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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 수준 회복한 글로벌 명품시장… LVMH는 인수·합병, 케링은 2030 겨냥해 매출 껑충
입력 : 2021.08.27 15: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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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루이비통, 2위 샤넬, 3위 에르메스, 4위 구찌….’ 이 나열은 과연 어떤 가치를 나타내는 순위일까. 브랜드명으로 어렴풋이 짐작했겠지만 올해 명품 브랜드의 가치를 나타내는 순위다. 전 세계 90개국에 진출한 시장조사기업 칸타(KANTAR)가 발표했다.
흥미로운 건 10개의 브랜드 중 프랑스산(産)이 6개, 이탈리아산이 2개, 스위스와 영국산이 각각 1개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주여행이 현실화되고 있는 2021년에도 전 세계 명품 산업을 지배하는 국가는 여전히 유럽연합이다. 또 하나 시선을 끄는 건 LVMH와 케링(Kering), 리치몬트(Richemont) 등 명품시장을 좌우하는 럭셔리 그룹에 속한 브랜드가 5개, 에르메스, 샤넬, 프라다, 버버리, 롤렉스 등 독립적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브랜드가 5개란 점이다.
물론 그중 독보적인 1위는 ‘루이비통’이다. 무려 757억달러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칸타가 조사한 올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467억달러다.) 2위 샤넬보다 무려 287억달러나 앞섰다. 앞서 나열한 그룹별로 10위까지 브랜드를 나눠보면 LVMH는 루이비통과 크리스챤 디올을, 케링은 구찌와 입 생 로랑, 리치몬트는 까르띠에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명품 업계의 눈과 귀가 LVMH와 케링에 머무는 이유다.
프랑스 사마리텐 백화점 매장 내부 ©Samaritaine, Matthieu Salvaing
업계에선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불황에도 공격적인 인수·합병이 빛을 발했다”고 분석한다. LVMH는 지난해 11월부터 미국을 대표하는 주얼리 기업 ‘티파니앤코(TIFFANY&Co.)’의 인수 작업에 나섰다. 인수금액은 총 162억달러(주당 135달러, 약 19조512억원). 금액만 놓고 보면 그룹 사상 최대 규모의 M&A였다. 양측은 공동성명을 통해 “티파니와의 인수합병은 전 세계 보석 시장에서 LVMH의 입지를 강화하고 미국 내 존재감을 확실히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올 상반기 LVMH 매출을 견인한 브랜드는 루이비통과 펜디, 로에베, 셀린느, 여기에 티파니가 미국 시장의 매출을 이끌었다.
LVMH의 인수·합병 전략은 올 초부터 본격적인 바람을 탔다. 올 2월엔 병당 100만원을 호가하는 세계 최고급 샴페인 ‘아르망 드 브리냑(Armand de Brignac)’의 지분 50%를 매입했다. 이 샴페인은 힙합 스타이자 비욘세의 남편으로 알려진 제이지(Jay-Z)가 보유한 브랜드다. 제이지와 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 회장의 아들 알렉상드로 아르노 티파니 부사장과의 친분이 인수 작업에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6월엔 구글 클라우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루이비통, 크리스챤 디올 등 주요 고객들의 온라인 체험 서비스를 강화했다. 계약 조건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블룸버그 통신은 LVMH와 구글의 전략적 제휴가 최소 5년 이상 장기 계약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 외신들은 “명품 온라인 쇼핑이 늘자 LVMH가 기선 제압에 나섰다”고 전하기도 했다.
7월에는 LVMH 계열의 사모펀드 ‘엘 캐터튼’이 5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에트로(ETRO)’의 지분 60%을 인수했다. 인수 가격은 5억유로(약 6700억원). 엘 캐터튼은 2016년 LVMH그룹과 미국 투자회사가 함께 세운 사모펀드다. 뒤이어 LVMH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오프 화이트(Off-White LLC)’의 지분 60%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오프 화이트는 현재 루이비통의 남성복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2013년에 설립한 브랜드다. LVMH는 오프 화이트를 끝으로 당분간 대형 M&A는 없다고 선언했다.
‘방탄소년단(BTS)’이 제작에 참여한 루이비통 트렁크
LVMH가 전 세계에서 첫 손에 꼽히는 명품제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마다하지 않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경영 전략에 기인한다. 부친에 이어 건설사업을 하던 아르노 회장은 1979년 미국 출장을 계기로 명품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1984년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던 크리스챤 디올의 모회사 부삭그룹을 인수하며 명품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9년 ‘루이비통’을 인수하며 탄생한 LVMH그룹은 1988년 ‘지방시’, 1993년 ‘겐조’, 1996년 ‘로에베’와 ‘셀린느’, 1997년 ‘마크 제이콥스’, 2000년 ‘에밀리오 푸치’, 2001년 ‘펜디’와 ‘도나 카렌’을 인수했다.
