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품 규제 폐지에 ‘억’ 소리 나는 경품들…고가 아파트 경품 등장하나

    입력 : 2016.08.05 17:48:58

  • 경품은 그 시대 소비자의 욕망을 투영한다. ‘가지고 싶지만 결코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이 경품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로 대형 유통업체들이 소비자들의 욕망을 자극해 매출을 진작시키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 바로 경품이다.

    내건 경품은 유통업체의 규모와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그렇기에 소비자들이 가장 선망하면서 고급스러운 경품을 내걸기 위해 라이벌 업체들 간의 경쟁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쟁은 최근 경품 규제 폐지로 인해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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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일 경품은 2000만원 이하, 경품 총액은 상품 예상 매출액의 3% 이하로 소비자 현상경품의 제공 한도를 규제해온 경품고시가 지난 1일부터 폐지됐다. 경기 침체로 인해 위축된 소비에 활로를 뚫고 유통업체 간 경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제도적 배려로 풀이할 수 있다.

    공정위 측은 “상품 구매자에게 추첨 등 현상(懸賞)의 방식으로 제공하는 경품, 즉 소비자현상경품의 제공 한도를 일률적으로 규제하여 경품 마케팅을 통한 유통업체 간 경쟁과 신규업체의 시장 진입을 제한했다”고 폐지 배경을 설명했다.

    소비자현상경품 한도 폐지는 사실 처음은 아니다. 1999년 1월 공정위는 IMF로 위축된 시장을 타개하기 위해 소비자현상 경품의 가격 상한을 폐지한 바 있다. 당시 현금 1억원, 수입차, 아파트 등 고가의 경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품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공정위는 이듬해 9월 소비자 현상 경품에 한도를 다시 규제했다.

    1999년에 이어 지난 7월부터 다시 경품 한도 폐지 카드를 꺼낸 데 대해 공정위는 “인터넷·모바일·누리 소통망 서비스(SNS)의 발달과 온라인 거래 활성화 등으로 가격·경품 등 각종 상품 정보에 대한 접근과 비교가 쉬워졌다”며 “현명한 소비자들은 단순히 경품을 획득하기 위해 분수를 넘어서는 소비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일단 반기는 눈치다. 앞으로 제도 변화를 십분 활용한 경품 마케팅이 활성화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소비자 현상경품에 묶여 있던 한도가 폐지되면 소비자에게 제안할 수 있는 경품의 수와 종류가 늘어나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제도 개선으로 유통업체들도 경품다운 경품을 내걸어 고객 유치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외에 신규업체들의 진입이 활성화되는 한편 고객에게 다양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다양한 경품을 통한 이슈화 시도 가능성은 여전히 있고, 이 카드의 활용은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억대 경품 내건 롯데백화점 vs 현대백화점

    귀하신 몸 골드뱅킹 내세운 롯데 TKO 승

    경품 가격 한도 폐지 이후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대형 백화점이다. 그전까지 한도에 맞춰 경차나 해외여행권, 백화점 상품권 등을 상품으로 내걸었던 것과 달리 억대 경품을 속속 내걸고 고객몰이에 나섰다. 가장 큰 금액을 내건 곳은 롯데백화점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7월 24일까지 전국 각 지점을 방문해 응모한 고객들 가운데 8월 5일 추첨을 통해 1등 당첨자 1명에게는 1억원 상당의 금을, 20명에게는 각각 1000만원어치의 금을 증정한다. 단 현물이 아닌 골드뱅킹 계좌에 입금해주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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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웅 롯데백화점 홍보실 대리는 “경품 규제 폐지로 다양한 경품행사를 진행하면 매출 상승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며 “특히 소비자현상 경품은 특정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충성고객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롯데백화점은 총 10억원어치의 상품권을 소비자 경품으로 내걸었던 ‘2014년 여름 정기세일’ 기간에 전년 동기보다 8.5% 많은 매출을 올린 바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17일까지 여름 세일 기간에 쇼핑 지원금 1억원을 1명에게 제공하는 꿈의 하루라는 경품 행사를 진행했다. 현대백화점이 여름 정기세일에 고가의 경품을 내건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양사는 모두 1등 당첨자에게 1억원 상당의 혜택을 내걸며 경쟁했으나 ‘브렉시트 발’ 경제 환경에 몸값이 귀해진 금을 내건 롯데백화점이 보다 주목을 받았다. 골드뱅킹 입금 형태로 진행되는 만큼 높은 ‘환금성’도 매력으로 꼽혔다.

    두 백화점 경품행사에 모두 응모했다고 밝힌 직장인 김영주(33)씨는 “두 백화점 모두 1등에 당첨될 경우 2200만 원의 제세공과금을 먼저 내야 하는데 직장인 입장에서 현대백화점의 1억원 백화점 쇼핑은 혹하긴 하나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나중에 돈으로 교환이 쉬운 롯데백화점의 골드뱅킹 경품이 보다 끌린다”고 밝혔다.

