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폰 보조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입력 : 2014.03.10 14: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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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난 1월 23일. 휴대폰업계에 광풍이 불었다. ‘1·23 대란’으로 불리는 이날에는 출고가 100만원이 넘던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가 단돈 19만원에 팔려 나갔다. 이와 동시에 애플의 아이폰5S는 아예 공짜폰으로 등장했다. 당시 갤럭시노트3에는 87만원 상당의 보조금이 적용됐고, 아이폰5S는 81만원이 적용됐다. #2 3주 정도가 흐른 2월 11일. 할인정보 사이트인 ‘휴대폰 뽐뿌’에는 동대문의 한 휴대폰 유통매장 측에서 올린 글이 등장했다. 갤럭시노트3를 10만원, 아이폰5S를 5만원에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은 해당 매장에 줄을 길게 서며 ‘휴대폰 보조금 원정대’란 단어까지 탄생시켰다. 업계에서는 ‘2·11 대란’이라 부르고 있다.

    휴대폰업계가 뒤숭숭하다. 새해 벽두부터 펼쳐진 치열한 보조금 경쟁으로 인해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17일 진행된 미래부와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스마트폰을 사려고 새벽부터 수백미터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며 두 부서에 제도 보완을 당부했다.

    그러나 정작 주변에서는 보조금 혜택을 본 이들을 찾기 어렵다. 휴대폰 유통업체들이 평상시에는 원칙적 수준의 보조금만을 지급하다가, 감독기관인 미래부와 방통위의 눈길이 소홀해지면 게릴라식으로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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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사도 주고, 통신사도 주는 보조금 국내 통신 시장은 사실상 ‘포화’ 상태다. 휴대폰 보급률이 이미 100%를 넘어선 상황이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에서는 경쟁사의 고객을 빼앗아 와야 하는 ‘제로섬’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휴대폰 보조금’은 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당근’이다. 통신사들이 매년 방통위로부터 막대한 과징금 처분을 받으면서도 휴대폰 보조금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 휴대폰 보조금은 대체 어떻게 지급되는 것일까. 원칙적으로는 고객에게 청구되는 통신비용 중 일부를 통신사가 부담해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4만5000원짜리 요금제에 가입한 고객에게 보조금으로 1만5000원이 책정돼 있다면 이 고객의 청구서에는 3만5000원이 입력되는 방식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4만5000원 요금제를 사용하고도 금액이 줄어든 청구서를 받아서 좋고, 통신사 입장에서는 이런 보조금을 통해 신규고객을 모집하면 최소 2년 약정을 하게 되므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

    보조금은 통신사만 지급하는 게 아니다. 휴대폰을 만드는 제조사에서도 자사제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미 휴대폰 보급률이 100%가 넘은 상황에서 새로운 신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고객이 새 제품을 사줘야 하는데, 이를 유인할 미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휴대폰 유통업체는 통신사에서 지급되는 ‘요금 보조금’과 제조사에서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을 모두 휴대폰 판매가격에 적용해 100만원대 출고가의 신형 휴대폰 가격을 대폭 낮춰 팔 수 있게 된다. 고객 입장에서는 고가의 신형 휴대폰을 낮은 가격에 합리적인 요금제로 살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시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작 휴대폰 보조금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휴대폰 유통업체들조차 통신사와 제조사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의 규모를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다만 대형 유통업체일수록, 또 다른 신제품이 출시되기 전일수록 보조금의 규모가 커진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고객들에게 제공돼야 할 보조금이 엉뚱한 주머니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휴대폰 유통업체가 보조금을 양쪽에서 지원받으면서 정작 고객에게는 쥐꼬리만한 보조금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보조금의 지급 규모는 사실상 유통업체에서 정하기 나름”이라며 “열이면 열, 모두 다른 보조금 조항을 얘기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아예 ‘보조금 떳다방’을 통해 통신사와 제조사로부터 보조금만을 챙기는 이들도 있다. 과거 휴대폰 유통업체를 운영하며 보관했던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몰래 휴대폰을 개통시킨 후, 의무가입기간인 3개월이 지나면 해약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보조금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하면 통신사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휴대폰을 공급받은 후 불법 개인정보로 개통시킨다. 가입비와 3개월간의 의무가입기간 통신요금, 그리고 보조금이 붙어 가격이 낮아진 휴대폰 할부 원금만 보유하고 있으면 된다. 이 경우 떳다방 업체들은 일단 몰래 휴대폰을 개통시킨 후 통신사로부터 보조금만 받아 챙기고, 의무가입기간인 기기를 해지한다. 포장도 뜯지 않은 휴대폰들은 다시 중고시장이나 수출업체를 통해 해외로 팔아치워 여기에서도 돈을 번다. 업계 관계자는 “떳다방을 통해 휴대폰을 유통하는 이들은 보조금 경쟁이 치열해질 때 등장해 단시간에 억 단위 수익을 내고 사라진다”고 밝혔다.



    불법보조금 잡는 만병통치약? ‘단말기 유통법’ 문제는 이렇게 지급되는 보조금은 결국 소비자가 통신사에 지불하는 통신요금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신사 관계자는 “휴대폰 보조금으로 한해 사용되는 마케팅비용이 국내 통신3사를 모두 포함하면 ‘조(兆) 단위’가 넘어갈 것으로 짐작 된다”면서 “이런 비용은 결국 소비자들이 내는 통신요금으로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어 고객입장에서는 보조금을 받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이상한 유통구조가 돼 버렸다”고 전했다.