주류부문은 ‘헤네시 꼬냑’ 인수 후 브라질과 호주,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포도밭을 사들이며 명품 와인 제조에 몰두, ‘모엣 샹동’ ‘돔 페리뇽’ ‘크뤼그’ 등을 인수했다. 현재 LVMH그룹은 아르노 회장이 크리스챤 디올을 통해 지배하는 구조다. 아르노 회장이 크리스챤 디올의 지분 97.5%를, 크리스챤 디올이 LVMH그룹의 지분 41.2%를 보유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Samaritaine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매출 면에서 LVMH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거대 공룡에 대항할 수 있는 럭셔리 그룹은 그나마 케링이 유일하다”며 “특히 구찌와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가 독보적”이라고 전했다. 올 상반기엔 케링그룹도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상반기보다 매출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케링이 밝힌 올 상반기 총 매출은 77억800만유로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34.9% 증가했고 매출은 54.1% 늘었다. 특히 2분기 실적은 전년 대비 95%나 확 뛰었다. 2019년과 비교해도 11.2%나 증가해 증가세가 가팔랐다. 그룹의 대표 브랜드인 ‘구찌’는 올 상반기 매출이 44억7930만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45.8% 증가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이비통 본사
입 생 로랑도 올 상반기에 10억4550만유로의 매출을 내며 전년 동기 대비 53.5% 증가했다. 특히 북미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판매가 늘었다. 보테가 베네타는 올 상반기 매출 7억760만유로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40.6% 증가한 수준이다. 이 외에 발렌시아가, 알랙산더 맥퀸 등 케링그룹 소속 브랜드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0% 이상 증가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 들어선 루이비통 남성전문매장
LVMH보다 한발 앞서 디지털 강화에 나선 것도 장점이다. 케링그룹은 2012년부터 온라인 명품 거래 플랫폼인 ‘육스네타포르테(YNAP)’와 합작기업을 설립하고 구찌를 제외한 모든 브랜드에 온라인 판매망을 구축했다.
또 2017년에는 사내에 최고고객·디지털책임자(CCDO) 직책을 신설하고 그 자리에 이베이 출신 그레고리 부테를 영입했다.
서울 한남동 구찌 가옥. 다양한 남성 익스클루시브 DIY 제품과 테일러링 상품군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안전상의 문제로 2005년 문을 닫아야 했던 사마리텐은 새롭게 건물주가 된 LVMH그룹의 지휘하에 2015년부터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현재 퐁 뇌프(Pont-neuf) 건물로 불리는 기존 아르누보 및 아르데코 건축물의 복원 사업이 진행되는 동시에, 화려한 유리 외관을 자랑하는 현대적인 건물 리볼리(Rivoli)로 재탄생했다. LVMH는 이 백화점에 ‘믹스 앤드 매치’ 패션을 표방하며 600개 이상의 다채로운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루이비통, 샤넬 등 명품은 물론, 프랑스의 로컬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들의 하이엔드 브랜드까지 이름을 올렸다. 그중 ‘브레게(Breguet)’를 비롯한 50여 개의 브랜드는 오직 사마리텐 백화점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독점 브랜드다.
현대백화점은 면세점과 백화점그룹의 상반기 연결 매출이 1조547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60.1% 오른 기록이다. 가장 큰 상승 요인은 역시 백화점 실적 상승이다. ‘더 현대 서울’이 개점 한 달간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신규점 개장 효과가 컸다. 물론 더 현대 서울의 매출을 주도한 분야는 해외패션과 명품이다. 롯데백화점도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2% 증가한 7210억원, 영업이익은 620억원으로 40.9% 늘었다. 이처럼 코로나19 장기화에도 국내 명품시장은 고속 성장하고 있다. 특히 패션과 미용에 눈을 뜬 2030 남성들이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백화점 3사도 이들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좌)구찌 레 뽐므 (Gucci Les Pommes) 컬렉션. (우)2021 구찌 데코 컬렉션.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6월 압구정본점 4층을 ‘멘즈 럭셔리관’으로 정한 이후 구찌 멘즈, 발렌시아가 멘즈, 로로피아나 멘즈 매장을 입점시켰다. 올해는 프라다와 돌체앤가바나의 남성용 매장도 들어섰다. 갤러리아백화점도 지난 4월 압구정동 명품관 웨스트에 국내 첫 불가리 남성 전용 매장과 프라다 남성 매장을 여는 등 남성 명품 상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2호 (2021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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