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입차 전성시대…영업맨의 한숨

    입력 : 2014.02.04 14: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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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수입차업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는 바로 폭스바겐이었다. 폭스바겐은 지난 2012년 수입차업계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후, 올해에는 독일 최고의 명차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를 밀어내며 수입차 2위에 올랐다. KAIDA(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지난 한 해에만 2만5649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이처럼 폭스바겐의 차량이 많이 팔렸다는 것은 곧 폭스바겐 영업맨들이 지난해 열심히 활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폭스바겐 영업맨들이 높은 인센티브를 받았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폭스바겐 영업맨들이 대거 이탈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 폭스바겐 딜러사 중 몇 곳은 높은 이직률을 기록해 본사에서도 염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직을 준비 중인 A딜러는 “폭스바겐의 경우 대중차 이미지가 강해 차량 가격이 경쟁사에 비해 낮은 편”이라며 “당연히 영업맨들이 가져가는 대당 마진도 낮아서 이직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수입차 업계 1위인 BMW의 사정도 비슷하다. BMW의 B딜러는 “일본차 브랜드에 있을 때보다 차는 많이 팔지만, 정작 소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거의 없다”면서 “심각하게 이직을 고민 중에 있다”고 귀띔했다.

    수입차업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에서 일하는 이들이 이탈을 꿈꾸고 있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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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커지자 영업맨 마진 줄어들어 “억대 연봉요? 그건 옛날 얘기입니다. 지금 수입차 영업맨들은 대부분 실적 채우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수입차가 잘 팔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딜러(영업소)들이 늘어나면서 내부적으로 경쟁이 심해졌고요. 고객들 역시 마진율 이상의 할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적을 채워야 하는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결국 마이너스 매출이라도 올려서 실적을 채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B사의 영업사원)

    수입차 영업사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실적압박에 고객들의 무리한 할인 요구, 게다가 차량 판매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의 책임을 모두 영업사원에게 넘겨버리는 무책임한 본사의 지침까지. 수입차 영업맨들의 어깨가 쳐지는 이유다.

    국내 수입차시장은 지난 2000년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KAIDA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5만6497대의 수입차가 팔려나갔다. 2012년 13만858대가 팔린 것과 비교하면 19.6% 증가한 수치다. 이 때문에 수입차 영업사원들은 지난 15년간 ‘영업의 꽃’으로 불리며, 세일즈직 종사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란 말처럼 지금의 수입차 영업맨의 현실은 그야말로 암담하다. 시장이 커지면서 같은 브랜드의 차량을 판매하는 딜러들이 늘어났고, 결국 치열한 내부경쟁이 펼쳐지고 있어서다. 이런 내부경쟁은 결국 영업맨들의 마진율을 낮추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영업맨들이 세일즈 현장을 떠나게 하고 있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판단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수입차 영업맨들의 세일즈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유는 이들이 가져가야 할 ‘수익’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차 시장이 커지면서 수입차업체들은 딜러사에 공급하는 마진율을 대부분 줄여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입차 업체들이 최근 몇 년 새 신차 출시 과정에서 가격을 내리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것도 이 같은 마진폭을 줄였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반면 업체에서 딜러사에 공급하는 차량가격은 기존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딜러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부족한 마진율을 영업맨들에게 돌리게 된다. 본사 차원에서 줄인 마진율이 결국 딜러사를 거쳐 영업사원들의 파이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마진이 줄면 영업맨 입장에서는 영업활동을 위한 동기부여가 줄어들게 된다. 과거에 한 대만 팔아도 10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절반도 받을 수 없다면 영업활동에 대한 의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빈번하게 진행되는 본사 차원의 프로모션과 할인행사도 영업맨들의 지갑을 얇게 한다. 본사 차원에서 행사를 진행할 경우에는 판매 증진을 위해 소비자가격을 낮추는데, 정작 내부적으로는 판매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 영업맨들 입장에서는 마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B사의 S딜러는 “본사의 프로모션이 진행될 경우 모든 영업사원이 행사차량의 판촉에 집중하기 때문에 정작 개인고객 관리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부분을 감수하면서까지 본사행사에 집중하지만, 정작 대당 마진은 아예 없거나 박한 경우가 많아 이용만 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반면 판매목표량은 해마다 올라가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은 수입차 시장 규모가 매해 커지면서 판매목표량을 늘리고 있다. 수입차 시장이 지난 2011년 10%를 넘어 2015년에는 15%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점유율 확대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영업맨 입장에서는 목표량이 늘어나는 대신 마진율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지난해보다 차량을 더 팔아야만 전년대비 비슷한 수준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당연히 영업맨들의 어깨가 처질 수밖에 없다.

