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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걸 기자의 Blue House Diary] 떠나간 ‘대통령의 입’ 든자리와 난자리
입력 : 2014.06.27 13: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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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사람은 몰라도 난사람은 안다’는 우리 속담이다.
‘나간 자리’에서 가장 공백이 커 보이는 곳은 역시 청와대쪽이다. ‘대통령의 입’,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던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빈 자리는 커 보인다.
평일휴일 낮밤 가리지 않고 朴과 소통한 유일한 참모 청와대 내부에선 ‘왕(王) 수석’으로 불렸던 이 전 수석의 빈자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벌써 나온다. 단순히 홍보수석 업무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수석은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청와대 홍보수석은 물론,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과 정무적인 조언자, 심지어는 외부 민심(民心)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일까지 도맡아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제외하고는 대화 중 대통령에게 ‘그런데요 대통령님’하며 말머리를 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사였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충성심의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이 수석과 박 대통령의 대화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홍보수석 시절 브리핑 도중 벨소리가 울리면 갑자기 전화기를 들고 춘추관(기자동) 밖으로 뛰어나가 승용차에 올라타 문을 쾅 닫아버리곤 했다. 브리핑을 듣던 기자들은 ‘대통령에게서 또 전화가 왔구먼’하고 알아차리곤 했다. 식사 중에도 마찬가지다. 한창 대화 도중 익숙한 그 벨소리가 울리면 두 손으로 전화기를 감싸고 ‘잠깐만요’ 한마디를 남긴 후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후다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깥으로 뛰어나가기도 했다.
이 수석과 같은 교회를 다니는 한 지인의 전언.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 수석은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데 대통령 전화가 올까봐 매번 맨 뒷자리 문 앞에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고 한다. 교인들 사이에선 ‘매일 구석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니 사람 참 겸손하다’는 오해(?)도 나왔다. 그러던 중 하루는 헌금위원을 맡아서 어쩔 수 없이 목사님이 설교하는 맞은편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수석은 결국 전화를 받아 모기 목소리로 ‘예배 중입니다’고 하고 끊었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대통령이 “예배시간인지 몰랐다. 앞으로 그 시간엔 전화하지 않겠다”고 미안해했다는 일화가 있다. 정리하자면 한마디로 평일과 휴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는 보기 드문 참모였다.
靑 갈등조정까지 맡아 ‘빈자리’ 걱정하는 소리 벌써 나와 다른 수석비서관이 전한 얘기. “박 대통령은 참모진에게 주로 전화로 지시하는데 아무래도 전화다 보니 용건만 얘기하고 끊는 게 대부분이다. 전화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이것저것 얘기하긴 힘들다. 단지 이정현 전 수석은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전화를 받으니 가끔씩은 ‘그런데요 대통령님 요건 꼭 말씀드려야겠습니다’하고 얘기를 하는 것 같더라. 그게 바로 대통령과의 거리 아니겠느냐.”
이는 1기 청와대 참모진의 절반 이상이 관료 출신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속을 터놓고 정무적인 결정에 대해 논의할 만한 사람이 김기춘 실장이나 이 전 수석 외엔 없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대통령은 이만큼 가깝고 믿었던 이 수석이 떠난 자리를 어떻게 채울까. 결국 조윤선 정무수석 등 측근 정치인들에게서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조윤선 수석에 대한 관심이 벌써부터 집중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 전 수석은 당 수석부대변인, 공보특보, 공보단장, 대통령당선인 정무팀장, 청와대 정무·홍보수석까지 10년간 밑바닥부터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온 데 비해 조 신임 수석은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젊은 정치인이다. 박 대통령과 참모진과의 소통방식은 좋든 나쁘든 이전과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내부에서 ‘빈자리’를 걱정하는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복잡한 권력관계로 이뤄진 청와대 내부의 속성상 항상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수석이 박 대통령과의 메신저 역할을 전담하면서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도 상당부분 수행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 실장이 알기 힘든 수석들이나 비서관들 사이의 갈등도 이 수석은 웬만큼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 46호에서 계속...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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