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빗에서 본 디지털 미래, C2B가 온다

    입력 : 2015.05.08 15: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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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5일 독일 하노버에서는 ‘세빗(CeBit)’ 전시회가 개최됐다. 세빗은 한때 디지털기기 전시회로 유명했다. 하지만 1월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CES와 2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밀려 잊혀진 전시회가 됐다. 2009년 삼성전자가 불참을 선언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아직 세빗이 있나”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2년 전부터 기업간거래(B2B)와 대정부거래(B2G)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독일의 SAP나 미국 IBM 등이 주력으로 참가하고 독일 정부가 추진하는 ‘인더스트리 3.0’에 대한 소개가 이뤄지면서 기업이나 정부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행사가 됐다. 한국의 삼성전자도 프린터 등 B2B 제품을 들고 다시 참가하기 시작했다.

    올해 세빗의 주제는 ‘디코노미(D!conomy)’였다. 생소한 단어지만 ‘디지털 이코노미’의 약자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아래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과 “디지털화(Digitization)의 기회를 찾아보라”는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2월 ‘혁신의 최전선(Edge of Innovation)’을 주제로 개최된 MWC가 삼성 갤럭시 S6 외에는 영감을 줄 수 있는 전시와 발표가 없어서 ‘고민의 최전선’이었다고 비판받았던 것에 비해 세빗은 현재 글로벌 기업들의 고민을 잘 잡아냈다는 평가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개막 기조연설을 하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직접 나와 마윈 회장의 연설을 경청했다. 리커창 총리도 화상으로 축하를 전했다. 미 NSA 감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도 영상으로 참여, ‘정보 보호·보안’에 대해 연설하는 등 글로벌 비즈니스 및 각국 정부 관계자들의 시선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세빗의 화두는 ‘디지털 경제’ 올해 세빗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바로 ‘디지털 경제’를 다시 화두로 꺼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주제도 바로 ‘디지털’이다.

    “지금이 디지털 시대인데 왜 또다시 디지털?”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디지털화’는 약 20년 전 인터넷이 처음 등장할 때 나온 슬로건이었다. 한국에서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바뀐 것이 20년 전인 지난 1994년 12월이었다. 이때는 ‘정보통신’의 의미가 ‘인터넷’은 아니었다.

    디지털화는 퍼스널컴퓨터(PC)의 보급을 뜻하기도 했다. 이어 아날로그TV가 디지털TV가 될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카메라가 디지털화 해서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고 특히 종이 문서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는 현상을 의미했다.

    약 20년 만에 찾아온 두 번째 ‘디지털’은 1차적인 ‘디지털 혁명’이 완성되고 또 다른 차원의 디지털 세계가 펼쳐진다는 뜻이다.

    지금은 거대한 세대교체기이기도 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사회과학자들은 한 세대를 대략 20년으로 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이들을 뜻하는 베이비붐 세대(1950년 후반~1970년대 초반 생),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X세대, 그리고 1980년부터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소위 밀레니엄 세대(Y세대)까지 약 20년을 터울로 한 세대가 바뀌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3D 프린터로 만든 이미지
    3D 프린터로 만든 이미지
    20년 전과 현재 ‘디지털 경제’의 차이 20년 전, 1994~1995년에 처음 등장한 디지털이 20년 후인 2015년에 다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 세대가 바뀌었다. 하지만 1994~1995년 등장한 ‘디지털’의 의미와 20년 후인 2015년 화두가 되고 있는 ‘디지털’의 의미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2015년 세빗에서 터치한 화두인 ‘디지털 경제’는 20년 전과 무엇이 다를까? 크게 세 가지 변화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역시 ‘모바일’ 한 세대 전 ‘디지털 전환’은 PC로 업무를 보고 가정의 중심이 TV가 아닌 PC가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기업간비즈니스(B2B)는 물론 각국 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전자정부 구축의 핵심도 PC와 서버였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전산실 환경을 바꾸었고 PC 중심의 업무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1차 디지털 전환기, 슈퍼스타는 PC 시대의 왕자인 빌 게이츠였다. 오라클, SAP, 썬, 델, HP 등 기업들이 최고의 주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즉, 모바일의 재탄생이다. 2000년대 초반, 모바일의 의미는 휴대폰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모바일은 곧 ‘모바일 인터넷’으로 바뀌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MWC에서 “기업들은 이제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로 전환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 지난 2010년이었다. 5년 만에 에릭 슈미트 회장은 이제 모바일은 ‘먼저’가 아니라 오직 모바일로 비즈니스하고 대화하는 ‘모바일 온리(Mobile Only)’라고 외쳤다.