    제조사에서 지급되는 장려금도 같은 구조다. 당초 공장에서 생산되는 원가에 제조사의 마진과 판매장려금까지 추가되다보니 휴대폰 출고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글로벌 휴대폰 생산업체가 3곳이나 있지만, 저가폰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통신사들과 제조사들은 대체 왜 보조금과 장려금을 지급하는 것일까. 한 통신사 관계자는 “국내 통신사에서 출시된 상품들은 사실상 유사한 경우가 많아 차별화를 하기가 어렵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포화되다보니 결국 보조금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소비자들 역시 비슷비슷한 통신사 상품들로 인해 보조금을 더 주는 곳으로 철새처럼 이동하고 있어 통신사 입장에서는 보조금을 지급해서라도 고객을 빼앗아 오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제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경쟁사보다 자사의 제품을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서는 더 좋은 사양을 장착하는 것이 맞지만, 특별하게 뛰어난 기능이 없는 상황에서는 결국 보조금 지급을 통해 신제품을 판매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게 제조사들의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감독기관인 미래부와 방통위가 시장규제에 나섰다. 규제의 첫 번째 대상은 ‘제조사’들이다. 제조사들에게 보조금 지급 명세와 단말기 판매량, 출고가를 제출하도록 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을 내놓은 것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보조금 문제 해소를 위해 사후규제는 물론, 강도 높은 사전규제를 하겠다는 것으로, 법안이 통과되면 제조사들은 모든 보조금을 해당부처에 신고해야 한다.

    오는 6월까지는 휴대전화 요금제도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책 마련에 나서 ‘통신사’에 대한 규제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래부 측은 현재까지 운영됐던 ‘요금 인가제’를 전면 폐지하고, 현행 요금제와 통신비용이 가계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해 새로운 요금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요금인가제는 시장점유율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신규요금제를 심사해 인가하면, 하위사업자인 KT와 LG유플러스가 이를 따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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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개입이 오히려 족쇄될 수도 그러나 ‘단통법’에 대해 통신사와 제조사는 물론 소비자들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통신사들은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인 만큼 마케팅비용과 구입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시장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동통신 서비스가 업체별로 큰 차별성이 없는 상황에서 시장마저 포화상태인 관계로 결국 보조금 지급을 통한 제로섬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보조금에 규제를 가한다면 경쟁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하위 업체들은 “시장 규모가 커질 새로운 고객군이 없는 상황에서 경쟁업체의 고객모시기를 할 수 없다면 지금의 업계서열은 그대로 고착화 된다”며 성토했다.

    제조사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다. 제조사별로 차이가 있지만, 보조금의 지급 규모와 출고원가까지 보고하라는 것은 기업체의 영업비밀을 모두 공개하란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관련협회들마저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등 4개 협회는 국회에 건의문을 제출하며 “법률로 기업의 영업정보 공개를 강제하는 것은 유례없는 반시장적인 입법”이라며 “법안이 통과될 경우 기존의 미래부는 물론, 방통위와 공정거래위원회까지 2중, 3중의 중복규제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통신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했다가 시장의 실패를 불러온 사례도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2007년 단말기 가격과 요금제를 분리하고 보조금의 상한선을 두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일본 휴대폰 시장규모는 같은 해 5200만대에서 2008년에는 3800만대로 27%나 추락했고, 규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내수시장의 축소는 곧바로 일본 휴대폰 상위 5대 기업(샤프·후지쯔·파나소닉·NEC·소니)의 매출액 축소를 가져왔고, 이중 NEC와 파나소닉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예 철수해 버렸다.

    제조사 관계자들은 “일본 업체들이 스마트폰 시장의 글로벌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한 점도 있을 테지만,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내수시장이 줄어든 것도 일본 휴대폰 제조사들의 몰락을 불러온 원인 중의 하나라는 관측이 있다”면서 “중국이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보조금 규제 정책이 자칫 전자산업의 위축을 불러 올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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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선택권은 어디로 더 큰 문제는 ‘단통법’이 불러올 부정적인 결과들이다. 제조사들이 법안 통과 후에 보조금만큼 출고가격을 인하할 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기존 출고가격은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커 보조금 규제로 인해 제조사의 영업이익만 늘어날 수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보조금 규제로 인해 출고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지만, 가격결정권은 정부가 아닌 제조사에 있다. 이 경우 소비자들은 과거 보조금으로 인한 혜택이 줄면서 더 비싼 값에 휴대폰을 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통신사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단통법 통과로 인해 줄어든 마케팅비용(보조금)을 통신요금 인하가 아닌 영업이익으로 잡아도 정부 입장에서 딱히 이를 규제할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해 기업들이 경쟁을 위해 영업이익을 줄어가며 소비자에게 제공했던 혜택들이 정부의 규제책으로 인해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유통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보조금 규제로 인해 경쟁이 느슨해지게 되면 휴대폰 유통업체들은 구조조정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경우 규제로 내수시장의 휴대폰 거래가 한때 40%까지 급감했던 만큼 우리나라도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국에는 3만여 곳의 휴대폰 유통업체들과 대리점이 산재해 있는데, 보조금경쟁이 사라질 경우 이들 업체 중 절반 가까이가 문을 닫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와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가는 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럴 경우 ‘최악의 피해자’는 소비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사와 통신사가 기존 보조금을 영업이익을 잡게 될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는 과거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휴대폰단말기와 통신요금을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단통법보다는 현재 유지되고 있는 요금인가제를 폐지하는 것이 통신요금 부담을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단통법이 시행될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는 현재 30만원 이상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을 최대 27만원만 받게 돼 손해를 보게 된다”면서 “오히려 이동통신사의 요금인가제를 폐지해 이동통신사들의 요금경쟁을 유도하는 게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2호(2014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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