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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걸 기자의 Blue House Diary] 한미일 정상회담 뒤편에선…
입력 : 2014.04.25 11:4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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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우리나라는 일본 정상과의 만남에 부정적이었다. 꺼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역사퇴행적인 발언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반성이나 사과 한마디 없이 무조건 ‘만나자’고 달려드니 우린 회담할 이유도 명분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날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3국회담이 굳어져가는 듯했다. 결국 미국이 힘을 쓴 듯했다. 그 와중에 민 대변인이 사실상 3국회담을 확인해주는, 그러나 더 이상의 설명은 없는 한마디를 던지고 사라진 것이다.
靑, 정상회담 발표 한발 뒤로 뺀 까닭 궁금했다. 정상회담 일정을 왜 외교부에서 발표할까.
정상적이라면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한다. 대변인이 나서서 대통령을 주어로 , 즉 ‘박근혜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하는 브리핑을 했을 것이다. 특히나 청와대 대변인이 ‘정상회담을 외교부가 발표할거다’고 떠넘기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외교부의 태도는 더 의문이 갔다. 정작 외교부에 물어보니 “정상회담 발표를 왜 외교부에서 하나요? 저희는 모르는데요?”란 답이 돌아왔다. 청와대 기자실은 북새통이 됐다.(이날 같은 시각 외교부 기자실도 북새통이 됐다고 한다.) 한마디로 혼선이었다.
잠시 뒤 외교부의 답이 변했다. “외교부에서 발표할 겁니다.”
결국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외교부가 단 두 줄의 성명을 발표했다. 24, 25 양일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핵 정상이 만나 회담을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 측이 주최하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참석하기로 했으며 회담 시 북핵 및 핵 비확산 문제에 관해 의견 교환을 가질 예정. 또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 국장급 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두 줄의 간단한 성명을 발표했다. 자세히 읽어보니 정상회담의 주체가 청와대가 아닌 외교부다. 그리고 성명의 주어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우리 정부’다. 목적어도 ‘오바마와 아베’가 아니라 ‘미국 측이 주최하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었다.
한일 관계, 대통령의 원칙 변치 않아 나중에 들어보니 이런 대응은 여러 가지를 고려한 조치였다고 한다. 일단 우린 그동안 일본 총리가 대놓고 역사를 왜곡해 진정성 있는 조치 없이는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다자회의 때 미국의 초대로 만나게 된 만큼, 우리 측의 입장변화가 있는지를 표시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에 잘못된 사인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은 ‘정상’의 개인적 소신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박 대통령은 발표창구를 외교부로 낮추고, 주어를 대통령이 아닌 정부로 바꾸고, 미국 측 초대에 응한 회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위안부문제를 거론하는 등 최소한 4가지 사인을 보냈다. 한마디로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측 초대에 응하지만 일본에 대한 원칙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적시한 셈이다.
둘째로 외교부로 발표창구를 옮기면서 ‘버퍼’를 만드는 전략을 택했다. 거듭돼온 일본 측의 ‘말바꾸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실제 이런 전략은 나중에 ‘그래서 그때 그랬구나’라는 반응이 나오게 했다. 지난 3월 25일 박 대통령,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베 총리 등 한미일 정상회담의 잔상이 채 가시기도 전인 4월 4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심의회를 열고 ‘일본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했다’는 설명이 담긴 초등학교 5, 6학년 사회 교과서 4종을 합격시켰다. 박 대통령이 헤이그에서 아베 총리와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줬다면 우리 정상만 뒤통수를 맞는 꼴이 될 뻔했다.
세 번째로 청와대가 나서서 공식 발표를 하기에는 애매한 요인이 실제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3자 정상회담은 시간을 맞춰 공동으로 발표하는 식인데 일단 3국의 이해관계가 다른 데다 일본 언론들이 계속해서 미리 보도를 터뜨려 일본이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의심을 버릴 수 없었다.
※ 44호에서 계속... [김선걸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4호(2014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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