    강준모 현대백화점 홍보팀 대리는 이벤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지난 7월 15일 “처음으로 진행하는 대형 경품행사인 만큼 효과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신세계백화점은 여름 세일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캐리비안 베이 S-패키지’, ‘오션월드 패키지’, ‘해운대 프라이빗 비치 예약권’을 증정하는 바캉스 이벤트 삼총사를 경품으로 내걸며 일단 관망하는 모양새다. 이외에 갤러리아백화점은 여름 세일 기간 중 갤러리아카드 당일 7만원 이상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중국 계림 클럽메드 프리미엄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의 2인 3박 숙박권’을 총 2명에게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흔해진 수입차 경품

    고가 아파트 경품 등장 가능성 UP

    지난 6월 말까지 인터파크는 홈페이지를 통해 미니쿠퍼를 경품으로 내건 이벤트를 진행한 바 있다.

    동부화재 역시 경품규제 폐지에 맞춰 지난 7월 10일까지 설현 사인회 당첨자에 한해 폭스바겐 더비틀을 경품으로 증정하는 이벤트를 개최했다. 롯데면세점 인터넷점(www.lottedfs.com)은 지난 7월 11일까지 진행된 댓글 이벤트 경품으로 스포츠 세단 ‘재규어 XE 2.0D(1명)’를 내걸기도 했다. 이외에도 차량 증정 이벤트는 검색만 해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해졌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경차 위주로 진행해 온 유통업체들의 경품 경쟁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며 “경품고시 폐지와 함께 경품으로 등장하는 차종과 가격대는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1999년에 깜짝 등장했던 고가의 아파트가 경품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국내 면세점들도 이미 유커를 대상으로 아파트 경품 이벤트를 시작했다.

    롯데면세점이 유커를 대상으로 롯데캐슬아파트 입주 혜택을 경품으로 내건 이벤트 포스터.
    롯데면세점이 유커를 대상으로 롯데캐슬아파트 입주 혜택을 경품으로 내건 이벤트 포스터.
    롯데면세점은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연말까지 아파트 경품 이벤트를 진행해 당첨자에게 중국 선양에 소재한 ‘롯데캐슬’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이 지역에 거주하지 않아 입주가 힘들 경우 아파트가액을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다. 한국 내 롯데면세점을 방문한 중국인은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경품 응모를 할 수 있다. 이러한 롯데면세점의 대형 경품 이벤트 역시 이번 고시폐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에 따르면 경품 혜택 대상이 내국인인지 외국인지와 상관없이, 이번 고시 폐지로 함께 적용을 받게 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온오프라인을 망라하고 갈수록 국내 유통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고가의 아파트나 상가 분양권도 경품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초고가 경품의 경우 구매 고객을 대상이나 VVIP에 한정된 이벤트로 진행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단일 경품 가격이 10억원 이상으로 높아질수록 그만큼 세금에 대한 부담도 높아지고 부정적인 여론에도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며 “구매고객이나 VVIP를 대상으로 경품이 주어지면 그만큼 추첨의 범위가 좁아져 경품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고 경쟁적인 구매가 촉발될 수 있어 유통업체들이 점차 관심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황소부터 미분양 아파트까지 대한민국 경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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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경품의 역사는 1930년대부터 시작된다. 1933년 인천 소재 비단가게인 ‘태풍상회’가 옷감과 달력을 사은품으로 증정하며 시작된다. 1936년 화신연쇄점은 당시 농촌의 재산목록 1호인 황소 한 마리를 경품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처음으로 자동차가 경품으로 등장한다. 1963년 동화백화점에서는 일본 닛산자동차를 반제품으로 들여와 조립한 ‘새나라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걸었다. 당시로서는 귀했던 TV와 냉장고, 전화기도 경품으로 나왔다. 1970년대를 필두로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고도성장기에는 경품 종류가 더 다양해졌다. 자동차 경품 등장이 빈번해졌고 모피코트, 해외여행권, 콘도회원권 등이 경품으로 등장했다. 한국 경제에 찬바람이 불었던 1997년 외환위기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면서 고민이 깊어지던 건설업체와 유통업체들이 마케팅을 공조하며 아파트 경품이 첫선을 보였다. 롯데백화점은 1998년 10월 창립세일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경품을 선보였고, 신세계백화점 또한 같은 해 ‘로열층’ 아파트 한 채를 경품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2000년대 전후에는 경제 발전과 더불어 문화·스포츠·레저에 대한 관심이 커져 소비자 취향에 맞춘 새로운 경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포츠 행사와 관련된 경품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스포츠 경기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올라갔고, 당시 롯데백화점은 16강 진출 시 1000명에게 10억원을 지급하는 행사를 진행했던 바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금메달 12개 이상 획득 시 모닝 자동차 88대 증정,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이 금메달 8개를 획득하면 5억원의 경품을 제공하는 행사도 열었다. 현대백화점은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념해 영국여행 패키지와 고가 브랜드 가방 등을 경품으로 내걸기도 했다.

    2009년 롯데백화점은 창립 30주년을 맞아 선보인 우주여행 경품을 내걸며 주목을 끌기도 했다. 2014년 5월에는 황금연휴 기간 응모가 가능한 세계여행 경품행사도 진행했다. 고령화로 노후 안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1년 10월에는 롯데백화점이 연금 형식 경품을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2010년에는 황금거북선이 경품으로 나왔다.

    2014년 이후 경기침체가 이어지며 ‘현금’이 최고의 ‘경품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롯데백화점은 2014년 10억원을 증정하는 역대 최대 경품행사를 진행했고, 지난해에는 100명에게 학자금 100만원씩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1호 (2016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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