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계 글로벌 기업 실적도 갉아 먹어 “美주식·채권시장 모두 고통받을 것”

    입력 : 2022.10.27 15:20:54

  • ‘85.67달러’.

    미국에 살고 있는 기자가 쓰고 있는 현지 신용카드 사용 내역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항목이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업무상 필요해 지난 9월 중순 구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한 금액이었다. 2TB(테라바이트) 원화 기준 연간 이용금액은 11만9000원이다. 그간 이것을 한국 신용카드로 결제했는데, 이번에 미국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더니 이 금액으로 결제된 것이다. 구글은 이 서비스를 미국에서는 연간 100달러(매월 결제 시 월 10달러)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달러당 원화값을 1190원으로 상정해 원화요금을 책정한 셈이다.

    구글이 한국 고객들에게 이 서비스를 제공하며 연간 100달러의 매출을 기대했지만 달러 기준으로는 85달러대에 그친 것이다. 이는 카드수수료를 제외하기 전 환산액이며, 실제로 구글이 카드사로부터 정산받는 금액은 80달러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1달러=1450원’ 기준으로 10만원은 68.97달러에 그친다. 그간 관념적으로 90달러를 10만원으로 여겨왔지만 이제 60달러대가 10만원과 동가가 된 것이다.

    최근 한 달간 달러 대비 원홧값이 가파르게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글로벌 사업을 하고 있는 미국계 기업들의 달러 환산 매출은 시간이 갈수록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지만 당장 현지 통화 기준 서비스 요금을 올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달러 강세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사진은 메타를 비롯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는 뉴욕 맨해튼 허드슨야드 일대 전경. <사진 박용범 뉴욕특파원>
    달러 강세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사진은 메타를 비롯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는 뉴욕 맨해튼 허드슨야드 일대 전경. <사진 박용범 뉴욕특파원>


    ▶해외 매출 비중 큰 기업 충격 구글은 이미 2분기부터 킹달러의 직격탄을 맞았다. 구글의 2분기 광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2월 84%에 달했던 유튜브 광고 성장률은 4.8%로 크게 둔화됐다. 구글 클라우드 사업은 8억580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성장률 둔화는 경기 영향이 크지만 킹달러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루스 포랏 알파벳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달러 강세에 따른 환율 변동도 매출에 타격을 줬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환율 영향으로 매출이 5억9500만달러, 주당 순이익이 4센트 감소했다고 밝혔다. 미국 외에서 매출 비중이 큰 기업들이 ‘킹달러’ 현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10월 18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3분기 실적에서도 이런 현상이 확인됐다. 넷플릭스의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한 79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환율 효과를 제거하면 매출은 1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넷플릭스는 3분기에 유료구독자가 241만 명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143만 명이 증가했다. 북미 지역에서는 10만 명이 증가하는데 그쳤다. 달러가 아닌 화폐를 쓰는 지역이 넷플릭스의 성장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다시 말해 ‘킹달러’가 가속화할수록 넷플릭스의 성장세는 역주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4분기 매출 전망치를 77억8000만달러로 제시했다. 이는 월가 전망치 79억8000만달러를 밑도는 수준이다.

    팩트셋에 따르면 S&P500 기업들의 3분기 주당순이익(EPS) 추정치는 6.6% 하향 조정됐다. 지난 6월 말 기준 이들 기업들의 3분기 EPS 중위값 합계는 59.44달러였지만 9월 말 기준으로는 55.51달러로 내려갔다. 이 정도로 이익 추정치가 하락한 것은 최근 5년, 10년, 15년, 20년 평균치와 비교해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넷플릭스는 외국에서 벌어들인 수입을 미국으로 들여오면서 강달러에 따른 환차손을 입어 달러 표시 매출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사진 연합뉴스>
    넷플릭스는 외국에서 벌어들인 수입을 미국으로 들여오면서 강달러에 따른 환차손을 입어 달러 표시 매출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사진 연합뉴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달러 강세는 미국계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을 갉아먹고 있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재무관리 소프트웨어기업 키리바(Kyriba)에 따르면 북미 기업들은 환율 변동으로 2분기에만 343억달러(약 49조4000억원)의 이익이 감소했다. 이는 9년 만에 최고치다. 3분기 들어서 환율 변동이 더 극심해졌기 때문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9월 말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한 이후 파운드화가 무너지며 달러 강세를 더 촉발시켰기 때문에 이런 실적 영향은 더 확대됐을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높아지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정책 수위, 재고 증가 등으로 신음하던 미국 기업들이 달러 강세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나면서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달러 강세는 미국 입장에서 수입 물가를 낮추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급격한 환변동은 기업들에게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주요 기업들의 실적 가이던스(전망치)는 처참할 것”이라며 “전 분야에 걸쳐서 시간이 갈수록 가이던스가 더 내려가고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미 미국 내수에 의존하는 기업과 글로벌 사업을 하는 기업들 간의 주가 차등화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내수 기업들의 연초 대비 주가 하락폭은 10~15%에 그쳤지만, 글로벌 사업을 하는 기업들의 주가 하락폭은 25~30%에 달하고 있다.

    루스 포랏 알파벳 CFO는 “달러 강세에 따른 환율 변동으로 매출 성장이 3.7% 감소했다”며 “달러 강세가 3분기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사진 연합뉴스>
    루스 포랏 알파벳 CFO는 “달러 강세에 따른 환율 변동으로 매출 성장이 3.7% 감소했다”며 “달러 강세가 3분기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10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매일경제가 주최한 글로벌금융리더포럼에서도 이런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윤제성 뉴욕생명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겸 아시아태평양 회장은 포럼에서 “연준은 연말까지 금리를 1%포인트(100bp·1bp=0.01%포인트) 더 올릴 것”이라며 “미국의 유동성 축소에 따라 강달러 현상이 지속되면서 달러당 원화 가치는 올해 말 1500원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주식 시장과 채권 시장 모두 고통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킹달러 독주가 신흥국 시장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미국 워싱턴DC 브루킹스연구소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매우 강력한 달러화 강세에 따라 신흥 시장에서 자본 유출이 발생한다”며 “금융 상태가 당장 위기를 초래하지 않더라도 누적되면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용범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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