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데이터로 보는 상권] (25) 주 52시간제가 확 바꾼 소비지도 ‘6시 조기회식’에 ‘진한 소폭’ 1차만

    입력 : 2019.09.25 11:28:57

  • 주 52시간이 소비시장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2018년 7월 1일부로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주 52시간 근무제(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를 시행하고 있다. 기업 규모별로 도입시기에는 차등이 있어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 1일,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 1일부로 적용되기 때문에 전면적인 시행은 2021년으로 볼 수 있지만,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시행만으로도 이미 그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달라진 출퇴근 시간으로

    회식 등 소비문화가 변해가며 상권지도도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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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52시간 근무제+유연근무제’ 도입과 관련하여 시행 전/후의 출퇴근 시간 변화를 토대로 직장 밀집지역의 주요 영향 업종별 소비패턴 변화를 분석했다. 또한 회식문화와 관련한 주류 소비 변화상도 살펴봤다. 심야 주점·택시도 손님 ‘뚝’ 워라밸과 관련된 국가와 기업의 노력이 소비시장을 어떻게 바꿔가고 있을까? 사실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던 당시에도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여러 반응들이 있었다. 일반 회사원 입장에서는 단축된 근무시간을 반기는 분위기도 있었고, 밤이나 주말 추가근무가 불가피한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또 월별로 일이 몰리는 시즌이 따로 있는 업계에서는 어떻게 이를 해결하면서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고, 저녁 시간대 주류를 판매하는 음식점이나 주점, 심야택시를 운행하는 업계에서는 반발도 있었다.

    광화문역 인근에서 출근하는 시민들
    광화문역 인근에서 출근하는 시민들
    그리고 시행 1년이 지난 지금은 그 효과들이 더 명확해졌는데, 결코 적지 않은 변화들이 나타났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지역상권과 관련된 변화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변화들을 추적해 봤다.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개인의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묘사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용어는 국내에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워라밸은 일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자기개발(학습, 취미, 운동, 여행 등)이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같이 삶에서 가치 있는 개인적인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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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관련하여 고용노동부에서는 2017년 7월 ‘일과 가정 양립과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무혁신 10대 제안’을 발간했는데, 주요내용으로는 ▲정시 퇴근 ▲퇴근 후 업무연락 자제 ▲업무집중도 향상 ▲생산성 위주의 회의 ▲명확한 업무지시 ▲유연한 근무 ▲효율적 보고 ▲건전한 회식문화 ▲연가사용 활성화 ▲관리자부터 실천 등 10가지 개선방침이 수록되어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다양한 노력으로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할 수 있는 자체적인 규율을 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그 효과를 어느 정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연차 사용을 장려하거나, 회식은 될 수 있으면 9시 이전에 끝내도록 하는 기업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기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도 워라밸과 관련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데 바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다.

    빨라진 퇴근 후 공부하는 직장인들. 사진은 패스트캠퍼스가 진행하고 있는 주 5일 전일제 강의 모습
    빨라진 퇴근 후 공부하는 직장인들. 사진은 패스트캠퍼스가 진행하고 있는 주 5일 전일제 강의 모습
    ▶출/퇴근 시간 변화와 영향 받는 상권들

    52시간 근무제(유연근무제 영향도 포함) 도입 이후 직장인의 생활 패턴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2018년 지하철 승하차 인구 수(1~8호선)’ 데이터를 분석했다. 2018년 1월부터 6월까지 제도 시행 이전과 7월부터 12월까지의 제도 시행 이후를 ‘평일’기준으로 출근 시간대(6~10시)와 퇴근 시간대(16~새벽1시)로 나누어 변화하는 양상을 살펴봤다.(토/일/휴일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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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멀어도 번화가서 회식” 쏠림현상에 골목상권 더 울상 이렇게 ‘유출되는’ 특징이 나타나는 지역이라고 해서 모든 업종과 점포에서 매출 감소세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른 저녁 시간을 집중 공략하여 매출이 증가한 점포들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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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밤 시간대 소비인구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런 외부환경의 변화 속에서 ‘어떤 전략으로 살아남을지’에 대한 것이다. 특히 ‘늦은 출근과 빠른 퇴근으로의 변화’는 직장 밀집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장가/병원가/먹자골목 등 복합된 성격이 나타나는 강남역을 예로 들면, 직장 밀집 지역에서 나타나는 변화와 유사하게 출근 시간대 하차인구는 시간대가 늦어지고, 퇴근 시간 이후의 승차인구는 좀 더 시간대가 빨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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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가는 시간 빨라지고 상권 피크타임도 달라져