    내부경쟁 심화에 본사는 ‘나 몰라라’ 본사의 딜러 남발도 수입차 영업맨들의 지갑을 얇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과거에는 수입차 딜러들의 영업활동 반경을 고려해 최대한 넓게 딜러권을 부여했지만, 최근에는 같은 브랜드를 판매하는 딜러들의 영업활동 반경이 대부분 겹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입차업체들이 브랜드경쟁을 벌이고 있다면, 해당 브랜드 소속 딜러사들은 한 브랜드 내에서 판촉 경쟁을 하고 있다. 다른 브랜드 딜러들과도 싸워야 하지만, 수입차 고객 특성상 브랜드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같은 고객을 놓고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내부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서초동에서 독일 브랜드를 판매하는 B딜러는 “수입차의 경우 대부분 강남을 중심으로 영업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논현동을 비롯해 대치동, 남부순환로, 서초동, 삼성동 등에 같은 브랜드들 영업소가 문을 열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실제 딜러사들이 운영하는 수입차 매장의 수는 최근 10년 사이에 엄청나게 늘어났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22개 브랜드가 362개의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영악해진 소비자들 역시 영업맨들에게 위기로 작용되고 있다. 수입차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 대부분이 같은 브랜드 내의 다른 딜러들에게 중복으로 견적을 받아본 후 비교해서 차량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영업맨 입장에서는 마진을 거의 포기하고 오히려 추가적인 혜택을 제공해야만 차량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차량을 판매하면서 마진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자기 돈을 털어주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영업맨들은 마이너스 판매를 감수하는 걸까. 수입차시장은 해외본사→한국법인→지역딜러→영업사원→고객 등의 과정을 거쳐 차량을 판매한다. 한국법인은 딜러들의 판매목표치를 보고 신차를 비롯해 인가 차량을 우선 배정하는데, 이 때문에 딜러업체들 간의 목표량 경쟁이 일어난다. 이렇게 정해진 목표치는 다시 영업맨들에게 분산할당 되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목표량을 채울 때마다 인센티브를 제공받게 된다.

    결국 마이너스 판매를 해서라도 인센티브를 받으면 손해를 상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손해가 보여도 마이너스 판매를 단행하는 것이다.

    A딜러는 이와 관련해 “영업맨들의 경우 통상 월간 목표량을 채워야 하는데, 이 수준을 넘어서면 기본급과 대당 판매마진 외에 추가로 인센티브가 제공된다”면서 “목표량에 아예 도달하지 못할 것 같으면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지만, 3~5대가 부족한 경우 손해를 보더라도 인센티브를 타기 위해 무리한 결정을 내리는 이가 많다”고 귀띔했다. 특히 신입 영업맨일수록 이런 결정을 자주 내린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치열한 내부경쟁에 내몰린 영업맨들의 상황을 한국법인에서는 알고 있을까. 각 업체들은 사실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딜러사의 사정일 뿐이라며 방관하고 있다. 한 수입차 한국법인 관계자는 “딜러업체의 규모에 따라 차량공급가격과 프로모션 혜택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본사 입장에서는 많이 팔리는 업체에 혜택을 더 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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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 횡포에 딜러도 힘들어 그렇다면 한국법인과 딜러사의 관계는 원만할까. 딜러사들 역시 한국법인의 실적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아우디코리아가 소속 딜러사에 실적 밀어내기를 강요했다가 언론에 보도됐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아우디코리아는 자사의 플래그십 세단인 A8을 소속 딜러사에 리스로 밀어내기 했고, 물량을 떠안게 된 딜러사가 해당 차량을 중고차사이트에 올리면서 이런 내용이 알려졌다.

    다른 브랜드들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는 게 업계종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B딜러는 “본사에서 진행하는 프로모션은 대부분 물량 떠넘기기로 보면 된다”면서 “프로모션 차량들의 가격이 낮은 것은 영업맨들이 이렇게 떠안게 된 차량들을 빨리 팔기 위해 마진을 포기하고 영업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품질 불량이나 성능 문제가 발생해도 모든 책임은 차량을 공급한 한국법인이 아닌 판매사인 딜러사가 지게 된다. 영업맨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부분이다. 벤츠 소속의 C딜러는 “자동차는 사람이 만드는 것인 만큼 불량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도 모두 영업맨이 처리해야 한다”며 “본사의 품질을 믿고 차량을 판 사람이 불량문제나 성능 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업계 종사자들은 현재 수입차 업체들이 유지하고 있는 딜러 유통망을 직영체제로 전환하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경우 직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차량 간의 가격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한국법인들이 직영체제를 유지할 경우 막대한 고정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실현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수입차 전성시대에 역으로 울상 짓고 있는 수입차 영업맨들. 이들의 표정을 밝혀줄 관련업계의 진지한 고민과 변화가 필요하다.

    [서종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1호(2014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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