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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져누운 환자 지갑 털어가는 범죄…천태만상 의약품 리베이트
입력 : 2014.09.12 14: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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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전에 없던 강력한 정책을 꺼내든 정부를 비웃듯 최근 또다시 대형 리베이트 사건이 적발됐다. 지난 8월 차병원 관계사 차바이오텍 소유의 제약사 CMG 전 현직 직원들이 병의원에 조직적으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0년부터 전·현직 영업본부장 4명과 직원 1명이 전국 379개 병의원에 15억6000만원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201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쌍벌제’를 바탕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와 약사 40여 명도 사법 처리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규제강화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관행이 주춤해진 것을 기회 삼아 적극적으로 불법 리베이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방식은 현금을 바로 제공하거나 상품권을 이용한 리베이트 제공, 영업사원 개인 신용카드를 이용한 방식, 도매상을 이용한 리베이트 제공 등 이전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방법들이 사용됐다. 리베이트에 사용된 판공비는 약가의 최대 41%로 높은 편이었다.
국내 1~2위를 다투는 대형 제약회사에 3년간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다 1년 전 금융사로 전직한 A씨는 제약사 근무하는 내내 리베이트 경쟁 속에 살았다고 회고했다. A씨는 어느 분야보다도 경쟁이 치열한 제약업계가 약품의 질이나 가격 경쟁력이 아닌, 범죄행위인 리베이트 경쟁에 의해 시장점유율이 결정된다고 전했다.
“법인카드를 의사에게 빌려주고 한 달에 몇 천만 원씩 쓸 수 있게 한다거나 현금으로 교환 가능한 상품권으로 제공하는 것은 아주 베이직한 방식입니다. 의사들이 원하는 형태가 다양해 제가 제공하던 형태만 20가지가 넘었으니까요.”
A씨는 자신과 선배들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회식비나 주점 술값을 요구하는 의사들은 사실 양반이에요. 자녀 대학등록금을 내달라거나 자동차 렌트비를 요청하거나 명품백을 정기적으로 받는 여의사도 상당수예요. 주말마다 골프비용을 내느라 쉬지도 못하고 쫓아다니는 선배들도 있었죠. 그래도 의사들이 먼저 원하는 방식이 있으면 사실 오히려 편합니다.”
이외에도 A씨가 고백한 의사들의 리베이트 제공방식은 다양했다. 오피스텔 월세를 정기적으로 부담하거나, 안마의자 구비, 추석선물용 한우세트 대량구입 등 시기에 따라 요구사항이 달라진다고 했다. 한편 치밀한 병원장이나 의사일수록 적발되기 쉬운 대량의 상품권이나 카드 사용보다는 정기적인 현금지급이나 잡지사나 사보를 통해 명목적인 기고문을 쓰고 거액의 원고료를 지불받는 형태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최근 의료계와 제약사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는 것은 동아제약 리베이트 항소심 판결이다. 국내 제약업계 1위 업체인 동아제약으로부터 수백만 원에서 최고 수천만 원까지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 119명이 불구속 기소 또는 약식기소로 사법처리됐다. 단일 사건으론 역대 최대다.
행정 처분된 병·의원 관계자만도 1300명이 넘어선다. 동아제약 역시 현금이나 상품권은 기본이며 설문조사료, 병원 홈페이지 광고 같은 그럴 듯한 명목을 붙여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동영상 제작을 돕고 강의료를 받은 것이 리베이트에 해당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정부 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은 그러나 동영상 강의료에 대해서도 명분만 취하고 사실상 경제적 이익을 준 것으로 봤다.
기소된 의사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당하게 강의를 한 부분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동영상 제작을 통해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방식은 이전에 현금이나 상품권을 제공하던 부분이 감시를 많이 받으면서 나온 형태임은 분명하다”며 “다만 이번 사례는 강의의 질이 이전보다는 나은 만큼 제공액이 일반적인 수준에서 상당한지 여부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만약 재판 결과 동영상 제작부분이 리베이트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 업계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합법적인 툴로 유행처럼 번져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외 여러 국가들은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제약회사와 의료인을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국가들도 여럿이다.
이에 비해 국내의 경우 의사들은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제약사들은 과징금을 받아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라 계속해서 리베이트 영업을 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어 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시각도 많다. 특히 쌍벌제 시행 이후 적발된 의사는 지난해까지 4000여 명이 넘지만 이 중 행정처분을 받은 인원은 190여 명에 불과해 불법 리베이트 거래의 내성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의료인의 명단을 공개하거나 무거운 실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법 규정이 정비되지 않는 이상 오랜 기간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풍조가 개선되긴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와 제약업계가 리베이트 규제에 대해 쌍심지를 켜며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지만 피해를 보는 쪽은 오히려 소비자다. 리베이트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중의 약값인 셈이다. 제약회사는 의사들에게 건네는 돈다발 이상으로 약값을 올린다. 정부가 발표한 제약회사가 의료인에게 주는 리베이트 규모는 전체 약값의 20% 정도인 연간 2조18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비용은 결국 환자에게 가중되고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외계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만년 적자로 운용되는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끼친다. 정부의 규제 의지도 중요하지만 시민들 모두가 리베이트 문제를 자신의 일로 인식하고 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8호(2014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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