    분석대상인 242개 지하철역 가운데 207개(85.5%) 역에서 평일 20시 이후 승차비율이 줄어들었고, 이태원, 잠실, 사당, 마포 등 35개(14.5%) 역에서만 20시 이후 승차비율이 늘어난 모습을 보면, 52시간 근무제 이후 전반적으로 ‘집에 가는 시간이 빨라졌다’는 가정이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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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이태원, 잠실, 사당역과 같은 지역은 52시간 근무제의 수혜지역으로써 ‘일찍 퇴근 후 유입되는 상권’으로 정의할 수 있는 반면, 안암, 한양대, 신촌, 이대와 같은 대학가 상권과 여의도, 가산디지털단지, 역삼, 서대문 같은 직장가 상권은 ‘일찍 퇴근(하교) 후 유출되는 상권’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그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이렇게 ‘유출되는’ 상권의 분위기는 향후에도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상권에서 매출이 감소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 52시간 시행 이후 유동인구가 늘어난 이태원. 사진은 해밀톤호텔 뒷골목 상권
    주 52시간 시행 이후 유동인구가 늘어난 이태원. 사진은 해밀톤호텔 뒷골목 상권
    직장 회식 시간 확 앞당겨지자 고깃집 매출 늘고 한식은 점심 집중 퇴근 인구의 유출이 심하다고 지적했던 ‘직장가’에 속한 주점과 고깃집, 한식 업종을 대상으로 52시간 근무제 시행 전/후의 시간대별 매출비중 변화를 분석했다.

    주 52시간 시행 이후 늘어나고 있는 고깃집 매출. 사진은 부산 초량시장 돼지갈비골목
    주 52시간 시행 이후 늘어나고 있는 고깃집 매출. 사진은 부산 초량시장 돼지갈비골목
    직장인의 퇴근이 빨라지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직장가에 속한 주점(호프, 포차, 민속주점, 이자카야 등)을 분석해 보면, 시행 전에 비해 이른 저녁 시간(18~21시)의 비중이 1.2%p 증가하고, 정확히 그만큼(1.2%p) 21~24시의 비중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근무혁신 10대 제안 중 ‘건전한 회식문화’와 관련하여 회식 시간대가 점차 빨라지고 일찍 마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주점과 연계하여 유사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 업종도 찾을 수 있다. 아직까지 직장인 회식장소 1위로 뽑히는 고깃집은 주요 매출발생 시간대는 주점과 반대지만, 증감률은 주점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직장가 상권을 구성하는 가장 많은 업종이자 주요업종인 일반한식/백반 업종은 저녁과 밤 시간대 매출비중이 동시에 줄어든 반면, 점심 시간의 집중도가 더 높아진 모습을 보인다.

    빨라진 퇴근 시간으로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자 백반 등 한식당은 점심식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빨라진 퇴근 시간으로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자 백반 등 한식당은 점심식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종별 전략 조정해야

    이상의 분석결과에서 나타나는 시사점은 저녁 시간대 매출비중이 높은 점포라면 저녁 오픈 시간을 앞당기고, 이른 저녁 시간대에 맞는 구색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며, 점심과 저녁을 병행하는 점포라면 점심 시간대에 좀 더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점이다. 저녁장사가 힘들기 때문에 저녁 시간대 매출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점심 시간에 잘되는 점포들이 저녁 시간대 손님과도 이어진다는 뜻이므로 해석에 유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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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보다 소주, 소주보다 소맥 ‘짧고 굵게’로 바뀐 음주문화 워라밸과 직/간접적인 영향관계를 보이는 ‘주류소비’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퇴근 시간이 빨라짐과 동시에 상권에 영향을 미치며, 직장인 회식문화도 점차 이른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내용으로 분석했다면, 이번에는 시간대별 ‘주종’에 집중했다.
    일찍 마시고 귀가하는 회식문화가 자리를 잡으며 맥주와 소주를 섞어마시는 소맥의 소비비중이 2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찍 마시고 귀가하는 회식문화가 자리를 잡으며 맥주와 소주를 섞어마시는 소맥의 소비비중이 2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직장가를 대상으로 52시간 근무제 시행 전후 맥주만 판매되는 영수건수와 소주만 판매되는 영수건수, 소주와 맥주가 동시에 판매되는 영수건수를 표본 분석한 결과, 맥주만 판매되는 경우는 이른 저녁 시간에 소폭 증가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감소세를 보였고, 소주만 판매되는 경우는 저녁 시간대 전체적으로 감소세를 보인 반면, 소맥(소주+맥주)이 판매되는 경우는 이른 저녁시간대에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찍 먹고 귀가하는 회식문화가 발달하며 소맥의 소비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일찍 먹고 귀가하는 회식문화가 발달하며 소맥의 소비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소주와 맥주가 함께 소비된 경우를 기준으로 소주와 맥주 비율이 기존 40:60에서 42:58로 소주 비율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어 ‘이른 시간대 좀 더 집중적으로 빨리 마시고 집에 가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같은 소맥비율의 증가는 주류업계로 하여금 ‘어떤 브랜드의 소주와 맥주가 함께 판매되고 있으며, 어떤 고객층에 언제 판매되고 있는지’에 대해 전보다 심도 있게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워라밸이 가져온 우리나라의 독특한 ‘나비효과’라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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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훈 기자 주시태 나이스지니데이타 연구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9호 (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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