트와 공개적으로 일을 하게 되면 트럼프로부터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매너포트는 지난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캠페인을 지원한 바 있고 그 대가로 수천만달러를 관련 이해집단으로부터 받았다. 친러시아 성향인 야누코비치를 지원하면서 매너포트는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쌓았다. 덕분에 매너포트는 트럼프팀에 조언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팀을 조사한 특별 검사 보고서에 따르면, 매너포트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을 종식시키고 야누코비치를 다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옹립하는 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특별 검사는 법원에서 미 연방수사국(FBI)이 매터포트가 러시아 정보기관과 연계되어 있다고 믿고 있음을 폭로하기도 했다.
사실 매너포트는 비밀리에 트럼프 측근들을 설득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신을 조성한 인물로 통한다.
매너포트는 트럼프의 사면을 받은 후 다시 트럼프 팀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공화당 전당대회의 계획을 자진해서 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트럼프 관련 일에서 손을 떼야만 했다. 워싱턴포스트가 그가 계속해서 중국 등 해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너포트는 여전히 트럼프의 별장 마러라고에서 종종 눈에 띈다고 한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게 두고 활용하는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매너포트처럼 드러난 로비스트 외 권력 공백기에 놓인 한국을 대상으로 정치 컨설팅을 하는 세력이 더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이 사실상 부재한 상황에서 체계적인 대 트럼프 외교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때를 기회로 노리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리스크 전문가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인해 트럼프 팀과 접촉해 대응할 기회를 잃었다”면서 “외교적으로 한국은 트럼프의 눈에서 더 멀어지고 더 큰 혼란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원섭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