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TS·기생충·오징어 게임… 한국 소프트파워 강국된 비결은
입력 : 2021.10.26 15:05:49
-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 K콘텐츠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만들고 있다. 지난 16일 기준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 집계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와 예능 등 TV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순위를 정하는 ‘넷플릭스 오늘 전 세계 톱 10 TV 프로그램(쇼)’ 부문에서 814점을 나타내며 1위에 등극했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9월 23일 이후 23일 동안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오징어 게임 신드롬’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이미 예견됐다는 평가다. 지난해 ‘다이너마이트’와 올해 ‘버터’ 등으로 빌보드 1위를 15주간이나 차지했던 가수 방탄소년단,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의 영예를 얻은 영화 <기생충>까지 음악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 영역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누적시켜왔기 때문이다. K콘텐츠의 핵심 성공 비결은 크게 세 가지다. ▲20년간 키워온 웹툰 등 스토리 산업 ▲수준 높은 컴퓨터그래픽(CG) 등 제작기술 ▲소셜미디어(SNS) 산업을 활용한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 구축 등이다.
유엔 총회에 청년세대 대표로 참석한 방탄소년단(BTS)이 각국 정상들이 연설하는 유엔 총회장을 누비며 유쾌한 화합의 무대를 선사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오징어 게임>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웹툰의 유료화를 안정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키면서 창작자 생태계가 활발하게 가동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 때문에 2002년 이후 20여 년이 지난 현재 웹툰에 기반한 드라마나 영화가 줄줄이 나올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웹소설 시장도 함께 성장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스토리 하나당 100억 매출을 만들어내는 웹소설도 나오기 시작했다.
제29회 매일경제 글로벌포럼에서 강정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이 카카오웹툰의 세계화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웹툰이나 콘텐츠는 예전부터 많은 고객에게 사랑받아왔지만 불법 등을 통해 무료로 접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장 돈을 내고 보거나 일정 시간을 기다려 무료로 보는 방식으로 선택권을 제공해 콘텐츠를 게임처럼 즐길 수 있게 하면서 창작자에게 수익이 돌아갈 수 있는 모델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만든 플랫폼에서 아이디어와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었고,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실력을 쌓아가는 기존 만화계의 오랜 도제식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특히 ‘웹소설→웹툰→영상(드라마·영화)’의 3단계 선순환이 이뤄지는데, 각 단계에서 흥행한 IP를 엄선하기 때문에 다음 단계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커진다. 소비자들은 영상이 재밌으면 웹툰 원작을 찾아보고, 웹툰이 흥미로우면 이전 단계인 웹소설까지 살펴본다. 특히 까다로운 독자들이 많은 한국에서 성공하고 나면, 세계 시장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커진다고 했다. 강 본부장은 “한국만큼 고객 성향이 까다로운 국가는 없을 것이다. 국내 시장에서 검증받고 세계 시장에 선보이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에서 <오징어 게임>을 체험하러 모여든 인파
넷플릭스가 지난 9월 진행한 ‘넷플릭스 파트너 데이’에서는 특수 분장 전문 기업 ‘셀’과 색 보정 담당인 ‘덱스터스튜디오’, 음향 관련 회사 ‘라이브톤’, 특수 시각 효과 전문 스튜디오 ‘웨스트월드’, 더빙 및 자막 전문 미디어 그룹인 ‘아이유노 SDI 그룹’ 등이 소개됐다.
덱스터스튜디오의 색 보정(DI) 담당 사업부는 2019년부터 넷플릭스와 협업하며 <킹덤> <보건교사 안은영> <승리호> <낙원의 밤> 등에 참여했다. <킹덤> 시즌 2에서는 한국 최초로 4K HDR 작업을 선도하며 DI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줬다. 현재 연간 개봉하는 국내 영화 DI 작업의 40%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다. 웨스트월드는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영상 신기술을 도입했다. N캠 등 신규 VFX 장비를 통해 도입한 버추얼 프로덕션이 대표 사례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기존에 영상 촬영 후 후처리로 진행하던 컴퓨터그래픽을 촬영 현장에 접목시킨 기술이다. CG를 상상하며 촬영하는 게 아니라 CG를 카메라 스크린에 구현했다.
덱스터의 음향 관련 자회사 ‘라이브톤’은 1997년 창립 이후 <괴물> <부산행> <신과함께> <기생충> 등 12편의 1000만 관객 영화를 포함해 250여 편의 콘텐츠 사운드 디자인과 믹싱을 전담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음향 작업을 담당한 라이브톤은 국내 처음으로 돌비 채널 믹싱 등을 도입해 실감 나는 음향을 구현했다. 과거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서는 상상 속 동물인 옥자를 구현하기 위해 뉴질랜드 토종 돼지와 하마, 코뿔소 소리 등을 참고해 옥자의 소리를 선보였다.
방탄소년단이 데뷔도 하기 전인 연습생 시절부터 팬들과 SNS를 통해 소통하면서 함께 성장스토리를 만들어갔던 게 핵심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예다. K팝 특유의 화려한 뮤직비디오로 볼거리를 무료로 제공하고,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입혀 끊임없이 이들의 스토리를 소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식이다. 소비자들을 록인(Lock-in)시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TV 방영이나 영화관 개봉에 비해 1회 시청당 수익이 낮은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로 진출하는 것도 일단 록인시키고 나면 계속해서 콘텐츠를 소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숨겨져 있다.
게다가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을 철저하게 추구하고 나면 결국 충성 고객이 만들어진다. 이들은 상품(굿즈), 콘서트, 팬 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지속적으로 소비하면서 핵심 수입원으로 자리한다. 디지털 경제의 핵심이 ‘95%의 무료제공+5%의 충성고객 수익’임을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K팝이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유튜브에 수천만 조회 수를 가진 뮤직비디오가 올려져 있다는 것”이라며 “이 음악들로 2차, 3차 저작물을 만들어내며 노는 전 세계 유저들이 너무나도 많다. SNS 산업이 망하지 않는 한 SNS상에서 가장 핫한 게시물로 랭크됐던 음악들은 영원히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홍성용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4호 (2021년 1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