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위안화 동반 추락 불똥 튄 한국경제, 외환위기 트라우마 속 시장불안감 커져

    입력 : 2022.10.27 14:59:47

  • ‘킹달러’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미국의 행보가 달러 초강세로 이어지면서 각국의 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금융 시장 불안이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태세다. 특히 미국 월가에서는 향후 6~9개월 내에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 엔화의 ‘심리적 저항선’인 달러당 150엔대가 지난 10월 20일 무너졌다. 달러당 150엔 붕괴는 버블경제 후반기였던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 위안화마저 동반 추락하며 1997년과 유사한 아시아 외환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은행은 이날 달러당 150엔 붕괴를 막기 위해 긴급 채권 매입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10~20년물 국채 1000억엔, 5~10년물 국채 1000억엔의 매입 방침을 밝혔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이날 “극단적인 엔화의 움직임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시장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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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화 32년 만에 최저 기록 중국 역내 위안화 값도 한때 장중 달러당 7.2484위안을 기록했다. 이는 2008년 1월 이후 14년 만에 최저치다. 역외 시장에서도 위안화 값은 7.2790위안까지 추락하면서 역외 위안화 거래가 시작된 2010년 8월 이후 최저 수준에 거래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공식화한 가운데 코로나19 확산과 중국 경기 침체 우려 고조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스티븐 이니스 SPI애셋매니지먼트 파트너는 “아시아 외환 시장에서 위안화 약세는 언제나 우려스러운 전조”라고 말했다.

    자본 유출 가능성이 커지자 중국 인민은행은 최근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동결했다.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 추가 금리 인하가 예상됐으나 위안화를 방어하기 위해 동결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위안화와 엔화 동반 추락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미국과 달리 중국, 일본이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 가격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원화 가치도 길게 보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원화 약세는 미국 금리인상으로 촉발된 강달러에 따른 영향이 컸지만, 6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내는 등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있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전망치인 2.1%를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경제 체력이 급격히 약화된 모습이다. 특히 한미 금리 역전과 환율 불안 지속에 따라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상향)을 밟긴 했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번에도 최소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상향)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시장에서의 긴장감은 풀리지 않고 있다.



    ▶제조업체 70% “환율 때문에 경영 힘들어” 원홧값 급락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는 항공산업은 물론이고 대다수 수출 기업들이 달러화로 수입하는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라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국내 제조업체 70%가 환율 때문에 원자재 가격이 올라 경영이 어렵다고 답했다. 제조업 경기 전망은 올해 3분기보다 4분기가 더 어두웠다. 최근 산업연구원(KIET)은 이런 내용의 제조업 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를 내놨다. 제조업체 10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현 경영 활동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중복 응답) 가장 많은 업체(70.1%)가 원화 가치 하락(환율은 상승)에 따른 원자재 비용 부담을 꼽았다. 그다음 고물가 심화(49.9%), 금리 상승(44.1%), 코로나19 재확산(38.9%) 등 순서였다.

    달러화 독주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기준금리가 내년에는 5%를 찍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 속도에 맞춰 국내 금리가 오르는 가운데 가계와 기업 부채가 불어나 채무 상환 부담이 가중되면서 금융 시장에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 부동산 시장 급랭, 올겨울 에너지 위기 심화 등도 금융 시장의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금융 시장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지면서 원홧값이 그 압박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강달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 연준의 기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일각에선 시장의 이런 기대와 우려가 맞서는 상황 속에 원홧값이 한동안 요동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원홧값 변동성이 커지는 추세여서 방향성과 저점을 예단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산업구조 특성상 하루가 다르게 급락하는 원홧값부터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 역시 확산되고 있다. 환율 불안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에 있어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다. 해외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의 경우 차입금 조달 비용이 급증하면서 투자 계획을 보류하거나 재검토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문 수석연구위원은 “원홧값 급등락에 따른 불안심리는 주식과 채권 시장에 전이되는 성질이 있다”며 “원홧값의 변동성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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