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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걸 기자의 Blue House Diary] 박 대통령의 소통 ‘적자’생존의 비밀
입력 : 2014.02.04 14: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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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의는 대통령이 참석자들 말을 모두 기록했다가 일일이 코멘트를 하느라 예정보다 30분 늦게 끝났다.
#장면2. 전날인 8일엔 새누리당 상임고문단과 만찬을 했다. 김수한, 박관용,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이세기 유준상 권철현 전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 정치계 원로들은 박 대통령에게 고언을 쏟아냈다. 옆에 배석했던 한 비서는 “대통령이 상임고문단의 말을 거의 빠짐없이 다 적더라”고 말했다. 원로들의 조언이 그만큼 인상 깊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나왔다. 대통령을 오래 보좌한 측근은 “원로들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열심히 적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했다. #장면3. 박 대통령은 6일엔 취임 이후 처음으로 TV생중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때 ‘일각에서 불통이라는 지적을 한다’는 질문이 나오자 이런 답변을 했다. “제가 가는 곳곳에 또 해외순방 갈 때도 민원비서관이 전부 가서 해외 동포하고 하는 얘기라든가 모든 것을 기록을 하고 또 그것을 하나하나 해결을 해서 답을 해드리고 저도 그것을 수시로 점검을 하고 있습니다.”
‘소통’을 단지 ‘듣는 것’에서 끝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통 ‘소통을 하라’고 하면 ‘앞으로 잘 듣겠다’는 대답이 나온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앞으로 잘 적겠다’고 답하는 것이다. 그만큼 기록과 문자에 대한 의존도와 애정이 강하다. 이처럼 ‘기록’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박 대통령이기에 정권 초엔 혼란스러운 장면도 많이 연출됐다. 3월 말 허태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수석비서관들에게 ‘받아쓰기만 하지들 말라’고 일갈했다. 당시 장면을 되돌려 보자.
#장면4.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허태열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들에게 ‘(대통령 말씀을)받아쓰기만 하지 말고 청와대 비서답게 일하라’고 지시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허 실장은 “(수석비서관)여러분은 비서이긴 하지만 그저 단순 행정만 하는 비서가 아니라 정무직임을 명심하라”면서 “받아쓰지만 말고 생각을 해라. 정무직다운 판단을 해달라”고 수석들에게 당부했다. 이는 새 정부 고위급 인사에서 김병관 국방장관, 한만수 공정위원장 등 내정자들의 잇단 낙마에 대해 청와대가 내부 검증 역할이 미진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청와대가 박 대통령 지시를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일방통행만 한다는 비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 현재 청와대 수석비서관 라인은 대부분 학자나 공무원 출신이어서 박 대통령에게 직언할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매일경제 2013년 3월 29일자) 이런 얘기가 오간 후 청와대 비서진의 ‘받아쓰기’가 잠깐 줄어들었다. 그러나 두 달 뒤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다시 ‘받아쓰는’ 청와대로 변했다.
다행히 이 한마디 농담에 박 대통령이 ‘빵 터져’ 한참을 웃었고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이날 박 대통령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난 국무회의 때 발언할 때 쳐다만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다. 내(대통령)가 하는 말을 메모해서 꼼꼼하게 수행해야 할 텐데 그렇게 기억력들이 좋은지 궁금하다.”
※ 41호에서 계속... [김선걸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1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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