    일부 국가에서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60~70%에 육박, PC 보급률도 이미 추월한 상황이다. 그리고 직원들이 개인용 모바일 기기를 회사에서도 사용하고 싶어 하는 소위 BYOD (Bring your own device) 현상도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모바일 퍼스트’는 당연한 것이고 이제는 ‘모바일 온리’ 비즈니스와 소비자 경험이 향후 5년을 좌우할 것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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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는 빅데이터, 클라우드, 소셜 세빗 2015 기조연설에서 마윈 회장은 “디코노미에서 디(D)는 디지털을 뛰어넘어 데이터를 의미한다고 본다. 데이터는 많은 기업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채워줄 것이다. 데이터로 인해 비즈니스는 B2C가 아닌 C2B(Consumer to Business)가 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쌓고 있는 데이터를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해 큰 박수를 받았다.

    마윈 회장이 언급한 ‘데이터’는 ‘빅데이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이미 모바일기기를 통해 끊임없이 데이터를 형성하고, 이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공유되며, 클라우드에 올려 언제 어디서나 꺼내볼 수 있도록 한다. B2C를 C2B로 바꾸자는 선언을 한 것은 알리바바가 인터넷 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간 거래 플랫폼에서 B2C를 거쳐 현재 모바일 결제(알리페이), 클라우드 서비스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비교적 후발 주자이기 때문에 이 같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다고 보인다.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하는 점은 C2B가 가능하게 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집된 소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빠르게 제조·판매에 돌입하는 모델이다. 이미 자라,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 패션(SPA 브랜드)이 C2B의 성공 사례를 보여줬다. 소비자들의 빠른 취향 변화를 감지하고 재빨리 만들어서 저렴한 가격에 글로벌 유통 통로를 만들어 시장을 재편했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 비즈니스는 SPA로 인해 완전 재편됐는데 이제 패션을 넘어 제조업, 뷰티 등 많은 산업이 C2B로 인해 바뀔 것으로 보인다.

    C2B를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 클라우드, 소셜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테크놀로지)을 넘어 사회적 간접자본(인프라스트럭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소셜의 시장 규모는 72조달러에 달하는 전세계 GDP 중 2조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 데이터, 클라우드, 소셜은 모든 산업에 연관돼 녹아 있다. 이것은 최근 급격한 산업 구조 변동의 핵심 원동력이 되고 있다.

    클라우드, 소셜, 빅데이터와 같은 신기술이 가능하게 만드는 C2B를 정부와 결합시키면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C2G(Citizen to Government)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구축된 전자정부는 온라인에서도 접근 가능한 정부를 뜻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경직성이 있어서 보통 정부가 국민(시민)을 대상으로 수혜성 사업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클라우드, 소셜, 빅데이터는 국민(시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책이 정부에 반영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다.

    세 번째는 디지털 네이티브, 즉 ‘밀레니엄 세대’의 성장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분석한 미국 센서스국 자료에 따르면 올해(2015년)부터 밀레니엄 세대는 7530만명으로 7490만명의 베이비부머를 뛰어넘게 된다. 미국의 밀레니엄 세대는 젊은 이민자가 계속 유입돼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추세와 다르지 않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인구 기준으로 급격히 퇴조하고 밀레니엄 세대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에 익숙하고 인터넷과 함께 자랐다. 이들이 핵심 소비 계층이 되고 직장에서는 핵심 노동력이 되고 있으며 정부 입장에서는 핵심 정책 수요층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신입사원이 회사를 지원할 때 지원할 회사에서 일하는 선배나 친구 등을 통해 듣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 무엇이든 찾는다. 기업 평판을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도 생겼다. 이제는 투명성의 시대이며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성숙되고 세대가 교체된 새로운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이다.

    [손재권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6호(2015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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